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거미가 삼켰던 불씨
이번에 거미를 죽인 것 때문에 중대에서 유명해졌나?
강현이 갑작스러운 알림에 잠시 생각할 때.
“서윤진 대위님?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막 병실에서 나온 간호 장교가 서윤진 대위와 강현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안으로 들어가니 보이는 침상은 하나.
그 위에 붕대로 묶은 다리를 위로 올리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비록 어제 피범벅인 모습과는 달리 멀끔했지만 전우는 본래 서로를 알아보는 법.
“최강현 이병!”
침상에 누워 있던 병사가 급히 몸을 일으키며 강현을 반겼다.
“둘이 대화 나누도록 해. 중대장은 잠깐 나가 있을 테니까.”
서윤진 대위가 눈치 좋게 병실 밖으로 나갔고.
감히 상관 앞에서 아저씨라 부르며 요를 쓸 수는 없었기에 그제야 강현이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아저씨! 괜찮아요?”
강현의 얼굴을 보며 잠시 목울대를 울렁거리며 여러 감정을 삼킨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덕분에 살았어요.”
“다리는요? 그때 보니까 피가 많이 나던데.”
“그게…….”
강현의 물음에 병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 실수했구나.
거미에게 뜯어 먹힌 데다가 독까지 들었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자신의 미련한 질문을 자책할 때.
“의병 제대 못 한데요.”
생각지 못한 대답에 강현의 고개가 퍼뜩 들렸다.
“치료 헌터가 직접 치료해 준 데다가 현대 의학이 너무 좋아져서 이 정도 상처는 한 달 정도면 완쾌된다고 하더라고요.”
“어? 그럼 건강한 거죠?”
“그렇죠.”
“우와!”
벌떡 일어나 축하해 주려던 강현이 엉거주춤 멈춰 섰다.
“어? 좋은 건데, 좋은 거 맞는 건가? 뭔가 좋으면서도 안 좋은 건가?”
순간 뇌에 과부하가 걸린 강현이 중얼거렸고 병사가 키득키득 웃으며 공감했다.
“그러게요. 전역은 하고 싶긴 한데 또 건강이 중요하죠.”
건강한 건 좋은 소식인데 의병 제대 못 하는 건 또 아쉬운 일.
군대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상황.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던 중.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병사가 손뼉을 쳤다.
“김경주 알죠? 저 걔랑 동기예요.”
“네에? 그 취사병? 덩치 크고, 인상 험악하고!”
“네, 그 깡패같이 생긴 놈이요.”
참, 사람 인연이라는 게 묘했다.
강현이 취사 지원할 때 만났던 불친절 하면서도 정의로웠던 취사병 김경주 상병.
호감도 퀘스트 보상으로 강현에게 마력지체 특성석을 주었다.
‘그 마력지체 덕분에 이 사람을 구했고.’
아마 마력지체의 효과가 없었다면 모두가 죽었겠지.
끔찍한 상상이었지만 사실이었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녀석이 그러더라고요. 얼마 전에 어떤 헌터가 취사 지원을 왔는데 생각보다 너무 사람이 괜찮다고.”
“의외로 말이 많은 사람이었군요. 김경주 아저씨.”
“저랑 훈련소 알동기거든요. 몬스터한테 습격을 받은 날도 같이 있었고요.”
“아…….”
“그래서 처음엔 안 믿었죠. 웃기지 마라. 이등병이라 그렇지 나중에 시간 지나면 변할 거다. 그때 기억 못 하냐며 녀석을 타박했어요.”
그와 김경주 상병이 훈련병 시절. 특임대의 실수로 몬스터가 행군 대열을 습격했고 동기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래서 둘 다 특임대에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아니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싫어했다.
“그런데 그놈이 어느 날 오더니 그러더라고요! 자기 어렵게 구한 특성석 그 헌터 줬다고요! 참 말도 안 되죠? 동기들 다치게 한 몬스터 새끼들 죽인다고 그렇게 이를 갈던 놈이 말이에요.”
말을 하는 중간중간 병사의 목울대가 울음을 참느라 꿀렁였다.
“그런데 맞더라고요. 최강현, 당신이 날 구했죠. 김경주 그 새끼 말이 맞았어요. 당신이 날 구해 줬습니다.”
결국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다시는 엄마 아빠 못 보는 줄 알고, 개죽음하는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개죽음.
20대 초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청년들의 허무한 죽음.
당사자로선 그리 표현할 수밖에.
강현도 별말 하지 않은 채 상대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 또한 훈련소에서 몬스터의 습격을 겪지 않았던가.
비록 계급도 부대도 다르지만 그들 사이엔 분명한 유대감이 있었다.
“후, 미안해요. 이런 감성팔이나 하자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아뇨. 괜찮아요.”
겨우겨우 감정을 수습한 병사가 주섬주섬 짐을 뒤지더니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건?”
“알이에요. 그때 저 구해 줬을 때 처음 죽인 거미가 뱉은 건데 혹시 몰라서 챙겨 뒀었어요.”
