98화 재와 괴물 그리고 사람
강현은 무대 위로 올라가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무어라 말해야 할까.
우리는 살아 나갈 수 있다고?
아니면 곧 콘서트를 할 거니 뒤돌아볼 생각 말라고?
‘모든 걸 외면한 채 모두 이 시간을 즐기라고?’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이나 보면서 현실을 외면하라고?
곧 괴물들이 몰려올 거고 강현을 비롯한 1분대는 녀석들과 맞서 싸울 터.
목숨을 건 마지막 싸움.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다.
뒤에서 피가 터지고 괴물이 죽어 나갈 텐데 이를 모른 척해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강현이 걱정하는 점은.
‘지금껏 쌓아 온 분위기가 무너질 수도 있다.’
아무리 지금까지 음식을 구하고 캠프를 만들면서 서로 으쌰으쌰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곤 하지만.
괴물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작든 크든 파장은 있을 거다.
그리고 마지막 싸움을 앞둔 때에 사기에 영향을 주는 말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있습니다.”
강현이 결국 진실을 꺼내 들었다.
“…….”
“…강현 씨?”
그의 말에 캠프 전체가 침묵에 휩싸였다.
마지막 싸움이라니?
다들 강현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고.
“곧 백화점에서 보았던 괴물들이 이 캠프를 무너뜨리기 위해 몰려들 겁니다.”
“……!”
이어진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급변하는 분위기에 강현이 황세아를 비롯한 1분대를 돌아보았고.
그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무대에 올라오기 전.
“우리는 이곳을 방어할 겁니다. 그리고 이혜원 씨는 저희에게 버프를 걸어 줄 거고 사람들은 이혜원 씨를 응원할 겁니다… 그게 제 계획입니다.”
강현이 우선 황세아 중사와 1분대를 모아 놓고 사정을 설명했다.
처음엔 다들 난감한 표정이었으나 점차 강현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래 강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방법밖에는 없다.
특임대 인원들 또한 생존자들을 구하러 돌아다니며 수많은 발자국을 발견했었다.
짐작하는 적의 숫자만 천.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장건철 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라도 방법이 있다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그를 비롯한 1분대 전체가 강현의 뜻을 따라 마지막 방어선을 세우기로 결정.
“이제 무대에 가서 사람들에게 말해 줘, 네 계획과 그들이 해야 할 결심을.”
황세아 중사가 강현에게 무대를 양보했다.
자신은 그저 직책이 높을 뿐 지금까지 이 모든 사람을 이끈 건 강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모두를 살릴 사람도 강현.
그녀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들의 신뢰 어린 눈을 마주한 강현이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사람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저를 비롯한 특임대가 여러분들을 지킬 겁니다. 그러니 끝까지 희망을 끈을 놓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버텨 주십시오. 특임대가 이곳을 지키겠으니 부탁드리겠습니다.”
강현의 진심 어린 부탁이 현장을 울렸고.
“웃기지 마!”
생존자 중 하나가 거칠게 소리쳤다.
역시 단순히 지켜 주겠단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작은 불안에도 깨지는 게 사람들의 정신이고 마음인 걸까.
결국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균열이 일어나는 건가.
강현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려 이를 악물 때.
“우리도 나무 창이라도 들고 싸우게 해줘!”
“옳소! 우리도 싸우고 싶다!”
“자네들이 우릴 구해 줬는데 또 목숨을 맡기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 이번엔 우리도 싸우겠어!”
사람들이 와글와글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예상과는 달랐다.
“우리도 군대 나오고 다 했어! 너희만 군인이냐? 우리도 바리케이드 만들고 싸울 거다! 싸우게 해 달라!”
“우우우! 우리도 싸울 수 있다!”
“뒤에서 돌이라도 던질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몇몇 아저씨를 시작으로 생존자들 대부분이 일제히 싸우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그 선명한 적의와 분노에 특임대원들이 놀랄 정도.
“매일 불안에 떨고 매일 도망만 쳤는데 여기서까지 도망칠 순 없지!”
“그래! 마지막이라며! 마지막까지 보호만 받다가 죽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어!”
여기 있는 모두가 현실과 타협하고 도망치고 숨은 경험이 있다.
삶이라는 게 그렇다.
항상 이길 순 없다, 아니 사실 항상 패배하고 합리화하고 도망치는 일상.
그런데 특임대 인원들은, 아니 지금 무대에 서 있는 저 청년은 그런 걸 모른다는 듯 행동했다.
가장 앞에서 괴물들을 죽였고, 가장 먼저 움직였고, 가장 희생했다.
“자네 같은 사람들이라면 그래! 이 목숨 하나 안 아깝지!”
물론 아깝겠지만, 어차피 죽을 목숨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심!
사람들의 아우성을 보는 강현의 얼굴엔 미소가 피어올랐다.
[감화, 전파 스킬의 레벨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두 스킬을 합쳐 새로운 스킬 군중 제어를 획득하셨습니다!]
