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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56화 (56/277)

56화 하지만 해볼 만했다

“이 길이 맞는데. 쓰읍. 이 길이 분명한데.”

1중대장이 자신이 들고 있는 기계를 힐끔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지금 그가 마주한 곳은 통로가 아닌 벽.

아까부터 자신의 능력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다 보니 전혀 엉뚱한 곳에 이르렀다.

적금을 털어서 산 값비싼 기계를 손으로 두들겨봤으나.

[통로의 끝입니다]

계속 같은 메시지만이 떠올랐다.

“아예 다른 통로로 가면 방향이 다시 잡히지 않겠습니까?”

뒤에 있던 부사관이 조심스레 의견을 내비쳤다.

아무리 탐지계 능력자라고 해도 실수하는 일은 종종 있는 법.

어차피 미궁형 던전에서 단번에 길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원래 오차 범위를 줄여 가며 전진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런 벌써 네 번째란 말이야. 김 하사! 네 번째!”

“그러니까 아예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벌써 같은 자리만 네 번째라고! 이런 X발!”

결국 1중대장이 참지 못하고 욕을 뱉었다.

그래도 평소라면 냉정함을 되찾고 아예 반대쪽으로 가서 다시 방향을 조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서윤진이보다 일찍 도착해야 하는데!’

호감 있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남자의 욕망.

1중대장은 그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고 제대로 판단을 내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초조함, 분노, 욕망으로 시야는 좁아졌고 이는 지휘관으로서 치명적인 판단을 내리게 했다.

“벽 뚫어!”

“중대장님!”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주변 부사관들이 중대장을 말려 보았으나.

“뚫어! 중대장 명령이야!”

이미 반쯤 돌아간 눈을 보니 되돌릴 생각 따윈 전혀 없는 모습.

“중대장님… 설마 진심인가?”

“벽 뚫을 상황은 아니지 말입니다.”

부사관들뿐만 아니라 병사들마저 난색을 표했다.

물론 때론 미궁형 던전의 벽을 뚫기도 한다.

실제로 산군 길드 소속 A급 헌터 김태진도 그랬지 않은가.

그러나 김태진처럼 미치지 않고서야 대부분 던전 공략 중 벽을 뚫는다는 결정은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나 내리는 것.

보통은 식량이 거의 다 떨어져서 굶어 죽을 위기라던가, 다른 동료들의 위기를 감지했다던가 등의 상황에서나 내릴 명령이었다.

지금은 그런 다급한 상황도 아니니 보통의 길드였다면 서로 말다툼이라도 벌였겠지만.

“씨,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냐.”

“어휴, 군인인 게 죄지.”

지금 이들이 속한 곳은 군대.

군대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상명하복이었고.

결국 주변에 있던 부사관들과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벽 근처로 다가섰다.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어쨌든 해야 할 일.

발파용 마나 폭탄을 붙인 뒤 물러났고.

“모두 방패로 몸 가려!”

1중대장이 모두의 안전을 확인한 뒤 원격 격발 버튼을 눌렀다.

꽈아앙!

좁은 던전 통로에 커다란 폭음과 먼지구름이 짙게 피어올랐다.

“각 분대 딜러들 번갈아 가면서 벽 부숴!”

발파용 폭탄으로 우선 벽에 균열을 일으킨 후 직접 부수는 방법.

먼지구름이 걷히기도 전, 각 분대 딜러들의 공격이 벽을 부수기 위해 날아들었고.

“…어?”

“뭐야 왜 아무 소리가 없어?”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느끼곤 다들 당황했다.

방금과 같은 커다란 폭음과 돌 파편이 튈 거라 예상했는데.

주변을 감싼 건 이상스러울 정도의 침묵.

그 불쾌한 감각에 다들 주위를 경계하며 먼지구름이 걷힐 때까지 기다렸다.

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것은 깊은 어둠.

무너져 내린 벽 속, 마치 새로운 공간인 듯 새까만 어둠은 그저 입을 벌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전부 대기.”

1중대장이 검은 구멍에서 퍼져 나오는 불길한 기운에 비로소 정신을 차렸는지 급히 앞으로 나섰다.

그의 꽤 긴 군 생활 중 던전 벽을 터뜨린 적은 꽤 있었어도 이런 짙고 불길한 어둠은 처음이었다.

“이게 뭐야? 새로운 공간인가?”

중대원들을 뒤로 물린 그가 공간 바로 앞에서 복잡하고 비싼 장비를 들어 올려 이런저런 조작을 가하자.

[능력 탐지기를 발동합니다. 탐지 보조 장치로 능력을 강화합니다]

[명령을 계산합니다. 던전 빠져나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찾았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을 확인해 봐도 자신의 능력 탐지기는 이 앞을 가리키고 있다.

