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회색 숲
평화로웠을 주말 일상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백화점 지하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어둠은 순식간에 1층 로비에 있는 사람들을 빨아들였고.
스스스슷!
기묘한 소리를 내며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백화점 전체에 들어찬 어둠이 스멀거리며 잡아갈 희생양을 찾았으나.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이미 사람들이 대피했다는 점.
모두 강현을 비롯한 특임대의 빠른 상황 조치 덕분이었다.
다만.
“으아아앙! 아빠!”
“여보! 여보!”
백화점 앞을 떠나지 못하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편을 잃은 부인과 그의 딸.
“자기야! 자기야!”
여자친구의 손을 놓친 남자.
“어, 엄마? 엄마!”
늙은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가족은 기뻐야 할 날에 비극을 마주했다.
모두 소중한 사람을 애타게 불렀으나.
일렁이는 어둠은 어떠한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 하나 쉬이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지지 못했다.
단순히 잡혀간 사람을 덜 사랑한다거나 이기적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놔! 이거 놔! 엄마!”
“정신 차려! 당신도 죽어!”
“으흐흑! 아리야! 어떻게 하니! 어떻게 해!”
남은 사람들에겐 남은 책임이 있었다.
지켜야 할 일상과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잡혀간 사람들을 구할 힘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 괴로워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무력함에 몸서리치고 절망했다.
백화점 앞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지금 그러했다.
“…….”
그리고 몇몇 사람은 그들을 보며 측은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이들을 비겁하다고 욕할 순 없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니까.
그저 아비규환 속에서 빨리 뛰었을 뿐이니까.
다만 어디선가 영웅들이 나타나 저들의 괴로움을 해결해 주길 바랄 뿐.
그리고.
“특임 1분대!”
여기, 어둠 속으로 진입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착용한 예식용 장구류와 무기가 겨울 햇빛에 유독 날카롭게 빛났고.
“어둠 속에 잡혀 들어간 민간인들을 구출한다!”
황세아 중사의 외침에 모두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알겠습니다!”
1분대 전체가 목소리를 높여 답했다.
스스로 결심을 단단히 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반드시 구하겠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반드시 이들을 구하리라!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
사실 특임대는 이미 그들의 의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상황 시작과 동시에 거수자들을 제압했고 대량 학살을 막아 냈다.
만일 특임대가, 강현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이렇게 우는 것마저도 호사였을 터.
여기 있는 대부분이 눈물이 아닌 피를 흘렸을 것이다.
특임 1분대가 각오를 다지는 동안.
[현재 죽은 민간인 – 0명]
[현재 파괴한 어둠의 씨앗 – 11/11]
강현이 눈앞에 떠오른 알람을 확인했다.
분명 성공적인 결과이나 그의 눈에는 아직 결의가 가득했다.
저 안에 사람들이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 죽은 민간인 수가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구할 수 있다!’
살아 있는 게 분명하다, 저 안으로 들어간다면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젠 혼자가 아니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강현아 애들 준비시켰어.”
자신이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이미 진입 준비를 끝마친 1분대원들과 황세아 중사가 보였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
그러나 그들의 얼굴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예전이라면 들어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도망치고 싶어 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특임대라지만 그들 또한 사람.
공포심이 없는 괴물이 아니니까.
그러나.
“너라면 들어갈 거니까, 그리고 전우를 버리는 건 특임대가 아니니까… 나 잘했지?”
황세아와 1분대는 어둠을 마주한 두려움보다 더욱 깊이 강현을 믿고 있었다.
칭찬을 바라는 황세아 중사 옆.
“그때처럼 혼자 가게 하진 않을 거다. 이번엔 우리도 같이 간다!”
장건철 병장이 콧김을 내뿜으며 단단한 가슴을 폈다.
미궁형 던전 때, 강현 혼자 데론을 향해 뛰어든 후.
얼마나 후회하고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가.
이번엔 홀로 보내지 않으리라.
녀석이 싫다고 한다면 때려눕혀서라도 같이 들어갈 생각이었다.
물론 눕혀지는 건 장건철 본인이겠지만.
강현이 그들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래, 혼자가 아니다.
이젠 믿을 수 있는 전우들이 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강현이 검을 잡으며 물었고.
“물론이지!”
모두가 강현을 믿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맨 뒤 오목교가 붉어진 얼굴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멋있다!