김경주 상병은 돌을 주더니 이번에는 알인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보상을 보던 강현이 이를 받았고.
[퀘스트 보상을 수령했습니다]
[거미가 삼켰던 불씨의 알을 획득했습니다!]
강현이 손에 들어온 달걀보다 조금 큰 알을 바라보았다.
껍질이 마치 타오르는 불꽃과 같이 일렁이는 모습.
불씨의 알이라더니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잠시 사람의 정신을 홀리는 듯한 껍질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
[오래되고 특별한 고물 불씨의 알과 접촉했습니다. 경험 일부를 흡수합니다!]
강현의 능력이 어김없이 발휘되었고 불씨의 알에 담긴 경험이 일순간 강현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에 따라 정보가 갱신되었다.
[알에 담긴 정보 일부를 받아들입니다. 정보를 새롭게 표시합니다]
[불씨의 알 – 피닉스의 알(잠재력 SS)]
여기까지 확인한 강현이 이빨을 꽉 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리라도 지를 것 같았다.
‘피닉스라니, 피닉스라면 그 피닉스인가? 내가 아는 피닉스?’
얼른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억지로 붙잡았다.
피닉스라면 그 불을 뿜고 영원히 재생한다던 전설의 새!
이게 그 알이었다니.
그뿐만 아니었다.
옆에 표기된 잠재력 SS라는 글자.
보통 사람들은 S급을 ‘sㅣ발 존나 강하네’의 약자라 불렀다.
욕이 튀어나올 만큼 강하다는 것.
‘그럼 이건 sㅣ발 sㅣ발 존나 강하네? 아니 Sㅣ발 존나 강하네 등급이구나!’
알을 잡은 강현의 손이 떨렸다.
손안에 누구도 경험해 본 적 없고 본적조차 없는 신수의 알을 쥐고 있는 기분은 생소하면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깨질까 봐 군복 건빵 주머니에 알을 소중히 넣었다.
‘나머지는 부대에 가서 생각하자. 우선은 좀 흥분 좀 가라앉히고.’
강현이 잠시 심호흡을 하며 숨을 가라앉힌 후 앞에 있는 병사에게 목례했다.
“고마워요. 이런 걸 기대하고 구한 건 아니었는데.”
강현의 말에 상대가 짐짓 웃으며 손사래 쳤다.
“아뇨. 저도 경주처럼 최강현 이병에게 맡기는 겁니다. 당신이 구해 준 내 목숨과 앞으로의 기대를… 절 구해 주었던 것처럼 다시 누군가를 구해 주기를 말이죠. 그러려면 더 강해져야 하잖아요.”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더 강해지자.
‘우선 힘을 얻고 길을 찾자.’
자신의 운명을 이끌 힘도 없으면서 남을 구할 순 없다.
이리저리 휩쓸리기만 했던 삶을 바로잡은 이후 생각하자.
이 능력이라면 그리고 지금 주머니에 고이 넣어 놓은 피닉스의 알을 부화시키기만 한다면 앞으로도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능력이 되겠지.’
마음을 다진 강현이 상대에게 인사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르륵.
병실 문을 열며 나오자 한 중년 남자와 서윤진 대위가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 강현아! 나왔니?”
강현을 발견한 서윤진 대위가 강현을 보며 손을 들어 올릴 때.
“남윤아! 남윤이 어딨어요? 여보! 남윤이 어딨어요!”
한 여인이 다급히 병원 복도를 가로질러 왔고 서윤진 대위 옆에 있는 자신의 남편에게 아들의 안위를 물었다.
남편이 가리킨 병실.
어머니가 아들을 보기 위해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남윤아!”
“엄마!”
“아들! 아들!”
반가운 목소리와 걱정 어린 목소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길 잠시.
병실 안에서 어린 아들을 잃을 뻔한 어머니와 다시는 부모님 얼굴을 보지 못할 뻔한 아들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강현이 잠시 아릿한 눈으로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
“강현아, 가자.”
그런 강현의 사정을 아는 서윤진 대위가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강현과 서윤진 대위가 막 발걸음을 옮길 때.
“감사합니다.”
둘을 바라보던 아들의 아버지 되는 중년 남자가 깊이, 아주 깊이 고개를 숙였다.
사정을 들었다.
아들을 구해 준 이등병, 아들의 건강을 위해 치료 헌터까지 불러 주고 개인 병실을 대여해 준 대위.
그 어떤 말로도 감사를 표할 길이 없어 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사회에서 굽히고 또 굽힌 허리였지만.
지금만큼 진심 어린 인사는 없었다.
강현과 서윤진 대위가 마주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병원 로비로 향했다.
막 병원을 빠져나와 햇빛을 마주 보는 순간.
“헌터도… 나쁘진 않지?”
서윤진 대위가 찔끔 새어 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강현에게 물었다.
그때까지 딴생각에 잠겨 있던 강현이 발걸음을 멈췄다.
‘울어 줄 어머니와 고개 숙여 줄 아버지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부모님이 그때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나도…….’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한 가지 의문.
