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파하, 흐읍!
몰려드는 시체들과 가슴이 갈라진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전우.
“장건철 병장님!”
“장만수! 정신 차려! 우선 막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다들 끔찍한 싸움을 이어갈 때.
“후우, 후우.”
듀라한을 앞에 둔 강현이 폐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고물 속 방대한 경험치가 몸 안으로 밀려들어 옵니다!]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엄청난 양의 경험치.
[하급 검술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하급 검술 레벨이 올랐습니다. 검술에 더욱 능숙해집니다]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드는 경험치에 강현의 몸이 떨릴 정도.
연이은 알림이 울리길 잠시.
[하급 검술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포화 상태에 다다랐습니다]
[하급 검술 스킬이 중급 검술 스킬로 향상됩니다!]
[검성의 첫 검법 해파칠십이검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마지막 스킬 획득을 끝으로 알림이 잠잠해졌고 몸의 떨림도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후우.”
강현이 깊이 들이쉬었던 숨을 뱉으며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알림은 많았지만, 시간은 짧았다.
아직도 1분대원들이 몰려드는 시체를 맞이해 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으으윽! 강현아, 피해……!”
바닥에 누운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장건철 병장의 모습이 보였다.
황세아 중사 또한 장건철 병장이 빠진 자리를 채우느라 정신없었다.
강현이 이빨을 까드득 갈며 눈앞의 듀라한을 노려보았다.
[히든 퀘스트 첫 진검승부를 시작합니다]
“웃기는 소리…….”
퀘스트가 아니어도 이 새끼는 반드시 죽이리라 결심했던 차였다.
총이 안 되면 손으로라도 찢어 죽일 거다.
“보상? 스킬? 다 X 까라 그래.”
순간 모든 걸 부정할 만큼 강현은 분노한 상태였다.
분노를 원동력으로 삼은 강현이 검을 굳게 쥐었다.
때로는 이런 막무가내식의 감정이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게 만든다.
[스킬 해파칠십이검을 발동합니다]
[경고 아직 스텟 레벨이 낮아 몸에 큰 부담이 갑니다]
“개소리!”
지금 강현처럼.
경고를 무시한 강현이 검을 들어 올렸다.
허여멀건 눈자위를 데룩데룩 굴리던 듀라한이 기다렸다는 듯 땅을 박찼다.
빠르게 달려든 놈이 자신의 머리를 철퇴처럼 휘둘렀다.
쾅!
검으로 막아 내자 묵직한 충격에 몸이 울릴 정도.
바로 뒤따라 나오는 듀라한의 검격.
장건철 병장을 단번에 무력화했던 연계기.
[능숙한 몸놀림을 발동합니다. 회피 속도가 증가합니다]
간신히 공격을 피한 강현이 손아귀에 든 검을 꾸욱 잡았다.
그리고는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경험을 그대로 재현해 냈다.
바로 검성의 첫 검법 해파칠십이검을!
“흐읍!”
숨을 멈추고 발부터 허리, 어깨까지 전달된 힘을 뿌렸다.
까앙!
강현과 듀라한의 검이 부딪혔다.
“파하, 흐읍!”
이번에는 더욱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 검을 뿌렸다.
방금은 한 호흡에 한 번, 지금은 한 호흡에 두 번.
채챙!
듀라한의 검이 뒤로 튕기며 놈의 가슴이 열렸다.
잠깐의 빈틈이 보였으나 놈의 머리통이 그 자리를 지나갔다.
후우우웅!
만일 무작정 파고들었다면 그대로 맞았으리라.
잠시 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털어낸 강현이 다시 가슴을 부풀리며 숨을 머금었다.
채채챙!
뱉어 내고 다시 숨을 머금는다.
채채채챙!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점차 한 호흡에 뻗을 수 있는 검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키학!”
듀라한이 뒤로 밀렸다.
놈의 머리통이 소리를 질러 대었고 검과 자신의 머리를 끊임없이 휘돌리며 강현을 이겨 내려 했으나.
강현이 한 호흡에 휘두를 수 있는 검이 늘어날수록.
점차 공격에 파묻혔다.
물론 강현 또한 편한 상황은 아니었다.
[과도한 검술 사용으로 몸에 무리가 갑니다 신체 손상률이 오릅니다]
[불굴, 강골 특성과 능숙한 몸놀림 스킬의 보정으로 손상 속도가 느려집니다]
이미 신체 한계를 넘은 지 오래.
손아귀는 찢어져 너덜너덜해졌고, 숨이 모자란 폐는 쪼그라든 공 같았다.