황세아 중사도 장건철 병장도 1분대 선임들도!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서 모든 이들의 신뢰를 받는 강현의 등이 유독 커 보이고 멋져 보였다.
[대상자들의 신뢰도가 매우 높습니다. 당신이 이들을 설득하기 전에 이미 당신의 의견을 예측하여 따릅니다]
[후임 오목교의 충성도가 크게 올랐습니다]
[메인 퀘스트 어둠의 꼬리가 연계 퀘스트 ‘어둠의 뱃속으로’로 변경되었습니다!]
강현이 새롭게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가장 선두에서 검을 뽑으며 달렸고.
“우와아아악!”
모두가 뒤를 따랐다.
그렇게 특임 1분대가 어둠으로 들어서자.
[어둠의 문이 닫혔습니다. 어둠의 배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세요]
[현재 배 속에 있는 사람 – 76명]
백화점이 어둠에 완전히 물들었다.
* * *
특임 1분대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처음 마주친 것은.
“온통 회색이네.”
회색빛 숲이었다.
색을 빼앗긴 듯 나뭇잎부터 가지, 기둥, 아래에 흙까지 온통 회색.
잠시 무미건조한 풍경을 보던 황세아 중사가 손을 뻗어 회색 나뭇잎을 만지자.
파스스.
나뭇잎이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뭇가지를 만져 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황세아 중사의 미간이 구겨졌다.
동시에 얼음을 만들어 나무를 향해 뿜어내자.
강한 충격에 나무 전체가 풀썩 무너져 내렸다.
“쿨럭, 쿨럭!”
문제는 나무 한 그루가 무너지니 땅도, 주변의 풀도 연쇄적으로 무너졌다는 점.
뭉게뭉게 피어오른 회색빛 구름 속에서 다들 쿨럭대길 잠시.
“이거 곤란한데.”
황세아 중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반면 장만수 일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히려 잘된 것 아닙니까? 길을 쉽게 뚫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이 맞았다.
숲에서 가장 힘든 점은 바로 길을 찾는 것.
보통이라면 이리저리 나무들을 피해 다니다가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러나 재로 이루어진 이 나무들은 장애물이 되지 않으니 쉽게 길을 뚫을 수 있을 터.
특임대의 수색이 빨라질수록 여기에 빨려 들어온 민간인들의 생존 가능성도 올라간다.
그러나 황세아 중사가 고개를 저었다.
“길 찾긴 쉬울지는 몰라도 생존하기가 어려워.”
“아…….”
“정말 그렇습니다.”
“이런…….”
그녀의 말에 짬 좀 먹은 선임들이 일제히 문제점을 깨달았다.
“음식도 물도 불도 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장건철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후임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구해야 할 사람이 몇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생존할 방법이 없다라… 사람들이 걱정입니다. 본인들이 길을 뚫다가 탈진이라도 하는 경우엔…….”
심지어는 김대영 상병마저도 걱정을 표할 정도.
그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처음엔 부수기 쉬운 나무가 그저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함정이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숲을 마구 헤치며 나아가다 보면 체력이 빨리 떨어진다.
거기다 어차피 잔뜩 피어오르는 잿가루 때문에 정확한 방향을 찾기는 불가능.
그렇게 힘을 실컷 낭비하다가 목이 말라 오고 배가 고파 오면.
이 죽음의 숲에선 아무것도 구할 수 없다.
“이 재처럼 말라죽는 거지. 모두.”
“……!”
황세아 중사의 마지막 말이 주변 공기를 스산하게 흔들었다.
그제야 자신들이 얼마나 무서운 곳에 들어왔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위험한 환경에 던져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해낼 수 있을까?
잿빛 의문이 1분대원들의 머릿속을 차차 잠식해 갈 때.
“할 수 있습니다.”
강현의 목소리가 스멀스멀 차오르던 불안을 일시에 흩었다.
그의 얼굴엔 오직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의지와 자신감만이 가득했다.
“우리는 강합니다.”
그리고 강현이 내면의 힘을 전달하듯 모두를 하나하나 마주 보았다.
“우리는 강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서로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강현의 선명하고 깨끗한 의지가 회색 숲의 칙칙하고 음울한 기운을 밀어냈다.
묘했다.
어쩌면 헛된 응원일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너무 많았다.
적은 인원, 처음 보는 지리, 흩어진 생존자들, 열악한 환경까지.