그런데 서윤진 대위의 질문을 받고는 문득 생각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다.
되돌릴 수 없는 일로 고민하지 말자.
그러나 누군가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게 하지 않았다면 그걸로도 좋다.
강현이 서유진 대위의 붉어진 눈시울을 마주 보며 미소지었다.
“네. 나쁘지… 않습니다.”
헌터에 대해, 실종된 부모님에 대해 조금은 이해한 강현이었다.
잠시 먹먹한 기분에 젖어 있을 때.
“참, 이것도 말해 줘야지. 이번 공으로 특진 대상자에 포함됐어, 너. 포상금은 당연한 거고.”
“이병 최강현. 제가 말씀이십니까? 특진 말씀이십니까?”
황당한 소리에 강현이 멍하니 되물었고 서윤진 대위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특임대장님 특별 지시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부사관으로 진급 가능하다더라.”
“부사관이면 하사 말씀이십니까?”
“응, 하사. 이등병 말고 하사.”
순간 강현의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흘러갔다.
부사관이 된 그가 부대로 복귀하는 장면, 그를 보며 경례를 붙이는 강형태와 김대영.
생각만 해도 행복한 상상.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던 강현이 문득 의심되는 점 하나를 물었다.
“복무 기간도 변합니까?”
슬쩍 눈을 돌린 서윤진 대위가 작게 대답했다.
“응, 4년 의무 복무로.”
“괜찮습니다. 그냥 포상금 넉넉히 받겠습니다.”
강현이 단칼에 거절했다.
어차피 진급해도 간부 중에 또라이도 많다.
이등병이나 하사나 괴롭기는 마찬가지.
4년이나 여기서 썩으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
강현의 단호한 표정을 본 서윤진 대위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쳇, 오늘만 기회는 아니니까.”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 * *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어떤 일이 있었던지 부대는 돌아간다.
이는 강현 또한 마찬가지여서 부대에 복귀한 이등병의 일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분대 훈련 후 장비 정리, 생활관 관리 이후에는 이런저런 잔심부름까지.
어느새 저녁 개인 정비 시간.
여느 때와 같이 각자 전화, TV, 운동, 오락, PX 등 자유 시간을 즐기기 위해 선임들이 모두 흩어졌고.
강현 혼자만이 생활관에 남았다.
‘기회다!’
선임들이 없을 때가 피닉스의 알을 돌볼 기회.
강현이 관물대 깊은 곳에 숨겨 놓았던 피닉스의 알을 꺼냈다.
형광등 빛을 받은 알 표면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일렁였다.
‘아이구, 요 이쁜 것.’
비록 아무것도 못 하는 알이어도 보는 것만으로 기쁘다.
그냥 좋다.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피닉스의 알을 보던 강현이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하급 마나 운용법 스킬을 발동합니다]
강현의 몸에 머물고 있던 마나를 몰아 피닉스의 알로 집어넣었다.
병원에서 피닉스의 알을 잡자마자 쏟아져 들어온 정보.
그 정보에 의하면 알을 부화하기 위해선 막대한 마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처음 해야 할 것은 바로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
마나를 신중하게 집어넣자.
[피닉스의 알이 마나를 흡수합니다]
[피닉스의 알과 연결 고리를 생성하였습니다. 탄생 준비를 시작합니다]
[마나가 부족합니다]
[마나 주입 0.00001%]
반가운 알림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엄청나게 낮은 숫자에도 강현은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에겐 마력지체가 있지 않은가!
[마나 주입 0.00001… 2… 4%]
[마나가 고갈되었습니다. 마력지체 특성을 발동합니다. 마나가 차오릅니다]
역시나 모든 마나를 쏟아 넣자 다시 마나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것이야말로 무한 동력!
그때.
[과도한 마나 주입으로 마나가 다시 튕겨 나옵니다]
[충족된 마나 0.00004… 3… 2%]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듯 피닉스의 알이 마나를 다시 튕겨 냈다.
‘왜 줘도 못 먹니! 아니지, 아직 약하니까 당연한 걸지도 몰라. 그래 피닉스 알은 아직 아가잖아.’
평정을 되찾은 강현이 이번에는 너무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마나를 주입했다.
너무 많은 마나를 넣으면 튕겨 나오고 너무 적은 마나를 넣으면 비율이 오르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양을 아슬아슬하게 맞추어야 했고 자연스레 세심한 마나 컨트롤이 필요했다.
[마나 주입 0.00001… 2… 4%]
다시 오르기 시작한 숫자.
강현이 내심 안도할 때.
[하급 마나 운용법 스킬 마력지체 특성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세심한 마나 조절로 인해 경험치가 추가로 상승합니다]
[이전 튜토리얼 보상, 호칭 효과로 경험치 2.5배 적용]
[세심한 마나 조절로 인해 마나 사용방법을 이해합니다!]
[새로운 특성 정밀함을 획득했습니다!]
‘오오! 새로운 특성 어서 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