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나도 인기 많았어! 밖에서!
군인들에겐 황금 같은 주말.
밀린 드라마도 보고 노래방도 가고 세탁도 해야 하는 시간.
“아아, 행보관이 전파한다. 모두 오전 중으로 침구류 일광 건조 실시하도록. 이상.”
“으아아악! 주말에 일광 건조라니! 일광 건조라니!”
“대청소하기 싫으면 다들 입 닫고 움직여라!”
“…넵.”
물론 행보관이 당직 사관을 서는 날에는 꼼짝없이 주말을 반납해야 한다.
이러한 주말 랜덤 이벤트를 피하기 가장 좋은 방법.
바로 주말 외출과 외박.
휴가가 없으면 몇 달 내내 부대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병사들에겐 참으로 꿀 같은 시간이었다.
본래라면 가장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어야 하건만.
웨에에엥!
시내에 나타난 검은 승용차 한 대 때문에 즐겁게 돌아다니던 병사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적, 청색 경광등을 단 차량 옆에는 특임이라는 글자가 하얀색으로 쓰여 있었다.
바로 헌터 특임대 소속 군기 순찰 차량.
“야,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헌특에만 걸리지 마라. 알겠냐?”
“예.”
모든 부대에서 외출, 외박하는 병사들에게 하는 경고.
헌터 특임대 군기 순찰에 걸리지 말라.
실제로 걸렸을 시 부대에 통보가 가고 자칫 잘못하다간 휴가가 잘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병사들 스스로도 조심했다.
그러다 보니.
“에이 썅. 헌특 새끼들 떴다.”
헌터 특임대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아니, 가서 몬스터나 잡을 것이지 왜 여기까지 나와서 지랄들이야 지랄들이.”
기껏 나온 외출과 외박 중에도 긴장해야 한단 사실이 짜증 날 법했다.
물론 헌터 특임대의 생각은 반대였다.
“아니, 그러니까 안 걸리게 하면 되잖아. 안 걸리게.”
자신들이 없는 일로 붙잡는 것도 아니고 가벼운 군기 위반은 보통 구두 경고로 끝낸다.
그들도 군인인데 어찌 다른 병사들의 마음을 모를까.
다만 부대에 통보하는 경우는 정말 심각한 경우였다.
“아, 좀 봐 달라고 아저씨들. 끄윽, 좀 술 좀 먹을 수 있쥐!”
“전우님. 우선 정신 차리십시오. 부대가 어딥니까?”
“아, 저기 멀리 어디냐? 응? 군단에 있는 곳인데.”
“그러니까 외출, 외박, 휴가증 보여 주세요. 자꾸 이러시면 부대에 통보할 겁니다.”
“아니, 씨! 너무하네. 진짜!”
군기 순찰을 하던 1분대 2조가 대낮부터 술에 얼큰하게 취해 군복을 풀어 헤치고 돌아다니는 병사를 발견하고는 그를 불러 세웠다.
군복만 풀어 헤쳤다면 구두 경고에서 그쳤겠으나 술에 취해 추태를 부렸고 결국 군기 위반증을 떼야 하는 상황.
“아니! 한 번 봐 달라고!”
“휴가증 주십시오.”
술에 취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병사가 점점 목소리를 높였고 김대영 상병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굳었다.
이러다간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아 오목교와 이성민이 둘을 불안하다는 듯이 볼 때.
“전우님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아십니까?”
“끄윽, 11쉬?”
“밤도 아니고 아침 열한 시입니다. 우선 이거부터 마시고 정신부터 차리세요.”
강현에 바로 옆 자판기에서 뽑은 이온 음료를 내밀며 상대를 달래고는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해가 높이 뜬 상태에서 군복 풀어 헤치고 고래고래 노래 부르면 어떻게 합니까. 시민분들이 보시면 얼마나 불안하시겠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미안합니다.”
