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그것이 군인 정신이니까
마력 홀로그램.
마나로 허상의 몬스터를 만들어 헌터들의 눈을 속이는 함정으로 던전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게이트가 열린 초기, 아직 던전에 익숙지 않았던 헌터들이 홀로그램에 속아 퇴각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수많은 게이트와 던전을 점령하며 이 홀로그램이 훈련에 적합하다고 판단.
지금과 같이 군사적 목적은 물론 각 길드에서도 훈련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새로운 고물 마나 홀로그램과 접촉했습니다]
[마나 운용에 대한 이해력이 증가합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연간 수십억을 쏟아붓는 길드에 비해 군대용 홀로그램은 더 낡고 오래된 것이었다.
쾅, 콰앙! 꾸웅!
블러드 골렘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강현이 이를 아슬아슬하게 맞받아쳤다.
그리고 놈과 몸을 부딪치면 부딪힐수록 마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갔다.
한 생명체를 그대로 따라 하기 위해 얼마나 복잡한 마나 운용이 필요한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마나 운용 능력을 터득할 기회다’
얼마 전 획득한 마나 스텟을 강화할 수 있으리라.
그뿐만 아니었다.
[강인한 팔뚝 특성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하급 검술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총검술에 더욱 능숙해집니다]
[훈련 효과로 체력과 근력이 빠르게 성장합니다]
[유연한 움직임 스킬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놈과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강현 스스로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간신히 막아 내거나 튕겨 날아가는 수준이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견딜 만했다.
“저런 미친 새끼!”
그 모습을 보며 지원과장이 이를 깨물었다.
그래 어쩌다가 특임대에 들어온 인원이라고 치자.
정말 운이 좋아서 능력을 얻었고 전입 오자마자 작전 수행에서 두각을 드러내어 포상금까지 받았다고 치자.
“능력 평가 도중에 강해진다고?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놈이야!”
홀로그램과 싸우는 와중에 점차 성장하다니!
지금껏 특임대에서 꽤 오래 작전을 수행했지만 저런 놈은 처음 봤다.
분명 블러드 울프와 스톤 골렘의 결합은 이번에 새로 발견된 현상.
미리 작전을 준비할 수도 없었을 터다.
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건만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반면 다른 중대원들은 강현의 전투를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중대장님, 강현이 약한 건 아닌데 다른 의미로 약 한 거 아닙니까?”
그중 한 명이 서윤진 대위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흥! 내 중대원이라면 이 정도는 가능이지!”
중대원의 물음에 당당히 콧바람을 내뿜은 그녀였지만 내심은 달랐다.
‘분명 어제 나와 훈련할 때보다 강해지고 있어.’
여기서 강현의 실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서윤진 대위였다.
지난 이틀간 쉴 틈도 없이 강현과 몸을 맞부딪혔으니 당연한 일.
그때도 조금씩 강해졌지만, 그저 싸움에 익숙해져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제3자 입장에서 보니 강현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는지 눈에 보였다.
‘보통 아무리 빨라도 스텟 한 단계를 올리는데 2년, 등급을 올리기 위해선 최소 10년 이상은 걸린다. 그것도 재능이 있어야지 가능해.’
현실은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이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헌터는 처음 받은 등급 속에서 평생 살아간다.
그런데 지금 강현은 서윤진 대위조차 몇 번 본 적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재능.
‘다만 능력 개화 초기이니 계속 두고 봐야겠지.’
개화 초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다 잠잠해지는 예도 있으니 아직은 판단하기엔 일렀다.
그리고 실제로 강현과 골렘의 공방이 꽤 비등비등했지만, 아직 쓰러뜨리진 못했다.
점점 교착화되는 싸움에 처음엔 놀랐던 타 부대 간부들도 슬슬 지루해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진가.”
“뭐, 여기까지만 해도 놀라운 것 아님까.”
“그렇긴 하지. 참, 저 친구 이등병이었지. 순간 그걸 깜빡했네. 그렇게 생각하면 뛰어나긴 정말 뛰어나네.”
간부들의 강현에 대한 평가가 수정되었다.
백 있는 관심병사에서 꽤 쓸만한 이등병으로.
그러나 그들이 보는 것과 강현의 속사정은 좀 달랐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강현은 아직 배고팠다.
골렘을 쓰러뜨리지 못한 게 아니었다.
하지 않았을 뿐.
이미 골렘을 쓰러뜨릴 능력은 충분히 되었다.
비등비등하게 받아 내고 있는 녀석의 공격도 더욱 많이 접촉하기 위한 수에 불과했다.
단순히 새로운 쾌락에 눈을 떴다거나 하는 농담이 아니었다.
[마나 운용 이해도가 증가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알림 창이 강현을 무아지경 속으로 밀어 넣었다.
계속 강해진다는 즐거움.
새로운 능력을 개화한다는 쾌감.
