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진짜들의 훈련
강원도 깊은 곳에 있는 혹한기 훈련장.
끼이이익.
훈련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듯이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드디어 군용 버스에 나누어 탄 3군단 헌터 특임대 1대대 혹한기 B팀이 도착했다.
“모두 하차하고 짐 내려!”
“모두 하차!”
신속하게 하차한 특임대 병사들이 재빠르게 트럭에 실려 있는 텐트와 장비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각 중대가 배정받은 훈련장으로 이동한 후 이어진 진지 설치.
본래 혹한기 첫날에는 막사와 진지 설치가 가장 먼저인 법.
그리고 가장 고생스럽고 힘든 법이었다.
그러나 특임대의 진지 설치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랐다.
“와… 저, 저게 뭐야.”
“저 인간들 헌터들이야, 괴물들이야?”
“괴물을 상대하니까 본인들도 괴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루 종일 걸렸지 말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특임대보다 먼저 와서 훈련하고 있던 일반 포병 부대, 보병 부대 병사들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흐읍!”
네다섯은 붙어야 하는 24인용 텐트 천막을 혼자 들지 않나.
“야! 지주 핀 가져와!”
꽝! 꽝! 꽝!
주먹으로 지주 핀을 박질 않나.
“모두 비켜!”
어느 중대에서는 염력 능력자라도 있는지 텐트 기둥들이 둥둥 떠다니기까지 했다.
텐트 설치가 이렇게 빠른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나머지 인원은 벌써 윤형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비범했다.
“간드앗!”
본래라면 철근 두께의 고정형 기둥 철항을 땅에 세워 두고 그 위에 항타기를 씌운 뒤 체중을 이용해 박는 게 정석.
보통은 힘 좋은 병사들이 돌아가며 하는 힘든 작업이지만.
헌터들은 항타기조차 필요 없었다.
철항을 들어 올리고는 높이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땅에 꽈아앙! 대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박아 넣었다.
그야말로 일사천리.
이를 지켜보는 타 부대 병사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으나.
“쓸데없이 힘을 빼는군.”
훈련장 전체를 돌아다니며 1, 2중대의 진지 공사 장면을 살펴보던 선설민 중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전 중에 진지 설치를 마치고 오후부턴 바로 훈련에 들어가야 하는데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대체 왜 항타기라는 좋은 물건 두고 멍청하게 똥힘으로 철항을 박아 넣고 있으며 다른 특임대들은 그걸 보고 좋아하고 있단 말인가?
염력으로 텐트를 세워?
어림도 없는 소리.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지 실제로는 그럴 능력이 안 된다.
자신의 전력을 모르고 저런 짓을 하진 않을 터.
“다 보여 주기식일 뿐이군. 참되지 않았어.”
으음.
선설민 중령의 입에서 불만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군인이라는 놈들이 가장 중요한 진지 설치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니.
헌터이기 이전에 군인인 그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그런데.
“호오, 여긴 좀 볼 만하군.”
마지막 3중대가 있는 훈련장에 도착하고서야 선설민의 어두웠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다들 분담한 역할대로 빨리빨리 움직여!”
허리에 손을 올리고 현장을 지휘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알겠습니다! 모두 항타기로 철항 박아!”
쓸데없는 힘 낭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진지 설치.
“모두 비키십쇼. 윤형 철조망 갑니다!”
윤형 철조망이 염동력을 타고 주르륵 늘어나며 순식간에 진지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손뼉을 치고 싶을 만큼 염동력의 적절한 사용법.
그리고 그중 화룡점정은.
“24인용 설치 끝났습니다!”
“오! 최강현 성능 확실하구먼! 내부 설치는 우리가 할게!”
강현이 홀로 24인용 텐트를 완성하는 모습이었다.
가장 인원이 많이 들어가는 텐트를 혼자 감당하니 자연스럽게 진지 설치의 다른 부분에 인원이 추가되었고.
전체적인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거기다 본인 할 일을 끝낸 병사들이 24인용 텐트 내부 작업을 돕는 완벽한 분업까지.
“3중대장.”
“대위 서윤진!”
“만족. 그렇게 계속 진행하도록.”
“감사합니다!”
레토나에서 들려온 선설민 중령의 칭찬에 서윤진 대위가 밝게 웃었다.
“최강현 이병인가?”
“이제 일병이 되었습니다.”
“으음, 혼자 24인용을 이 빠른 시간에 설치하다니 대단하구먼.”
“감사합니다!”
선설민 중령이 다른 대대장에게 자랑할 생각에 들떠 자리를 떠난 후.
[혹한기 훈련 포인트 3점을 얻었습니다]
막 24인용 텐트 설치를 끝낸 강현의 눈앞에 알림이 떠올랐고.
‘오 이렇게 모으는 거구나.’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인 퀘스트 혹한기 훈련을 시작합니다!]
어제 메인 퀘스트를 받은 후 오늘 훈련장에 입장하는 순간.
