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어쭈 저 새끼 봐라?
어제 어떤 일이 있었든,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든 결국 조직은 굴러간다.
그중에서도 군대는 전쟁이 나도 게이트가 터져도 굴러간다.
오히려 이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니 더욱 멈출 수 없다.
대신 조직을 원활하게 굴리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할 뿐.
이번 훈련장 사건만 해도 그랬다.
분명 안전한 것으로 판명 났던 게이트 안에서 거대한 거인이 나타났고 3중대가 전멸할 뻔했다.
자연스레 책임 소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뭘 숨겨 놓고 있던 거냐고요!”
“전혀 숨겨 놓은 것 없다니까요!”
“그런데 지금 거인이 나타났다는 거요?”
“이전부터 안전하다고 판명 난 훈련장인데 숨기고 할 게 무어가 있겠어요!”
조사실 안에선 한창 훈련장 관리 부대 대장과 수사관의 실랑이가 이어지고 있었다.
계급은 중령이지만 이미 한직으로 쫓겨난 만큼 진급을 바라긴 힘든 상황.
종종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노후를 위해 한몫 챙기려고 엉뚱한 짓을 벌이기도 했기에 헌터 수사관은 심문을 멈추지 않았다.
“모른다고 했죠? 그럼 대체 왜 부대 작전 지도 빼돌렸습니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안 그래도 말년에 일 꼬인 것도 짜증 나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훈련 대대장의 얼굴이 썩어들어 가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중대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수상한 변화.
모두의 눈이 그쪽을 향했고.
결국 윤지훈의 동기이자 훈련장 관리 부대 중대장인 그가 입을 열었다.
“그게… 이번 혹한기를 온 군단 특임대 중대장 중 하나가…….”
“어휴, 이 병신 같은 놈!”
중대장이 대대장의 질책 어린 눈을 피하며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고백에 수사관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얼마 후, 부대 복귀 버스들이 서 있는 곳.
“나, 난 아니야! 전 아닙니다!”
2중대가 탈 차량 주변에서 잠시 소란이 일었고.
버스에 타고 있던 3중대가 그쪽을 기웃거렸다.
그때.
“자! 모두 고생 많았다!”
서윤진 대위의 시원한 목소리에 잠시 창문을 바라보던 병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드디어 훈련이 끝났다.
훈련장을 떠나는 모두의 표정이 복잡했다.
아마 이번 훈련은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
나쁜 뜻으로도 그랬고.
“중대 전원, 훈련 우수 중대 포상 3박 4일! 7분대는 6박 7일! 강현이는 9박 10일 받았다!”
“우와아아아!”
좋은 뜻으로도 잊기 어려우리라.
사람이 참으로 신기한 게 당시에는 그렇게 무서웠고 힘들었던 경험이 지나고 나면 추억으로 변하기도 한다.
아마 이번 훈련도 시간이 지나면 술자리 안줏거리가 되겠지.
사실 벌써 중대원들끼리는 훈련 마지막 날 있었던 일에 대해 떠들어 대는 중이었다.
“마, 내가 그 거인 새끼 다리를 딱 걸어 가지고! 한 방에 마! 그래서 강현이가 놈을 조질 수 있었던 거야.”
“아까 눈물 흘리며 도망치시지 않았습니까. 콧물 얼어서 고드름 열린 줄 알았습니다.”
크하하학.
둘의 만담에 주변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아니 그래서 내가 얘를 딱 잡아서 눈을 막아 줬다니까. 너 내가 생명의 은인인 줄 알아라. 진짜.”
“무슨 생명의 은인입니까! 저 고기 방패로 삼으려고 앞으로 내밀지 않았습니까! 제 뒤로 숨으셨지 말입니다!”
“고기 방패까진 아니고 눈 방패였지. 눈 방패.”
다만 그 추억이 모두가 달랐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자신이 누굴 구했네, 아니네. 어떻게 싸웠네, 도망쳤네 하며 서로 신나게 떠들어 대는 중대원들을 보며 강현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다행이다.
아무도 죽지 않고 모두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만일 누구 하나라도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넜다면 이렇게 밝게 떠들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하나하나 선임들을 살필 때.
“야, 뭘 그렇게 다 산 늙은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심 병장이 강현의 어깨를 툭 치며 마주 웃었다.
그를 본 강현이 마침 하고 싶었던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때 저 찾으러 와 주셔서. 그리고 목숨 걸고 업고 뛰어 주셔서.”
강현의 감사 인사에 심 병장의 얼굴이 멍해졌다.
열기 폭풍으로 눈을 녹이고 난 후, 일시에 너무 많은 마나를 빨려 탈진에 걸렸을 때.
심 병장이 강현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혼자서 도망갔다면.
자주포 격발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거인을 죽인 것은 강현이다.
그러나 심 병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렇게 다들 웃으며 복귀하긴 어려웠을 터.
강현의 진지한 표정에 심 병장이 코를 긁적이며 괜히 말을 둘러 댔다.
