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제7차 의무 방어전
1인 병실.
침대에 누운 장건철 병장이 깊고 느리게 숨 쉬고 있었다.
옆에 있는 분대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장건철 병장님.”
막 병실 안에 들어선 강현이 아직도 깨어나 지 않은 장건철을 보며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장건철, 장건철!”
서윤진 대위도 이름을 불렀지만 마찬가지.
“황 중사 어떻게 된 거야? 치료 끝났다며?”
서윤진 대위의 물음에 황 중사가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
“분명 치료는 끝났다고 했는데 눈을 뜨지 않습니다. 현재 의사들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니 내일 추가적인 검사 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뭐? 얼마나?”
“전투 후유증일 경우엔 일주일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만일 일주일 후에도 깨어나지 않으면?”
서윤진 대위의 물음에 황세아 중사가 답하지 못했다.
1분대원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확인한 사실에 절망했다.
분대장이 쓰러졌다.
그리고 깨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이유도 모르겠단다. 그저 장건철 병장이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길 바라야 하는 상황.
“어떻게 합니까…….”
이내 장만수 일병의 눈가엔 눈물까지 맺혔다.
자신이 신병 때부터 분대장이었던 사람이다.
비록 군대에서 만났지만, 밖에서도 형이라 부르며 따를 만한 사람.
부족하고 분대에 도움도 안 되던 자신을 끝까지 챙겨 주려 한 분대장이다.
“깨어날 거다. 기다려. 장건철 병장님 강하시잖냐.”
다른 선임들도 억지로 마음을 다잡으며 괜찮은 척했다.
“응급실 가면 돼? 담당의 어디 있어? 내가 직접 확인할게.”
서윤진 대위 또한 마음이 급한 듯 당장 병실을 빠져나가려 할 때.
“으으.”
강현이 혀를 깨물며 억지로 말을 삼키고 있었다.
능력 평가 때, 선설민 중령 때와 같은 상황.
언변 특성은 말을 하라 하는데 이성이 이를 거부했다.
‘절대! 절대 안 된다! 절대! 특성 정지!’
강현이 강제로라도 새 나오려는 말을 막아보려 했지만.
[언변 특성을 발동합니다]
[특성을 정지합니다]
[안 돼, 정지가 안 되잖아. 정지할 수가 없어]
‘으아아.’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강현의 입에서 아주 작게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주일이면 근 손실이 심할 겁니다.”
분대원들의 고개가 일제히 강현을 향해 돌아갔다.
결국 뱉어 버린 말에 강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상황에서 근 손실이라니 이런 미친놈!
“뭐? 최강현 지금 뭐라고 했니?”
역시나 서윤진 대위와 황세아 중사가 강현을 질책하듯 쳐다보았고.
자신의 말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강현이 맹렬히 머리를 돌릴 때.
“맞아. 그거야.”
1분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장건철 병장님! 근 손실입니다!”
“근육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어? 팔뚝 둘레 줄어든다!
“근 손실! 근 손실! 멸치!”
같이 먹고 자고 훈련하고 싸우는 전우이기에 알고 있었다.
평소에 장건철 병장이 얼마나 운동에 집착하는지, 근 손실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고 있었다.
강현의 말을 그저 장난이 아닌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한 1분대원들이 까마귀 떼처럼 분대장 주위에서 근 손실을 외쳐대었다.
장건철 병장이기에, 1분대원들이기에 벌일 수 있는 미친 짓이었고.
“지금 뭐 하는 거야! 환자에게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 몰라?”
주변을 지나가던 군의관이 소란을 듣고는 급히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가 막 1분대원들을 장건철 병장 주위에서 밀쳐 내려 할 때.
번쩍.
장건철 병장이 눈을 떴다.
“근… 손실……? 안 돼…….”
그가 눈을 뜨자마자 꺼낸 말에 군의관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런 미친…….”
제3자가 보기엔 그저 괴상한 일이었지만.
