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눈사태
특임대 혹한기 훈련 마지막 코스, 생존 행군.
기간은 이틀. 총 행군 거리 100Km.
행군 와중에 쏟아지는 몬스터 홀로그램과 싸우며 설원을 전진해야 한다.
약 10Km 간격으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끊임없이 걷고 싸우다 보면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언저리까지 도착.
그 아래에서 막사를 세운 뒤 대휴식 겸 잠을 잔다.
여기까지가 딱 40Km.
“엄청 힘든 훈련이네요.”
일반병들의 행군 코스가 40km인 것을 생각하면 차원이 다른 훈련이었다.
텐트를 설치하는 특임대를 보며 포병 분대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돈 많이 받는 게 아니지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아까 순록한테 치여서 날아가는 것 보니까 거의 교통사고 급이던데.”
훈련 중 홀로그램에 당해 날아가는 특임대 병사들을 보자 몬스터가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 났다.
다행히 홀로그램이라 부상이 없었지 만일 진짜였다면?
만일 특임대 없이 자신들이 그들과 싸워야 한다면?
“이런 차륜형 포로는 바로 전멸 아니겠습니까?”
“아까 그 가시뿔순록? 어림도 없겠더라.”
포병들이 문득 현대 화기의 무력함을 느끼고는 깊이 입김을 내뿜었다.
스킬과 특성, 스텟이 화력이자 무기가 된 세상.
오히려 이번 연합 훈련을 보자 일반인들이 설 자리가 없음을 더욱 실감했다.
그러나.
“새끼들아, 고개 들어!”
포반장 최 하사가 그들의 등을 치며 기운을 불어 넣었다.
“아무리 소용없었다고 하지만 계속 쫄아 있을 거냐? 엉? 포병대 에이스들 기세 다 어디 갔어? 특임대는 특임대고 우리는 우리지!”
항상 병사들에게 해 왔던 이야기.
“몬스터 몰려오면 특임대 기다리면서 손만 빨고 있을 거야? 우리도 군인이다. 명심해. 언젠간 싸워야 할 수도 있고 그때 특임대가 없을 수도 있어. 그땐 우리가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일반적이라면 최 하사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말도 안 된다며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특임대는 특임대, 일반병은 일반병.
몬스터들이 나타나면 당연히 특임대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대몬스터용 차륜형 자주포 운용에 지원한 병사들은 생각이 좀 달랐다.
“맞습니다. 아주 낮은 등급 몬스터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것만 해도 충분해. 누군가는 구해 낼 수 있을 거다.”
우리도 몬스터와 싸울 수 있다!
이를 보여 주기 위해 차륜형 자주포 운용반에 지원하지 않았던가.
여기 있는 인원 모두가 엄선을 거친 부대의 에이스들인 만큼 금방 기운을 차렸다.
그러다 문득.
“그래도 스킬 있는 사람이 포 쏘는 걸 보고 싶긴 합니다.”
오늘 봤던 중기관총의 위력을 떠올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105mm 포로도 죽이지 못했던 몬스터들을 갈아 버렸던 화력.
이후에도 강현이 M-60H, 에땁 등으로 보여 준 파괴력을 보며 그들 모두가 전율했었다.
만일 그가 스킬을 사용해 자주포를 발사한다면?
“으으, 그건 정말 괴물 아닐까?”
“저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잠시 몸을 부르르 떤 포병 분대가 일제히 강현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7분대 최고참이라던 병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분위기를 보니 꽤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혼나는 건 아닌 듯싶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몇몇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쪽을 바라볼 때.
꾸르르릉!
갑작스레 거대한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어어? 야, 분대형 텐트 넘어진다! 잡아!”
다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우왕좌왕할 때.
어어? 산! 산!
몇몇 특임대원이 자신들 바로 뒤에 있는 산을 가리켰다.
이 보존형 게이트의 테마는 설원.
눈에 걸리는 것이라곤 허연 눈과 바람뿐인 곳.
유일하게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있었다.
