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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57화 (57/277)

57화 전략적 선택

강현이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안다.

자신은 영웅도 호구도 아니다.

상태창의 강요도 없었다.

그저 현재 강현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패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보여 주었을 뿐.

‘두렵다면 포기하면 그뿐이다.’

아니, 차라리 서윤진 대위에게 말하는 방법도 있다.

그녀가 겁에 질려 도망가는 모습을 상상하긴 어려웠으니까.

오히려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면 나서서 놈의 몸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러다 죽으면?’

자신의 생존 확률은 알아도 서윤진 대위의 생존 확률은 알려 주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등급이 훨씬 높기에 병사들보다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99%보다 높을까?’

강현보다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서윤진 대위가 강현과 같은 은신 스킬이 있을까?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없다면?

그저 그녀에게 이 상황을 맡기고 자신은 눈을 감아야 하는가? 그게 맞는 것일까?

‘내가 안전하기 위해 남을 사지로 몰아야 하나?’

마지막으로, 지금껏 자신이 그래 왔던가?

아니다.

훈련소에서 고블린들을 만났을 때도, 타란툴라가 몰려왔을 때도, 듀라한의 검에 장건철 병장이 쓰러졌을 때도.

강현은 남을 앞에 세우지 않았다.

그는 버티고 맞서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사라진 후, 세상의 거친 풍파에 맞서 동생과 할머니의 앞에 서서 버텨 왔다.

불굴과 신뢰.

강현의 힘든 삶을 지탱해 준 의지이자 정신적 가치였다.

“최강현?”

그리고 그런 강현의 표정을 본 서윤진 대위가 불안하다는 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냥 본능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 산군 길드에 있을 때부터 지금 군대에서까지 꽤 많은 헌터의 부상과 죽음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강현의 얼굴과 전에 보았던 사람들의 표정이 겹쳐졌다.

저런 표정을 짓는 사람들은 항상.

“미련한 생각하지 마. 우린 모두 살아 나갈 거야.”

누구보다 앞서 모두를 지키려 들었다.

그 대가가 설령 죽음일지라도 말이다.

서윤진의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강현이 힘차게 미소 지었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나한테 맡겨.”

“중대장님은 3중대원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지휘관 아닙니까?”

“웃기지 마. 너 지금 지휘관을 무시하는 거야. 명령은 내가 내려. 그리고 위험도 내가 짊어져. 그게 중대장이 너희를 이끄는 이유고 대위라는 직책과 특권을 받은 이유야.”

강현과 서윤진의 눈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물론 서윤진의 입장도 이해되었다.

누구 하나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중대장으로서의 책임감.

차라리 위험에 처한다면 자신이 이를 부담하리라는 희생정신이었으나.

“전략적 선택입니다. 지휘관을 잃은 부대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강현의 말이 옳았다.

이곳에서 모두를 책임지고 있는 건 서윤진.

1중대장은 이미 전의를 잃은 상태였고 그녀마저 사라진다면 실질적 지휘관이 없다.

그 상태에서 그녀가 죽는다면? 아니 죽지 않는다고 해도 그 공백기 동안 부대를 이끌 사람이 없다.

부사관들도 있긴 했지만,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모두를 휘어잡을 장악력을 가진 사람은 서윤진 대위가 유일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카드를 지금 사용할 순 없습니다.”

거기다 서윤진 대위가 없는 상태에서 데론의 공격을 받는다면 전멸할 위험성이 컸다.

가장 강한 사람을 이긴 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감.

지휘관을 잃었다는 슬픔과 좌절 등.

심리적으로 패배한 데다가 지휘관마저 없는 부대가 저 데론이란 괴물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중대장님이 계시면 한 번 더 희망을 걸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강현이 실패한다면 서윤진 대위가 부대를 이끌고 마지막 항전을 할 수 있을 터.

더는 반박할 말조차 없어진 서윤진 대위가 막힌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 진짜니? 정말 방법이 있는 거야?”

“지금까지 보지 않으셨습니까. 이병 최강현. 지금까지 길을 알려 주었던 끼가 할 수 있다고, 이 방법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강현이 서윤진의 불안해하는 표정과는 대비되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화답했다.

그 말에 서윤진 대위의 얼굴에 결심이 서렸다.

지금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은 무시할 때다.

많은 병사의 목숨이 걸려있다.

“무조건 이기겠다고 답해. 안 그러면 전략적 선택이고 뭐고 다 찢어 죽여 버릴 거니까.”

“무조건 이기겠습니다.”

“중대장님! 1분대도 여기 남아 강현이 기다리겠습니다!”

“강현아! 어서 저 괴물 죽이고 와. 선임들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

중대장과 선임들의 반쯤은 협박성 응원에 강현이 피식 웃었다.

지금껏 같이했던 전우들의 신뢰와 그를 위한 마음.

