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
[새로운 고물 오래된 SUV에 접촉하였습니다. 사용자의 경험을 흡수합니다]
[차량이 주로 다녔던 길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운전이 능숙해집니다]
[새로운 스킬 운전이 생성되었습니다!]
택배 알바 하려고 급하게 따놓은 운전면허가 여기서 도움 될 줄이야.
강현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차량에도 능력이 적용된다는 게 참 기쁜 소식이긴 한데.
심지어 운전 스킬까지 생겼으니 정말 좋은 일이긴 한데.
“…흐음.”
옆에서 너무 빤히 쳐다보니 부담스럽다!
“호오……!”
서대호가 조수석에 앉은 채로 계속 강현을 살피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던 노인이라면 별 신경 안 쓰겠지만 상대는 보통 노인이 아니지 않은가.
산군 서대호.
산군 길드의 수장이자 게이트 사태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수호하는 강자 중 하나.
아무리 강현이 헌터가 된 지 얼마 안 되었다곤 해도 서대호를 모르지는 않았다.
아니, 한국 국민 중에서 서대호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셨으면 좋겠는데.’
이름값만으로도 그럴진데 방금 그의 무력까지 보았다.
단 한 방에 상황을 정리하는 힘.
듀라한과 치열한 사투를 벌였던 자신을 생각하자 부끄러울 정도였다.
“검은 언제 잡았는가?”
“…본격적으로 사용한 건 몇 달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전입 오고 처음 검을 잡았으니 더 짧은 시간이었지만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 힘들어 간단하게 답했다.
서대호 같은 강자가 보기에 얼마나 조악하고 부족한 검술이었을까.
부끄러움에 강현의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으하하하하! 몇 달? 몇 달이라 했는가?”
강현의 말을 들은 서대호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의미는 강현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단 몇 달 만에 한 호흡에 열여덟 번을 휘둘렀단 말이지? 열여덟 번을!’
몇 달이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해파칠십이검 중 열여덟 번까지 도달했단 말인가!
오래전 기억이라 가물가물하긴 했지만, 이 검술을 창안한 주인 말고는 이런 성취를 보인 자가 없었다.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완벽한 해파칠십이검은 한 호흡에 총 일흔두 번 검을 휘둘러야 한다.
그야말로 쾌검, 무호흡의 극치.
100M 달리기 선수, 역도 선수들이 그러하듯 무호흡 상태에서 온몸의 힘을 폭발시키는 검법이었다.
처음 한 번, 두 번이 쉽지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몸에 가는 부담이 가중된다.
‘나중 가서는 몸에 힘이 빠지며 흐느적거리기 마련.’
숫자에만 집착하다가는 자세도 마나도 흐트러져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검성을 제외하고 그가 보아 왔던 해파칠십이검을 사용하는 자들은 그래왔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자세도 호흡도 마나마저도 완벽했어. 마치 그 친구를 보는 것 같았지.’
그러나 서대호가 본 강현의 검은 그렇지 않았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으며 오히려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관성을 받은 검이 마나를 줄기차게 뿜어냈다.
정말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모습.
이를 강현에게 설명해 주면 좋으련만, 서대호는 무력은 강해도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호오! 흐음!”
그러다 보니 그저 강현에 대한 깊은 감탄과 그리운 기억을 감탄사로 축약해서 뱉어 냈던 것.
물론 서대호의 속사정을 모르는 강현의 등에선 점점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서대호가 다시 입을 연 건 거대한 저택으로 들어오고 나서였다.
“들어오게.”
“아, 저 부대에 복귀해야 해서.”
“들어오게.”
“…알겠습니다.”
서대호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걸 보고 강현이 냉큼 집안으로 들어섰다.
아까 깔끔하게 사라진 스켈레톤과 좀비가 떠올랐던 건 왜일까.
‘왜긴 이 새끼 때문이지!’
[서브 퀘스트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을까?’를 시작합니다!]
[성공 시 - 호랑이 굴 탈출]
[실패 시 - 호랑이들의 지속적인 의심]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알림창.
그래도 하나는 확실했다.
‘일단 탈출한다.’
저 무시무시한 노인에게 의심을 받는 것보다는 탈출하는 게 백배 나았다.
지금 강현이 들어 온 곳은 호랑이 굴.
잠시만 정신을 잃어도 어찌 될지 모른다.
강현이 이 집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우물쭈물할 때.
“앉게.”
서대호가 푹신한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고 자리에 앉은 강현이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토했다.
“우와.”
지금껏 알림창을 보느라 몰랐는데 응접실 벽면에 몬스터의 머리통이 가득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블린이나 타란툴라 같은 허접한 놈들이 아닌, 강해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또 머리통 말고도 곳곳에 무기가 걸려 있었다.
창, 검, 활 등 한눈에 보기에도 비싸고 좋아 보이는 물건들.
