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러시안룰렛 좋아하니?
저격.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뜻에 따르면 일정한 대상을 노려서 치거나 총을 쏘는 행위.
저격수는 빌런을 제압하는 대테러 작전에서 선봉과 함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봉은 가장 앞에서 현장에 진입하여 뒤섞여 있는 민간인과 빌런을 구분, 전투를 시작하는 역할.
적에게 제일 먼저 노출되는 만큼 부상 확률도 높고 위험했다.
그리고 선봉의 부상을 최소화하고 상황을 조기에 제압하기 위해서 중요한 게 저격수.
“제일은 싸우지 않고 상황을 종결하는 것이지만 피치 못할 땐, 단 일격에 제압해야 한다!”
평소 대테러 훈련을 할 때면 듣는 이야기.
빌런들 또한 특임대와 같은 능력자.
잠깐의 망설임이 커다란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특임대를 비롯해 죄 없는 민간인까지도!
“명심해. 때론 몬스터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 걸. 이전 서울 상암 경기장 테러 사건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서울 상암 경기장 테러 사건.
게이트 신봉자 몇이 상암 경기장으로 숨어들어 경기를 보던 관중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일.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중령의 빠른 조치로 빌런 일당을 사살 및 제압.
반면 시민들의 피해는 거의 전무.
언론과 몇몇 시민단체의 과잉 진압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으나.
“시민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빌런 백을 죽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특임대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무력입니다.”
기자 회견에서 뱉은 한마디로 인해 일약 스타로 올라서 버렸다.
게이트와 몬스터만으로도 이미 위협은 충분했다.
불안한 일상 속, 사람들에겐 단호하고 강력한 무력이 간절했고.
길드들이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돈만을 추구할 때.
그의 단호한 발언은 기자 회견을 보던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특임대는 그 무엇보다 시민들의 생명을 우선한다!
“바로 그때 활약했던 게 저격수였다. 홀로 대부분의 빌런을 저격했지.”
당시 특임대는 상암 경기장에 빌런들이 침입할지도 모른다는 첩보를 입수.
특임대와 일반 길드가 군민 협동 작전으로 상암 경기장을 경호했고.
그곳에 지금은 전설이 된 특임대 저격수 하나가 있었다.
“전체를 주시하는 넓은 시야.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빠른 판단력. 적의 강함을 따져 사살 또는 행동 불능 상태를 정하는 과감한 결단력. 모든 게 완벽했다고 하더군. 민간 길드마저 대처 못 한 상황을 홀로 해결했다던가.”
그 전설적인 저격수가 아니었다면 아마 상암 경기장은 피바다가 되었을 터.
“어쩌면 그때 과감한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책임자와 이를 완벽히 수행해 냈던 저격수가 아니었다면 특임대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
만일 상암 경기장에서 시민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면?
끔찍한 비극에 대한 책임을 덮어 쓸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고 당연히 특임대가 그 희생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서울 상암 경기장 테러 진압은 특임대 사이에서도 전설적인 작전.
그래서일까 당연히 그 부대의 에이스 딜러가 대테러 저격수를 맡는다는 전통이 내려오고 있었다.
“허억! 허억!”
물론 이성민 또한 헌터 교육대에서 이런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고 이번에야말로 선임들을 뛰어넘겠다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다.
‘저격은 내가 이긴다!’
헌터 교육대에서도 저격만큼은 항상 칭찬을 받았다.
실제로 교육대 훈련 교관들마저도 지금껏 봐 온 모든 훈련병 중에서 이성민이 최고라 치켜세웠을 정도.
‘교관은 최강현 일병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었어!’
그가 그렇게 뛰어났다면 교관들의 기억에 분명 남았을 터.
그러나 교관 중 강현의 이름을 꺼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자신이 더 뛰어나다는 뜻!
이성민이 잠시 멈춰서서 저격에 가장 좋은 건물을 찾았고 가장 높은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원거리라고 다 같은 원거리가 아니야!”
이성민은 어릴 적부터 능력 개방을 위해 끊임없이 교육받아 왔다.