“믿고 있었다고! 최강현!”
“진짜 일어나 버린 거냐고!”
1분대는 지금만큼 기쁜 순간이 없었다.
서로를 얼싸안은 1분대원들이 방방 뛰며 좋아했고
“괜찮습니다. 군의관님, 제가 있으니 나가셔도 됩니다.”
서윤진 대위는 중대장으로서 1분대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잠시 이대로 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둘러싸인 강현이 아까 서대호가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원망하냐고?’
당연했다.
그렇게 자신과 여동생을 두고 떠나 버린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깟 게이트가 뭐라고!
검성의 마지막 선발대가 떠나기 전날.
“강현아, 어쩌면 드디어 사람들에게 일상을 돌려줄 수 있을지 몰라.”
“일상이요. 엄마?”
“응, 세상이 언제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거지.”
“우와! 아빠도 엄마랑 같이 세상을 구하는 거예요?”
“이 아빠랑 엄마가 같이 세상을 구하고 오마! 물론 게이트 밖에서 손이나 보태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강현이 부모님과 했던 마지막 대화를 기억했다.
세상에 다시 일상을 돌려주겠다며 나갔었지.
그러나 그들의 장담과는 다르게 다음 날.
강현의 일상은 산산이 조각났다.
‘…이런 마음이셨던 겁니까? 그런 위험한 곳에 가면서 웃을 수 있었던 이유가.’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훈련소에서 동기들을 구하면서, 타란툴라에게서 이름 모를 병사를 구하면서, 그의 아버지가 고개 숙인 모습을 보면서, 지금 깨어난 장건철 병장을 보면서.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 준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감사받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님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내 주변을 우선으로 지킬 거다. 모두를 지키겠다는 이상은 몽상일 뿐이야.’
세상을 구하고 모두를 구하겠다는 이상을 품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실종된 이후 강현이 자신과 동생과 할머니가 겪었던 아픔과 고생이 얼마나 컸던가.
강현은 그 아픔을 되풀이할 생각이 없었다.
‘내 삶과 가족부터, 그리고 주변인의 일상을 지키자. 그것만이라도 지킬 힘을 길러야 한다.’
어쩌면 이것마저도 커다란 욕심이라 비웃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강현의 뜻은 확고했다.
그러기 위해선 더욱 강해져야 했다.
오늘처럼 내 몸 하나 지키는 것도 버거워해선 안 된다.
앞으론 후회도 희생도 없을 거다.
[메인 퀘스트 깊은 밤 악마는 잠들지 않고를 완료하셨습니다]
[분대원 전원 생존! 목표를 초과 달성하였습니다!]
[기존 보상을 업그레이드하여 고물 경험치 강제 추출권 1 획득!]
나아지는 내일만이 있을 뿐.
* * *
분명 그렇게 결심했을 터였는데.
“으으.”
강현이 새까맣게 변한 눈 밑을 더듬으며 괴로운 신음을 뱉었다.
며칠 사이에 야위었는지 툭 불거진 얼굴 뼈가 만져졌다.
“강현아, 괜찮냐?”
“…죽을 것 같습니다.”
“하긴 나 같아도 죽을 것 같긴 하다.”
생활관에 있던 선임 전부가 강현을 안쓰러운 듯 쳐다보았다.
강현이 손을 들자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이미 쪽 빨리다 못해 너덜너덜한 상태.
“이제 일주일째 아니냐?”
“그렇습니다. 마침 슬슬 찾아오실 때 되었습니다.”
“야, 너 힘들면 말해. 그러다 죽어.”
“그래, 곧 신병 휴가인데 시체로 나갈 순 없잖냐.”
“혹한기 전에 나갈 수 있겠나?”
“훈련 뒤로 미뤄진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아, 그래? 그래도 휴가 갔다 와서 가는 게 나은가?”
“휴가 가기 전에 훈련 가나, 갔다 와서 훈련 가나 힘든 건 마찬가지 아님까?”