어린 동생과 나이든 할머니에게 힘든 티 한번 내지 않고 모든 것을 견뎌야 했던 강현에겐 든든한 응원이었다.

그래, 이겨 낸다.

99%의 확률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구한다!

“이병 최강현. 다녀오겠습니다.”

강현이 모두가 거리를 두고 있는 그림자 괴물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어? 뭐야? 왜 저래?”

“쟤 뭐야?”

그런 그의 모습을 본 1중대가 일제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앞으로 나서는 이등병이라니?

“서윤진 대위, 미쳤어?”

1중대장마저 자신의 처지를 잊고 서윤진 대위를 탓할 정도였다.

모두가 도망갈 때 유일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자.

검을 들고 데론을 향하는 강현의 등이 유독 거대해 보였다.

그 등을 본 서윤진 대위가 누군가를 떠올렸다.

평생 보아 왔고 쫓으려 했으나 이젠 도망쳐 나온 그 넓은 등을.

“빌어먹을……!”

왜 나는!

서윤진 대위의 마음속에 깊은 자책이 몰아치길 잠시.

“강현이 살아 돌아올 겁니다. 꼭, 놈을 죽이고 돌아올 거니 기다려야 합니다.”

오히려 1분대장 장건철 병장이 그녀를 위로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껏 강현을 보아 오며 쌓아온 신뢰.

강현이 부대에 전입 오고부터 지금까지 그와 함께했기에 보여 줄 수 있는 믿음이었다.

“강현이라면 가능합니다. 타란툴라 때도 호송 작전 때도! 미궁에서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저 녀석은 무조건 이기고 돌아올 겁니다!”

결국, 강현을 믿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의 무겁지만 든든한 믿음을 짊어진 강현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뒤에는 자신이 이길 것을 믿어 주는 전우가 있다.

절대 두렵지 않다.

강현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고 그의 검이 푸르른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유일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에 그림자 괴물, 데론이 반응했다.

“비… ㅊ. 빛! 빛! 빛!”

놈이 소리치며 강현을 향해 달려들었고.

강현이 이젠 빛을 뿜어내다 못해 마나를 과하게 머금어 활활 타는 듯이 보이는 검을 치켜들며 놈을 향해 마주 달렸다.

쩌억, 검은 어둠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

[스킬 하급 그림자 은신술 사용, 가장 짙은 그림자 안으로 숨어듭니다]

스킬 발동 알림과 동시에 강현이 데론의 안으로 녹아들었다.

“저런 미친!”

* * *

별다른 충격도 고통도 없었다.

마치 새까만 연못에 몸을 던진 듯한 기분.

몸을 휘감는 짙은 어둠이 시야와 모든 감각을 차단했다.

끈적끈적한 그림자 속에 휘감긴 강현이 눈을 번쩍 떴다.

몸에서 폭발하듯 빛나는 마나.

그러나.

[그림자가 빛을 삼킵니다. 마나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갑니다]

알림과 동시에 강현의 몸을 가득 채웠던 마나가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탈력감에 강현은 왜 그렇게 많은 헌터가 별 힘도 못 써 보고 죽었는지 깨달았다.

‘안에 들어왔다고 쉽게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놈의 몸속은 늪이었다.

꺼먼 어둠으로 상대의 오감을 차단하고 힘을 빨아들이는 늪.

심지어 이 어둠은 매우 무겁고 끈적거려서 빠진 사람의 몸을 구속했다.

아마 보통의 헌터라면 데론의 몸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모든 힘을 빼앗긴 채 죽었을 터.

그러나.

[하급 그림자 은신술 스킬로 인해 페널티를 극복합니다.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집니다]

[마력지체 특성, 하급 마나 운용법을 발동합니다. 마나를 보충합니다. 마나 탈력 페널티를 극복합니다]

[불굴, 신뢰, 카리스마를 발동합니다. 정신력이 대폭 오릅니다. D급 상태 이상 페널티를 극복합니다]

[D급 데론의 저주 모두를 무력화했습니다!]

강현이 가진 스킬과 특성들이 데론의 저주를 완벽하게 막아 내었다.

헌터의 공포와 탈력감을 먹고 몸을 불리는 그림자 괴물 데론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고.

우으으으

강현을 뱉어 내려 했으나.

‘하압!’

그전에 강현이 검을 뻗었다.

해파칠십이검.

한 호흡에 스물다섯 번의 검격이 터져 나왔고.

깊은 어둠을 갈가리 찢기 시작했다.

[해파칠십이검 스킬을 발동합니다. 강인한 팔뚝, 강인한 하체, 능숙한 몸놀림의 보조를 받습니다. 공격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세 개의 폐, 강골 특성 효과로 더욱 검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하압!’