강현이 부드럽게 그러나 힘을 담아 병사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언변, 신뢰, 감화, 카리스마를 발동합니다. 상대가 당신의 말에 설득됩니다. 거인의 강골 특성을 발휘 상대를 압도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특성과 능력 덕에 병사가 차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과하겐 안 하고 기본 군기로만 끊을 거니까. 증 보여 주십시오. 여기서 더 거부하시면 중요 군기로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주취는 원래 중요 군기입니다. 중요는 휴가 위험한 거 아시죠? 거기에 집행 거부까지 받으면 휴가로 안 끝납니다.”
“…알겠습니다.”
강현의 완강한 태도에 병사가 결국 자신의 외출증을 꺼내 내밀었고.
김대영이 이를 받아 군기 위반증을 적어 넘겼다.
“부대에 통보 갈 겁니다. 술 깨고 움직이십쇼.”
그들이 똥 씹은 표정의 군인을 남겨 두고는 주말 시내를 다시 열 맞춰 걷기 시작했다.
광을 번쩍번쩍하게 낸 군화에 깨끗하게 빤 군복.
거기다 예식용 화려한 장구류를 착용한 헌터 특임대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했고.
“다들 바로 각 잡고 걸어라. 지금은 우리가 헌터 특임대를 대표하는 거니까.”
김대영 상병의 말에 2조 모두가 어깨를 당당히 편 채 길을 걸었다.
현재 1분대의 인원은 총 12명.
네 명씩 1, 2, 3조로 나누어 각 구역을 군기 순찰 중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군기 순찰 중에도 강현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군복 지퍼 완전히 올려 주시고 고무링 제대로 착용해 주십시오.”
“아, 예.”
“그럼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은 간단한 구두 경고로 끝났지만 때로는.
“아니 너희가 뭔데 우리를 잡냐고!”
별것 아닌 일로 자존심을 세우며 일을 크게 만드는 병사들이 있기 마련.
그때마다 강현이 나섰고.
언변 스킬의 현란한 말빨과 카리스마 특성으로 위압감을 뿜어내 금방 상황을 해결했다.
덕분에 2조의 군기 순찰은 순행 중이었다.
“최강현 일병님, 대단하십니다.”
“그저 빛이십니다.”
그런 그를 보며 두 후임이 눈을 빛냈다.
대체 이 사람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그런 모습을 보며 김대영이 피식피식 웃었다.
사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
그때.
“저… 헌터 특임대 맞으시죠……?”
앳되어 보이는 여성 몇이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들과 비슷한 또래.
주말을 맞아 자기들끼리 놀러 나왔는지 가벼운 화장에 따뜻한 복장이었지만.
여자가 말을 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가 긴장했다.
“네, 네. 맞습니다. 우리가 헌터 특임대입니다.”
그중 최고 선임 김대영이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물론 아무리 마음을 가라앉혀도 떨리는 목소리와 더듬거리는 말 때문에 티가 났으나.
꺄르르륵!
오히려 그녀들은 재밌다는 듯이 웃어 주었다!
“그런데 왜 부르셨습니까?”
“와, 나 다나까 처음 들어 봐! 대박!”
“헌터신 거네요? 그럼 다들?”
서로 손뼉을 치며 쫑알쫑알 떠들어 대던 그녀들 중 하나가 수줍게 말을 이었다.
“혹시 가능하시면…….”
“됩니다. 되고 말고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대영 상병이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대체 뭘 요구할 줄 알고.’
실로 오랜만에 하는 또래 여자와의 대화라서일까.
이미 김대영 상병은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상태가 아니었다.
이에 강현이 나서려는 순간.
“같이 사진 찍어요! 네? 평소에 특임대랑 꼭 사진 찍고 싶었거든요.”
“저희 같이 사진 찍어 주세요!”
그녀들이 먼저 움직였다.
여자들이 어느새 강현의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더니 자연스레 오목교와 이성민을 변방으로 밀어냈다.
엄청난 포지션 점령 속도.
마치 잘 훈련된 군인 같은 움직임으로 강현의 양쪽 팔을 붙잡은 그녀들이 김대영을 바라보았고.
김대영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기 목교야, 민성아, 너희도 이쪽으로 와라.”