[기존 스킬 효과를 유지하되 군중을 상대로 훨씬 강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군중 제어 스킬을 발휘합니다. 생존자 전체가 당신의 뜻을 완전히 따릅니다! 일시적 흥분 상태입니다! 사기가 크게 오릅니다!]
물론 단순히 새로운 스킬을 얻어서만은 아니었다.
바로 사람들의 반응.
어쨌든 특임대는 이들을 뒤에 두고 싸워야 한다.
특임대가 사람들을 포기할 일은 없지만 만일 사람들이 특임대를 포기하면?
살 수 없다는 절망에 휩싸인다면?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강현이 걱정하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우리가 할 일은 없어요? 아무거나 좀 줘 봐요!”
“뭐든지 할 테니까! 정말 나무로 창이라도 만들어서 던져 보자고!”
사람들의 아우성을 보던 강현이 손을 들어 올리자.
[군중 제어 효과 발동 사람들이 침묵합니다]
캠프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리고 강현이 진짜 용무.
사람들에게 부탁하려던 일을 입 밖으로 꺼냈다.
“저희 말고 이분을 응원해 주십쇼.”
“어엉?”
“이혜원 씨 올라오세요.”
강현의 부름에 이혜원이 쭈뼛거리며 무대로 올라섰다.
긴장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얼굴로 올라온 그녀가 강현의 옆에 섰고.
“이혜원 씨가 이 무대에서 공연할 겁니다. 여러분들은 이혜원 씨의 공연을 보고 즐기고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뭐?
사람들의 표정에 황당함이 들어찼다.
다시 무대에 올라오기 전, 황세아 중사와 1분대를 설득한 강현이 이번엔 이혜원을 찾아갔다.
강현의 설명을 들은 이혜원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저는 그런 거 못 해요. 전투라뇨.”
이혜원이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은 평생 노래와 춤만 연습하며 살았다.
그런데 전투라니?
더군다나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지는 싸움터는 본 적도 없었고 경험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혜원이 겁을 집어먹고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날 때.
성큼.
코앞까지 다가간 강현이 진지하게 이혜원을 마주 보았다.
“아뇨. 이혜원 씨는 싸우지 않습니다. 평소 하시던 일을 하시면 됩니다.”
“네?”
“아이돌이 가장 잘하는 일이자 자신의 특기인 공연을 해 주시면 됩니다.”
“네에?”
“춤과 노래, 그리고 관객과 무대. 공연을 위한 모든 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혜원 씨의 능력이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합니다.”
[언변, 신뢰, 감화, 카리스마를 발동합니다. 상대가 당신의 말에 설득되기 시작했습니다]
[고취 효과로 인해 이혜원이 일시적으로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이어진 강현의 설명에 이혜원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무대 위.
“아, 안녕하세요. 이혜원이라고 합니다아…….”
이혜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고.
사람들도 마주 인사했다.
다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얼떨떨해할 때.
강현이 이혜원에게 마이크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어디서……?”
눈을 둥그렇게 뜨는 그녀를 보며 강현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오다 주웠슴다.”
“그게 무슨…….”
개소리예요.
목 끝까지 튀어나오려던 말을 삼키자.
“그냥 시원하게 욕 박으세요.”
“네에?”
“보니까 쌍눔의 시끼들 욕 구수하게 잘 하시더만요.”
“으윽!”
그건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물론 강현은 기절한 그녀의 잠꼬대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 할머니랑 같이 살았거든요! 부모님이 맞벌이 때문에 바쁘셔서! 그래서 가끔 정말 가끄음 쓸 뿐이에요! 정말 기가 막혀서!”
자신의 치부를 들킨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고.
“부모님은 건강하십니까?”
“네에… 요즘은 제 돈 쓰느라 바쁘세요. 어릴 적엔 돈 번다고 바쁘시더니…….”
강현의 물음에 떨떠름하게 답했다.
“그거 다행입니다. 있을 때 잘해 드리세요.”
“이미 잘하고 있거든요. 그쪽이나…….”
“전 부모님 두 분 다 안 계십니다.”
“…미안해요. 그러니까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어떻게 해.”
예상치 못한 말에 이혜원이 발을 동동 구를 때.
강현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저기 보이는 분. 밖에 어린 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분은 따님이 밖에서 애타게 찾더군요. 저분은 어머니가 아들이 이곳에 잡힌 것을 알고는 절규하고 계셨습니다.”
“아아.”
“여기 모두가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자식이고 아버지인 분들이죠. 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분들에게 저와 같은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
“이혜원 씨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이혜원 씨의 부모님과 당신을 기다리는 팬들이 당신을 보며 행복해하길 바랍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강현이 이혜원에게 마지막 부탁을 남기고는 무대에서 내려가려 할 때.
“…무섭진 않으세요?”
이혜원이 다급히 한 가지를 물었다.
두렵지 않은 걸까? 저 사람은? 아니 저 사람들은?
헌터라는 이름 하나로, 군인이라는 이름 하나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에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그녀의 물음에 강현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두렵죠.”
“그럼!”