손이 다 까지도록 활을 잡았고 마침내 능력을 얻었을 때.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만하지 마라.”
아버지의 냉엄한 눈빛을 받으며 다시 이를 악물고 훈련해야 했다.
길드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 서기 위해!
그렇기에 그는 질 수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했던 노력이!’
자신이 했던 노력의 가치가 이렇게 쉽게 부정당하는 것을 참지 못했던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항상 중심에 서 있던 자신이었다.
그러나 군대에 온 순간 주변인이 되어 버렸다.
모두가 강현, 강현!
이성민에겐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았고 반드시 그 벽을 넘으리라 다짐했다.
“내가 부대 에이스다!”
그가 좀만 더 성숙했더라면 오히려 좋은 자극제였을 강현의 존재가 지금은 독이 되어 버린 셈.
이성민이 건물 고층에 자리 잡은 채 밖을 주시했다.
마치 전쟁이 벌어진 도시처럼 을씨년스러운 시가전 교장.
아직 아무도 없다.
“후우, 후우-.”
이성민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선 군용 보급용 활에 마나를 먹였다.
비록 홀로그램 장비 탓에 진짜 활을 쏘지는 못 하지만 위력은 충분하다.
우우우웅.
그의 마나를 머금은 홀로그램이 진회색 빛 화살 하나를 활시위에 걸었다.
연이어 떠오르는 알림.
[은밀한 화살 장전, 특수 스킬 곡사 능력 발현]
이성민이 자신 있었던 이유.
바로 그의 능력이 저격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
잠시 숨을 고르고는 슬쩍 밖을 보자.
저벅저벅
아무런 경계도 없이 도로 한복판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강현이 보였다.
너무나 태평스러운 모습이 이성민을 더욱 열 받게 했다.
만일 저 행동이 진심이라면 저격의 기본도 모르는 상대에게 밀렸다는 분노.
또는 알고서도 하는 행동이라면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분노!
‘이런 썅!’
진실이 어느 쪽이든 열 받기는 마찬가지.
이성민이 힘을 다해 시위를 뒤로 당겼고.
[표적 확인. 완전히 드러난 표적 판정]
놓았다.
피잉.
방안에 시위 떨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이성민이 활을 쏘아낸 곳은 강현이 아니라 반대 방향에 있는 벽이라는 점.
[자동 격추 능력 활성화 곡사로 적을 저격]
알림이 떠오르자 원래라면 벽을 때렸어야 할 화살이 크게 휘었다.
마치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듯 몸을 뒤튼 화살이 복도를 통과해서 전혀 엉뚱한 창문을 통해 뛰쳐나갔다.
슈우우욱!
저격수는 자신의 위치를 들키는 순간 위험해진다.
지금 이성민이 취한 방법은 저격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한 수.
회색빛 화살이 소리 없이 강현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고.
‘잡았다!’
이성민이 승리를 확신한 순간.
턱.
강현이 손을 뻗어 그대로 화살을 잡아챘다.
그리곤 정확히 이성민이 숨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찾았다.”
그의 웃음을 마주한 이성민이 황급히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분명 화살이 날아간 곳은 전혀 다른 창문.
그런데 어떻게 바로 자신이 있는 곳을 알았단 말인가?
거기다 방금 그 미소는 대체.
‘입은 웃는데 눈은 안 웃고 있어!’
생전 처음 보는 미소에 이성민의 몸에 소름이 우수수 돋아났다.
그때, 본능이 시끄럽게 경종을 울렸다.
무서워할 틈이 없다. 움직여야 한다!
위치가 발각된 저격수만큼 쉬운 먹잇감은 없는 법.
이성민이 자리에서 재빨리 일어나는 순간.
타타탕!
총소리와 함께 자신이 있던 자리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정확히 머리를 노린 공격.
조금만 늦었어도 머리가 터졌을 거다.
이성민이 식은땀을 흘리며 건물 밖으로 황급히 도망갔다.
‘일단 거리를 벌리고 다시 재정비한다!’
저격전의 기본은 위치 선점과 은신.
이미 자신의 위치가 들켰으니 다시 처음부터!
