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용무가 있어 왔습니다. 용무는…….
“사람은 줄을 잘 타야 해.”
회사에서건 어디서건 라인을 잘 타야 앞으로의 길이 편하다고들 한다.
특히 군대는 줄타기의 끝판왕.
육군 장교들만 해도 육사, 삼사, 학군단 등 여러 파벌이 나뉘어 있다.
그중에서도 육사, 육군 사관 학교 출신의 장교들은 엘리트 집단으로서 탄탄대로가 보장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삼사, 육군 3사관 학교 같은 경우 사관 학교보단 밀리지만 선후배끼리 당겨 주고 밀어줄 인프라는 충분했다.
“학군단에 학연, 지연 따윈 없다!”
이에 학군단은 기존 학교 선후배를 중심으로 쌓아 가던 인프라를 통합하여 학교 이름 상관없이 서로를 끌어 주는 방식으로 맞섰다.
이처럼 군에서는 서로 밀어주고 당겨 주는 동아줄 싸움이 치열하게 이루어졌다.
물론 때로는.
“왜 내가 남한테 의지해서 군 생활을 해야 합니까?”
이를 거부하는 자들도 있었다.
군인이면 군인답게 국가에 헌신하고 의무를 다해야지 파벌 놀음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들.
헌터 특임대에도 사관 학교 출신, 헌터 특별 채용 출신 등 다양한 파벌이 있었고.
그들 사이에 경쟁과 견제가 치열했다.
그러나 그중에서 서윤진은 누구의 라인도 타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실 탈 필요조차도 없었다.
“국내 5대 길드 산군 길드 손녀에 최고 엘리트라는 사관 학교 우수 졸업, 거기다 굵직한 전공 몇 개 세워서 고속 진급까지. 사실 사고만 없으면 별까진 달아보지 않겠어?”
“그러니까 옆에 붙어 있어야지. 안 그래?”
아무리 군대가 독립된 기관이라지만 배경에 영향을 안 받는 곳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바깥에서 잘살고 잘나갈수록 편한 게 군 생활 아니던가.
서윤진은 배경과 능력 모두가 완벽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그녀를 이용해 줄을 잡아 보려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그, 산하 길드에 자리가 꽤 많다지? 이번 표창 신경 좀 썼네.”
심지어는 퇴역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관들이 서윤진에게 줄을 대려 할 정도였다.
그만큼 인기도 많고 능력도 있는 그녀였지만 사람이란 게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법.
가만히 있어도 서윤진을 시기하고 어떻게서든 깎아 내리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대표적으로는 이전에 강현을 두고 부딪쳤던 지원과장 박민우 대위가 있었고.
또 여기까지 찾아와 시비를 걸고 있는 2중대장이 있었다.
“또 와서 시비 터네. 일대일로 붙으면 개발릴 텐데.”
“전 솔직히 1중대장님보다 2중대장님이 더 싫지 말입니다.”
“난 둘 다.”
서윤진 앞에서 깐죽거리는 2중대장을 보는 3중대원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상대도 안 되는 주제에 호승심은 강해서 꼭 훈련 때마다 시비를 거는 2중대장 때문에 고생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
다들 이번만은 좀 조용히 넘어가길 바랄 때.
강현은 오히려 붙었으면 싶었다.
‘혹한기 황금마차? 이게 뭐지?’
황금마차라 하면 본래 PX가 없는 전방 부대를 돌아다니며 기호품이나 필수품을 파는 차량을 말한다.
노랗게 칠한 외관 때문에 붙은 별명이 바로 황금마차.
그런데.
“심 병장님, 혹한기 훈련장에도 황금마차가 옵니까?”
“아니, 유격 때는 있는데 혹한기 때는 못 본 거 같은데. 우리 목욕했던 막사. 거기에 PX 따로 있을걸? 훈련장 관리 부대가 쓰는.”
“아, 그렇습니까.”
“왜? 핫 팩 모자라냐? 내 것 좀 줄까?”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황금마차가 오는 것은 아닌 듯했고.
상태창이 말하는 혹한기 황금마차가 대체 뭘까?
강현이 궁금해할 때.
“그거 좋네. 그래서? 지금부터 전투 시작인가?”
