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96화 (96/277)

96화 회색 숲의 아이돌

클락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선정.

세계 최고의 아이돌이자 헌터 이혜원!

“꺄아아악! 언니! 언니! 여기 좀 봐 줘요!”

“으아아! 누나! 혜원 누나!”

한국을 넘어 아시아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돌.

그리고 일류 헌터!

“아아! 말씀드리는 순간, 이혜원 씨가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취재진과 팬들이 가득한 연회장에 이혜원이 도착했다.

우아한 드레스와 높은 힐.

아름다운 자태로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그녀가 레드 카펫을 사뿐사뿐 걷는다.

“오우, 뷰리풀!”

“언빌리버블!”

때마침 자리에 있던 다른 유명 인사들조차 이혜원의 자태를 보며 감탄.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1인.

이혜원이 도도한 걸음으로 포토 존에 섰고.

“이쪽! 이쪽 봐 주세요!”

“이쪽입니다!”

수많은 셔터 세례 속에서.

“아름다운 밤이에요. 여러분.”

번쩍 발바닥을 들어 올렸다.

“오오오! 대단해!”

“바로 이거지!”

“키야! 효과 확실하구먼!”

그녀의 깨끗한 발바닥을 보며 기자들이 감탄을 뱉어 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이혜원이 자랑하듯이 발바닥을 흔들어 댔다.

이상함을 느낀 건 그때쯤이었다.

‘이, 이게 뭐시여!’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무슨 추태란 말인가!

그리고 발바닥 보면서 감탄하지마! 변태 같아!

그녀가 아무리 발바닥을 내려 보려 했지만 요지부동.

이혜원이 울상을 지으며 발목을 쥔 채 낑낑거릴 때.

“와하하하하! 여기 인간들은 모두 죽을 거다!”

참으로 뻔하게 생긴 빌런 하나가 시상식장에 나타났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또 뻔하게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심지어 그중에 세계 10위 안에 드는 헌터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역시나.

“이 못된 빌런! 내가 용서치 않겠다!”

현장에 이혜원이 떨어져 내렸다.

‘아! 싸우기 싫어! 안 돼!’

물론 그녀는 싸울 의지가 없었으나 몸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당연했다, 지금 그녀는 꿈을 꾸는 중이었으니까.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이혜원이 느끼는 수치심만은 뚜렷했고.

괴로움에 몸을 떨었으나.

“이 쌍노무 시끼! 내가 아주 혼구녕을 내주고야 말 테니!”

입에선 이제 찰진 사투리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혜원은 어릴 적 할머니 밑에서 자란 탓에 흥분하면 요상한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곤 구두를 벗은 그녀가 펄쩍 날아 발차기를 날렸고.

챱!

이혜원의 발바닥이 빌런의 얼굴에 찰진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다.

“으아아악!”

빌런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는 순간!

“끼야아아아악!”

그 끔찍한 악몽에 이혜원이 결국 꿈에서 깨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눈을 뜬 그녀에게 보인 건.

“오오! 된다! 된다아!”

“이건 대박인데?”

자신의 발을 보고 있는 황세아 중사와 나머지 특임대원들이었다.

* * *

풉.

아까 캠프로 복귀하기 전, 강현이 이혜원의 능력을 까발린 순간.

분명 누군가 작게 웃었다.

그리고.

“이, 이! 쌍노무 시끼들이이!”

거세게 화를 내던 이혜원이 그대로 까무룩 기절해 버렸다.

지금껏 쌓인 피로와 긴장 거기다 자신의 능력이 까발려졌단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모양.

“쌍노무?”

“시끼들이이?”

그녀의 마지막 말에 조원들이 요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강현의 표정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

지금은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선 방패에 실어서 이동하겠습니다.”

“어, 어어 그래.”

“알겠습니다.”

기절한 그녀를 커다란 사각 방패에 실은 후.

[이동 포탈 사용 시간이 초기화되었습니다]

[이동 포탈을 개방합니다. 사용자의 마나를 사용합니다]

후우웅.

강현의 손짓에 푸른 포탈이 넘실거리며 열렸고.

강현을 선두로 한 2조가 이혜원을 방패에 실은 채 캠프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황세아 중사가.

“아하하하! 너무했다, 강현아! 그걸 그렇게 밝혀 버리면 어떻게 해! 일부러 감췄던 것 같은데.”

아하하하하!

배꼽이 빠져라 웃어 댔다.

“발바, 발바닥에 정화 효과각! 아학! 아하학! 아, 너무 웃겨! 그럼 독에 중독 되면 발바닥을 핥기라도 해야 하는 거야? 무슨 발바닥 사탕이냐고. 허억! 허억! 너무 웃겨!”