이성민이 자신을 따라오고 있을 강현의 확인하기 위해 힐끔 밖을 내다본 순간.
“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강현은 아까 봤던 도로 한복판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미소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그리고 강현이 또 한 번 이성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강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위치 선점이고 은신이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간 사냥당한다는 위기감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겁에 질린 이성민이 그간 배워 온 저격 이론은 모두 잊은 채 마구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회색빛 화살이 빗발쳤다.
곡사 능력을 이용, 일제히 강현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 비.
이 강력한 화살 세례에 장만수 일병도 패배했었다.
‘화력으로 밀어붙인다!’
이성민이 속으로 이 공격은 통하리라 희망을 품었지만.
강현이 손을 들어 올리자.
타타타타타탕!
단 여섯 발의 총성과 함께 모든 화살이 사라졌다.
그 압도적인 화력 차이에 이성민이 힘차게 당기던 활시위를 멈추었다.
방금 자신이 본 건 무어란 말인가?
반쯤 넋이 나간 후임을 보며 강현이 물었다.
“이젠 안 도망치니?”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이성민이 이번엔 양보단 질로 승부하기로 결정.
시위를 뒤로 당기자.
화살에 모인 마나가 회색에서 점점 남색으로 짙어졌다.
최대 출력까지 모은 마나를 쏘아 내었고.
타앙!
이번엔 단 한 발.
이성민의 최선을 다한 일격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위력에 전율이 일었다.
대체 무슨 총을 들었길래? 얼마다 대단한 총을 들었길래?
“저건… 리볼버……?”
그러나 강현이 든 총을 확인한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에땁도 K-2H도 K-1H도 아닌 리볼버라고?
현실을 확인한 이성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작 리볼버 한 자루로 자신의 모든 화살을 날려 버렸단 사실이 뼈아팠다. 그리고 두려웠다.
강현이 잔뜩 구겨진 후임의 얼굴을 보며 자신이 든 리볼버를 천천히 허리춤에 가져다 댔다.
그는 아까 장만길 일병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매우 화가 난 상태였고.
화가 난 강현은 결코 상대를 봐주지 않는다.
‘자존심을 완전히 꺾어 버린다.’
강현의 목표는 단 한 가지.
이성민의 얄팍한 자존심과 거만함을 산산이 깨 부수고 현실의 무서움을 새겨 주는 것!
그래서 어떤 총이 이성민의 자존심을 가장 크게 뭉갤 수 있을까 고민했고.
때마침 황세아 중사의 허리춤에 달린 총을 발견했다.
바로 리볼버.
저격총으로는 최악의 선택이겠으나.
‘성민이를 교육하기엔 최선이겠네.’
참교육을 위한 회초리로 쓰기엔 최고.
그리고 지금 강현의 손에 들린 리볼버가 위용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이성민의 마나 화살로 인해 박살이 난 도로 한복판.
강현이 리볼버를 허리춤에 갖다 대었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이성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석양이… 진다.”
분명 들릴 리 없는 거리인데도 이성민의 귀에 강현의 말이 꽂혔다.
그가 욕설도 뱉을 힘도 아껴가며 도망쳤고.
다시 한번 여섯 발의 총성이 울렸다.
발사된 마나탄이 정확히 오른쪽 허벅지를 여섯 번 때렸다.
“우으윽!”
쿠당탕! 갑작스런 충격에 이성민이 볼썽사납게 쓰러졌고.
오른쪽 허벅다리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로우 킥이라도 맞은 듯이 떨려오는 다리.
그가 억지로 일어나 복도를 이동했다.
‘정신 차리자 이성민! 아직 끝난 게 아냐!’
그래도 어릴 적부터 받았던 훈련이 헛되진 않았는지 얼른 정신을 수습한 그가 건물을 벗어나려 했고.
[연구자의 눈을 발동합니다. 상대에게 묻은 당신의 마나를 추적하여 위치를 파악합니다]
강현은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는 연구자의 눈으로 이성민이 날린 화살의 궤도를 분석해 위치를 찾아냈다면.
