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수신 양호
혹한기와 유격.
군 생활 중 겪는 가장 큰 훈련이자 훈련의 양대 산맥.
“혹한기 두 번이 좋냐. 유격 두 번이 좋냐.”
“…둘 다 싫은데.”
아주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대부분은 1년 6개월이란 군 생활 동안 하나의 훈련을 두 번 겪어야 했다.
일반 부대에서도 4박 5일이라는 혹한기 훈련은 큰 훈련이기에 많은 준비를 요구했다.
그중에서도 헌터 특임대는.
“말년에 혹한기 9박 10일이라니! 말년에 혹한기 9박 10일이라니! 이런 제기랄!”
9박 10일이라는 기나긴 훈련 기간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 난이도 또한 일반적인 부대와는 달랐다.
분대 전투, 중대 전투, 던전 홀로그램 공략, 거대 필드 생존 및 행군까지.
빡빡한 훈련 일정 덕에 현장에서 모든 장비를 일일이 교육하긴 어려웠다.
그렇기에 어제부터 사전에 필요한 교육을 진행했던 것.
“오늘은 통신 장비 교육 및 이를 활용한 전투 훈련이다!”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일까.
서윤진 대위가 직접 교육을 진행했고 훈련 때만큼은 엄한 그녀의 성격상 자리에 있는 병사들 모두가 긴장했다.
“신 하사! 무전기 가져와!”
“하사 신형욱! 무전기 가져오겠습니다!”
그중에서도 신형욱 하사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막 부대에 전입 왔을 때처럼 군기가 바짝 든 모습.
“같이 가겠습니다.”
“아냐. 내가 갈게.”
주변 후배들이 같이 가겠다는 것도 뿌리친 신 하사가 급히 커다란 무전기가 쌓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역시, 중대장님…….”
“저러다가 또 중대장님 안 계시면 다시 지랄하겠지. 뭐.”
“그래도 일단 당분간은 조용하지 않겠습니까.”
병사들이 신형욱 하사 설설 기는 꼴을 보며 고소해했다.
평소 체력 단련장이나 훈련 중 험한 꼴을 당한 병사들이 대부분.
병사들보다 조금 강한 것 갖고 거만하게 굴던 인간이 저렇게 기가 죽으니 통쾌할 정도.
신 하사가 무전기 하나를 서윤진 대위 앞에 놓은 후 병사들을 살피던 그녀가 훈련 중에 땅바닥을 보고 있는 녀석을 불러냈다.
“강형태!”
“상병 강형태.”
“네가 중대장 무전병이니까 나와서 시범 보여.”
“알겠습니다.”
서윤진 대위의 명령에 터덜터덜 걸어 나온 강형태가 P-999K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치칙, 치치칙.
“어? 이거 왜 이러지? 중대장님, 이거 안됩니다.”
“전투 중에 장비 안 되면 포기할 거야? 너 무전기 버려?”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그런데 이건 안 됩니다.”
강형태가 몇 번 시도해 보다가 바로 서윤진 대위를 보며 포기 의사를 밝혔고.
“아, 저 고문관 새끼.”
“저 새낀 상꺽 돼서도 저러네. 진짜.”
“아, 제발, 강 상병님 왜 또 저럽니까?”
이를 지켜보던 선임들과 후임들이 일제히 탄식을 흘렸다.
지금은 중대장이 주관하는 교육 훈련 중, 거기다 어제 그런 사고까지 있었으니 군기가 바짝 들어있어도 모자랄 판에 저딴 행동이라니.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차라리 해 보다가 끝까지 안되면 다른 거로 바꾸어서 하면 될 것 아닌가!
가만히 강형태를 바라보던 서윤진이 중대장 전용 스킬.
“중대장은…….”
실망 스킬을 사용하려던 순간.
“일병 최강현! 제가 해보겠습니다악!”
강현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지금 나서지 않았다간 오늘 훈련 내내 얼차려를 받을지도 모른다!
강형태를 구하려는 것이 아닌 강현 자신과 주변 선임들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막 화를 내려던 서윤진 대위가 강현을 지그시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강현!”
“일병 최강현!”
“무전기는 훈련소에서 배웠지?”
“그렇습니다!”
“좋아. 나와서 해 봐. 일병 실력 좀 보자.”
“알겠습니다!”
강현이 우렁찬 대답과 함께 거의 날 듯이 무전기 앞에 자리 잡았다.
퍼억.
물론 멍청하게 있는 강형태를 몸으로 밀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형태가 나동그라지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럼 무전 시작하겠습니다.”
강현이 앞에 놓인 무전기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아, 그거 안된다니까.”
강형태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강현에게 말했지만.
“강형태, 엎드려.”
“…엎드려.”
서윤진에게 바로 진압당했다.
사실 강형태의 말이 맞았다.
강현도 무전기를 몇 번 만져 봤으나 잡음과 함께 통신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
보통이라면 포기하고 다른 물건을 가져 왔겠으나.