그러나 강현이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정말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신뢰, 감화, 언변, 카리스마를 발동하여 상대의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냅니다]
[높은 분대 신뢰도로 인해 분대원들의 사기가 오릅니다!]
[높은 호감도로 인해 조력자 황세아 중사의 사기가 크게 오릅니다]
[새로운 스킬 고취를 습득했습니다. 이후 연설 시 이를 듣는 사람들의 감정이 한층 격해집니다]
[고취 효과를 적용합니다. 당신의 연설로 인해 일행이 일시적으로 정신 공격에 면역됩니다!]
스킬과 능력 덕분인 것도 있었으나.
“그래, 강현이가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거지.”
“이 누나는 강현이 믿어.”
지난 시간 동안 강현이 해냈던 일들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모두가 틀렸다고 느낄 때, 강현은 언제나 앞에 섰다.
위기가 닥쳤을 때, 싸웠고 승리했다.
지금껏 쌓아 놓은 행동이 말 한마디보다 더욱 신뢰 가는 법.
황세아 중사와 1분대는 이를 충분히 보아 왔다.
그리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항상 이럴 때마다 강현이 했던 말을.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제게 방법이 있습……?”
강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강현의 말을 채 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모두를 안심시키던 강현이 오히려 당황했고.
그를 보며 1분대와 황세아 중사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 재밌어!”
“캬! 너도 그런 표정 지을 줄 아는구나! 이제 좀 사람답다.”
“아, 저 표정 보니까 이제야 좀 인간 같네.”
“그래, 강현아. 가끔은 좀 약한 척도 하고 그래라.”
그들의 말에 강현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에겐 항상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고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었다.
늙은 할머니와 어린 동생.
사라져 버린 부모님.
그 속에서 강현은 항상 모든 것을 책임지려 했고 모든 짐을 짊어지려 했다.
‘어쩌면 할머니와 서연이도…….’
지금 분대원들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에게 매번 손을 내밀고 조금의 짐이라도 덜어 주려 했지만 몰랐던 것은 아닐까.
아까 가족을 잃은 슬픔에 울부짖던 사람들을 보아서일까.
강현이 문득 이 회색의 숲에서 가족을 떠올렸다.
그렇기에 강현은 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가족을 돌려주어야 한다.’
결심하지 않았던가.
자신과 같은 비극을 막겠다고!
충분히 알지 않는가.
남은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강현은 잠시 분대원들이 대기하게 한 후 알림창을 열었다.
[특수 조건 텅 비어 있는 뱃속을 만족했습니다. 연계 퀘스트 진행 시 특전이 주어집니다! 놀라운 성과로 특전에 강력한 행운이 적용됩니다!]
아까 어둠 속으로 들어서기 전에 떠올랐던 알람.
혹시 당장 도움이 될까 해서 특전이 무엇인지 확인했고.
[특전 뽑기권: 7개]
‘이런 X… 발…….’
강현의 얼굴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뽑기라니!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곧 상태창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분명히 경고하는데 좋은 거 안 뱉어 내면 가만히 안 둔다.’
모르겠다.
그냥 일단 협박부터 하자.
‘사람들 찾을 방법부터 뽑아. 난 분명히 말했다. 사람들 찾을 방법 뽑으라고.’
안 뽑으면 죽인다.
강현이 눈을 부라리며 상태창을 노려보길 잠시.
‘뽑기권 하나 개방.’
[뽑기권을 개방합니다. 랜덤으로 특전을 개방합니다]
촤르르르륵.
메시지와 동시에 강현의 눈앞에서 카지노 슬롯머신이 돌아가듯 수백 개의 특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강현이 원하는 것은 하나.
‘사람들 찾을 방법 당장 내놔! 이상한 거 주면 가만히 안 둔다!’
지금껏 자신을 그렇게 놀려 먹었으면 지금만큼은 말을 들어줘야지!
강현이 반은 부탁하듯 반은 협박하듯 무엇이 나올까 기다릴 때.
촤르르.
슬롯이 서서히 느려지더니.
[라면 10봉……]
라면 10봉이라는 황당한 품목에서 멈추려 했고.
‘상태창 이 새끼야!’
강현이 속으로 엄청난 분노를 토해 내자.
[특전에 강력한 행운을 적용합니다!]
차륵.
그 분노에 화들짝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슬롯이 딱 한 칸 더 움직였다.
라면 10봉 다음 칸에 있었던 건.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