몸의 근육은 찢어질 듯 위태로운 소리를 냈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지금 검을 멈췄다간 패배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게 휘두르고 또 휘둘러.
한 호흡에 열일곱 번의 검을 휘둘렀다.
듀라한의 몸 곳곳에 생채기가 났고 놈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끔찍했던 싸움을 끝낼 때였다.
“이번엔 좀 다를 거다. 이 X팔 새끼야.”
놈은 알아듣지도 못할 욕을 한 강현이 깊게, 아주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몸 안에 있던 마나를 최대한도로 끌어 올렸다.
[해파칠십이검, 열여덟 번째 검격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기능 파도를 개방합니다]
우우웅.
마나를 머금은 검이 새파랗게 빛나며 공명했다.
“흐읍!”
그리고 강현이 숨을 참으며 검을 뿌렸다.
“끼에에엑!”
듀라한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며 검을 휘둘렀지만.
총 열여덟 번.
마나를 머금은 검을 빠르게 휘두르자.
검에 머물러 있던 기운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연속적으로 몰려드는 푸른 기운은 마치 파도와 같이 거셌고 강력했다.
듀라한은 아무것도 못 하고 열여덟 번이나 날아오는 푸른 마나를 그대로 맞았다.
“후우.”
적이 쓰러지고 나서야 강현이 들이마셨던 숨을 뱉어 냈다.
마나를 머금은 푸른 입김이 공중에 흩어졌고.
아직 공중에 남아 있던 검격의 흔적도 서서히 옅어져 갔다.
푸른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건 듀라한의 조각난 시체뿐이었다.
강현의 완벽한 승리.
“저, 괴물 같은 새끼…….”
그 싸움을 누운 채 지켜보던 장건철 병장이 강현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자신은 단번에 무기력하게 당했건만.
“재능인가.”
잠시 매울 수 없는 격차를 느낀 장건철 병장이 씁쓸하게 중얼거리고는 기절했다.
“장건철 병장님!”
강현이 급히 달려가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숨이 붙어 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다!
문제는.
“길 뚫어!”
아직 시체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저 멀리 네크로맨서가 아직 살아 있다는 점.
이미 죽어서 이지를 잃은 놈이건만 왜 아직도 움직인단 말인가!
그때, 듀라한의 패배를 확인한 네크로맨서가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마치 화가 난 듯 더욱 검고 더욱 많은 기운을 뿜어냈고.
후웅, 후웅, 후웅.
스켈레톤과 좀비들 사이로 작은 게이트가 연속해서 열렸다.
방금 듀라한이 걸어 나온 것과 같은 모양.
“이건 너무 많은데…….”
황세아 중사가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분대원들을 보호하며 싸워왔기에 황세아의 능력도 한계.
강현이 듀라한을 이긴 건 정말 기적 같은 승리였으나 여럿을 상대하지는 못할 터.
1분대원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지금껏 힘차게 뿜어내던 기운이 서서히 약해졌다.
다들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
“작은 행운이 때론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지?”
생소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참 신비한 일이었다.
수백 좀비의 비명과 스켈레톤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뚫고 선명히 들리는 목소리라니.
다들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두리번거릴 때.
지금까지 강현의 싸움을 지켜보았던 노신사가 어느새 기절한 장건철 병장 옆에 나타났다.
“춥겠군. 이것 좀 먹고 쉬고 있어.”
노인이 품에서 작은 물약을 꺼내 장건철 병장의 입에 부어 넣었다.
그러자 깊게 갈라져 있던 장건철 병장의 가슴팍이 스멀스멀 아물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싸구려 물약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장건철의 상태를 확인한 그가 양복 상의를 벗어 덮어 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마치 산이 일어나는 듯한 느낌.
그의 푸르스름한 기운을 담은 눈동자가 강현에게로 향했다.
“내 오늘 작은 행운을 만난 것 같아.”
그의 알 수 없는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할 때.
[필요한 때에 작은 행운의 결과, 귀인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히든 퀘스트 첫 진검승부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성공 결과로 귀인 서대호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이후 메인 퀘스트에서 산군 서대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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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호
직책: ???
나이: 77
호감도: 10
정보: 강하다, 졸라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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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이름은 서대호.
국내 5대 길드이자 초창기 게이트가 생겨났을 때부터 한국 헌터계를 이끌어온 산군 길드의 수장.
그가 마음먹는다면 그 누구도 강현을 비롯한 1분대원을 해칠 수 없으리라.
또 지금껏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사실 하나.
서대호가 존재감을 드러낸 이후 움직이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 그르르.”