서윤진 대위의 서늘한 목소리가 강현의 귓가로 꽂혔다.
2중대장의 제안에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어 하는 분위기.
하긴 그녀가 그리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님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황 중사! 홀로그램 장비는 두 중대 쓸 만큼 있어요?”
서윤진 대위가 황 중사를 돌아봤으나.
“아쉽게도 연구 중인 제품이라 두 중대 분량은 안 됩니다.”
황세아 중사가 고개를 저었다.
서윤진 대위가 여기까지 찾아와 까부는 2중대장을 때려 줄 수 없음에 아쉬워할 때.
“잠깐! 난 간부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싸우잔 말 한 적 없어. 간부들까지 싸울 필욘 없잖아? 그래서 좀 생각한 게 있는데 어때?”
2중대장이 슬며시 한 발 물러나며 다른 전투 방식을 제안했다.
그 또한 서윤진 대위의 호전성과 전투력은 이미 알고 있는바.
사실 사관 학교 시절 매번 패배했던 분함이 아직도 남아 있기에 이렇게 기를 쓰고 이기고 싶어 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뭐? 이번엔 또 무슨 방식?”
서윤진 대위의 물음에 2중대장이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간부 전원 제외. 대신에 중대장만 포함하기로.”
“그럼 결국 싸워야겠네!”
“아니! 중대장도 무력 사용은 제외! 대신 각 중대장을 요인으로 설정하여 그 요인을 먼저 암살하는 쪽이 이기는 거로 어때?”
그 황당한 제안에 서윤진 대위가 김빠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요인 암살전 하자는 거잖아?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한데…….”
못 때리네?
마지막 말에 2중대장이 본인의 태도는 생각지도 않은 채 목 끝까지 차오르는 욕설을 삼켰다.
어쨌든 그로선 중대장과 간부들의 개입을 최소화한 채 이길 수 있는 전투를 찾아야 했고.
결국 찾아낸 훈련법이 요인 암살전.
보통 숲 오크나 하급 리치, 하이 리자드맨 거주지를 상대하기 위해 하는 훈련이었다.
“그러니까 중대장이 전투력 없는 보스 몬스터가 되자는 거 아냐.”
“그렇지! 부대 지휘까지만 가능한 거로 하자고. 결국, 중요한 건 병사들 훈련이잖아?”
“으음, 틀린 말은 아닌데.”
실제로 게이트 안에서 이런 부락이나 거주지를 마주했을 땐 잠입 또는 보스, 중간 보스 몬스터 암살 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우두머리를 잃은 군락 몬스터만큼 몰아치기 쉬운 것이 없으니까.
그래서 2중대장이 생각해 낸 게 중대장을 전투 인력에 빼낸 뒤 벌이는 요인 암살 작전.
더군다나 자신에겐 비장의 수마저 있었기에 자신 있었다.
서윤진 대위의 떨떠름한 반응을 본 2중대장이 급히 제안했다.
“패배하는 중대 중대장이 승리한 중대 혹한기 끝나고 사비로 중대 회식 지원. 어때?”
“다들 괜찮겠니?”
그의 제안을 들은 서윤진 대위가 중대원들에게 물었고.
“이기겠습니다!”
3중대 혹한기 B팀 인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로써 중대 전투가 성사되었다.
훈련 후 먹는 컵라면도 꿀맛인데 회식이라니.
거기다 남의 돈으로 먹는 만큼 맛있는 게 없으니 반드시 이기리라.
“좋아, 요인 암살 훈련은 오늘 야간 훈련부터 내일 정오까지. 방식은 자유. 오케이?”
“조심해, 잘 때 목 안 따이게.”
서윤진 대위의 상큼한 인사에 2중대장이 똥 씹은 얼굴을 하곤 막사 밖으로 나갔다.
서윤진 대위가 그 뒷모습을 보며 진하게 미소지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무슨 꿍꿍이가 있으니 이런 제안을 했겠지.
그러나 서윤진 대위에겐 2중대장이 모르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으니.
“최강현!”
바로 3중대엔 괴물 스나이퍼가 있다!
서윤진 대위가 요인 암살 임무를 허락한 이유.
“일병 최강현!”
강현이 벌떡 일어나 서윤진 대위 앞에 섰고.
“어때? 자신 있어?”
