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중대 에이스
“잠시 대기.”
서윤진 대위가 손을 들어 발걸음을 멈추고는 강현을 바라보았다.
일제히 쏠리는 시선.
서윤진 대위야 경험이 풍부한 만큼 이 문이 보스 방으로 들어가는 통로라고 짐작했지만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을 안내한 것은 강현이기에.
“맞니?”
“맞습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그의 눈앞에 떠오른 미궁을 모두 주파했다는 알림.
그리고 1분대원들을 비롯한 주변의 모두가 내심 감탄했다.
아니, 그냥 대놓고 감탄했다.
“정말 한 번에 도착했다고?”
“아니, 탐지계 능력자 없이 이렇게 미궁을 돌파해도 되는 거야?”
탐지계 능력자 없이 미궁형 던전에 들어오면 고생하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탐지계 능력자가 따로 없는 3중대 같은 경우 미궁에서 먹을 식량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왔건만.
“미궁 해결까지 1시간 26분… 실화냐?”
“어어, 이 정도면 중대 신기록 아님까? 제일 빨랐던 기록이…….”
“3일 17시간 42분.”
서윤진 대위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압도적인 차이.
모두를 돌아보며 서윤진 대위가 말을 이었다.
“군단 최단 시간 1시간 59분.”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고 강현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저 눈 어디선가 봤어!
“우선 강현이 찐한 칭찬 적립. 다들 모여! 작전 회의 들어 간다!”
서윤진 대위가 한시가 아깝다는 듯 중대원들을 불러모았다.
“우선 1분대, 7분대 탱커들 따로 모여 방어하고 뒤에 딜러들 위치. 본 중대장은 프리 롤로 보스 몬스터의 목을 노리겠다.”
중대장인 만큼 각 분대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고 신속하게 역할을 배분했다.
그러다가 문득 강현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하지?
서윤진 대위가 생각하기에도 강현은 어떤 역할이든 훌륭하게 소화해 낼 것이다.
이미 대련을 통해 경험해 봤으니 잘 알고 있다.
‘원거리도 뛰어나고 근거리에도 강해.’
강현은 원거리, 근거리 딜링이 모두 가능했고 화력 또한 강하다.
굳이 어느 한 역할에 묶어 두어야 할까?
서윤진 대위가 강현을 신뢰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강현이도 프리 롤. 상황에 맞춰 움직여 줘.”
“이병 최강현. 알겠습니다.”
거기다 오늘 강현의 판단력과 감까지 확인했다.
서윤진 대위의 말에 1분대원들과 강현이 중대 에이스가 될 것이라 장담했던 병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병사에게 프리 롤을 맡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 전투 경험이 많은 중사 이상의 부사관들이나 맡을 수 있는 역할.
그런데 중대를 이끄는 서윤진 대위가 강현에게 망설임 없이 프리 롤을 맡겼다는 건.
‘중대 에이스 확정.’
그만큼 그를 신뢰한다는 뜻.
서윤진이 긴장한 중대원들의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단순하지만 명료하며 평소 매일 훈련해 왔던 작전.
여기다 동기 부여를 끼얹는다면 어떨까?
“군단 최단 기록 깼을 시 여기 전원 2박 3일 포상 휴가. 어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죽여 버리겠습니다!”
“갈가리 찢어 죽이겠습니다!”
“자, 죽여 버리자!”
우렁찬 대답과 함께 휴가를 간절히 원하는 장병들의 살기가 던전 통로를 가득 메웠다.
그들이 형형한 눈빛으로 던전의 마지막 문을 열었고.
“크르륵!”
“키에엑!”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회색 오크 무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 가운데 몸에 커다란 흉터가 새겨져 있는 애꾸눈의 회색 오크 대장이 안으로 들이닥친 서윤진 대위와 3중대원을 보며 크게 소리 질렀다.
“죽여라!”
일제히 덤벼드는 놈들.
그 모습이 자못 매서웠으나.
“휴가, 휴가, 휴가.”
“놈들을 죽이면 휴가다. 2박 3일 휴가야!”
“으와악!”
이미 휴가에 눈이 돌아간 1분대와 7분대 인원들에겐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탱커들이 일제히 방패와 방어막을 펼치며 다가오는 놈들을 밀어냈고.
딜러들이 주변에 몰려드는 오크들을 공격했다.
“하압!”
어느새 전방으로 뛰쳐나간 서윤진 대위가 주변의 몰려드는 오크들을 손으로 찢어발기며 전진.
그녀의 목표는 회색 오크 대장이었다.
평소 던전 보스 몬스터와의 대장 전을 즐기는 그녀다운 행동.
그리고.
타타타탕!
강현이 서윤진 대위의 앞을 가로막는 회색 오크들을 싸그리 청소하기 시작했다.