그사이에 앉아 있는 서대호는 산군이라는 별명처럼 산의 주인 같았다.
‘연출 잘했네.’
이 정도면 누구라도 서대호의 위엄에 압도당하리라.
저 머리통도 그렇고 무기들도 그렇고 디테일이 장난 아닌 게 홍보팀이나 이미지 메이킹 팀이 많은 노력을 한 듯 보였다.
실제로 많은 상급 헌터가 매니저들의 도움을 통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에 강현의 생각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저, 저 이빨 살아 있는 거 봐. 진짜 같네.’
강현이 신기한 듯 와이번의 머리통을 보고 있을 때.
“11년 전 A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였지. 꽤 즐거운 싸움이었어.”
“네?”
“그 옆에는 4년 전 S급 보스 몬스터의 머리. 놈을 잡느라 길드 전체가 달려들었었지.”
“아아? 예?”
“저 위의 검은 일본에서 온 어느 애송이의 것이지. 나름 검 좀 휘두른다며 달려들길래 얼굴을 함몰시키고 빼앗아 왔네. 한 달 전에 말이야.”
하하하하!
서대호는 비로소 대화 거리가 생겨 즐거운 듯 웃었지만, 강현의 등에는 식은땀이 더욱 흥건하게 흘렀다.
‘진짜였다고? 연출이 아니라?’
그럼 이 방에 가득한 게 시체의 머리와 패배자의 무기라고?
아득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진짜 호랑이 굴에 들어왔구나.
상태창의 메시지는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그래, 이제 좀 편한 자리에 왔으니 묻지.”
서대호의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다.
강현 또한 이제까지의 놀람과 당황스러움을 정리하고 대화에 집중했다.
이 퀘스트,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 검술, 검성의 해파칠십이검을 누구에게 배운 것인가?”
강현이 잠시 고민했다.
검성의 첫 검법이라는 상태창의 메시지를 보았으나 사람에게 배우지 않았다.
그렇다고 검에서 경험을 빨아들였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그 누구에게도 능력 전부를 밝힐 생각은 없었다.
답하기 전에 상대에게 물어야겠다.
“어떻게 이 검이 해파칠십이검인 걸 아셨습니까?”
“…….”
서대호의 눈에서 푸른 빛이 번뜩였으나 강현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강현에게도 검성은 중요한 이름이었다.
단순히 우연히 얻은 검술의 주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현의 단호한 표정을 살피던 서대호가 입을 열었다.
“오랜 친구지. 그래서 자네가 쓰는 검이 해파칠십이검인 것을 알아보았고. 내 예전부터 그 검을 막아 내며 대련을 즐겼거든.”
“그러셨군요.”
“답했으니 이번에는 자네 차례야.”
“능력을 통해 깨우쳤습니다.”
“음! 그것뿐인가?”
“네. 그것뿐입니다.”
강현의 대답에 서대호가 순간 말을 멈췄다.
사실 강현 또한 이렇게 뭉뚱그려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밝히는 것은 치명적이기에 이렇게라도 변명해야 했다.
“어쩌다가? 언제? 어떻게 깨우치게 되었나?”
오랜 친우를 추억하는 서대호의 입에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게이트라는 비극적 재앙이 세계를 덮치고 난 후.
난세에는 영웅이 탄생하듯 한국에도 영웅들이 탄생했다.
산군 서대호도 그중 하나.
그런 그가 인정하는 영웅 중 영웅이 한 명 있었다.
한반도를 지키는 검.
검성 이석천.
검성의 검법을 사용했으니 직접 배웠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녀석이 실종된 지 7년 하고도 2달째야. 검성에게 배운 것은 아닐 테니 그 검술을 얻은 이유가 있겠지. 그게 무언가. 무어라 생각하나?”
“그냥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뿐이라고? 진심으로?”
“맞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그저 우연으로 자네가 해파칠십이검을 얻고 휘둘렀다고? 그걸 믿으라고?”
“게이트와 시스템 창은 가능한 이야기라 생각하십니까? 오늘 현장에 산군께서 나타난 것도 우연이 아닙니까?”
“이보게!”
[산군의 의심이 증가했습니다. 의심도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퀘스트를 실패합니다]
[현재 의심도: 5, 신뢰도: 0]
강현의 모르쇠에 서대호가 벌컥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잠시 숨을 진정시킨 서대호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강현 또한 눈앞에 떠오른 알림을 보고는 눈을 꾹 감았다.
“미안하네. 내 그 친구 이야기만 나오면 감정이 격해진다네. 그래도 나쁜 의도가 아니니 대답해 주었으면 하네.”
강현이 잠시 침묵했다.
이대로 모른다는 말을 반복해 봤자 퀘스트는 실패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아니면 퀘스트 실패를 감수해야 하나?’
강현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서대호의 의심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포기할까? 귀인이고 뭐고 그냥 침묵으로 일관할까?
