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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30화 (30/277)

30화 PX 플렉스

3억, 3억, 3억.

강현의 머릿속에서 3억이란 소리가 메아리쳤다.

살면서 3억을 만져 볼 날이 올 줄 생각도 못 했다.

물론 만지지는 못했지만 분명 ATM에 찍힌 금액은 그의 예상 범위를 훌쩍 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코웃음 칠 만한 금액일지 모르지만, 강현에겐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아니 21살, 그것도 군대에 있는 이등병의 통장에 3억이 꽂혔다?

‘이, 이게 뭐야? 뭐지? 잘못 들어온 건가?’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혹시나 해서 ATM기의 거래 내역 확인을 눌러보자.

강현은 이 돈이 자신이 한 일 때문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타란툴라 사냥 보상금. 군단 지급.

‘아, 타란툴라!’

그래, 그걸 왜 잊고 있었지?

그 많은 거미를 죽였는데 중대장님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다 싶었다.

군단에서 직접 쥐여 주는 돈이었구나.

일과를 바쁘게 보내다 보니 완전히 잊고 있었다.

강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확실한 보상.

많은 이들이 군대를 피하는 이유, 또는 의미 없는 시간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보상 없는 희생.

평생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부조리함.

희생을 치하하는 말이라곤 ‘국가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 주었다’가 전부였다.

참으로 공허한 말이다.

20대 초반, 가장 아름답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를 납치당하는 울분.

‘생각보다 괜찮네!’

그러나 3억이라는 실질적인 돈을 마주한 강현의 생각이 좀 달라졌다.

단순히 군대가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다라는 단순한 의미는 아니었다.

그에겐 인생이란 어릴 적부터 의미 없는 쳇바퀴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발버둥 쳐 봐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강현에겐 삶이란 그런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아니구나.’

감회가 새로웠다.

자신이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치는 대로 노력하면 노력하는 대로 모두 되돌아왔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

경험치라는 이자까지 덕지덕지 붙어서 되돌아오더니 이젠 돈까지 굴러 들어왔다.

‘인생, 살 만하다.’

강현은 처음으로 사는 것의 기쁨을 느꼈다.

앞으로도 지금만 같기를, 잘 사는 인생이 되기를 속으로 바랐다.

다만, 이건 용납 못 하겠다.

입급 내역에 추가로 쓰여 있는 글자.

-하지 않겠는가. 임관.

‘돈은 돈이고 의무 복무 4년은 별개지.’

응, 아냐. 어림도 없어.

누릴 것만 누리고 전역할 거야.

강현이 누군지도 모를 상대를 향해 단호히 거절 의사를 전할 때.

장만수 일병이 강현의 등을 툭 쳤다.

“야, 강현아 괜찮냐?”

“이병 최강현.”

“뭐해? 빨리 와. 너 혹한기 방한용품 사야 한다니까.”

“알겠습니다.”

강현이 얼른 카드를 빼낸 뒤 장만수 일병을 따라 PX 안으로 들어갔다.

주르륵 늘어서 있는 물품들.

그중 겨울 방한용품이 모여 있는 판매대 앞으로 간 장만수가 목 토시, 귀마개, 요술 장갑 등 여러 물품을 추천했다.

그중 묘한 붉은 빛을 띠는 내의 하나를 본 장만수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저 제일 비싼 게 좋기는 한데… 아무래도 좀 돈이 아까우니까 이걸로 하자. 이것도 나름 싸고 질 좋아. 가성비 끝판왕.”

“저거 얼맙니까?”

“저건 내열 처리된 던전용이라 비싸. 세금 빼고도 꽤 비쌀걸?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장만수 일병이 PX병에게 물어보자.

“비싸요.”

“아, 그래서 얼만데요.”

“40만 원이요.”

PX병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장만수 일병이 들었지? 라는 표정으로 강현을 바라보았다.

“아직 이등병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이거 10만 원짜리가 가성비가 좋아. 더 싼 거 사려면 5만 원짜리도 있긴 한데 좀 바람이 숭숭 들어올걸?”

“사겠습니다.”

“그래, 이걸로.”

장만수가 가성비 좋다는 내복을 장바구니 안으로 집어넣으려는 순간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괜찮습니다.”

“어? 아니 이게 제일 괜찮다니까? 짬을 믿어봐.”

“저 저거 사겠습니다.”

강현이 40만 원짜리 내복을 가리켰고.

곧 손가락을 쫙 폈다.

“다섯 개.”

“어? 다섯 개?”

“다섯 개 사겠습니다.”

그리고 강현의 쇼핑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 어어. 야, 강현아.”

갑작스러운 강현의 폭주에 장만수 일병이 당황했다.

병장들도 비싸서 잘 사지 않는 물건들을 이등병이 저렇게까지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가장 비싼 귀마개, 목 토시 등등 PX에서 가장 비싼 방한용품을 넉넉히 담은 그가 장바구니를 계산대에 올려놨다.

