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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52화 (52/277)

52화 내가 돌아왔다!

32평형 아파트에서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꺄하하항!”

서연이가 나풀나풀 나는 오색찬란한 나비를 보며 꺄르륵 웃었다.

그 아래에는 작은 요정들과 꽃송이들이 손을 흔들며 춤을 추는 중.

그 가운데 있는 서연이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주인공 같았다.

“하하하! 아주 귀엽구나. 이번엔 뭘 그려 줄까요?”

그 모습을 본 한진명이 웃으며 서연이에게 바라는 걸 물어보았고.

“움, 정령은 어떻게 생겼어요?”

“정령 말이냐? 하급 정령 녀석들은 아주 귀엽지. 잠깐만 기다려요.”

한진명이 평소의 산군 길드 인사부 팀장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친절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곤 커다란 화면에 펜으로 무언가를 그리길 잠시.

우우웅.

거실에 놓인 작은 기계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뀨웅?

푸른 물방울 하나가 톡 튀어나왔다.

“하급 물의 정령이다. 보통 워터 포인트라 부른단다.”

“우와아아! 넘무 기여워!”

한진명이 그려 준 그림이 맘에 들었는지 서연이가 펄쩍 뛰며 하급 물의 정령을 폭 껴안았다.

“귀여운 거 옆에 귀여운 거라. 좋은 풍경이네.”

그 모습을 보던 황세아가 따뜻한 표정으로 웃었다.

“…안 가십니까?”

강현이 슬며시 물었으나.

“강현아, 손님께 그게 무슨 말이니. 여기 커피 좀 들어요.”

“아, 감사합니다. 할머니.”

할머니의 만류에 입을 꾹 다물었다.

선물을 전달해 준 둘이 가구와 가전제품이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고는 슬며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더니.

같이 밥까지 한 끼하고 이제는 커피까지 얻어 마시는 중이었다.

“이번의 불의 정령이다!”

한진명이 서연이의 반응에 신났는지 지치는 기색도 없이 계속 홀로그램을 뽑아내고 있었다.

“소형 홀로그램은 처음 듣습니다.”

“응. 이번에 새로 만든 제품이야 아직 정식 출시는 아니고 몇 달 후에 풀릴 물건인데 연구원들한테 윽박질러서 가져왔어. 너 복귀하면 서연이 외로울 텐데 놀 거리라도 있어야지.”

“아셨습니까?”

“모를 리가 없지. 같은 부대원인데. 그래도 저렇게 좋아해 주니 다행이네. 정작 신난 사람은 따로 있지만 말야.”

“그러게 말입니다.”

강현과 황세아가 신나게 놀고 있는 둘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물, 불, 바람, 땅 네 종류 하급 정령까지 모두 그리고 나서야 한진명이 소형 마력 홀로그램에서 손을 놓았다.

“이거 내가 너무 흥분했나?”

“흐응, 아저씨 은근히 그림 잘 그리시네요.”

“딸내미가 그림을 좋아해서 자주 놀아 주다 보니 나도 절로 그림 실력이 늘었지 뭐야.”

“아, 따님이 있으세요?”

강현의 물음에 한진명이 멋쩍게 웃었다.

“고등학생이라 이젠 나랑 놀아 주지도 않아. 강현 군은 아직 좋을 때니까 서연이랑 많이 놀아 줘. 나처럼 일 바쁘다는 핑계로 애 마음에 굳은살 박이게 하지 말고.”

“아…….”

“맞아, 동생 크기 전에 미리미리 놀아 줘, 나중에 후회 말고. 바쁜 아버지 등만 바라보는 딸이 얼마나 외로운지 모를 거야.”

한진명과 황세아의 조언에 강현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서연이도 그러려나?

고등학생이 된 서연이가 ‘오빠랑 안 놀아!’ 외치며 방문을 쾅 닫는다면?

잠깐만 상상했는데도 마음 아프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웃기네.’

문득 강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둘을 보았다.

“그래서 휴가 첫날부터 일하자고 졸랐습니까? 제가 거절 안 했으면 휴가 내내 굴렸을 분들이 그런 말 하니 좀 그렇습니다?”

“험험, 누가 굴린다고 그러나. 그래서 푹신한 침대도 보내지 않았냔 말이지.”

“…나도 내내 굴릴 생각은 없었는데. 진짜야.”

한진명과 황세아가 강현의 눈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런 둘을 보며 강현이 픽 웃었다.

사실 진짜 둘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을 찾아 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 대가를 정당하게 아니 오히려 더욱 얹어 주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해야 앞으로 서연이를 비롯한 할머니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시간 조정은 내가 해야 할 일이지.’

강해지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와중에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가족과 시간 보낸다며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가족을 위한답시고 밖에만 나도는 것도 안 된다.’

물론 이 둘을 조절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해내야 한다.

그리고 솔직히 이 모두를 잘 해내고 싶었다.

강현이 말하는 잘 산다는 것의 의미에는 둘 다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

“그럼 갈게. 부대에서 보자.”