[메인 퀘스트 무대에 도착하였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갱신합니다]
[퀘스트 성공 조건 - 혹한기 훈련 포인트를 일정 이상 모으세요. 그 결과에 따라 퀘스트 성공 수준 및 실패가 결정됩니다]
[실패 – 100포인트 미만
하 – 100포인트 이상
중 – 150포인트 이상
상 – 250포인트 이상]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성공 조건을 부여받았다.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이제는 알겠다.
‘훈련에서 어떻게 두각을 드러내느냐에 따라서 포인트가 모이는구나.’
결국, 잘하면 된다는 소리.
물론 강현의 목표는 단순히 성공 따위가 아니었다.
‘상. 곧 죽어도 상.’
잘하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었지만 보상이 무언지 궁금했다.
상, 중, 하 보상이 많이 다를까?
“보면 알게 되겠지.”
24인용 텐트 설치를 마친 강현이 참호를 파며 결심했다.
‘250포인트 이상 따고 다른 메인 퀘스트도 확실히 처리한다.’
지금 걱정할 것은 혹한기 훈련만이 아니었다.
김대영 상병에게 방패를 얻어 스킬을 획득한 순간 떠오른 알림들.
[메인 퀘스트 보상으로 위기 시 조력자 선택권을 드립니다]
[추후 메인 퀘스트 스멀스멀 다가오는 어둠 퀘스트에서 조력자 한 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좀 오래전 일, 호송 작전 이후 산군 서대호의 집을 나와 서윤진 대위와 병원으로 향하던 차 안.
타란툴라의 습성을 듣고 나서 떠오른 퀘스트가 있었다.
그때 남은 기간이 한 달이라고 했었지.
그리고 지금은.
[남은 기간 일주일]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혹한기 훈련 말미와 겹친다는 뜻.
이전 타란툴라 때도 그렇고 듀라한 때도 그렇고 이러한 퀘스트가 발동된 이후에는 꼭 위기가 찾아왔다.
혹한기 훈련으로도 벅찰 텐데 여기에 알 수 없는 적의 위협까지.
보통이라면 힘들다고 이대로는 막아 내지 못한다고 징징거릴 법도 한데.
‘반드시 이겨 낸다!’
강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 그리고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이겨 왔고 또 그럴 것이다.
물러나지도 도망가지도 않는다.
강현이 길지 않은 인생에서 지켜온 신념이었다.
다만 이런 삶의 방식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게 한 가지 있었다.
‘조력자를 선택하라니… 남한테 짐을 지우라고? 굳이?’
항상 홀로 풍파에 맞서 왔던지라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
물론 때에 따라 훈련소 동기들, 1분대원들 등이 있었지만 조력자라기보단 사건에 같이 휘말렸다는 말이 맞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누군가 다쳤고 강현이 그 앞을 막아섰다.
‘그래서 장건철 병장이 다쳤었고 전에는 훈련소 조교가 죽을 뻔했지.’
다른 사람들의 부상은 강현에겐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그런데 이제는 직접 그 사람을 선택하라니.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는 강현의 성격상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때.
“야! 최강현!”
“일병 최강현!”
강현이 파고 있는 참호 안으로 서윤진 대위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혼자서 어디까지 파는 거야? 그러나 물 나오겠다!”
문득 강현이 주변을 둘러봤다.
고민하는 동안 참호를 얼마나 깊이 팠는지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
“와, 강현아 너 혼자 이걸 판 거냐?”
막 진지 공사를 끝내고 참호 파는 걸 도와주러 온 선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녀석은 대체.
“적당히 해. 적당히. 그러다 쓰러질까 봐 걱정된다.”
[혹한기 훈련 1포인트를 얻었습니다]
선임들의 인정이 포인트가 되어서 돌아왔고.
서윤진 대위가 아직 아래에 있는 강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혼자서 다 하려 하지 말고, 때론 도움도 요청해. 그러라고 있는 게 전우잖아?”
이 말, 상태창에게도 들었다.
[명심하세요. 언제나 모든 걸 혼자 감당할 순 없습니다. 자신의 짐을 나누어질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지금까지 상태창이 강현에게 틀린 조언을 해 준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살기 위해서라도 조력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
그리고 지금 앞에는 부대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강현이 자신을 향한 서윤진 대위의 손을 마주 잡으며 참호에서 나왔다.
“일병 최강현.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잠시 강현의 얼굴을 살피던 서윤진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혹시 고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중대장이니까.”
“알겠습니다. 언제든지 도움 요청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이 중대장만 믿으라구!”
[서윤진 대위를 이번 메인 퀘스트 조력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이후 메인 퀘스트 발동 시 조력자가 당신과 함께합니다!]
강현이 서윤진 대위에게 조력자 선택권을 사용했다.
사실 다른 중대원들도 있었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역시 중대장밖에는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신세를 졌기에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
‘중대장님.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절대 다치지 않게!’
다만 강현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서윤진 대위의 부상을 어떻게든 막으리라 결심했다.
조력은 받되 다치게 하지 않는다!
서윤진 대위 또한 강현의 굳은 얼굴을 보며 의아했지만.