“때론 두렵고 힘들어도 앞에 서야 할 때가 있더군요. 두렵다고 무대에 안 서실 겁니까?”
“……!”
이혜원의 입이 그대로 얼어붙었고 강현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크으, 두렵다고 무대에 안 서실 겁니까?”
“너 나중에 사이비 종교 같은 거 세우면 안 된다. 보니까 말발로만 나라를 흔들 놈이야, 이거.”
1분대가 기다렸다는 듯 강현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말과는 다르게 정이 듬뿍 담긴 행동.
저 무대에 선다는 게 얼마나 부담이 가는 일일지 알았기 때문이었고.
지금까지 모두를 이끌어 준 강현이 고맙기도 해서였다.
“근데 진짜로 마이크는 어디서 났냐?”
그때 장만수 일병이 눈치 없이 질문 하나를 던졌다.
사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뽑기권 하나를 사용합니다. 강력한 행운 효과를 적용합니다!]
강현은 잠깐 화장실을 갔다 온다며 사람들의 눈에서 벗어난 후.
뽑기권을 사용했고.
촤르르르르 달칵.
[강력한 행운을 적용합니다! 최신형 무선 스피커 마이크를 획득했습니다!]
상태창이 역시나 이번에도 강현이 원하는 물건을 알아서 내놓았다.
강현이 마이크가 하늘에서 떨어질까 봐 위를 쳐다볼 때.
반짝.
땅속에서 얼핏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고 마이크를 찾아냈던 것.
“…보급품에서 찾았습니다. 백화점 물건 중 하나가 떨어졌나 봅니다.”
“아,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네. 온갖 것들이 다 있었으니까.”
강현이 이 사실을 말할 순 없기에 그냥 얼버무렸고 다들 쉬이 믿는 눈치였다.
하긴 하늘에서 텐트와 먹을거리가 떨어지는 장면을 본 터라 이젠 웬만한 일에도 놀라지 않는 눈치.
“그럼… 준비는 끝났네.”
황세아 중사의 말에 특임대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임무 훌륭히 해내고. 모두 무사히 나가자.”
“알겠습니다!”
황세아의 마지막 다짐을 끝으로 1분대 탱커들이 일제히 캠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대 스킬 견고함, 방진을 발동합니다. 높아진 분대 신뢰도로 인해 효과가 한층 강해집니다!]
우우웅.
실로 오랜만에 1분대 특유의 연합 방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캠프 전체를 감싸는 방어막을 보며 오목교와 이성민이 감탄하길 잠시.
“나와 성민이는 여기서 각자 필요한 곳에 원거리 지원. 목교는 내 지시에 따라서 근거리 지원하도록.”
“알겠습니다!”
이들의 작전은 간단했다.
방진으로 몰려드는 놈들을 막아 내고 딜러인 황세아, 이성민, 오목교가 지원이 필요한 곳을 돕는 방식.
그러나 한 가지 불안 요소가 있었다.
정말 그들이 생존자 수색 때 본 발자국만큼 많은 숫자의 괴물이 달려든다면?
방진이 버텨 줄 수 있을까?
자칫하다간 일제히 방진이 무너질 수도 있다.
황세아가 어떻게 하중을 나눌지 고민할 때.
“캠프 후방 쪽 방진을 열어 주십시오. 제가 놈들을 완전히 막겠습니다.”
강현이 단번에 해결책을 제시했다.
보호막에 작은 틈을 열어 괴물들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몰려들게 만들고.
대신 그 틈에 가장 강한 화력을 두어 놈들을 완전히 틀어막는다.
모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다만 강현이 쏟아지는 몬스터를 막아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으나.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해내겠습니다.”
가장 최선의 방법임을 알았기에 황세아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전투 준비는 끝났다.
강현이 캠프의 최후방,
전선의 최전선에서 검을 잡은 채 호흡을 고를 때.
우르르릉.
회색 숲 전체가 흔들리더니 저 멀리.
수백, 수천의 어둠의 하수인이 몰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주요 퀘스트 캠프 디펜스를 시작합니다!]
[캠프 디펜스 남은 시간: 15분]
[적들의 수장이 당신을 노립니다! 몬스터들이 달려듭니다! 숫자가 압도적입니다]
[어둠의 하수인 숫자: 1,992]
크와아아!
2천에 가까운 괴물들이 캠프를 휩쓸기 위해 몰려왔고.
그들의 발걸음과 몸부림, 그리고 고함만으로도 재로 이루어진 숲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릴 듯 피어오르는 재와 땅을 덮으며 달려오는 괴물들!
마치 세상의 마지막 순간과 같은 장면.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혜원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퍼졌고.
[응원의 노랫가락 효과가 적용됩니다. 공격력 및 방어력 전체가 상승합니다]
[정화의 춤 효과가 적용됩니다. 일정 범위 사악한 기운 전부를 정화합니다]
[디바의 응원을 받습니다. 능력치 전체가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분대 스킬 버프 효과 증가를 적용합니다. 분대 신뢰도가 높아 모든 버프 스킬 효과가 20% 증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