[새로운 고물 P-999K를 수집했습니다. 이전 사용자들의 경험치를 흡수합니다]
[장비 관리 하위 스킬 약점 보완 스킬을 발동합니다. 해당 장비의 취약한 부분을 파악합니다]
이전 선임들의 장비를 갈고닦으며 얻은 하위 스킬 약점 보완이 발동되며 무전기의 취약한 부분을 알려 주었다.
문제는.
‘한두 군데가 아니잖아.’
무전기 곳곳에 문제가 있다는 점.
교보재로 쓰는 만큼 오래된 장비들이 태반이었고 오래된 만큼 취약한 부분도 많았다.
아무리 특임대가 장비에 신경을 쓴다지만 교보재까지 A급으로 준비할 순 없는 법.
결국 강현이 다른 무전기로 바꿀까 생각할 때.
[연구자의 눈을 발동합니다. 약점 보완 스킬을 보조합니다]
[약점 보완 스킬의 레벨이 포화 상태입니다. 쌓인 경험치를 이전합니다]
[연구자의 눈 하위 스킬 약점 파악 스킬을 생성하였습니다! 하위 스킬은 0.5개로 계산합니다]
[혹한기 훈련 준비 스킬 획득 개수 2/4]
오왓!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에 강현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연구자의 눈 하위 스킬 약점 파악 스킬을 생성한 순간.
[대상 P-999K의 약점을 분석합니다. 사용자의 능력으로 분석이 가능한 대상입니다. 약점 파악 완료]
‘저거 빨간 거! 저게 가장 문제구나.’
많은 문제점 중에서도 무전기와 수화기가 연결되는 부분에 빨간 표시가 떠올랐다.
누가 봐도 가장 문제가 있다는 신호.
강현이 이를 유심히 살펴보자 핀 몇 개가 구부러진 모습이 보였다.
‘찾았다.’
보통 이렇게 핀이 구부러졌으면 무전기를 바꾸는 게 맞다.
이미 맛이 간 물건이기 때문.
그러나.
[약점 보완 스킬을 발동합니다. 장비를 수리합니다]
[정밀함 특성을 발휘합니다. 손길이 세밀해집니다]
강현은 이미 스킬과 특성을 통해 어떻게 고치면 무전기가 작동하는지 알고 있었고.
“후-후. 무전기 시험 교신, 시험 교신. 후-후. 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 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 교신 끝.”
무전기와 수화기를 연결한 뒤 무전을 보내자.
곧 좀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다른 선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 수신 양호, 수신 양호.”
교신 성공.
물론 멘트와 숫자는 이전 사용자들의 경험을 통해 알아낸 것을 읊었다.
강현이 고개를 들자.
“오오오!”
주변 선임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선임들도 저걸 비롯한 P-999K 교보제를 훈련 때 자주 사용해 왔고.
“저 쓰레기를 고치다니!”
“아니 대체 저걸 어떻게 고친 건데?”
“대체 밖에서 뭘 했길래 저걸 고치는 거야?”
얼마나 상태가 엉망인지도 잘 알았다.
사실 선임들이 기대한 건 최선을 다하되 포기하지 않고 다른 무전기라도 가져와 교신에 성공하는 것.
그런데 강현은 그 기대를 뛰어넘어 버렸다.
수화기 연결 부위를 잠시 만지작만지작하더니 대뜸 저 고물을 고쳐 버리지 않았는가!
“모두 박수.”
방금까지만 해도 화가 나 있던 서윤진 대위가 이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쳤고.
선임들도 같이 힘차게 박수 치며 좋아했다.
사실 박수의 의미는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덕분에 얼차려 면했다!’
‘중대장님 훈련 빡셀까 봐 걱정했는데 살았네.’
바로 낮아진 훈련 강도와 얼차려를 면했다는 사실에 신난 것.
그리고 후임을 향해 열렬히 박수 치는 선임들의 모습을 보며 서윤진 대위가 더욱 만족했다.
‘역시 우리 중대원들이 착해!’
어제는 실수가 있었던 거다.
서윤진 대위가 원래 예정했던 것보다 훈련 강도를 좀 낮추리라 결심했다.
중대장과 중대원이 서로 다른 이유로 강현에게 칭찬을 보낼 때.
[고물을 수리했습니다. 이전 경험자들의 경험치를 대량 흡수합니다]
[연구자의 눈 스킬과 약점 파악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퀘스트 완료까지 남은 스킬 개수 2개]
강현은 새롭게 얻은 스킬의 효능을 확인하며 즐겁게 웃었다.
“신 하사! 이거 치워!”
“알겠습니다!”
“오전 교육은 여기서 끝!”
“교육 끝! 고생하셨습니다!”
강현의 활약 덕에 그날 오전 교육이 평탄하게 끝났고 모두 막사 안으로 들어갈 때.
“주, 중대장님? 중대장님!”