역시나 말도 안 되는 구매 목록에 PX병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아저씨 이거 비싸다고 이야기했잖아요. 바꿔 와요.”

그러나 강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계산이요.”

“아니, 이거 비싸다니까.”

“계산이요. 당장.”

강현의 당당한 표정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던 PX병이 어쩔 수 없이 바코드기를 들어 방한용품을 찍었다.

삑, 삑, 삑.

한 번 찍힐 때마다 쑥쑥 올라가는 돈.

어느새 PX에서 물건을 사던 병사들의 눈이 모두 계산대로 향해 있었다.

드디어 모든 물품 계산이 끝났고.

“…240만 원이요.”

PX병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어느새 조용해진 PX를 울렸고.

“와-.”

계산을 위해 줄 서 있던 병사들, 물건을 고르던 병사들, 심지어 탁자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병사들조차 탄성을 내뱉었다.

자그마치 군대 PX에서 240만 원이라니.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금액.

사회에서도 한 번에 저 정도 금액을 쓰면 대접받을 수 있을 거다.

다들 침을 꼴딱꼴딱 넘길 때.

“여기요.”

강현이 군인의 상징.

나라사랑카드를 당당히 넘겼고.

“결제 끝났습니다.”

어느새 요 자 대신 끝말을 다나까로 바꾼 PX병이 두 손 모아 카드를 건넸다.

지금껏 PX병을 하면서 수많은 계산을 했지만, 이 정도 금액은 처음.

고작 이등병 달고 있는 아저씨가 그저 장난치는 줄 알았건만 정말 계산해 버렸다.

“야, 야, 강현아. 진짜로 그거 다 사게? 어떻게 하려고?”

덩달아 놀란 장만수 일병이 물었고.

“저 갈아입을 거 두 세트 챙기고 나머지는 집에 택배로 보내려 합니다. 할머니 필요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내복 세 벌이면 지내실 만하리라.

강현이 미소 지었고 얼추 집안 사정을 들었던 장만수 일병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사야지. 잘 생각했다.”

강현의 등을 두드려 주는 장만수 일병의 입가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퍼져 있었다.

드라마에서 첫 월급 받은 자식이 부모님을 위해 선물을 사는 장면을 볼 때마다 강현도 그러고 싶었다.

삶에 쫓겨 근근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번듯하게 선물 한번 해 보고 싶었다.

장만수 일병도 그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도 처음 작전 보상금을 받았을 때 집에 선물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크흐흡!”

덩달아 그 마음을 이해한 장건철 병장이 또 눈물을 참지 못하고 얼른 PX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같이 군 생활을 오래 한 몇몇 분대원이 들썩거리는 그의 등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휴, 허벌 눈물 또 시작이네.”

“저 정도면 근육의 70%는 물인 거 아님까?”

“사람 몸이 원래 물이 70%야.”

“아, 그럼 덩치가 커서 눈물도 많은가 봅니다.”

잠시 소란스러운 상황이 지나간 뒤.

“1분대의 승리를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지 말입니다!”

자리에 모인 1분대원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종이컵에 따른 콜라를 꿀떡꿀떡 넘겼다.

“캬! 이런 날 맥주 한잔해야 했는데.”

“아, 맥주가 술입니까? 물이지. 소주 한 짝은 마셔야지 말입니다.”

“아, 그래서 저번에 분대 외출 때 토했냐?”

“…아, 냉동 꿀맛이네.”

얼른 말을 돌리려던 선임이 냉동 음식을 먹어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이거 왜 이리 맛있냐?”

“냐? 선임이 니 친구냐?”

“아니, 이거 정말 맛있습니다. 장난 아닙니다.”

“아이씨. 새끼 괜히 말 돌리려고, 냉동이 맛있어 봤자지.”

후임을 타박하며 따끈하게 데워진 냉동 음식을 입에 넣은 다른 선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오! 이거 뭐야? 절묘하게 잘 돌렸네. 누가 했냐?”

“이병 최강현.”

“그래? 얼마나 맛있는데? 오! 이거 뭐냐?”

다들 강현이 직접 데워 온 냉동을 먹어 보고는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이거 이렇게도 돌릴 수 있구나. 아니 짬을 헛먹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맛이 안 났지?”

“야, 강현아. 이건 어떻게 했길래 이런 맛이 나냐?”

선임들이 허겁지겁 냉동을 먹어 치우며 물어볼 정도.

사실 이병, 일병 때야 냉동이건 과자건 뭐든지 맛있지만, 상병, 병장으로 넘어가면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먹게 된다.

그런데 강현이 가져온 음식들은 그들의 까다로운 입맛에도 꼭 맞았다.

너무 데워서 딱딱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설익지도 않았다.

거기다 본래 과한 조미료 맛이 입을 텁텁하게 하기 마련인데 훨씬 부드럽게 넘어갔다.

그야말로 놀라운 변화.

“이병 최강현! 감사합니다!”