“아, 맞네. 그러니까 강현아 훈련이든 휴가든 일단 살고 봐라.”
선임들이 강현에게 포기할 것을 제안할 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생활관 문이 벌컥 열리며 당직병이 일주일째 반복해서 강현을 찾았다.
“최강현! 중대장님이 부르신다!”
“이병 최강현! 알겠습니다.”
[서브 퀘스트 제7차 의무 방어전이 발동되었습니다]
[오… 우… 야 누나… 나 죽어……]
사실 선임들의 말처럼 진짜 죽게 생겼다.
자그마치 일주일.
개인 정비 시간마다 불려 나가 대련하길 일주일!
심지어 이젠 시스템 창마저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휴가, 나가고 싶다! 정말 간절하게!’
그냥 포기하기엔 보상이 너무 달콤했다.
정말 휴가가 너무 나가고 싶었다.
갔다 와서 혹한기 훈련을 받아야겠지만 휴가도 못 간 채 훈련까지 한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남은 시간 하루]
더군다나 이제 남은 시간은 하루.
이대로 가다간 혹한기 훈련부터 끌려가게 생겼다.
강현이 오늘은 반드시 서윤진 대위와의 의무 방어전을 훌륭히 수행해 내리라 결심하며 일어설 때.
“야.”
김대영 상병이 문득 강현을 불러 세웠다.
동시에 분대원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설마 요즘 잠잠하다 싶더니 다시 갈구기 시작하는 건가?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거 하나 마시고 가라.”
그가 툭 던진 건 군용 맛스타 오렌지 맛.
사소한 친절이었지만 김대영이 하니 뭔가 어색했다.
강현도 이상하다 싶었지만 일단 맛스타를 뜯어 입에 쏟아 넣었고.
[버프 효과가 적용됩니다. 체력과 민첩이 일시적으로 올라갑니다]
‘어? 이거!’
놀란 눈으로 김대영을 보았으나.
“야. 만수야, PX나 가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김대영이 장만수 일병을 끌고 PX로 가려 할 때.
“그거 박찬우 일병님한테 부탁해서 받은 거야. 나중에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장만수 일병이 강현에게 슬며시 김대영이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 주었다.
“뭐하냐. 빨리 안 나가고.”
김대영이 짜증을 내며 장만수 일병의 등을 팍 밀었다.
“김대영 상병님, 감사합니다!”
등 뒤에 감사 인사를 하는 강현에게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떠나는 둘.
다른 선임들도 그제야 씩 웃으며 강현을 응원했다.
“야, 오늘은 이겨라. 쓰레기통은 내가 비워 둘게.”
[분대 신뢰도가 증가하였습니다]
“아닙니다. 갔다 와서 바로 버리겠습니다.”
“버리긴, 매일 기어오면서.”
강현이 선임의 말에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고는 생활관을 나섰다.
“흐음, 오늘 같이 하체나 하려 했더니.”
그 모습을 보며 장건철 병장이 아쉬워했다.
같이 근력 운동하려 했더니 요즘 강현이 중대장님께 불려 나가는 바람에 기회가 없었다.
“오늘 하체 하러 갈래?”
“아, 아악! 저 무, 무릎이! 무릎이 너무 아픕니다! 걸을 수가 없습니다. 장건철 병장님.”
“그래?”
엄살 피우는 후임을 보며 장건철이 씩 웃었다.
“자세를 잘못 잡았나 보다. 원래 하체는 무릎이 아니라 허벅지 근육으로 하는 거야. 오늘 제대로 알려 줄게.”
“으, 으아악!”
후임을 번쩍 들어 멘 그가 체력 단련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 * *
“어, 강현이 어서 오고.”
강현을 본 서윤진 대위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근래 스마트폰으로 뭘 보며 낄낄거리더니 요상한 말투를 자주 쓰는 서윤진 대위였다.