딱 지표로 삼기 좋아 항상 행군의 반환점으로 삼아 왔던 장소였다.
그런데.
그 산이 떨리기 시작했다.
“중대장님! 중대장님! 어떻게 합니까!”
다들 몸을 부르르 떠는 산을 보고 있을 때.
‘어디냐?’
강현은 유일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전조가 나타난 곳은 하늘.
거기다 퀘스트 이름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어둠이었으니.
저 별 한 점 없는 하늘이 사태의 원인일 터.
[연구자의 눈을 발동합니다. 대상을 분석합니다]
[스킬 레벨이 부족하여 분석할 수 없습니다]
[위압적인 적이 당신을 감지했습니다. 당신의 정신을 제압하려 합니다!]
강현의 시선을 느꼈는지, 별 한 점 없는 새까만 어둠이 그의 시선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속에 비치는 섬뜩한 악의와 적의.
보통이라면 강력한 정신 공격에 상태 이상이나 환각 등 페널티를 부여받았겠으나.
[불굴, 신뢰, 카리스마 특성으로 정신 제압을 견딥니다!]
[상대의 능력이 강하여 일시적인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간신히 막아 내었다.
그러나 완전히 막아 내진 못했는지 스턴 상태에 빠졌다는 알림과 함께 강현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적!
그때 강현의 상태가 이상함을 느낀 심 병장이 그의 어깨를 집는 순간.
“허억!”
강현이 폐 깊이 숨을 들이쉬며 스턴 상태에서 빠져나왔다.
“야, 야. 강현아? 괜찮냐? 이거 왜 이러냐? 이거 왜 이래!”
심 병장이 손을 벌벌 떨며 강현을 마구 흔들었다.
“이제 전역 한 달 남았는데! 이거 왜 이러냐고!”
얼핏 눈가의 비치는 눈물을 보니 얼마나 겁을 집어먹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
방금 강현에게 이야기해 주었던 죽어 버린 선임 생각이 나서일까.
강현이 정신 못 차리고 벌벌 떠는 그의 어깨를 와락 움켜잡았다.
“심 병장님!”
“어, 어어?”
강현이 심 병장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명령하듯 말을 이었다.
“사십쇼. 반드시 살아야 합니다!”
“어, 어엉! 살아야지!”
“그러니까 분대 챙기십쇼! 혼자 떨어져 나오면 죽습니다! 7분대로 가십쇼!”
“어, 어어 알았어! 그쪽으로 갈게!”
[언변, 감화, 신뢰, 카리스마를 발동합니다. 상대의 혼란이 크게 줄어듭니다. 대상이 당신의 말을 따릅니다!]
강현의 말에 급히 정신을 차린 심 병장이 달려가다 말고 멈췄다.
“왜 안 와? 너는?”
의아함과 공포, 불안이 섞인 그의 표정을 보며 강현이 굳건히 답했다.
“전, 아직 할 일이 있습니다. 중대장님께 간다고 전해 주십쇼!”
그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강현이 우물쭈물하는 심 병장을 두고는 자신이 선택한 조력자를 찾으러 급히 달렸다.
“모두 당황하지마! 다들 침착해!”
서윤진 대위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우선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중대장님! 중대장님!”
강현이 그녀를 부르며 달려갔다.
[조력자가 당신의 말에 귀 기울입니다]
“왜? 무언가 이상한 거라도 발견했어?”
“하늘! 하늘이 이상합니다!”
강현의 말에 서윤진 대위가 퍼뜩 고개를 들었고 그대로 콧잔등을 찌푸렸다.
“별이… 없어!”
그런데 갑자기 서윤진 대위의 표정이 멍해지기 시작.
강현이 달려들 듯 뛰어들어 그녀를 넘어뜨렸다.
눈밭 위에 포개진 둘.
“허억! 허억! 방금 뭐야?”
“중대장님! 일단 하늘 못 보게 해야 합니다!”