“나 여자친구 있어 인마. 멋있는 말 좀 그만해라. 그리고 내가 고마우면 고맙지 네가 왜 고마워? 좀 이기적으로 살라니까.”
“여자친구 있으셨습니까?”
“뭐냐? 지금 그 의심스러운 표정은. 인마 방금은 고맙다며?”
“고마운 것과 믿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가면 사진 보여 줄게.”
“아이돌 사진 꺼내면서 보여 주시면 안 되지 말입니다.”
“아니, 진짜라니까!”
둘이 키득키득 웃길 잠깐.
갑자기 심 병장이 결심하듯 얼굴을 굳히며 한 가지 다짐을 고백했다.
“나, 헌터 계속하련다.”
“…원래 그만두실 생각이었습니까? 특임대에서 이 고생을 하고선?”
“그래서 그만두려 했지. 여자친구는 일반인이거든. 그냥 전역하면 둘이 가게나 하려고 했어. 너무… 위험하니까.”
심 병장이 잠시 자신의 무기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단순히 여자친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역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죽었던 선임의 얼굴이 자꾸 생각났다.
생각과는 달리 매몰차고 위험한 현실이 무서웠다.
“그렇잖냐. 여기 왔다는 것 자체가 사실 그리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건 아니니까.”
“그럼 왜 마음을 바꾸신 겁니까?”
심 병장의 말이 맞았다.
실제로 생각한 것과 다른 현실을 마주한 하급 헌터들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는 계속 이 세계에 남기로 했단다.
왜일까.
“그냥… 누군가를 구한다는 게 어떤 건지 좀 알 것 같거든.”
“…….”
이기적으로 행동하라고 말은 했지만, 막상 강현이 힘없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자 참을 수 없었다.
강현을 들쳐 메고 뛸 때, 분대원들의 무사를 확인했을 때.
그리고 강현이 마지막으로 거인의 머리통을 날렸을 때!
모두가 살아남았고 자신도 그곳에 손을 보탰다는 사실에 심 병장은 감동했다.
진짜 헌터란 이런 거구나!
“돈도 명예도 좋지만, 누군가 구할 수 있다는 게 꽤 좋은 거 같아서…….”
위험할 거다. 어쩌면 어느 날 죽음을 앞에 두고 지금 한 결심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고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맞섰던 사람, 강현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강현이, 너를 보니까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가 잠시 전역 후의 계획을 밝히고는 후련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좀 후련하네. 뭐 그렇다고.”
문득 심 병장이 버스 전체가 조용하다는 것을 깨닫고선 주위를 둘러보았고.
“누군가 구할 수 있다는 게 꽤 좋은 거 같아서…….”
“누군가를 구한다는 게 어떤 건지 좀 알 것 같단다. 야.”
“으으, 안 오그라드냐?”
“아, 원래 전역할 때쯤에는 감상적으로 변한다지 않습니까.”
침묵한 채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중대원들이 키득거리며 심 병장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곧 이어질 놀림에 심 병장이 다급히 다른 후임들에게 변명하려 할 때.
“그래서 저도 헌터 하렵니다! 까짓것!”
“오! 야, 나중에 3중대 모여서 길드 하나 만들까?”
“…거기서도 선임 노릇하려 하십니까?”
“아, 그때는 형, 동생이지.”
“제가 형입니다. 그때 꼭 형이라 부르십쇼.”
“아, 형. 제대로 좀 해! 짬 똥꼬로 먹었어? 이러면 되냐?”
“후우, 진짜 그럴 것 같아서 더 빡칩니다.”
신난 3중대원들이 와글와글 앞으로의 계획을 떠들어 댔다.
3중대가 모여서 길드를 세우자느니, 분대로 팀을 만들어서 다른 길드에서 경력을 쌓은 뒤 모이면 인프라도 충분할 것이라느니.
점점 길드 설립 계획이 구체화되어 갔다.
그러고도 흥을 못 이겼는지 누군가 크게 외쳤다.
“지금부터 군가를 실시한다! 군가는 전우!”
“전우!”
“반동은 좌우 반동, 하나, 둘, 셋, 넷!”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조국을 지키는~.”
그리곤 모두가 합심이라도 한 듯 일제히 군가를 불러 젖히기 시작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당연히 공허한 계획이었고, 여기 있는 모두가 사회에 나가는 순간 현실이라는 높은 벽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터였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그런 걱정 없이 하나가 되어 미래를 꿈꿨다.
“별거 있냐! 마음 맞고 뜻 맞으면 가는 거지!”
같이 위기를 겪었고 또 이겨 냈다.
앞으로도 이들은 지금 느낀 성취감과 일체감, 고양감을 자양분 삼아 하급 헌터로서의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갈 것이다.
다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고래고래 군가를 불러댈 때.
“그런데! 길드장은 누가 합니까?”
중대원 중 한 명이 자신들을 이끌어 줄 사람을 누구로 정할지 물었고 모두의 시선이 당연하단 듯 한곳으로 향했다.
강현이 오늘따라 많은 시선을 받는 게 곤란하단 생각을 할 때.
“근데… 너 왜 이렇게 커졌냐?”