“어머, 동생들이에요?”
“…후임들입니다.”
“후임님들도 오세요!”
“저 김대영 상병님도…….”
“사진 좀 부탁드려요!”
혼자 서 있기 뻘쭘했던 강현이 다급히 오목교와 이성민을 불렀고 그들이 쭈뼛쭈뼛 다가와 섰다.
김대영까지 불러보려 했으나 결국 사진사 역할을 맡았다.
“…그럼 찍습니다. 하나, 둘, 셋.”
“김-치!”
찰칵, 찰칵, 찰칵!
그녀들이 각양각색의 포즈로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안 강현을 비롯한 특임대원들은 차렷 자세로 포토 타임을 버텼다.
“어머머 찍어 주셔서 감사해요! 힘내세요!”
“번호 달라고 해 봐.”
“꺄! 그래 볼까?”
몇몇이 스마트폰을 들고선 쭈뼛거리며 강현에게 다가오려 할 때.
“김대영 상병님, 곧 전원 집합 시간입니다.”
강현이 혹시라도 이야기가 길어질까 걱정되어서 먼저 자리를 떠나야 함을 강조했다.
지금은 군기 순찰 중.
사진 찍은 거야 대민 지원 차원이라고 얼버무리면 되겠지만 번호를 교환하는 건 주변 군인들이나 민간인들이 문제 삼을 수 있었다.
“그래, 가자. 다들 기다리시겠다…….”
김대영 상병이 풀 죽은 얼굴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고.
그 뒤로 강현과 이등병 둘이 얼른 따라붙었다.
다급히 자리를 떠나는 특임대를 보며 여자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아, 저 사람 괜찮아 보였는데.”
“그러니까. 아쉽네. 그런데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
“옆에 있던 애들도 나름 귀엽던데. 머리 짧아서.”
“울 오빠랑 다르게 늠름해 보이고! 그 인간은 군대 가서도 변하질 않더라!”
그녀들이 외로운 군인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단 사실도 모른 채 서로 종알거리며 갈 길을 떠났다.
“맡아 본 적 없는 행복한 향기가 났어…….”
“크흠, 아까 나 팔짱 껴 주는 거 봤냐?”
“뭐? 진짜냐?”
오목교와 이성민이 헬렐레하며 방금 있었던 일을 떠들어 댈 때.
“얘들아, 정신 차려라. 지금 군기 순찰 중이다.”
강현이 짐짓 엄한 목소리로 타일렀고.
“죄송합니다.”
둘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기분 좋은 건 이해한다.
사실 자신도 기분이 좋았으니까.
‘녀석들 눈치 없이.’
그러나 김대영 상병을 옆에 두고 그 티를 내어서 어쩌잔 말인가.
선임의 얼굴이 시무룩해진 걸 파악한 강현이 묵묵히 옆에서 걷고 있을 때.
“나도!”
김대영 상병이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밖에선 인기 많았어!”
그의 절규와 같은 변명이 울려 퍼졌다.
* * *
“아하하하핫!”
백화점 최상층에 있는 고급 중식당 룸 안.
황세아 중사의 맑은 웃음소리가 퍼졌다.
“정말? 정말 그랬단 말야? 이야, 대영이. 밖에서 인기 많았구나?”
그녀의 물음에 김대영 상병이 얼굴을 붉히며 자신이 사회에서 얼마나 잘나갔는지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제가 과대도 하고! 동시에 두 명한테 고백도 받고 했단 말입니다! 지금 머리가 짧아서 그렇지 기르고 좀만 관리하면 장난 아닙니다!”
군인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
여기가 군대라 그렇지 밖에 나가서 머리 기르고 꾸미면 나도 잘생겼다!
물론 본판 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는 법.
“야, 그렇게 치면 나도 만만치 않지.”
“저도 밖에서 장난 아니었습니다. 저 연극부였슴다. 고등학교 때.”
“야, 장만수, 너는 빠져!”
다들 자신이 사회에서 얼마나 잘 나갔는지 와글와글 자랑하는 동안.