황세아 중사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이혜원이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숨기려 했던 이유를 좀 알겠다.

아마 이 능력을 밝혔더라면 그야말로 발바닥 아이돌로 불렸겠지.

“어쨌든 중요한 건 이 능력을 통해 상황을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강현은 이 능력을 숨겨 줄 생각이 단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위기 상황.

알량한 이미지 하나 지키기 위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다.

그런 강현의 의지를 이해했는지 잠시 웃음을 가라앉힌 황세아 중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우선 실험해 볼 게 있어. 잠깐만”

황세아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자신이 연구하고 있던 갈라진 어둠의 씨앗을 이혜원의 발바닥에 붙여 보았고.

스르륵.

어둠의 씨앗이 그대로 바스러졌다.

발바닥의 능력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이어 하수인의 신체 일부를 가져다 대니.

치이이익!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하수인의 신체에 가득했던 독기가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오오오! 대단해!”

“바로 이거지!”

“키야! 효과 확실하구먼!”

그 모습을 보며 1분대원들이 탄성을 질렀다.

부위는 형편없지만 효과만큼은 탁월!

아니, 누군가에겐 그 부위마저 탁월!

거기까지 확인을 마친 황세아 중사가 이번엔 다른 곳으로 향했다.

“들고 따라와 봐.”

그녀의 말에 1분대원들이 이혜원을 실은 방패를 들고 따라간 곳은 어느 나무 밑.

황세아 중사가 이혜원의 가는 발목을 잡아 들은 후.

챱!

그녀의 발바닥을 나무에 붙였다.

푸흐흡!

다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때.

회색빛이었던 나무가 점점 제 색을 찾아가는 게 보였다.

“오오! 된다! 된다아!”

“이건 대박인데?”

이 놀라운 현상에 다들 입을 벌리며 좋아할 때.

끼야아아아악!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이혜원가 깨어났다.

그리곤 자신의 발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특임대의 얼굴을 보고는 몸을 떨었다.

‘이젠 끝장이야……!’

능력을 들킨 순간 아이돌로서의 생명은 끝났다.

이젠 인터넷에서 매일같이 ‘이혜원 발가락 핥핥.’ ‘아, 이혜원 발바닥에 맞아서 회복하고 싶다.’ 이런 글이나 돌아다니겠지.

그리고 기자들은 자신을 찾아와서 매일 물어볼 거다.

“이번 앨범 컨셉은 발바닥 회복 능력과 관련 있는 건가요?”

“예, 이번 메인 곡 제목은 발바닥 키스…….”

거기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 이혜원이 막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어어! 저거 뭐야!”

캠프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이혜원과 특임대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분명 회색 재로 이루어져 있던 나무에 생명력이 깃들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나뭇가지마다 이파리 끝까지 색을 되찾았다!

이 회색 숲에서 처음 보는 풍경!

“아……!”

“나무… 푸르러!”

“예쁘다…….”

그 놀라운 변화에 모두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감동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색 숲의 칙칙하고 음침한 분위기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런 중 처음으로 생명력을 마주했다.

회색 나무들 사이에서 푸르게 숨을 쉬고 있는 나무는 유독 싱그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어어?”

그녀가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반응에 당황한 듯 어찌할 줄 모를 때.

“어! 이혜원이다! 이혜원이야!”

“그 아이돌? 정말이네! 저런 몰골로도 이쁘네.”

“그런데? 설마 이혜원이 나무를 살린 거야?”

이혜원을 발견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유명 아이돌인 만큼 못 알아볼 리가 없었고 다들 의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상황을 보아하니 나무를 살린 게 그녀 같기는 한데.

대체 어떻게?

일반인 아니었나?

사실 능력자였던 거야?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눈초리를 받은 그녀의 얼굴이 점점 하얘지기 시작했다.

아이돌.

사람들의 구설수와 눈초리를 먹고 살아가는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다.

오히려 이런 적나라한 시선들이 때론 그녀를 더욱 숨 막히게 했다.

더군다나 이렇게 자신을 보호해 줄 매니저나 경호원 없는 곳에선 더더욱.

아니 때로는 소속사에서 그녀를 더욱 내몰았기에 두려움에 떨었다.

그때.

“괜찮습니다. 당신을 비웃을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어요.”

강현이 이혜원과 눈을 맞추며 사람들의 시선을 등으로 가렸다.

그것만으로도 가쁜 숨이 안정되는 듯한 기분.

마치 거대한 방파제가 자신을 보호해 주는 듯했다.

강현이 그녀가 푸르게 변화시킨 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보이십니까?”

“네…….”