강현의 말에 서윤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몇몇 특임대 인원이 흔들리는 산을 보다가 자연스레 이상할 정도로 새까만 하늘에 눈을 두었고.
모두 뻣뻣하게 몸을 굳힌 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그중 정신이 약한 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모두 고개 땅만 봐! 옆에 하늘 보며 움직이지 않는 인원은 때려서라도 깨워! 전파!”
강현의 말 덕에 상황을 인지한 그녀가 급히 명령을 내렸고.
“모두 고개 땅으로! 하늘 보고 있는 인원 때려서라도 깨워!”
“모두 고개 땅으로! 하늘 보고 있는 인원 때려서라도 깨워!”
특임대 간부부터 병사까지 일제히 복명복창하며 서로를 깨우기 시작했다.
“움직이질 않습니다!”
“차에 실어! 빨리!”
그중 심하게 제압당한 인원은 아예 움직이지 못했고 결국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트럭에 태우기로 결정.
모두가 갑자기 찾아온 위기를 맞이해 급히 움직일 때.
“최강현! 이거에 대해 뭘 알고 있어?”
서윤진이 급히 강현에게 물었으나.
“그저 위협이 왔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강현 또한 해 줄 말이 없었다.
퀘스트를 받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뜬금없었고 실제로 강현 스스로 현재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 쉬이 짐작되지 않았기 때문.
그때.
[야비한 어둠이 알맞은 신체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강현의 눈앞에 알림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를 본 게 강현 혼자가 아니었다.
[조력자에게도 일부 사실이 전달되었습니다]
“어둠……?”
서윤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알맞은 신체를 찾지 못했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강현아 이게?”
서윤진이 의문을 풀기 위해 강현을 보는 순간.
턱을 덜덜 떨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강현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설원 속 유일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
방금 강현이 혹시나 하며 산을 바라보았고 절망적인 알림이 떠올랐다.
[연구자의 눈이 대상을 분석합니다. 대상의 진짜 정체를 밝혀냈습니다!]
[혹한기 반환점 추가 정보 – 얼음에 갇혀 있는 설산 거인]
말도 안 되는 소리.
거인이라니.
일반 몬스터도 아니고 거인이라니!
강현이 떨리는 턱을 억지로 다잡을 때.
[야비한 어둠이 알맞은 시체를 찾았습니다. 그 속에 빙의합니다!]
슈우우욱!
마치 하늘이 빨려 들어가듯 새까만 어둠이 산봉우리 꼭대기로 몰려들었고.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화산 폭발 장면을 되감기하는 듯한 모습에 다들 멍하니 그곳을 바라볼 때.
번쩍.
산이 짙푸른 눈을 떴다.
그리곤 금방이라도 깨어날 듯이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모습에 다들 침을 꼴딱 넘길 뿐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울 정도.
하나 확실한 건.
“모두 텐트 버려! 최대한 빨리 달려! 죽기 싫으면!”
당장 달려야 한다는 사실.
서윤진 대위의 고함에 3중대원 전체가 황급히 군장만 챙긴 채 달리기 시작했고.
“최, 최 하사님!”
“시동, 시동 걸어!”
포병 분대가 황급히 차륜형 자주포에 시동을 걸며 올라탔다.
“강현아! 최강현!”
“강현이. 중대장님이랑 있어! 중대장님 옆은 안전하니까. 너나 빨리 달려!”
강현이를 찾는 7분대장과 그를 잡아끄는 심 병장.
모두가 도망치는 메뚜기 떼처럼 펄쩍펄쩍 설원 위를 달릴 때.
콰르르릉!
거인의 몸을 차지한 어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이 얼음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뒤트는 순간.
산이 쏟아져 내렸다.
눈사태라는 말이 평범하게 보일 정도의 눈사태.
정말 산을 들이붓듯 눈 더미가 특임대 쪽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모두 방패랑 군장으로 몸 가려!”
“분대 모여서 눈사태에 대비!”
이를 피할 수 없음을 자각한 중대장과 간부들이 고함쳤지만.