심지어 이미 이지를 잊은 좀비와 스켈레톤마저도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을 뿐.
저벅, 저벅.
산군 서대호가 마치 홀로 산책을 나온 듯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여유로운 와중에도 와이셔츠 안 가득한 근육이 꿈틀거리며 그의 강함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서대호가 멍하니 멈춰 있는 1분대를 지나 시체들 앞에 멈춰 섰다.
‘서대호… 저 할아버지를 분명 만난 적은 없는데.’
분명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어딘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강현이 잠시 고민하던 중.
서대호의 손짓 한 번에 이때까지의 모든 감상이 날아갔다.
퍼석.
큰 소리는 없었다.
가볍게 휘두른 손과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을 뿐.
그런데 앞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스켈레톤도 좀비도 잔뜩 열린 소형 게이트까지 모두.
지우개로 지워 버린 듯 삭막해진 풍경 속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네크로맨서 하나.
마치 일부러 남겨 놓은 듯 멀쩡했다.
“흐음, 안에 있는 건 누구인가?”
서대호의 낮은 목소리가 울리자 네크로맨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완전히 제압당한 모양새.
“다시 묻지. 누구인가?”
으르렁거리듯 낮은 목소리가 다시 주변을 울렸고.
동시에 네크로맨서의 눈, 코, 입, 귀에서 검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그리고 마지막 발악을 하듯 강현을 보며 달려들었다.
“불씨는 내 꺼야!”
그러나 한 발을 떼기도 전.
서대호의 손이 움직였고 앞서 사라졌던 시체들처럼 덧없이 사라졌다.
압도적인 강함.
‘졸라 강한 정도가 아니잖아.’
장건철 병장이 아까 자신보고 한 말이 생각났다.
괴물?
저기 진짜 괴물이 있었다.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서대호가 뒤돌아서서 호송 대열을 바라보자.
“충-성! 산군을 뵙습니다!”
서대호가 입을 떼기도 전 황세아 중사가 바짝 경례를 붙였다.
아무리 군인이라지만 그녀 또한 헌터였다.
그 유명한, 아니 전설적인 1세대 헌터 산군 서대호에 대해 모를 리가 없었고 황급히 경례를 붙인 것.
거기다 자신들을 구해 주었으니 감사한 마음도 절로 일었다.
“그래, 자네가 책임자인가?”
“중사 황세아! 그렇습니다!”
“그럼 내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몸 바쳐 들어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그럼, 육체? 육신이 필요하십니까?”
“아니, 전혀 필요 없네. 진심으로”
황세아 중사의 화법은 그 산군 서대호마저도 당황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한점 흐트러짐 없는 머리카락을 다듬은 서대호가 호송대를 보며 빙긋 웃었다.
“내 길을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나 같은 늙은이도 호송을 좀 해 줄 수 있나?”
방금 여러 생명을 구한 것 치고는 참 간단한 요청.
평소 차가운 표정으로 유명한 황세아 중사였지만 지금만큼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얼른 정신을 차린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집으로 가네.”
“…아. 같이 가 드립니까?”
저 둘이 대화하니 도저히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서대호가 고개를 저으며 장건철 병장을 가리켰다.
“우선 환자도 이송하고 호송이 끝난 것이 아니니 그 일부터 처리하게. 나는 옆에서 길 알려 줄 안내원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하필 오늘 비서들을 일찍 퇴근시켰고 홀로 모르는 길을 가겠다 고집을 부렸다.
갑작스레 내비게이션이 고장 났고 흘러 들어온 곳이 전쟁터.
그리고 그곳에서 참으로 반가운 검법을 만났다.
서대호의 눈에는 검은 특임복을 입고 있는 강현의 모습과 그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서대호가 생각하기에도 참 놀라운 행운이고 우연이었다.
‘살 대로 산 늙은이가 우연과 인연을 믿는다는 게 참 웃긴 일이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그런 법이지.’
차마 그 검술, 해파칠십이검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더군다나 그 검술을 쓰는 이가 헌터 특임대라면 더더욱.
서대호는 몰랐지만 사실 오늘 겪었던 작은 우연들 모두가 강현이 지난 퀘스트의 결과로 얻은 필요한 때에 작은 행운이 발동한 결과였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다.
작은 행운이 적절한 때를 만나면 많은 것을 바꾸는 법.
살 만큼 산 서대호는 사소한 우연과 인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저 친구가 좀 안내를 해 주었으면 하네. 우리 집까지. 내 옆에서.”
서대호의 두꺼운 손가락이 정확히 강현을 가리켰다.
[서브 퀘스트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을까?]
‘상태창 이 새끼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