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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28화 (28/277)

28화 심판의 시간이다

군대엔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인다.

밖에서 듣는다면 설마 그런 인간이 있겠어 싶지만.

진짜 있다!

20대 초반, 계급으로 위계를 나눈 집단에선 평소에 나오지 않던 인격이 불쑥불쑥 나온다.

폐쇄된 공간 속 때때로 만나는 불합리하며 답답한 상황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

어쩌면 강형태나 김대영도 밖에선 멀쩡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억지로 맺어진 선, 후임 관계는 많은 사람을 괴롭혔고 때론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왜 왔냐?”

사이가 틀어진 동기만큼 돌이키기 어려운 관계도 없었다.

장건철 병장이 4생활관에 들어서자마자 날 선 목소리가 들렸다.

“야, 땀 냄새 풍기지 말고 얼른 용무 보고 나가.”

“말 그따위로 하지 마라.”

“아, 그래서 그렇게 안 하면 어쩔 건데?”

작달막한 키의 병장 하나가 장건철 병장 앞에서 눈을 홉뜨며 비아냥거렸다.

언제부터 이렇게 관계가 틀어졌는진 몰라도 4분대와 1분대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분대장인 둘의 관계가 좋지 않다 보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정지훈.”

“뭐. 장건철, 니가 내 선임이냐? 뭔데 이름을 함부로 불러.”

4분대장 정지훈 병장의 말에 장건철 병장이 잠시 한숨을 내쉬며 감정을 다스렸다.

“내일 4분대 시간 있냐?”

“시간? 시간이야 있지. 왜?”

의아한 표정으로 장건철 병장을 보던 정지훈 병장이 씨익 얼굴에 비웃음을 띄웠다.

“뭐, 설마 합동 훈련이라도 하자고 하려고? 난 분대 전투 아니면 안 한다.”

정지훈 병장의 명백한 도발에 자리에 있던 4분대원 몇이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너희처럼 때리기 좋은 표적이 없긴 하더라고. 혹한기 땐 너무 때렸더니 미안하기까지 하더라.”

“그러냐? 만수 기절했을 때 일부러 노리고 공격한 건 미안해서 했나 보지?”

혹한기 분대 전투 때, 공격을 막던 장만수 일병이 기절했다.

본래라면 전투력을 잃은 상대를 공격하는 건 금물.

훈련의 목적은 능력 향상이지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에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러나 정지훈 병장은 기절한 장만수 일병을 집요하게 공격했고.

1분대는 방어력을 잃은 장만수 일병을 보호하려다 더욱 심한 꼴을 당했다.

“그거야 전략이지. 전투에서 봐주는 게 어딨어? 애들한테 그렇게 가르치냐?”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장건철 병장의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러니까 맨날 지지.

장건철 병장이 이를 꾸욱 물었다.

지금은 싸우러 온 게 아니었다.

싸우는 건 내일.

“그래서 말인데 내일 분대 전투 훈련 좀 해 줬으면 해서.”

의외의 말에 정지훈 병장이 잠시 대답을 보류했다.

아니 사실은 가장 열 받는 말을 고르고 있었다.

“그래. 대신 만수한테 저번처럼 추하게 기절하지 말라고 해라. 똑같이 작살낼 거니까.”

“걱정 마라. 이번에는 그런 일 없을 테니까.”

장건철 병장이 생활관 밖을 나가자 정지훈 병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저 새끼 갑자기 왜 저러냐?”

지난번 혹한기 때 워낙 처절하게 깨 놓았기에 전역할 때까지는 부딪힐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혹한기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분대 전투를 하자고 해?

“진짜 뒈지려고 환장했나.”

그렇게 처절하게 깨졌으면서 다시 당당하게 도전을 하는 꼴 자체가 못마땅했다.

그때 분대원 중 하나가 강현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번에 딜러 하나 들어오지 않았슴까. 최강현이라고 신병.”

“아, 이번에 그 타란툴라 막았다는 놈?”

“맞습니다. 타란툴라도 그렇고 작전도 이미 한 번 갔다 왔답니다. 능력 평가 때도 우수했고 말입니다.”

“그래? 그래서 저렇게 자신감이 있으셨나?”

그제야 4분대원들도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분대야 다들 탱커나 준 탱커인 만큼 상황이 답답했고 딜러 하나의 유무가 작전에 큰 영향을 줄 만했다.

거기다 그 강현이라는 놈이 이등병이라고 하나 소문대로라면 꽤 훌륭한 즉시 전력이 돼 줄 터.

그러나.

“하! 그 말을 다 믿냐?”

정지훈 병장이 대번에 후임의 말을 부정했다.

고작 이등병이 해 봤자 무얼 했겠는가.

“타란툴라 나타났을 때도 대대장 있었잖아.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겠냐? 이등병이 그걸 막았다고? 혼자서?”

“하긴…….”

딱히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제 이등병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는 소문들이 너무 많았다.

장비 관리를 끝내주게 잘한다느니, 능력 평가 때 혼자 블러드 울프 넷에 스톤 골렘 한 마리를 총으로 잡았다느니.