“으악!”
“모두 눈사태-!”
“피햇!”
금방 하얀 눈에 파묻히고 말았다.
아무리 헌터라 해도 결국은 인간.
자연이 선사하는 재앙은 몬스터와는 또 다른 차원의 힘이었고.
이를 막아 내기엔 인간은 너무나 작고 초라한 존재였다.
순식간에 더러운 오물을 씻어내듯 하얀 눈이 위를 덮었다.
꾸드득, 꾸드드득.
눈이 무겁게 쌓이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고 그 아래 깔린 특임대의 비명을 그대로 내리눌렀다.
그렇게 눈사태가 밀려들길 꽤 오래.
잠시간의 정적만이 주변을 감쌀 때.
“파하!”
“흐읍!”
강현과 호랑이로 변한 서윤진 대위가 가장 먼저 잔뜩 쌓인 눈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행보관! 황 중사!”
“심 병장님! 7분대!”
온몸에 눈을 묻힌 채 둘이 오들오들 떨며 전우를 불렀으나.
“…….”
그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특임대! 특임대, 대답해! 다들 대답!”
서윤진이 급히 눈밭을 뛰어다니며 주변을 손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강한 힘에 움푹움푹 눈이 패었으나 너무 많았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어떤 비극이 있을지 모른다!
그 굳건하던 서윤진의 얼굴에 다급함을 넘어 무력감과 절망감이 비칠 때쯤.
[어둠이 얼음을 깨고 거인의 시체를 움직일 때까지 남은 시간: 15분]
“이런 X발!”
강현이 떠오른 알림을 보며 욕을 내뱉었다.
앉아 있는 크기만 20m 가까이 되어 보이는 괴물.
완전히 얼음에 갇혀 있어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검푸르게 빛나는 눈만은 분명 지금 강현과 서윤진을 향해 있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력자가 현재 상태 이상에 들어섰습니다. 흥분 상태가 도를 넘었습니다. 광분 상태에 빠집니다!]
차츰 서윤진 대위의 눈이 붉어진다 싶더니 그녀가 사람의 말을 잊은 듯 으르렁거리며 미친 듯이 눈을 파내기 시작했다.
반쯤은 이성을 잃어버린 듯한 움직임.
“크허엉!”
그녀의 표호가 설원을 울렸고 주변의 눈이 일제히 떠올랐으나 아무 소용 없었다.
자연재해 앞에선 그녀 또한 개인일 뿐.
중대원들을 구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그녀를 휘감을 때.
“중대장님!”
강현이 서윤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미 혈호 특수 능력, 광폭화 때문에 반쯤 이성을 잃은 그녀.
[상대의 높은 신뢰도, 호감도로 인해 광폭화 수치가 하락합니다]
[메인 퀘스트 조력자 효과로 인해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신뢰, 감화, 언변, 카리스마로 인해 상대가 당신의 말을 듣습니다]
[광폭 상태인 호랑이를 일시적으로 진정시켰습니다!]
만일 강현이 아니었다면 발톱에 찢겼을지도 모른다.
막 강현에게 달려들 듯 으르렁거리던 서윤진 대위가 잠시 숨을 몰아쉬며 멈췄다.
“쉬- 쉬- 중대장님 저 강현입니다, 강현이. 잠시, 잠시만 진정하십쇼.”
“크르르릉.”
강현이 손을 내밀어 야성에 먹힌 중대장을 진정시켰고.
등에 메고 있던 군장을 끌러 이번 혹한기 훈련 내내 자신의 몸을 녹여 주었던 물건을 꺼냈다.
바로 피닉스의 알이 들어 있는 목함.
[무엇이든 보관함 추가 정보: 기운이라면 무엇이든 무한히 보관할 수 있음]
[현재 보관된 기운: 마나, 열기]
[두 기운의 보관량이 일정 수준을 넘었습니다. 보관함 뚜껑을 열면 열기 폭풍을 뿜어낼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마나를 더하여 위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선택을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