지금은 강현이 박아 넣은 마나를 추적하여 대략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잠시 멈춰 선 것을 보니 여려 겹으로 쌓여 있는 벽을 믿고 잠시 쉬는 모양.
“쯧, 자신이 벽을 못 뚫는다고 상대도 못 뚫는다 생각한 건가?”
안일하네.
그렇다면 혼나야지.
강현이 리볼버를 들어 연구자의 눈이 알려 주는 곳을 조준했고.
[화기 마스터리, 연사, 정밀함, 마력지체, 하급 마나 운용법, 장거리 시야, 반동 제어, 관통을 발동합니다. 스킬과 특성 연계 효과로 사격 공격력과 정확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특성과 스킬을 덕지덕지 바른 마나탄을 다시 한번 쏘아 냈다.
퍼퍼펑!
벽을 연속해서 뚫으면서도 기세를 잃지 않은 마나가 그대로 이성민을 직격.
이번에도 방금과 같이 오른쪽 허벅다리를 때렸고.
“으악!”
맞은 곳을 또 맞은 이성민이 비명을 질렀다.
이번엔 벽을 뚫어서 자신을 맞췄다!
“흐으, 흐으으.”
이미 반쯤 정신을 놓은 그가 절뚝이며 도망치기 시작.
그러나.
퍼억!
다시 강현의 리볼버가 불을 뿜었고 이성민의 오른 다리를 맞췄다.
한 곳만 노리는 집요한 공격.
그가 벽 뒤에 숨던 다른 건물을 향해 빠져나가던.
강현의 리볼버는 앞을 가로막은 벽을 모두 뚫고선 이성민을 저격했다.
그것도 오른 다리만.
“흐으윽, 으윽! 으으으…….”
이미 오른쪽 다리는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는 상태.
몰려오는 고통과 숨어도 소용없다는 두려움.
이젠 도망칠 기동성마저 잃었다.
완전한 패배.
그리고 그의 의지를 완전히 꺾은 사실 하나.
강현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았다.
리볼버, 그것도 완전히 드러난 지형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총을 뻥뻥 쏴 댄다?
보통이라면 당연히 이성민의 승리.
그러나 지금 그는 완전히 쫓기는 사냥감이 되었다.
강현은 단순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저격의 원칙을 무시한 채 사냥꾼과 사냥감의 관계를 뒤집어버렸다.
“으으으, 괴물! 괴물이야!”
짧은 인생 내내 원거리 딜러로 자라온 이성민이기에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강현과 자신의 격차를!
저격수? 아니 원거리 딜러로서, 더 나아가 헌터로서도 완전히 패했다.
이성민은 지금 인생 처음으로 절망감을 맛보고 있었다.
“이건 못 이겨… 이건… 으흐흐…….”
그가 입술을 파들파들 떨며 주변을 경계할 때.
콰르릉!
벽면 한쪽이 무너졌고 그사이로 강현이 걸어 나왔다.
아직도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
“포기하는 순간이 패배하는 거야. 아직 기회는 있어.”
강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후임을 타일렀고.
“으아악!”
이성민이 발악하듯 그의 얼굴을 향해 화살을 발사했으나.
[능숙한 몸놀림, 거인의 강골, 높은 체력, 근력 스텟으로 인해 당신의 방어력이 상대의 공격력을 상회합니다. 공격을 무력화합니다.]
이번에도 강현이 이성민의 공격을 손짓 한 번에 흩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이성민의 방탄모 위에 리볼버를 겨눴다.
“졌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이성민이 고개를 저으며 자비를 구걸했으나.
강현의 싸늘한 눈빛만이 돌아올 뿐.
처얼컥.
마치 사형 선고를 내리듯 천천히 해머 당기는 소리만이 섬찟하게 울렸다.
“마나를 집어넣은 건 단 한 발. 러시안룰렛, 좋아하니?”
“흐윽… 한 발 쏴서 없으면… 살려 주시는 겁니까?”
이성민이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파르르 몸을 떨며 물었고.
“아니, 격발될 때까지 계속할 거야.”
꼬우면 이기던가.
강현이 햇빛을 등진 채 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