문득 강현을 살피던 선임들이 방금 한 말도 까먹은 채 강현의 커진 몸집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이전에도 작은 편은 아니었으나 특별히 눈에 띄는 편도 아니었다.
같은 분대의 장건철 병장도 그렇고 부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근육 덩어리 덕에 강현은 평범한 정도.
그런데 지금 보니.
“덩치만 놓고 보면 거의 장건철 병장님만 하겠는데?”
“아니, 근육 분대도 아니고 갑자기 이렇게 두꺼워진다고? 혹한기 시작 때만 해도 안 이랬잖아?”
그때 한 병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 훈련 동안 휴식해서 근 합성이 제대로 이루어졌네.”
“미친 대체 평소에 애를 얼마나 운동을 시켰으면 훈련 중에 몸이 커지냐.”
“장건철 병장님은 그냥 길드에서 트레이너로 모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럴 만한 인재지. 그럴 만한 인재야.”
아, 장건철 아시는구나.
평소 그를 잘 아는 중대원들이 별다른 의문 없이 상황을 바로 이해했다.
덕분에 강현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강현은 덩치가 커진 게 맞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키까지 커졌지.’
이전, 게이트에서 거인의 이빨을 들어 올린 채 복귀할 때.
[게이트의 진짜 보스 몬스터 산악 거인을 사냥했습니다]
[새로운 고물 산악 거인을 수집했습니다! 희귀 보스 몬스터입니다!]
깜빡 잊고 있었던 보스 몬스터 고물 판정 효과가 발동되었고.
[고물에서 능력치를 흡수합니다. 근력, 체력 스텟의 경험치가 대폭 오릅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새로운 특성 거인의 뼈를 습득했습니다. 기존 특성 강골과 합쳐집니다! 새로운 특성 거인의 강골을 획득했습니다. 뼈의 두께와 크기가 이전보다 더 커집니다]
[특성의 효과로 근력과 체력 스텟의 효율이 크게 오릅니다! 경험치 상승 속도가 더욱 빨라집니다!]
새로운 특성을 흡수했다.
그래 거기까진 좋았다, 거기까진.
문제는 경험치를 흡수한 이후 지금까지도 품에 이 누런 이빨을 안고 있다는 점.
서윤진 대위가 챙겨 준 선물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버렸겠지만.
그랬다간 어떤 후폭풍이 몰려올지 몰라 일단 갖고 있기로 했다.
“이거 생활관에 놓을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없으면 만들어야지 뭐.”
아까 버스에 타기 전에도 서윤진 대위가 거인의 이빨을 챙겼냐고 물었었다.
대체 왜 이거에 그리 집착하는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강현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부대다!”
드디어 이들을 태운 버스가 부대에 도착했다.
부대에 남아있던 인원 전부가 부대 입구에 도열한 채 B팀의 복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식은 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같이 생활하는 전우들의 목숨이 위험했단 소식에 다들 이리 마중 나온 것이리라.
특히.
“강현아악! 괜찮아? 어딨어! 우리 강현이 어디 있어!”
“만수야, 진정해! 일단 진정해!”
장만수 일병이 거의 1년 만에 돌아오는 주인을 맞이하는 강아지처럼 미친 듯이 강현을 찾았고.
김대영 상병이 그런 장만수 일병을 간신히 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건철 병장은.
“흐, 흐흡, 크흐흡!”
이미 눈물 수도꼭지를 틀어 버린 상태.
그 커다란 등판과 어깨를 떨며 훌쩍이는 모습이 참으로.
‘거대하네.’
거대했다.
1분대를 보자 비로소 부대에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났다.
7분대와 함께 한 훈련도 재미있었지만.
‘역시 내가 속한 곳은 1분대지!’
강현이 있어야 할 곳은 1분대.
그런데 그중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람이 두 명 있었다.
가슴팍에 보이는 작대기 하나.
설마, 설마!
강현이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분명 자신이 떠날 때까지만 해도 신병은 없었는데?
더군다나 1분대원들과 같이 있다니?
‘내 후임?’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막내 생활 탈출인 걸까.
강현은 후임들과 어떻게 오순도순 잘 지내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들의 인물창을 확인했다.
우선 유독 눈이 빤짝거리는 녀석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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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교
직책: 이등병
나이: 22
호감도: 0
정보: 군 생활 한번 잘해 보자. 그런데 최강현이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유명한 걸까? 그 사람을 따라 하면 나도 에이스가 될 수 있을까? 중대장님은 어떤 분일까? 듣기로는 유명한 분이라던데…….
추가 정보: 성실, 노력, 투 머치 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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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만 봐도 대충 어떤 친구인지 알겠다.
열심히 하는 만큼 잘 알려 주면 되겠지.
강현이 내심 만족하며 나머지 한 명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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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직책: 이등병
나이: 20
호감도: -15
정보: 높은 잠재력, 빠른 성장, 거만한 성격
추가 정보: 같잖은 것들이 어디서 선임이라고. 최강현? 내가 금방 눌러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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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쭈 저 새끼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