“걱정하지마, 자네 부대에 있을 때 내 틈틈이 들를 테니. 봄에 서연이 학교도 간다며? 그것도 챙겨서 알려 줄게.”

“나한테 알려요. 그럼 바로 강현이한테 전해 줄 테니까.”

“오, 그럼 되겠네.”

“그리고 나도 신경 쓸 테니 걱정 말고 언제든지 물어 봐.”

언제 둘이 저렇게 사이가 좋아졌지?

어쨌든 강현을 위해 의기투합하는 둘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둘이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현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전에 병원에서 만났던 병사의 아버지를 기억했다.

타란툴라에게 죽을 뻔한 제 아들을 구해 준 강현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었다.

강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군대에 있는 동안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아 줄 사람이 있으면 했다.

그게 산군 길드의 인사부 팀장과 대연 시스템의 후계자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아들을 위해 고개를 숙였던 아버지와 같이 강현도 서연이와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그때.

“무슨 짓이냐.”

“뭐해?”

한진명과 황세아가 강현의 어깨를 잡아 올렸다.

그들의 얼굴엔 오히려 곤란하단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숙이지 마라. 네가 이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 당당하게 어깨 펴.”

“그럼. 그리고 이렇게 끝날 관계 아니잖아?”

“네. 감사해요, 두 분 모두.”

둘을 마주한 강현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이런 작은 감사가 강현에겐 호감도가 되어 돌아왔다.

[조력자 한진명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일정 호감도에 도달해 새로운 기능이 열립니다. 게이트 조달이 가능해졌습니다!]

[황세아 중사의 호감도가 크게 올랐습니다. 일정 호감도에 도달했습니다. 주기적으로 대연 시스템 새로운 발명품을 전달합니다]

[게이트 조달까지 1%]

[발명품 전달까지 1%]

‘이건… 가성비가 미쳤는데.’

그냥 감사 인사 한 번 했을 뿐인데 앞으로 공짜로 게이트와 발명품을 준단다.

그들이 떠나기 전 강현이 궁금한 걸 물었다.

“그, 저번 지하 미로형 게이트는 얼마 정도 했나요?”

“12억.”

“발명품은요?”

“그거 개발비만 1,500억이다?”

“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후.

“감사 인사 한 번에 대체 얼마를 번 거야.”

강현이 정말 예상치 못했던 혜택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서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빵! 같이 놀자!”

“아이구, 그래 우리 이쁜 동생! 오빠가 간다!”

자그마치 개발비 1,500억짜리 마나 홀로그램 구경하러 간다!

강현이 황급히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휴가 마지막 2박 3일 동안은 한진명도 황세아도 연락이 없었다.

아마 지난번 했던 이야기가 마음에 걸린 탓이리라.

덕분에 동생과 하루 종일, 정말 하루 종일 놀아 줄 수 있었고.

등이 굽은 할머니 대신 이사 후 집 정리를 할 시간도 충분했다.

[정리 정돈 스킬과 장비 관리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흐음. 역시”

강현이 정리와 청소가 끝난 집을 보며 만족의 콧바람을 내뿜었다.

딱딱 맞는 각과 먼지 하나 없이 빛나는 창틀과 바닥을 보니 묘하게 마음이 놓였다.

그런 강현의 얼굴을 보던 서연이가 오빠를 보며 중얼거렸다.

“오빠… 청소 기계얌?”

“아, 또 군대에 있을 때처럼 했네.”

강현이 머리를 짚으며 동생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껌뻑 웃었다.

“서연아! 그건 어디서 났어?”

“오빠 어지러웡!”

어디서 났는지 모를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

안경이 너무 커 뽀얀 볼 위로 자꾸 흘러내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안경을 고쳐 쓴 동생이 팔을 옆구리에 척 올리며 웃었다.

“어때? 똑똑해 보이지? 그칭?”

동생의 물음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동생이 가장 똑똑하지!”

“헤헤헤. 나중에 대단한 과학자가 될 거야!”

“오! 그럼 미래의 대단한 과학자님께 물어봐야겠네. 구구단을 외자, 구구단을 외자. 이, 사?”

“팔!”

“구, 칠?”

“…구, 구, 구, 칠이면 구, 사는 삼십유욱.”

서연이가 작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다가 갑자기 머리를 쥐었다.

“아앗, 머리가!”

“안경 때문에 어지럽지? 그래서 모르는 거지?”

“웅! 맞아. 안경 때문이야!”

마침 생긴 핑계에 서연이가 얼른 안경을 벗어 강현에게 넘겼다.

요거, 어린 녀석이 벌써 핑계를 배우다니.

강현이 안경을 받아드는 순간.

[새로운 고물 때가 탄 안경에 접촉했습니다]

알림이 떠올랐다.

강현이 잠시 안경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할머니가 쓰시던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원시용이 아니라 근시용이다.

강현이 머릿속을 간질이는 예감에 천천히 안경을 착용했고.

“어우, 어지러워.”

엄청 높은 도수에 고개를 흔들 때.

[새로운 고물 아버지의 안경을 획득했습니다. 혈족 경험치를 계승합니다.]