“정말 타란툴라의 동굴이었으면 분대 하나는 필요했지 말입니다.”

그거로도 모자라 최소 D급 최대 C급으로 취급받는 타란툴라의 게이트를 홀로 막아섰다.

물론 새끼 거미들을 막았고 성체는 선설민 중령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해도 어쨌든 막은 것은 막은 거다.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냐? 혼자 그런 짓을 어떻게 하냐고.”

그리고 그 소문들이 강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불신을 부추겼다.

아무리 뛰어나도 이등병이다.

그리고 그렇게 뛰어나면 군대를 왜 오겠나?

이미 좋은 길드에 들어가서 대체 복무하는 척하면서 떵떵거리며 살았겠지.

그런데 혹한기 갔다 왔더니 부대에 막 들어온 신병이 이런저런 공을 세웠다는 소문이 들렸다.

“말도 안 되긴 하지 말입니다.”

4분대로선 믿기 어려웠다.

본인들도 이등병 시절을 겪었고 능력 평가를 보았고 첫 작전을 나가 보았다.

이미 겪어 보았기에 강현이 해낸 일들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았고, 그렇기에 믿지 않았다.

사람이란 보통 자신의 경험을 더욱 신뢰했고, 상대가 그 틀에서 벗어나면 시기하거나.

“고작 이등병이 그럴 수가 없지. 거짓말쟁이 새끼.”

거짓으로 치부해 버리기 마련.

거기에 강현의 이등병이라는 직책도 한몫했다.

고정 관념.

이것이 4분대의 눈을 가려 버렸다.

놈이 얼마나 뛰어나던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내일은 장만수 포함 최강현. 그 새끼들 집중적으로 조진다. 어디 한 군데 작살나서 질질 짜 봐야 군 생활 무서운 줄 알지.”

“네.”

4분대원들이 내일 있을 분대 전투를 기대하며 각자의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사실 몇몇은 그냥 자리에 앉아 TV로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지난번처럼 이길 거니까.

* * *

다음 날. 1분대의 비장한 마음과 다르게 한겨울 날씨는 춥고 깨끗하기만 했다.

각자가 어제 점검한 장비를 어깨에 메었고.

“가자.”

장건철 병장이 제 몸통만 한 방패를 들며 분대원들에게 명령했다.

“네!”

일부러 우렁차게 대답한 분대원들이 각자의 장비를 들고 생활관을 나섰다.

지난번 압도적인 패배를 기억하는 선임들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후, 후, 할 수 있다. 견딜 수 있다. 견딜 수 있다. 후, 후.”

장만수 일병의 긴장은 극에 달했다.

지난번 자신 때문에 선임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고 있는 그였다.

이번에도 같은 꼴이 나면 어쩌나.

자신 때문에 혹여 다시 분대가 패배하면 어쩌나 불안했다.

“아, 원래 자주 외우는 주문 같은 거야. 긴장한 게 아니고. 그럼.”

장만수 일병이 강현을 보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젠 후임까지 옆에 있다.

선임이 되어서 맞후임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다.

그러나 이미 장만수 일병의 얼굴을 땀투성이였고 과도한 긴장 때문에 어깨마저 떨렸다.

선임들도 이미 이를 알고 있었으나 굳이 위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될 걸 알았고 자신들도 긴장한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분명 이길 겁니다.”

그때 강현이 장만수 일병을 바라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장만수 일병님, 우리가 이길 겁니다.”

별다른 이유도 별다른 방법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강현의 말엔 묘한 힘이 있었다.

[언변, 신뢰, 감화 특성을 적용합니다. 대상의 불안함이 큰 폭으로 줄어듭니다]

사실 능력으로 얻은 특성의 힘이었지만 여튼 이런 상황에서 생각지 못하게 유용했다.

언변 특성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을 알려 주었고 신뢰는 그 말에 신뢰성을 더해 주었으며 감화는 상대가 마음에 쌓아 둔 방어벽을 완화했다.

단 한 마디였지만 특성 세 개를 흠뻑 머금은 말의 효과는 놀라웠다.

“그래, 이겨야지. 이번에는 꼭.”

장만수 일병의 부르르 떨리던 입술이 멈췄다.

얼굴에 가득하던 불안감이 일순간에 걷히며 결연함이 차올랐다.

그리고 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장만수 일병의 변한 분위기가 앞서 걷던 선임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들 또한 불안함을 느끼고 있던 것은 마찬가지.

[주변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상자들의 불안감이 소폭 줄어듭니다]

[다중 대상 적용으로 언변, 신뢰, 감화 특성의 경험치가 대폭 증가합니다]

[언변, 신뢰, 감화 특성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새로운 특성 전파를 생성하였습니다!]

그저 장만수 일병을 향해 말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메시지가 연속해서 떠올랐다.

단순히 경험치를 통해 레벨을 올리다 못해 새로운 특성까지 얻었다.

기분이 좋은 것도 좋은 것이지만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스킬.