헌터가 된 이후, 군 생활 내내 이 능력 하나만을 믿고 살아왔다.

지금껏 탐지기 능력이 알려 준 길로 가서 손해 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만큼은 본능이 이 앞으로 가지 말라는 강한 신호를 보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LED 손전등을 꺼내 들었고.

“중대장님? 설마 들어가실 겁니까?”

“그냥 다른 길 찾지 말입니다.”

1중대 부사관들과 병사들이 불안한 목소리로 그를 말렸다.

“확인만 하겠다. 확인만. 만일 안 되겠다 싶으면 물러날 테니까 겁먹지들 마.”

중대원들을 안심시킨 그가 딸깍, 손전등을 눌렀고.

퀘에에엑!

빛을 받은 그림자가 갑작스레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 1중대장이 든 손전등에서 나오는 빛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며 달려들었다.

“어억!”

어찌 반응하기도 어려울 만큼 갑작스러운 공격.

당황한 1중대장이 그림자 괴물, 데론에게 먹히기 직전.

“모두 엎드려!”

* * *

“이쪽입니다!”

맨 앞에는 서윤진 대위, 강현을 중심으로 대형을 짠 팀이 이미 지난 복도를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안전이 확보된 곳은 최대한 빠르게, 처음 진입하는 곳에선.

“안전 확보하면서 오도록!”

서윤진 대위가 제일 먼저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강현이 받쳤다.

[서윤진 대위의 높은 호감도로 인해 연계 공격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아무리 좋은 작전이라도 이를 펼치는 사람의 합이 맞지 않는다면 소용없다.

그러나 지금 강현과 서윤진 대위의 합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서윤진 대위가 최전방에서 탱커 겸 딜러 임무를 수행한다면 강현은 순수 원거리 딜러로서 팀에 방해되는 장애물들을 치웠다.

둘의 목표는 오직 팀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

오크든 함정이든 순식간에 주파.

그러나 강현의 마음은 초조하기만 했다.

[남은 시간 4분 44초]

‘벌써 5분대가 깨졌어!’

강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처음 보는 강현의 긴장한 얼굴을 보며 다들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할 뿐이었다.

“모두 대형 유지하면서 뛰어!”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만일 1중대를 찾았는데 멀쩡하다 해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다행이라며 안심할 일이다.

아무리 1중대장이 보기에 얄미운 짓을 했다곤 해도 죽어선 안 된다.

그가 죽고 나면 병사들은?

그들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10분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분명 1초에 한 명씩 1중대원들이 죽어 나간다 했다.

‘이런 빌어먹을!’

문제는 출구를 찾는 것보다 이 드넓은 미로 어딘가에 있을 1중대를 찾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점.

[하급 길잡이와 연구자의 눈을 발동합니다. 대략적인 방향을 유추합니다]

다행이라면 길잡이와 연구자의 눈 덕분에 얼추 방향이라도 맞춰 갈 수 있다는 점 정도.

그러나 10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강현이 단번에 길을 찾았어도 마지막 보스 몬스터가 있는 방까지 걸린 시간이 1시간 30분.

[남은 시간 30초]

이제 시간은 막바지.

그리고 때마침.

퀘에에엑!

지금껏 던전에서 듣지 못했던 음산한 비명을 들은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기입니다!”

강현이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확신을 담아 가리켰고 서윤진 대위, 1분대, 7분대가 동시에 통로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마침 1중대장을 향해 입을 벌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뛰어가기엔 시간이 없다!

[남은 시간 3초]

순간 서윤진 대위와 강현의 눈이 마주쳤고.

“모두 엎드려!”

서윤진 대위의 고함과 동시에.

타타타타탕!

강현이 급하게 멈춰 서며 방아쇠를 당겼다.

마나를 가득 머금은 총알들이 푸른 빛살이 되어 그림자의 몸통을 꿰뚫었다.

보통의 몬스터라면 이미 고깃덩어리가 되어 널브러졌겠으나.

“비… ㅊ…….”

그림자 괴물 데론의 몸은 별 타격을 입지 않은 듯 보였다.

오히려 강현의 총알이 그대로 놈의 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놈이 강현과 1중대장을 번갈아 보았고.

더 큰 빛 덩어리를 들고 있는 1중대장을 향해 입을 벌렸다.

“손전등 꺼!”

“히익!”

서윤진 대위의 고함에 1중대장이 자신의 손에 들린 손전등을 놈에게 던졌다.

놈이 단번에 이를 삼켰고 그사이에 1중대장이 뒤로 물러났다.

“움직이지 마! 모두 빛나는 거 꺼!”

서윤진 대위가 아직 당황하고 있는 1중대 원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급한 목소리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던전을 밝히는 물건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통로 전체가 어둠에 빠졌다.