분대원들은 이미 분대 스킬과 특성으로 인해 강화된 상황.
이들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빨리 보스 몬스터를 죽이고 던전을 무력화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었다.
“하하하! 아주 이뻐 죽겠다니까!”
마치 길을 열어 주듯 주르륵 쓰러지는 오크들을 보며 서윤진 대위가 크게 웃었다.
이렇게 호흡 맞는 사람과 즐겁게 사냥을 해 본 것이 얼마 만이던가?
중대장이라는 직책과 병사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벗어던진 서윤진 대위는 그야말로 싸움꾼이었다.
능력을 개방할 필요조차 없었다.
“죽어라!”
회색 오크 대장이 고함 지르며 달려들었다.
서윤진 대위의 몸을 쪼갤 듯 떨어지는 거대한 도끼.
후우웅!
강현이 있는 곳까지 들리는 살벌한 바람 소리를 들으니 결코 만만히 볼 녀석이 아니었다.
그러나.
터억.
“뭐야? 힘 좀 더 써 봐.”
서윤진 대위가 고작 두 손가락으로 놈의 도끼를 단번에 잡아 버렸다.
“끄으윽!”
오크 대장이 양손으로 도끼를 잡은 채 가슴 근육과 팔뚝을 부풀리며 도끼에 힘을 가했으나.
“허억!”
오히려 서윤진 대위의 힘에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대로 도끼를 들어 올린 그녀가 나머지 한 손을 뒤로 뺐다가 뺨을 치듯 놈의 옆구리를 타격했고.
뻐엉!
축구공 터지는 소리가 울리는 듯싶더니 가슴팍만 남은 오크 대장이 그대로 절명했다.
[보스를 제압했습니다. 회색 오크 무리가 혼란에 빠집니다!]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대장을 잃은 오크 무리가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사이 각 분대 탱커들과 딜러들이 녀석들을 구석지로 몰아넣었고.
강현이 M-60H을 꺼내 들었다.
그다음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총이 저렇게 편리한 무기였구나.”
“확실히 다수를 상대로는 압도적이지 말입니다.”
“근데 그것도 강현이가 쏘니까 그렇지 우리가 쏘면 피부만 긁어 주는 정도일걸?”
“아, 진짜. 장건철 병장님, 너무 부럽습니다. 저런 귀한 녀석을 어떻게 데려온 겁니까?”
“아, 부러우면 몇 달 동안 분대 전투 때마다 샌드백 하던가.”
“아닙니다. 축하드립니다.”
나머지 분대원들이 시원하게 쓸려나가는 오크들을 구경하며 현장을 정리했다.
강현과 서윤진 대위의 활약으로 부상자는 전무.
남은 오크 한 마리마저 깔끔히 처리한 후.
모두의 눈이 서윤진 대위에게로 향했다.
미로형 던전 무력화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47분!”
군단 최단 기록보다 12분을 앞당겼다!
신기록을 세웠다는 무용담도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전원 2박 3일 휴가!”
“우와아악!”
“사랑합니다! 중대장님!”
“이 새끼, 사심 드러내는 거 봐라. 저도 사랑합니다!”
서윤진 대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가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아니 성공적인 수준이 아니라 완벽했지.’
서윤진 대위가 속으로 자기 생각을 정정했다.
그리고 이 성공적인 작전의 일등 공신.
“야, 강현아. 대체 길을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냥 감이 옵니다.”
“그러니까 그 감이란 말이 이해가 안 간단 말야.”
“상태창은 이해가 가고?”
“아니, 능력도 아닌데 이렇게 정확한 게 말이냐고.”
“뭐, 결과만 좋으면 됐지 않슴까?”
“그건 맞슴다.”
분대원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강현을 보았다.
참, 신기하기도 기특하기도 놀랍기도 한 녀석이었다.
처음 중대에 배정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어디서 굴러들어온 놈일까 걱정했다.
보통 강현처럼 갑작스레 특임대에 편입되는 놈 중 멀쩡한 놈이 별로 없었다.
군 생활 중 능력을 각성해 사고를 치거나 자신의 능력에 익숙지 않은 놈들이 대부분.
때로는 힘 좀 쓰신다는 분들이 친인척 중 쓸모도 없는 하급 능력자를 억지로 특임대에 욱여넣는 일도 있었다.
나중에 길드 간부 스팩으로 쓰기 위한 사기 입대.
그래서 대부분은 갑자기 특임대에 들어온 인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강현이는 특임대에 들어온 이유부터 특별했지.’
야간 행군 중 총기 관련 능력 각성, 고블린 사살.
능력 각성과 동시에 공을 세운 인원.
그러나 대부분의 대대장과 중대장은 난감해했다.