고민하던 강현이 결국 입을 열었다.
“아직 검성을 찾으십니까?”
강현의 질문에 서대호가 잠시 아픈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렇다네. 그러니 자네의 대답이 꼭 필요해. 자네가 커다란 도움이 될 수도 있네. 작은 실마리라도 필요하네.”
서대호의 간절함이 깃든 눈을 보며 강현이 눈을 감았다.
현재 의심도는 10.
앞에 있는 건 실종된 검성을 아직도 찾고 있는 검성의 친우.
거대한 등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지쳐 보이는 건 왜일까.
‘검성… 마지막 공격대.’
이를 떠올린 강현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여러 가지 것들이 휘몰아쳤다.
걱정, 분노, 후회, 슬픔, 미움, 사랑.
오랫동안 잊고 지내려 했던 누군가에 대한 감정이 몸을 잠식했다.
무언가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할 말이 이것밖에 없었다.
‘정말 이야기하기 싫었는데.’
강현 또한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
서대호의 떨리는 손가락을 보며 강현의 마음도 흔들렸다.
단번에 적을 쓸어 내던 거력이 담겨 있는 손이 친우의 소식을 듣고는 노인의 그것이 되었다.
그의 손에서 아직도 자식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힘 없는 손가락을 떠올렸다.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그런 걸지도 모르지. 이런 강한 사람마저 떨게 하는.’
이내 결심한 강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부모님께서… 검성의 마지막 공격대 사건 때 실종되셨습니다.”
강현이 자신의 아픔을 고백했다.
둘 다 말이 없었다.
강현이 바닥으로 눈을 깔았고 그 모습을 본 서대호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자신의 감정이 너무 앞섰다.
나이를 그리 먹고 아직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
스스로 화가 날 정도.
자신의 사정만 생각했지 누군가 또한 같은 아픔, 아니 그 이상의 아픔을 품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왜 못 했단 말인가.
“미안하네. 정말로.”
“괜찮습니다.”
서대호의 진심 어린 사과에 강현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본인도 오랜만에 꺼내 보는 이야기였다.
검성의 마지막 공격대.
사상 초유, 세계적으로도 본 적 없던 거대한 게이트가 한국에 나타났고.
당시 검성을 비롯한 수많은 헌터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들어갔다.
해당 지역을 폐쇄한 뒤 민간인은 모두 피신.
주변에 깔린 경찰과 군인, 게이트 연구원들만 해도 수천.
그날, 그들이 모두 사라졌다.
단 한 명도 남김없이.
그리고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국가적으로 크나큰 손실이었고 그들의 가족에겐 갑자기 닥친 비극이었다.
“부모님께선 헌터셨나?”
“게이트를 연구하는 연구원이셨습니다. 그날 게이트 바깥에서 현장 연구를 진행하셨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서대호가 관자놀이를 붙잡은 채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친우를 찾을 기회라 여겼건만.
아쉬움과 실망감.
그리고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아이를 몰아붙인 자신에 대한 분노와 강현에 대한 미안함.
분명 여기서 멈춰야 했다.
상대의 아픔을 자극하는 짓은 멈춰야 했다.
“자네는… 아직 기다리는가?”
그러나 서대호가 결국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했다.
이젠 아무도 그들을 기다리지 않았기에.
이젠 누구도 그들을 찾지 않았기에.
홀로 기다렸고 홀로 찾았다.
지쳤던 것일까.
앞에 있는 나이 어린 청년에게서 위로와 공감을 얻고자 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지만 이렇게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어쩌면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자신을 비롯한 주변을 괴롭히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저, 군인입니다.”
강현의 알 수 없는 대답에 서대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깊이 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고아는 군에 입대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는 건…….”
“저는 믿습니다.”
강현이 항상 가슴 깊이 묻어 놓았던 자신의 소망을 슬며시 들췄다.
“부모님은 그저 먼 길을 떠나 계신 것뿐이라고.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실종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멀고 먼 고난의 길을 떠났고 언젠간 돌아올 것이라고.”
그래서 실종 신고를 하지 않았다.
군대에 가야 할 때, 고민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냥 그러기 싫었다.
강현의 미련한 고집이었다.
실종을 인정하면 정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장건철 병장에게 옮은 것일까.
괜히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걸 느낀 강현이 천장으로 고개를 올렸고.
때마침 알림이 떠올랐다.
[산군 서대호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설득한 건가?’
호감도가 오른 걸 확인한 강현이 퀘스트 성공 알림을 기다릴 때.
“그래, 자네와 나 둘 다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군. 그런데 말이야.”
서대호가 잠시 가슴 속에 차올랐던 감상을 치우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 검법을 획득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네.”
[서대호의 의심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서브 퀘스트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을 실패했습니다!]
[페널티 호랑이들의 지속적인 의심 페널티가 적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