강현도 이번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기초 요리 스킬을 적용합니다. 과한 조미료 맛이 감소합니다]

[새로운 고물 전자레인지를 수집하였습니다. 이전 사용자들의 경험을 불러 옵니다]

[슈넬 치킨이 가장 맛있어지는 시간 6분 35초]

[크림 우동 맛있게 먹는 법: 1분마다 면을 뒤집은 뒤 마지막 30초를 남겨 놓고 비빈 뒤 다시 데운다]

참 소소하지만 쓸모 있는 팁이 쏟아졌고 강현은 그대로 따랐다.

선임들에게 능력 덕이라 말할 수는 없기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분대 신뢰도가 상승하였습니다]

그리고 강현의 이런 모습마저도 이번에 새로 생긴 분대 신뢰도가 되어 돌아왔다.

이런 작고 작은 것들이 쌓여 나중에 분대의 힘이 되리라.

그리고 분대가 강해지는 만큼 강현 또한 안전해질 것이다.

더 나아가 작전에서도 큰 공을 세울 수 있게 될 테고.

‘그러면 오늘같이 돈도 들어오겠지.’

이 돈이 쌓이고 쌓이면 분명 집도 옮길 수 있을 것이고 할머니도 폐지를 줍지 않아도 될 것이며 여동생 서연이도 학교 다닐 때 창피한 일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 나아지는 삶.

‘산다는 게 행복한 거였구나.’

강현이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꼈다.

분대 회식이 마무리된 후.

“그래서 그때 말야, 내가 방패를 들고 딱 앞에 섰거든? 근데 전기가 파파팍! 내가 생각했지, 이거 막을 수 있겠다.”

“캬! 정말 멋있습니다!”

“히히히, 그래? 그렇지? 근데 어째 좀 더 강해진 거 같기도 하고 말야. 강현이가 멀리서 엄호 사격해 준 덕분인가?”

생활관에 돌아온 장만수 일병이 강현을 앞에 두고 오늘 있었던 전투에 대해 한창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볼이 붉어질 정도.

강현과 장만수 일병이 낄낄거리며 서로를 띄워 주고 있을 때.

“뭘 그렇게 웃냐?”

김대영 상병이 생활관 문을 열며 들어섰다.

한창 좋았던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강현과 장만수 일병이 입을 닫았다.

그때.

“장만수, 오늘 잘 버텼다. 그리고… 최강현, 너도 오늘 잘했고.”

김대영 상병이 자기 장비를 정리하면서 무심히 툭 칭찬을 건넸다.

잠시 눈을 마주친 강현과 장만수 일병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또 칭찬했다고 빠지지 말고. 그럼 바로 갈굴 꺼니까. 알겠냐?”

괜히 한 번 더 툴툴거린 김대영이 자리에 누워 버렸다.

자리에 있던 선임들을 포함 강현과 장만수 일병이 서로를 마주 보며 씩 웃었다.

[분대 신뢰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오랜만에 1분대에 평화가 찾아왔다.

* * *

며칠 후.

“야, 건철아 너희 4분대 이겼다며?”

“예, 분대 전투에서 이겼습니다.”

“와, 대박이다. 훈련 빡세게 굴렸나 보다?”

“어? 1분대가 4분대 이겼습니까? 오, 축하드립니다. 장건철 병장님.”

복도에서 오가던 선, 후임들이 장건철 병장을 향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평소 선, 후임 관계가 좋던 장건철 병장의 1분대가 워낙 처참하게 당했던지라 좀 불쌍했는데 반가운 소식이었다.

물론 장건철 병장 또한 연이은 축하에 기분이 좋았다.

매일 패배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이렇게 첫 승리에 축하까지 받다니.

“뭐, 다들 열심히 해 줬습니다. 그리고 강현이가 워낙 딜링을 잘 넣어 주는 바람에 수월했습니다.”

그는 잠깐 승리에 취해 거만해지는 좁은 그릇이 아니었고 강현의 활약을 잊지도 않았다.

겉으론 딱딱하고 자기 것만 챙길 것 같아도 분대원들을 세심하게 볼 줄 아는 남자.

그야말로 외강내유.

그리고 장건철 병장의 말에 중대원들이 다시 한번 강현에 대해 좋은 인식을 받았다.

“오, 그래? 그럼 나중에 합동 훈련 함 하자. 강현이 실력 좀 보고 싶다.”

“그럼 우리 분대도 좀 예약해 주십쇼. 장건철 병장님.”

집단생활, 그것도 24시간 같이 지내는 군대 같은 곳에선 이런 소소한 소문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좋은 제의를 받은 장건철 병장 또한 강현에 대한 호감도가 더욱 올라갔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강현의 호감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장건철 병장의 호감도가 30에 도달하였습니다]

[혜택이 주어집니다. 새로운 장소 체력 단련실이 개방되었습니다]

“야, 강현아! 운동 가자!”

또 성장할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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