그녀가 여느 때와 같이 검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방방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어디, 오늘은 또 얼마나 귀여운 수를 준비했는지 구경 좀 할까?”
스르릉.
강현이 대답 대신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호송 당일, 황세아 중사에게 사건 경위를 듣던 중 강현이 듀라한을 검으로 이겼다는 소식을 들은 서윤진 대위는 궁금했다.
‘대체 이 아이의 한계는 어딜까?’
지금껏 총으로 보여 준 능력도 대단했다.
자신이 직접 대련하고 능력 평가를 보며 확인했지 않은가.
그런데 최근 겪은 강현의 검술은 정말 놀라울 정도!
사실 강현이 부족해서 퀘스트 실패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윤진 대위가 너무 강했다.
‘확인해 보고 싶어. 얼마나 빨리 강해질지.’
하루하루 대련을 할 때마다 강해지는 강현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성장하는 강현과 맞부딪힐 때마다 서윤진 대위 본인도 새롭게 깨닫는 부분이 있었다.
변하는 강현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며 스스로 고칠 점을 찾아갔다.
서윤진 대위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최근 성장이 더뎌져서 고민이었는데 잘됐어.’
강현은 서윤진 대위에게 새로운 자극이었고.
[서윤진 대위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일주일 동안 강현에게 호감도로 되돌아 왔다.
‘집중.’
강현은 알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겨눴다.
지금 그에겐 더욱 중요한 것이 있었다.
호감이고 나발이고!
‘오늘 반드시 퀘스트 깨고 휴가 나간다!’
각오를 다진 강현의 몸에서 은은하게 푸른 마나가 요동쳤다.
물이 차오르듯 검을 타고 차오르는 마나.
[중급 검술 스킬 발동으로 검술 위력이 증가합니다]
[강인한 팔뚝, 능숙한 몸놀림 스킬로 검술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마력지체, 강골 특성으로 검술 연계가 한결 쉬워집니다]
[해파칠십이검 준비 완료]
씩 웃은 서윤진 대위와 얼굴을 굳힌 강현이 땅을 박찼다.
승부는 순식간이었다.
한 호흡에 몰아치는 열여덟 번의 검격.
듀라한을 단번에 갈기갈기 찢어 놓았던 성난 파도와 같은 위력이었으나.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
촘촘하게 밀려드는 강현의 마나 사이로 서윤진 대위가 몸을 밀어 넣었고.
아슬아슬하게 모두를 피해 냈다.
그러나 강현의 공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늘은 반드시 끝장을 볼 생각.
“파하, 흐읍!”
재빨리 숨을 뱉었다 들이쉰 강현이 다시 검을 뿌렸고.
다시 한번 열여덟 번의 파도가 몰아쳤다.
피하고 다시 한번!
‘크윽!’
역시 연속해서 사용하는 건 무리가 오는지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히려 강현은 더욱 박차를 가했다.
‘파도란 가혹하며 무서운 것. 얌전한 파도는 적에게 그저 유희 거리에 불과하다.’
검에서 흘러 들어온 경험이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더욱 힘차게, 더욱 강하게 휘두르라고!
“그거야. 더! 더 해 봐!”
더욱 거세진 공격에 서윤진 대위도 덩달아 무언가를 깨우치기 시작했다.
턱하고 막혀 있던 무언가 쑤욱 내려가는 기분.
그녀가 무언갈 깨닫는 동시에.
[서윤진 대위의 호감도가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호감도가 일정 수준에 달해 혜택을 받습니다]
[계속된 대련으로 상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관련 혜택을 받습니다]
[서윤진 대위의 특성 하나를 공유합니다]
[새로운 특성 탄력을 획득했습니다! 특성으로 인해 해파칠십이검의 경지가 올랐습니다!]
연속적으로 알림이 떠올랐다.
그리고.
쐐애액!
강현의 열아홉 번째 검이 그전보다 훨씬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