그녀의 물음에 강현이 씩 웃었다.
“맡겨만 주시면 내일 동이 트기 전까지 적장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오오오오!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중대원들이 밥숟갈로 식판을 치며 환호했다.
“최강현! 최강현! 최강현!”
팅팅탱탱!
손을 들어 분위기를 가라앉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선언했다.
“강현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물론 하고 싶은 거 할 생각이었다.
다만 남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강현이 K-1H을 등에 멘 뒤 출발하기 전에 서윤진에게 물었다.
“중대장님, 작전 지도 아무거나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작전 지도? 이 주변밖에 없는데. 2중대 근처 것은 없어.”
“어떤 거라도 상관없습니다.”
어? 그럼 어떻게 하려고?
의아해하는 간부들을 보며 강현이 방금 본 2중대장의 인물창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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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훈
직책: 중위
나이: 29
호감도: 0
정보: 서윤진에게 밀리는 게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난다! 화가 나!
추가 정보: 훈련장 관리 부대 중대장과 동기, 22시에 훈련장 전체 작전 지도 받기로 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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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정보를 본다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 * *
혹한기 훈련엔 1대대가 모두 참여했지만, 중대별로 위치한 훈련장은 꽤 거리가 있었다.
그 사이사이 따로 혹한기 훈련을 실시하는 일반 보병, 포병 등의 부대 진지가 있었고 여러 전투 교장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강원도 혹한기 훈련장 제3 연병장 한쪽.
군단 특임대 1대대 2중대 병사들이 진지 앞에서 보초 교대를 하고 있었다.
문득 누군가 속에 담아 두었던 불만을 꺼냈다.
“아니 대체 우리가 왜 매번 3중대랑 싸워야 하냔 말입니다.”
“그러게 씨, 그래서 중대장 잘 만나야 한다고. 3중대 봐라, 중대장 빵빵하니까 회식하고 공 세우고 이번 훈련 때도 온수 목욕했다더라.”
그 소식을 들은 다른 경계병들이 감탄을 토했다.
“와, 대박! 온수 목욕은 선 넘었지 말입니다.”
“그에 비해서 우린 뭐냐? 씨, 대대장님한테 존나 깨지기만 했잖아.”
“그거로도 모자라 연병장 뺑뺑이까지 돌았지 않습니까. 진짜 솔직히 그게 우리 잘못입니까? 중대장님이 작전 잘못 내려서 그런 거 아님까.”
군대에서 병사들에게 가장 피곤한 건 바로 무능한데 욕심은 많은 상관.
계급이 높으니 까라는 대로 까기는 하지만 왜 이걸 해야 하는지도 이유가 없었고 그냥 일은 벌이는데 결과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중대원들의 신임은 최악.
거기다 더욱 짜증 나는 건 자신이 능력 있다고 착각이라도 하는지 자꾸 감당도 못 할 일을 벌인다는 점.
“그리고 갑자기 요인 암살전이 뭡니까? 뜬금없이.”
“나름 짬통을 굴린 거지. 본인이 3중대장님 이길 자신은 없으니까. 뭔가 다른 방법이라도 생각한 거야. 어차피 무력으로 붙어서 3중대장님 이길 중대장이 있겠냐.”
“아니, 그럼 차라리 깃발 점령전이나 다른 것도 있는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깃발 점령전, 게릴라전, 대테러 진압전, 심지어 장애물 빨리 넘기까지 우리가 다 졌으니까. 남김없이 다.”
“아…….”
“비빌 게 있어야 비비지. 그러니까 이 작전으로 뭐라도 해 보려는 거 아니겠냐.”
“대체 사관 학교는 어떻게 나왔답니까?”
“그래서 꼴찌로 졸업했다잖아. 오죽하면 후배한테 진급 밀려서 아직까지 중위겠냐고. 그거 아냐? 3중대장님이 사관 학교 후배야.”
잠시 일동 침묵.
대부분의 선임은 적어도 네 번에서 다섯 번은 3중대와 붙었던 경험이 있었고 그때마다 철저히 깨졌다.
물론 그들은 패배의 이유를 중대장 차이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번 혹한기 훈련 때도 중대장이 홀로그램 훈련 중 욕심을 부리다가 큰 실수를 해서 대대장에게 쌍욕까지 먹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화풀이를 자신들에게 하니 죽을 맛이었다.