전역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병장 둘은 침묵했다.
“허풍 안 떱니까?”
장건철 병장의 물음에 둘이 기다렸다는 듯 씩 웃었다.
“어차피 나갈 건데 여기서 자랑하면 뭐 하냐?”
“우물 안 개구리들끼리 많이 자랑하세요. 우린 나가서 진짜 여친 사귈 거니까.”
어떻게 말을 해도 저렇게 얄밉게 할 수 있을까.
다들 눈빛에 쌍욕을 담아 쏘아 낼 때.
똑-똑.
“음식 들어가겠습니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더니 중식당 직원들이 카트에 음식을 한가득 담아 들어왔다.
그리고는 분대원들이 앉은 원형 탁자에 음식을 깔기 시작했다.
“이건 오향장육, 다음은 멘보샤, 이건 팔보채입니다. 다음으로는 게살 누룽지와 난자완스, 크림새우와 칠리새우입니다. 마지막으로 동파육과 경장육사 준비해 드렸습니다.”
탁자를 가득 채운 음식에 1분대원들이 입을 쩍 벌렸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중국 음식을 잔뜩 먹을 수 있다니.
다들 기대감에 찬 얼굴로 젓가락을 들어 올릴 때.
똑, 똑.
드르륵.
다시 한번 노크가 울리더니 카트가 하나 더 들어왔다.
“다음으론 개인 식사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의 친절한 멘트를 시작으로 각자 앞에 짜장, 짬뽕, 볶음밥이 착착착 놓이기 시작했고.
“그럼 즐거운 식사 되시기 바랍니다.”
종업원들이 모두 나간 후.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시켜 봤어.”
황세아 중사가 씩 웃으며 양팔을 활짝 벌렸다.
분명 그럴 리가 없음에도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한 기분!
‘돈 많은 누나, 최고야!’
중대원들이 왜 다들 황세아 중사와 군기 순찰을 나오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와, 배 터질 것 같다.”
“진짜 맛있더라. 같은 짜장면인데도 왜 이렇게 맛있지?”
“남의 돈이라 그런 거 아닙니까?”
“오, 정답.”
만족을 넘어 황송한 식사를 마친 1분대가 입맛을 다시며 중식당을 나섰고.
부대에 가서 어떻게 자랑할까 고민할 때.
“뭐야, 배들이 왜 이렇게 작아. 누나 아직 돈 많다?”
황세아 중사가 그들을 보며 카드를 흔들었다.
그녀가 말한 풀코스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중식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제 케이크 가게에 쳐들어간 1분대가 전투적으로 조각 케익과 커피를 흡입하고 있을 때.
“자기야! 저기! 조각 케이크 수제로 만들어 준대.”
“저기서 먹을까?”
“웅!”
마침 한 커플이 알콩달콩 거리며 케이크 가게에 들어섰다.
그리고 다들 그 모습을 못 본 척했다.
“김대영 상병님, 한입 하시겠습니까? 아.”
“미친, 저리 치워라.”
오목교 이병의 장난에 김대영이 질색했고 다들 키득키득 웃을 때.
“야, 강현아. 그만 봐라. 부담스러우시겠다. 그렇게 부러우면 아까 번호를 받지 그랬어.”
김대영 상병이 방금 들어선 커플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강현을 툭툭 쳤다.
아무리 부럽다지만 그렇게 강렬한 눈빛으로 쏘아보다니 실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황세아 중사가 은근히 물었다.
“강현이 연애하고 싶구나?”
그럼 돈 많은 누나는 어때?
그녀의 농담에 분대원들이 다시 와하하 웃었으나.
강현의 표정만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처음 커플을 본 순간.
[어둠의 신봉자들과 마주쳤습니다. 어둠이 자신의 원수를 알아보고는 분노합니다]
믿을 수 없는 알림이 떠올랐기 때문.
강현이 억지로 고개를 돌려 외면하려는 순간.
커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강현을 마주 보았고.
그들의 이마가 세로로 갈라지며 붉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