“이혜원 씨, 당신이 한 일입니다. 여기 있는 누구도 못 한 일을 혼자서 해냈어요.”

“그건…….”

“발바닥에 능력이 깃들었다는 게 부끄럽습니까?”

네…….

강현의 물음에 이혜원이 흐리게 답했다.

그냥 모든 상황이 싫었다.

자신이 이런 곳에 납치되었고, 의지할 사람 하나 없으며, 치부까지 들켰다는 사실을 잊고 싶었다.

그때.

“우리에겐 당신이 부끄러워하는 그 능력이 간절하게 필요합니다.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에요.”

특별한 사람.

그녀가 평생 바라고 지금도 하루하루 노력하는 이유.

바로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혜원 씨의 능력이 가장 가치 있고 특별한 것입니다. 죽어 있는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능력입니다. 그러니 부탁드리겠습니다.”

강현의 진지한 눈빛이 그녀를 향했다.

진심이 가득한 눈.

이 사람은 왜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자신의 능력을 바라는 걸까?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순간.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강현이 그녀의 어깨를 굳게 잡았다.

동시에.

[언변, 신뢰, 감화, 카리스마를 발동합니다. 상대가 당신의 말에 완전히 설득되었습니다!]

[고취 효과로 인해 이혜원이 일시적으로 수치심을 극복합니다!]

강현의 능력과 특성이 일제히 효과를 발휘했고 이혜원이 그의 능력에 완전히 취해 버렸다.

“좋아요! 저, 노력해 볼게요!”

본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날 필요로 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가겠어!

그게 아이돌이니까!

“감사합니다! 이혜원 씨!”

그녀의 결심에 강현이 마주 밝게 웃었다.

“아까 다리가 아프다고 하셨죠? 앞으로 여기 방패에 타서 움직이시면 됩니다.”

아까 이혜원이 했던 말을 기억한 장만수가 자신의 커다란 방패를 내밀었다.

그리고 강현이 몰려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여기! 혹시 네일 아트나 발 관리 샵을 운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니면 관련 직종도 좋습니다!”

“저, 저요…….”

“그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강현의 부름에 발 마사지사, 페디큐어 전문가들이 모여들었고 각자에게 역할을 분담시켰다.

“그럼 움직이겠습니다!”

이혜원은 그가 진심일 때 얼마나 철저히 작전에 임하는지 몰랐고.

강현은 지금 진지했다.

곧 그녀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혜원 씨 지나가십니다! 다들 비키세요!”

특임대가 이혜원을 나무 앞에 가져다 놓으면.

“자, 발 관리 붙어 주십쇼.”

발 마사지사와 페디큐어 전문가가 달라붙어 그녀의 발을 주무르고 깨끗하게 닦았다.

뽀득뽀드득.

이혜원의 뽀얀 발에 다시 혈색이 돌아오면.

“발바닥 일발 장전!”

황세아 중사가 이혜원의 발목을 잡고선 우렁차게 외친 뒤.

챱.

나무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푸릇푸릇.

나무가 다시 생명력을 얻을 때마다.

“오오! 역시 아이돌이라 엄청나네!”

“크아, 저런 능력이 있었어?”

사람들이 마치 관객이라도 된 듯 다들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처음엔.

‘이 나쁜 인간들아! 보호해 준다며! 이게 처형식이지 보호해 주는 거냐아!’

속으로 분노하던 이혜원도 나중에는.

“엣헴! 이번엔 왼발로 갈까요? 오른발로 갈까요?”

“왼발! 왼발! 왼발!”

“그럼 왼발 갑니드앗!”

천생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성격답게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

그야말로 회색 숲의 아이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회색만 가득하던 숲에 초록색 이파리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강현이 이젠 아주 부족을 이끄는 추장처럼 신나 춤을 추는 이혜원을 보며 미소 짓고 있을 때.

“그런데 나무를 되돌리는 게 의미가 있을까?”

어느새 임무를 떠넘긴 황세아가 강현을 향해 물었다.

분위기가 밝아지고 캠프에 활기가 들어찬 건 좋은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느냐는 다른 문제다.

“결국 나무 살려 봤자 땔감 정도가 끝이잖아. 땅 전체를 정화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나무 백 개, 천 개를 살려도 결국은 나무.

해 봤자 땔감, 오두막이나 지을 수 있을 터.

여기서 몇 년 살 것도 아닌데 지금 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니, 강현.

황세아를 항상 놀라게 하는 이 남자의 속셈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의 호기심 가득한 물음에 강현이 입을 열었다.

“저 나무들로 무대를 만들 겁니다.”

이젠 캠프 디펜스가 아니라 무대 디펜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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