“시간이 답이지. 빨리 전역만이 답이다.”
누군가 나지막이 정답을 이야기할 때.
그들 중 가장 막내가 갑자기 전방을 보며 낮게 소리쳤다.
“정지, 정지, 정지! 움직이면 공격한다! 누구냐!”
때마침 초소로 다가오는 병사를 보고는 다들 몸을 긴장했다.
설마 요인 암살하러 온 3중대원일까?
“가지!”
“…….”
“가지!”
“…….”
암구어를 물었으나 대답 없는 것을 보고는 다들 확신했다.
경계병들이 슬며시 무기를 들 때.
“아저씨네 부대 암구어를 내가 어떻게 알아요?”
오히려 상대가 그들에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저 여기 훈련장 부대에서 나왔는데요. 이쪽 중대장님한테 전달할 거 있거든요? 들여보내 주세요.”
오히려 그 당당한 태도에 다들 당황했다.
결국 자리에 있던 고참 하나가 후임을 돌아보면서 지시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야, 무전 해 봐.”
“후-후. 여긴 정문 초소. 하늘소, 하늘소. 훈련장 부대에서 병사가 찾아왔는데 어떻게 합니까?”
“어, 들여보네.”
바로 떨어지는 답에 정문 경계병들이 자리를 비켰고.
등에 총 한 자루를 멘 채 짙은 위장을 한 병사가 안으로 들어갔다.
“오케이! 왔구나.”
그리고 무전을 들은 2중대장 윤지훈 중위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자신이 왜 말도 안 되는 요인 암살전을 하자고 했겠는가.
이곳에는 자신의 동기가 중대장으로 있었고 그에게 이 훈련장의 자세한 지도를 비롯해 다양한 침투 경로를 알려 달라고 미리 부탁해 놨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이긴다!”
그가 빠드득 이를 갈며 장담했다.
자기보다 한 기수 아래인 주제에 계급은 높은 건방진 것.
그저 산군 길드에서 운 좋게 태어난 걸 갖고 잘난 척하는 서윤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도 산군 길드에서 태어났으면 이미 소령 달았어! X발!”
물론 못 달았을 것이다.
아니, 산군 길드라는 그 거대한 산에서 다른 호랑이들에게 갈가리 뜯기다 못해 비참하게 죽었을 거다.
서윤진 대위가 겉으로 보기에야 길드의 후광을 업고 승승장구하는 아가씨처럼 보였지만.
그녀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려 하는 이가 드물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산군과 연관되고 구설수가 될 것을 알기에.
그러나 본래 남을 시기하는 이에겐 남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법.
“싸가지 없는 새끼가 내가 반말 좀 지껄인다고 자기도 반말을 지껄여? 선후배도 없는 새끼!”
사실 그가 한 기수 선임이긴 했지만, 서윤진의 계급이 위.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기에 맞받아친 것이건만 그마저도 서윤진의 탓을 하는 윤지훈 중위였다.
어쨌든 이번에는 자신이 이긴다.
“최 중사! 최 중사! 애들 데려와!”
이제 곧 도착할 지도를 바탕으로 서윤진에게 굴욕을 선사하리라!
들뜬 기분으로 미리 준비해 놓은 2중대 에이스로 이루어진 암살 팀을 기다릴 때.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텐트 밖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손짓했다.
“얼른 들어와!”
“충-성!”
“어어, 그거 뒤에 지도지? 얼른 내놔라.”
중대장용 텐트 안으로 들어선 병사가 그를 향해 우렁차게 경례했고.
재촉하는 윤 중위와는 반대로 군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일병 최강현. 특임대 2중대장님께 용무가 있어서 왔습니다. 용무는…….”
“아, 알겠다고. 너희 중대장이랑 이야기 끝냈으니까 빨리 내놔!”
윤지훈 중위가 다급히 등 뒤에 맨 지도를 받아들려 다가갈 때.
철컥.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차가운 총구가 그의 얼굴을 겨누었다.
그리고 그 앞에선 3중대 소속 암살자 강현이 짙게 웃으며 자신의 진짜 용무를 밝혔다.
“요인 암살입니다.”
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