그때까지 홀로 연병장에 엎드려 있던 강형태 상병만이 애처롭게 서윤진 대위를 찾았다.
* * *
오후 교육까지 일과가 끝난 후.
개인 정비 시간.
“오우, 건철이! 오랜만이고.”
“아침에 보지 않았슴까?”
“아, 아침에 봐도 저녁에 보고 싶은 게 전우 아니겠냐.”
“…전 별로.”
“푸하하하! 역시 한 농담 한다니까.”
배꼽을 잡으며 웃던 타 분대 선임이 갑자기 PX 봉투를 들어 올렸다.
“이거 애들이랑 나누어 먹어라. 그냥 생각나서 사 왔다.”
“먹을 걸 말입니까? 평소 돈도 안 쓰면서?”
“아, 거. 그냥 주면 먹어.”
평소 자신을 위한 돈도 안 쓰던 인간이 왜 이런단 말인가?
장건철을 비롯한 분대 선임들이 의심의 눈길을 보낼 때.
“강현이, 너도 이것 좀 먹어 봐. 아주 맛나단다.”
“일병 최강현! 감사합니다!”
“이것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요것도. 이거랑 이거! 이거 괜찮지.”
“…감사합니다.”
과자 대부분을 강현 앞에 몰아 주는 모습을 보며 다들 의도를 눈치챘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한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고! 장 병장님! 어?”
다른 분대 분대장 하나가 1생활관으로 들어선 순간.
중대 회의라도 열렸는지 혹한기 B팀 참여 분대 분대장들과 최고 선임들이 모두 모여 있는 모습에 당황했다.
그리고 강현 앞에 한가득 쌓여 있는 먹을 것을 보며 두 번 당황했다.
“장건철 병장님?”
강현이 장건철 병장을 보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가 스윽 눈을 피했다.
1분대 다른 선임들도 다들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지켜볼 뿐.
사실 강현을 괴롭히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데려가고 싶어 안달이니 괜히 자신들의 어깨도 같이 높아지는 선임들이었다.
자기 후임 이쁘다는데 싫어할 선임 어디 있을까.
“우리 분대랑 가면 일 거의 안 시키고 우리가 다 할게. 엉?”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냥 시원하게 핫 팩 전부 지원!”
“어어? 선 넘네? 돈으로 붙자 이거야?”
“그럼 먹을 건 돈으로 꾀는 거 아닙니까?”
슬슬 분위기가 과열될 때.
“저기? 강현아? 우리 미궁에서 좋았잖아. 잊은 거 아니지?”
선임들 사이 가장 짬이 낮은 7분대장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최고참인 심 병장이 꼭 강현을 데려오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이런 상황일 줄이야.
사실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전에 같이 미궁을 돌파했던 추억을 꺼냈을 뿐이었는데.
“저, 혹한기 훈련 7분대 들어가겠습니다.”
강현이 바로 7분대를 선택했다.
“뭐? 강현아! 잘 생각해 봐. 내가 부대 최고참이라니까?”
“아니, 핫 팩 필요 없어? 진짜로?”
주변 선임들의 회유가 계속 이어졌지만 강현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최고참이고 뭐고 어차피 훈련은 어딜 가나 힘들다.
핫 팩? 그거야 생활관을 가득 채울 만큼 살 돈이 있었다.
지금 강현에게 필요한 건.
[7분대가 분대 편성에 포함됩니다. 분대 간 분대 능력 공유가 가능합니다]
1분대를 대신할 믿을 수 있는 동료.
7분대는 여기 있는 그 어떤 분대보다 믿을 수 있었다.
같이 죽음의 위기를 헤쳐 오지 않았던가.
또 지난번 미궁에서 얻은 결과로 1분대를 대신해 분대 편성을 바꿀 수도 있으니 이전 분대 능력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7분대만 한 카드가 없다. 분대 특성이랑 스킬 적용만 한다면 분대 전투에서도 유리하고 홀로그램 전투도 쉽게 이길 수 있을 거야.’
더군다나 강현에 대한 신뢰도 높으니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줄 터였다.
강현은 자신을 돌봐 줄 분대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분대가 필요했다.
“일병 최강현. 혹한기 훈련 7분대랑 같이 가겠습니다.”
강현의 확고한 목소리에 주변 선임들이 모두 입을 닫았고.
“그럼 정해졌습니다. 7분대장 제외하고 모두 나가 주십쇼.”
장건철 병장이 강현의 의견을 받쳐 주었다.
“고맙다. 강현아! 고마워!”
이에 감격한 7분대장이 강현의 손을 덥석 잡는 순간.
[의외의 선택으로 7분대의 분대 신뢰도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분대 신뢰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여 새로운 스킬을 생성합니다. 7분대에 특성에 맞는 스킬이 추가됩니다!]
[특성 버프 효과 증가를 획득했습니다!]
[혹한기 훈련 준비 스킬 획득 개수 3/4]
‘특성에… 맞는 스킬?’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겨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