강현이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검에 맺힌 마나가 어둠을 갈라 먹었으나 깊은 어둠은 끊임없이 강현을 향해 쏟아졌다.

데론의 또 다른 무서움.

어쩌다 특이한 능력을 갖춘 능력자가 놈을 안에서부터 찢으려 해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어둠에 지쳐 무너지고 만다.

‘이게 어떻게 파훼법이야!’

강현이 속으로 욕을 짓씹었다.

만일 자신에게 그림자 은신술이라는 카운터 능력과 마력지체라는 사기적인 특성이 없었다면 이미 힘이 빠졌으리라.

서윤진 대위라 해도 쉽지 않았을 터.

그러나 신성력 없이는 이런 도박이라도 걸어야 이길 수 있는 것이 바로 데론이란 괴물.

강현이 계속해서 몰려드는 어둠을 갈랐으나.

우으으으!

놈이 강현을 더욱 늪 깊은 곳으로 끌고 가려 했다.

그때, 강현이 자신이 마주쳤던 가장 깊은 검을 떠올렸다.

아주 깊고 깊은 바닷속처럼 숨이 막혔던 검.

대연 시스템 지하 연구실에서 만났던 또 다른 해파칠십이검의 계승자.

그의 깊은 바다를 경험했던 강현으로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 해보자!’

오히려 강현이 결심했다는 듯 그때 얻었던 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네놈의 숨이 깊은지 내 숨이 깊은지 붙어 보자.

먼저 호흡이 흐트러지는 놈이 지는 거다!

[해파칠십이검 하위 스킬 방어형을 발동합니다. 쏟아지는 어둠을 막아 냅니다]

이번에는 강현이 놈의 멱살을 잡고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모한 도박인가 싶었지만.

‘흔들린다!’

오히려 놈의 흔들리는 호흡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알림이 떠올랐다.

[조건을 만족하여 시뮬레이션을 활성화합니다!]

시야가 변함과 동시에 지난번과 같은 중년 무사가 이번에는 깊은 바닷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검은 부드러우며 무겁고 강하며 간결했다.

이전 싸워 봤던 계승자의 검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깊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였지만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형한 빛이 주변을 밝혔다.

강현이 눈앞에 펼쳐진 이상향을 따라 검을 휘둘렀다.

스스스슷.

그러자 이리저리 흩어지던 기운이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전보단 느리지만 단단했고 힘을 흘리지 않았다.

강현의 앞에 검격으로 이루어진 벽이 생겨났다.

이것이 진정한 해파칠십이검 - 방어형의 위력.

그렇게 켜켜이 쌓인 벽에 어둠이 막혔고.

끼이익!

숨이 다한 놈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몸을 뒤트는 순간.

“하압!”

무사의 동작을 따라 강현이 이번에는 방어형이 아닌 본래의 해파칠십이검을 뿌렸다.

그러자 지금껏 적의 공격을 막아 주던 벽이 폭발했다.

강현의 검격에 더해 터져 나온 날카로운 마나 덩어리들이 데론의 흐트러진 어둠을 갈가리 찢었고.

“최강현!”

슬며시 보이는 어두침침한 던전 통로, 서윤진 대위의 해사한 미소가 눈에 보였다.

[검성의 새로운 경험 일부를 흡수합니다. 기존 스킬 해파칠십이검 하위 스킬 방어형의 진정한 사용법을 깨우칩니다]

[시뮬레이션의 결과로 해파칠십이검의 새로운 하위 스킬 폭발이 형성됩니다]

[해파칠십이검의 경지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검격 5회 추가]

[D급 데론의 모든 능력을 무력화하고 완벽하게 제압하였습니다. 히든 조건 그림자 사냥꾼을 만족하였습니다]

[새로운 호칭 그림자 사냥꾼을 획득했습니다. 이후 그림자 은신술의 은신 효과가 30% 증가합니다]

[던전형 미궁의 진정한 보스몹 데론을 사냥했습니다. 새로운 고물 D급 데론을 수집합니다. 고물의 경험치를 흡수합니다!]

[기존 스킬 하급 그림자 은신술이 중급 그림자 은신술로 진화합니다!]

끊임없는 알림들이 엄청난 속도로 떠오르며 강현이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걸로도 모자라 꽤 오랫동안 스텟, 스킬 경험치 상승 알림이 울렸다.

대체 얼마나 경험치를 흡수한 거지?

강현이 자신의 상태창을 보며 의문을 풀기도 전.

[긴급 퀘스트 1중대를 구하라를 완료하셨습니다]

[죽은 인원 없음, 목표를 초과 달성하였습니다. 보상을 강화합니다]

[서브 퀘스트 화려한 복귀 신고를 완료하였습니다]

[두 퀘스트의 보상을 결합합니다!]

투욱.

강현의 앞에 작은 상자 하나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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