“비…ㅊ, 어… 두ㅇ… ㅝ.”

긴장한 사람들의 침 넘기는 소리와 빛을 갈구하는 데론의 침침한 목소리만이 울렸다.

“이런 빌어먹을! 누구 신성력 다루는 사람 있어?”

“중대장님!”

서윤진 대위가 목소리를 높이자 옆에 있던 분대원들이 기겁했다.

그러나 그림자 괴물은 그저 검은 어둠을 뚝뚝 떨어뜨리며 자리에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서, 설마! 그놈이라 말한 건 아니지?”

오히려 반응은 1중대장의 입에서 나왔다.

“그놈은 이미 없어진 몬스터 아니었어?”

“…저걸 그거 말고 다른 이름으로 부를 게 있어요?”

“이런 제기랄! 왜 저 괴물이 여기서 나와!”

서윤진 대위가 뒤에 서 있는 중대원들을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데론. 그림자 괴물이다.”

그녀의 말을 들은 몇몇이 급히 숨을 삼키며 반응했다.

“저 새끼 물리 공격 안 통하잖습니까. 마법도 거의 안 통하고! 그래서 신성력을……!”

“데론? 그거 멸종한 몬스터 아녔어?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을 찾아낸 거야.”

X발.

놈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욕을 속으로 삼켰다.

그들이 알기로는 데론이란 빌어먹을 그림자 몬스터는 물리, 마법 공격에 거의 무적이다.

빛에 민감하며 소리에는 둔감한 녀석에게 가장 효과적인 공격은 신성력.

그런데 문제는.

“1중대에 신성력 능력자 없습니까?”

“…없어.”

1중대장이 침을 꿀꺽 삼키며 속삭이듯 답했다.

눈앞에서 데론이 돌아다니는 상황.

그가 턱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뒤로 물러난다. 천천히 소리 내지 말고 3중대와 합류해.”

1중대 인원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론적으론 소리에 민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본능적으로 소리를 죽였다.

일단 조용히 장소를 빠져나가는 거다.

서윤진 대위와 1중대장이 이것만을 생각할 때.

“놈을 잡지 않으면, 이 던전 무력화 못할 겁니다.”

강현의 경고가 복도를 울렸다.

“그리고 우리가 도망간 후 놈이 그림자 속에 숨어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하면… 분명 반 이상이 죽을 겁니다.”

강현의 말에 서윤진 대위와 1중대장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일단 눈앞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잊고 있었던 사실.

사실 그들 또한 데론을 말로만 들어 봤지 실제로 상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1중대 모두의 시선이 강현을 향했다.

“확실해?”

1중대장의 물음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물론 그가 데론을 경험해 봤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강현 또한 오늘 처음보다 못해 처음 들었지만.

[연구자의 눈을 발동합니다. 이전 사용자의 경험 중 데론에 관련한 정보가 존재합니다. 관련 정보를 띄웁니다]

[정보: 그림자에 숨어 상대를 사냥하는 습성. 한번 놓치면 다시 찾기 어려움]

게이트 연구자였던 아버지의 경험 일부가 강현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몬스터도 연구하셨던 걸까.

그리고 그 정보에 따르면 놈을 놓치는 순간 여기 있는 모두가 큰 위험에 처하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 미로형 던전에 데론이 출몰하면 사망률 최소 50%.

두 명 중 하나는 죽는다.

그마저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등급은 D에서 S까지 다양했지만 동 등급의 헌터들에겐 그림자 괴물이라고까지 불리며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다.

물론 이런 커다란 위험을 헌터와 연구자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었고.

싸울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건 바로.

[추가 정보: 내부 공격에 취약함]

겉은 물리, 마법 공격을 흘려 내지만 안에서 하는 공격은 흘려 내지 못한다는 점.

물론 그렇다는 건.

‘잡아먹혀야 한다는 거겠지.’

생존률이 최소 50%인 이유.

일단 잡아먹힌 뒤 안에서 찢고 나오면 사는 거고 아니면 그대로 사망 처리.

끔찍할 정도로 무식한 방법이지만 그 시절, 헌터들의 처절한 생존 방법이었다.

보통이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현 또한 자신의 생명이 귀중하다는 것을 알고 그 누구보다 이를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그가 잡아 먹히길 결심했다.

첫 번째 이유는.

[긴급 퀘스트 1중대의 전멸을 막아라: 현재 진행 중]

아직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음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하급 그림자 은신술 사용 시 데론 내부 침투 및 생존 확률 99%]

강현의 생존 가능성이 너무나 컸으며.

마지막으로는.

[추가 특권 검성의 해파칠십이검 시뮬레이션 실행 가능]

특권까지 얻을 수 있다.

놈은 괴물이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림자 괴물.

하지만 해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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