‘첫 훈련이라 많이 긴장했나 보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고.
“자! 다들 진지 설치하느라 고생했다! 다들 오후에는 전투 훈련 있으니까 점심 든든히 먹어 둬!”
“알겠습니다!”
본격적인 혹한기 훈련이 시작되었다.
* * *
“자, 이게 개인 전투 홀로그램이라는 건데 잘 봐.”
점심을 먹고 난 뒤 훈련장.
3중대 혹한기 B팀 앞에서 황세아 중사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걸 몸이랑 무기에 각각 부착하고 이렇게 능력을 발현하면.”
우우웅.
새파란 냉기가 그녀의 손을 타고 흘렀고 그대로 같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다른 간부를 후려쳤으나.
“오오! 대박!”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겁니까?”
상대는 멀쩡했다.
“그래. 마나를 따로 제어해서 피해를 없애는 거야. 대신 충격치는 그대로 입력이 되니까. 저렇게.”
삐이익.
얼음 공격을 맞았던 간부의 머리에 쓴 장비에서 빨간 불이 들어오며 신호가 울렸다.
“치명상이나 죽음에 가까운 피해라 판단이 되면 신호가 울리지. 그러면 그 사람은 전투에서 아웃 되는 거고.”
“확실히 다칠 일이 없겠네. KTCT 장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겠군.”
중대장의 물음에 황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렇게 하면 특임대 특유의 실전과 같은 훈련을 진행하면서도 부상자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고통은? 고통은 아예 없앤 건가요? 패배자에게 페널티가 없는 건 좀 아쉬운데.”
서윤진 대위의 말에 병사들이 움찔했고 황세아 중사가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고통 강도와 타격 강도를 설정해 놓으면 부상은 없을 정도로 충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그냥 얻어맞는 정도? 원하시면 더 세세한 조정도 가능합니다.”
아, 망했다.
모두의 얼굴이 새까맣게 죽어갈 때.
“좋아! 역시 황 중사! 아니, 대연 시스템이 오랜만에 대단한 물건을 발명했네요. 본 중대장은 아주 만족했습니다! 하하하!”
서윤진 대위만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도, 이런 귀한 물건을 우리 중대가 처음 쓰는 건 황 중사 덕분이네요. 고마워요. 힘 써 줘서.”
“아닙니다. 모두 중대를 위한 일입니다.”
사실 아직 정식 출시되지 않은 제품이었으나 서윤진 대위가 황세아 중사에게 반쯤은 떼를 쓰다시피 해서 받아 온 물건이었다.
자, 이제 말로만 듣지 말고 직접 겪어 봐야 할 때.
“다들 장비 착용! 이후 분대별로 분대 전투를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다들 처음 착용하는 장비라 조금 당황했지만 황세아 중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장비 착용을 도와주었고.
“흐응, 역시 능숙하네?”
어느새 장비를 모두 착용하고 있는 강현을 보며 묘하게 미소 지었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팔다리는 계속 쏴도 잘 안 죽는다?”
“그럼 팔 다리를 쏘면 계속 맞기만 하는 겁니까?”
“피해가 누적되기는 하는데, 몸통이나 머리보다는 훨씬 적어. 그러니까 미운 놈 있으면 팔다리만 조져. 아픈 건 마찬가지거든.”
“…정보 감사합니다.”
[개인 전투 홀로그램의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연구자의 눈에 정보가 추가됩니다. 이후 개인 홀로그램에 입력된 피해량이 수치화되어 표시됩니다]
과연 필요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정보를 얻었으니 좋은 일.
“각 분대 전투 대열로 헤쳐 모여!”
“헤쳐 모여!”
오후 훈련 시작.
“강현아. 잘 부탁한다.”
“일병 최강현. 알겠습니다.”
“우선 진형은 그대로 하고 강현이가 메인 딜러로 움직이자. 저번에 미궁에서 같이 작전해 본 만큼 어렵지는 않을 거야.”
7분대장이 강현에게 이런저런 작전을 알려 주며 분대 전투를 준비할 때.
“저, 프리 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강현이 갑자기 뜬금없는 역할을 요청했고 7분대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프리 롤? 안 될 건 없는데. 너야 어떤 상황이든 대처가 다 되니까. 근데 이유라도 있냐?”
“그게… 저에게 맞춰 분대 전술을 조정하는 것보단 기존 작전에 제가 맞추는 게 더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하긴, 당장 새로운 전술을 짜는 것보다는 우리 분대 전술에 네가 맞추는 게 좋겠지. 그럴 능력도 있고, 오케이. 다들 들었지? 그렇게 한다! 기존 작전 유지하되 강현이 포지션은 자유!”
“알겠습니다!”
강현이 적절한 핑계를 찾아 대었고 분대장이 이를 허락했다.
사실 강현의 말이 정확했다.
한 명을 위해 전체가 자신의 역할을 바꾸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강현이 이런 부탁을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런 썅…….”
바로 자신과 마주한 분대 중 한 명.
강형태 상병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
‘합법적 구타의 기회를 놓칠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