“통제되겠어? 처음부터 능력 맛을 봐서 괜히 분란만 만들 것 같은데.”
“집안 상태도 심상치 않고, 정신적으로 올바른 거 맞아?”
“이미 편제가 가득 차서… 그리고 저번에 이미 그런 인원을 받았습니다, 3대대는. 그리고… 어떤 사고 쳤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능력 사용도 제대로 못할 텐데… 굳이 데려와야 할 필요가…….”
군단장의 명령임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강현을 배정했기에 다들 갖은 핑계를 대며 피하려 할 때.
“1대대. 수락. 인원 필요.”
1대대장 선설민 중령이 강현을 받았고.
“3중대, 인원 부족. 새 인원 받아갈 것.”
서윤진 대위에게까지 흘러왔다.
물론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 진짜. 대체 그런 불안한 인원을 왜 우리 쪽에 넘긴답니까?”
“어쩌겠냐. 똥 치울 때 한번 되기는 했지.”
중대 부사관 중 투덜거리는 인원이 꽤 있었던 걸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강현은 첫 만남부터 서윤진의 선입견을 완전히 부쉈다.
그로 모자라 매번, 매 순간 놀라운 활약을 보여 주었고 그녀를 감탄하게 했다.
[서윤진 대위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호감도로 반영되었고 강현이 계속 올라오는 알림에 당황했다.
빤히 자신을 보는 건 알고 있었으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호감도가 이렇게 오른단 말인가?
때마침 강현과 서윤진 대위의 눈이 마주쳤고.
짝짝.
서윤진 대위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을 부르듯 박수를 두 번 치고는 양팔을 넓게 벌렸다.
가야 할까?
강현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그녀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고.
포옥.
강현을 안고는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잘했어. 앞으로도 부탁할게.”
“이병 최강현. 감사합니다.”
물론 선임들은 그 모습을 보며 부러워할 따름이었다.
“오우야. 포상 대박이고.”
“저도 다음번에는 포상받겠습니다!”
“응. 넌 받을 일 없어, 이 사심 덩어리 새끼야.”
그런데 그때.
[긴급 퀘스트 1중대의 전멸을 막아라]
강현의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가 떠올랐다.
전멸.
지난번 보았던 1분대가 전멸을 면했다는 알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1중대도 이들과 같은 병사들.
아들의 무사 복귀를 바라는 어머니와 그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터.
100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지금 여기서 모두 죽는다고?
강현이 너무나 갑작스러운 내용에 놀랐지만 금세 정신 차렸다.
당황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건 막아야 한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강현이 결심했다.
우선 끔찍한 비극을 막는다.
전에 듀라한을 막아 내고 나서, 장건철 병장이 일어났을 때 결심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손이 미치는 곳까진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지금 1중대는 강현의 손과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었고.
앞에는 자신과 함께 미궁형 던전을 돌파한 전우들이 있었다.
혼자가 아니다.
할 수 있다.
“자, 다들 중대원들 모두 복귀하면 탈출구 열릴 테니까 쉬고 있어.”
“쉬어!”
서윤진 대위가 1분대, 7분대 인원들에게 휴식을 명령했다.
이제 임무는 끝났다, 복귀만 무사히 한다면…….
“중대장님.”
“어?”
“1중대가 위험합니다.”
강현의 황당한 소리에 서윤진 대위가 미간을 찌푸렸다.
기껏 보스 몬스터까지 다 잡아서 게이트 무력화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런데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강현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파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강현아?”
분대원들도 처음엔 어이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으나.
강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점차 얼굴을 굳혔다.
서윤진 대위가 방금과는 다르게 날카롭게 물었고.
“최강현, 지금 그 말 가볍게 할 말 아니야.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렇습니다.”
강현의 대답에 잠시 눈을 감고는 고민했다.
그리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뢰.
지금껏 강현을 보아오며, 같이 작전을 수행하며 쌓아 온 두터운 신뢰감이 강현의 말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평소에 쌓아 놨던 강현에 대한 이미지가 중요한 순간 이들을 움직였다.
같은 말을 해도 사람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른 법.
[주변인들이 중요한 순간 당신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당신의 의견을 믿고 따릅니다]
[높은 결속력으로 누구도 이견을 내지 않습니다. 퀘스트 성공 확률이 높아집니다]
“모두 무기 들어.”
서윤진 대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무기를 들며 일어섰다.
모두의 긴장한 눈빛이 강현에게로 향했고.
“이쪽입니다.”
강현이 길 안내를 시작했다.
[긴급 퀘스트 1중대의 전멸을 막아라]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오기까지 남은 시간 10분]
[이후 1초마다 희생자 한 명씩 증가]
[9분 59초]
[9분 5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