[이전 사용자의 경험을 불러옵니다!]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우쭈쭈쭈!”

검은 생머리에 유독 피부가 하얀 여자와 그녀가 안고 있는 갓난아기.

아기도 그녀를 닮아 유독 볼이 뽀얗다.

그리고 그 앞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니 강현이 있었다.

“아빠! 아빠! 너무 귀엽다!”

유독 똘망똘망한 눈이 인상적인 어린 시절의 강현이 자신을 보며 활짝 웃었다.

자신의 동생이 이뻐 죽겠다는 표정.

그리고 그런 오빠와 동생을 보는 여자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여보, 일로 와서 서연이 좀 봐요.”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머니가 자신을 불렀다.

아니 마찬가지로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불렀다.

가족 앞으로 다가간 아버지가 중학생인 강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강현이, 크게 자라서 서연이 잘 돌봐 주어야 한다?”

“그럼!”

“그래, 아빠랑 엄마는 강현이랑 서연이 모두 사랑하는 거 알지?”

“난 충분히 받았으니까 서연이 많이 사랑해줘,”

강현의 너스레에 아빠와 엄마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어린 서연이도 덩달아 꺄륵거리며 웃었다.

그때, 어머니가 문득 지금 안경을 쓰고 있는 강현을 보며 해사하게 웃었다.

“고마워, 잘 자라 주어서.”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마. 미안하다.”

끝이었다.

다시 시야가 변한 후 강현이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오빠의 붉어진 눈가를 본 서연이가 강현의 바지춤을 잡으며 매달렸다.

“오빠, 왜 울어? 히이잉.”

강현이 얼른 눈물을 훔치며 동생을 껴안았다.

“기뻐서 그래, 기뻐서.”

“정말? 기뻐도 우는 거야?”

“그러게. 너무 기쁘니까 눈물이 나네.”

항상 꿈이라도 꾸기 바랐던 행복했을 때의 모습.

너무나 그리운 얼굴을 마주하자 지금껏 참았던 감정이 울컥 치밀었다.

그래, 할 수 있다, 이 행복 지켜 낼 수 있다.

눈물보다는 땀을 흘리자.

더 강해지자.

강현이 다시 한번 자신의 결심을 굳건히 할 때.

[혈족 경험 계승으로 새로운 스킬 연구자의 눈이 생성되었습니다]

[대상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스킬 알림과 함께 서연이의 인물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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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연

직책: ???

나이: 7살

호감도: ∞

정보: 오빠, 할머니 세상에서 제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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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연구자의 눈 스킬 때문인지 원래라면 여기서 끝이어야 할 인물창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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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오빠와 더 이야기하고 싶어 구구단을 못 외운 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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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강현이 지금껏 참아 왔던 눈물을 쏟아 내고 말았다.

“오빠! 흐아앙!”

서연이가 덩달아 울기 시작했고.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강현아! 서연아! 우리 강아지들 왜 울어!”

울음소리를 들은 할머니가 급하게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 할머니의 인물창에 떠오른 추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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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매일 새벽마다 자신의 손자가 무사하길 기도하느라 새벽잠이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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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무이, 흐아앙! 오빠가 울어!”

강현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 가냘픈 할머니의 품에 안겨 울었다.

“그래, 울어라 울어. 마음껏 울고 훌훌 털어 버려.”

그렇게 세 가족은 그날 다 같이 지난 마음의 짐을 눈물로 훌훌 털어 냈다.

* * *

“충성! 갔다 올게요. 할머니. 서연이도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해?”

“우웅.”

“그래 건강하게 잘 다녀오렴.”

울음을 참기 위해 할머니의 치마를 입안 가득 물고 있는 서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강현이 현관을 나섰다.

11박 12일.

“11분 12초네. 정말로.”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이었으나 강현은 자신이 나온 아파트를 물끄러미 보며 그런 마음을 털어냈다.

“11분 12초 치고는 너무 많이 이뤘지?”

생각해 보면 참 바쁘고 시끄럽고 보람찬 휴가였다.

처리한 게이트만 두 개에 홀로그램 전투, 거기다 이사까지 했다.

그뿐이랴, 보상으로만 따지면 32평짜리 집에 소형 마나 홀로그램 장치에, 스텟 특성 추가권들, 해파칠십이검 방어형과 스킬 레벨 상승, 하급 길잡이 스킬에 또 하급 그림자 은신술까지.

“고물 범위까지 확장했지 참. 그것 말고도 더 있던 것 같은데.”

정말 한 번에 정리하기도 많은 양이었다.

강현이 이번 휴가 때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버스 안에서 눈을 붙였고.

“…복귀는 왜 이리 빠른 걸까.”

어느새 군단 위병소 앞에 도착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지만.

“나는 더 강해졌다.”

그래, 휴가 갈 때와는 또 다른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

“군단 다 뒈졌다.”

뭘 죽일진 모르겠지만 일단 다 죽었다.

강현이 위병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새로운 챕터 일병, 일개미는 뚠뚠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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