강현의 스킬의 효과를 확인해 보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그가 선임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자.

[기존 특성에 전파 특성을 더합니다. 다중 대상에 연쇄적으로 효과가 적용됩니다]

[불안감이 대폭 하락합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증가합니다]

전투에서 기세는 중요하다.

때론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이기게 만들고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지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 1분대의 기세가 변했다.

“이기자!”

강현의 말을 들은 장건철 병장이 방패를 두드리며 크게 외쳤다.

지금껏 몰랐는데 자신 또한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한 꺼풀 긴장을 벗어던지자 비로소 분대원들이 보였고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자신의 본분을 기억해 냈다.

“1분대, 파이팅!”

“파이팅!”

각자 기세를 돋운 1분대원들이 방금보다 훨씬 씩씩한 걸음걸이로 막사 밖으로 향했다.

1분대와 4분대가 분대 전투를 벌이기로 약속한 야전 전투 교장.

온갖 장애물을 비롯하여 커다란 숲 자체가 전투 진지인 곳.

4분대는 약속 시각보다 30분이 넘게 지나서야 설렁설렁 나타났다.

얼마나 1분대를 무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행동.

“어, 좀 늦었지? 간부는? 설마 안 불렀냐?”

“분대 전투 신청서는 이미 냈다. 참관 간부 필요 없다고 했어.”

“하! 그러냐? 우리야 좋지 뭐. 혹한기 때도 간부들 때문에 살았잖아. 너희.”

“그래서 일부로 안 불렀다. 괜히 말리거나 참견하는 사람 있으면 불편하니까.”

장건철 병장의 말에 정지훈 병장이 인상을 구기며 웃었다.

완전 무장을 한 채 무기를 단단히 잡고 있는 1분대와는 다르게 방탄모도 보호복도 너저분하게 착용한 모습.

“뭐, 그럼 시작할까?”

“우선 장비부터 제대로 착용해라. 다친다.”

장건철 병장의 경고에 정지훈 병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놈의 에이스인 척, 강한 척 좀 그만하면 안 되냐? 아직도 이등병 시절로 착각하는 거냐? 그거 잠깐 잘하던 기억 갖고 아직 그러고 지내니까 좋냐?”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다. 훈련소 때도 장비가 빠지는 바람에 크게 다칠 뻔했잖냐.”

“그러니까 지금 훈련병 아니라고 새꺄! 이등병도 아니고!”

짜증을 내는 정지훈 병장을 보며 장건철 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그런데 선임들이 우릴 비교한 거지 내가 널 괴롭힌 건 아니잖냐. 이제 어린애 짓 좀 그만하면 안 되냐? 지훈아?”

장건철 병장의 말에 정지훈 병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X발!”

훈련병 시절부터 부대에 오고 나서도 항상 장건철 저 새끼한테 비교당하고 까였다.

상병이 될 때까지 놈과 비교당하며 폐급 취급을 당했다.

마땅히 화를 낼 곳이 없어 자연스레 장건철에게 독한 마음을 품었고 지금껏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장건철이 그런 정지훈의 행동을 지적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젠 안 참는다. 적당히 해라.”

“안 참으면 어쩔 건데!”

정지훈 병장이 뛰어들 듯 앞으로 나설 때.

퍼억!

손에 들고 있던 방탄모가 튕겨 나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그제야.

파앙!

사격 음이 숲속에서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4분대원 전체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다.

“아직 전투 개시도 안 했잖아!”

“전투 약속 시간 30분이나 넘었다. 이미 전투 상황이야. 그래서 말했잖냐. 장비 똑바로 착용하라고. 전투에서 봐주는 게 어딨어? 애들한테 그렇게 가르치냐?”

굳이 간부를 부르지 않은 이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쟁터를 만들기 위해.

장건철 병장이 어제 정지훈 병장에게 들었던 말을 인용해 맞받아쳤다.

단숨에 상대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 장건철 병장이 무전기를 들었다.

“교전 시작. 봐줄 것 없이 사격하라.”

그리고 한참 떨어진 곳, 언덕 위에 몸을 숨기고 있던 강현이 대답 대신 조준경을 응시했다.

[총기 마스터리 스킬 및 정밀함, 장거리 시야 특성이 적용됩니다. 명중률과 사격 능률이 대폭 향상됩니다]

[이전 사용자들의 경험을 흡수합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이전 사용자들의 저격 경험치를 흡수합니다. 장비 사용이 능숙해집니다]

강현이 다시 한번 정지훈 병장의 발 앞에 떨어진 방탄모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잠시 뒤.

조준경에 비친 방탄모가 완전히 사라졌다.

철컥!

방아쇠를 당기자 탄피가 열기를 내뿜으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조준경에 잡히는 당황한 4분대원들의 모습에 강현이 슬며시 미소를 띄웠다.

“빛나는 총구로 심판을 내릴 시간이 왔군.”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을 깨달은 강현이 인상을 구겼다.

‘상태창 이 새끼 때문에 나까지 이상해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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