생각해 보니 이 또한 새로운 쾌락이긴 하다.
‘거의 다 왔어!’
녀석과 몸을 부딪칠수록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어떻게 이용하고 움직일지 뚜렷하게 떠올랐다.
마나 홀로그램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지식일지라도 일반적인 헌터들에겐 평생 배우기 어려울 정도의 값진 것.
마법을 사용하는 헌터들은 마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치리라.
이유는 또 있었다.
[유연한 움직임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움직임이 개선되었습니다!]
골렘의 투박하면서 불규칙한 움직임에 맞서기 위해 강현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지난 이틀간 가장 익숙해진 움직임을 따라 했다.
바로 서윤진 대위의 움직임.
물론 그녀와 비교하면 한참 미흡했지만 그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몸짓을 따라 하면 따라 할수록 골렘을 상대하는 일이 쉬워졌다.
[경험치 증폭, 훈련 효과 중첩 250% 적용]
강현이 귓가를 드문드문 울리는 알림을 들으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마나의 극히 일부분을 이해했습니다. 스킬 하급 마나 운용법을 생성합니다]
[체력, 근력, 마나, 민첩 스텟이 올랐습니다!]
[기존 전진 무의탁 스킬과 유연한 움직임 스킬을 연계합니다]
[스킬 트릭 샷이 생성되었습니다!]
[기존 스킬의 경험치가 전이됩니다. 트릭 샷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총이 없을 시 유연한 움직임 스킬로 대체됩니다]
강현이 기다리던 알림이 자신의 탄생을 알리듯 우렁차게 울렸다.
이제 뽑아 먹을 만큼 뽑아 먹었다.
[총기 사용 확인 트릭 샷 스킬을 발동합니다. 묘기 사격이 가능해집니다]
오랜 싸움이었지만 결말은 한순간이었다.
달려든 골렘이 피를 감싼 주먹을 길게 뻗었고, 강현이 그 위를 밟고 펄쩍 뛰었다.
공중을 휘돌며 총알에 마나를 집약.
둘의 뒤집힌 얼굴이 마주쳤을 때.
“고맙다.”
자신에게 많은 것을 전해 준 골렘에게 마지막 감사 인사를 남기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푸른 마력을 담은 탄이 연속으로 놈의 머리통을 뚫었다.
강현이 땅에 착지함과 동시에.
꾸웅.
블러드 골렘이 뒤로 나자빠지며 마나로 변해 흩어졌다.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
“아주 훌륭한 실력이구먼.”
그때 누군가 박수를 치며 강현의 실력을 칭찬했다.
다들 그쪽을 바라보았고 서윤진 대위가 급히 차렷 자세를 취하며 경례했다.
“충-성! 평가 중 이상 무!”
어깨에 달린 초록색 견장에 박혀 있는 민들레 두 송이.
영관급 계급 중령.
자리에 있던 간부 전체가 일제히 긴장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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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선설민
직책: 중령
나이: 43
호감도: 0
정보: 내 새끼들이 최고야. 아니 최고여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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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가?’
강현이 인물창을 보며 당황할 때, 선설민 중령이 입을 열었다.
“3중대장 작품인가?”
“대위 서윤진, 맞습니다!”
“누구지?”
“이번에 전입 온 신병입니다.”
“이병 최강현!”
“…….”
다른 간부들을 볼만도 한데 선설민 중령의 눈은 오직 서윤진 대위와 강현에게 향해 있었다.
깡마른 얼굴에 눈빛이 마치 타오르는 듯해 부담스러울 정도.
대체 무슨 말을 하려나 불안했다.
이는 자리에 있는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
1대대 대대장 선설민 중령.
강현이 속한 3중대를 비롯해 총 4개의 중대를 이끄는 책임자.
평소에도 표정 변화가 없는 그였지만 지금은 더욱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가 없었다.
“보고서에 쓰여 있던 신병 능력 평가로군.”
“네!”
“음, 최강현이라 했나?”
“이병 최강현!”
고저 없는 목소리에 강현이 내심 긴장했다.
냉막한 눈빛이 강현을 샅샅이 훑었다.
“저 블러드 울프와 스톤 골렘의 결합, 알고 있었나?”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 그런데 어떻게 이겼지?”
순간 강현의 말문이 막혔다.
뭐라 대답해야 할까?
어김없이 지금껏 강현을 도와 준 언변 특성이 발현되었으나.
‘이런 미친놈아 입 닫아!’
이성이 이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
언변 특성과 이등병으로서의 자아가 치열하게 싸웠고 훈련장 전체가 침묵으로 휩싸였다.
“강현아?”
대답을 기다리다 못한 서윤진 대위가 강현을 불렀고 결국 강현이 입을 열었다.
“그냥 잡을 수 있어서 잡았습니다.”
그 대답을 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 X됐다.’
서윤진 대위의 재촉을 듣자 언변 특성을 막던 이성이 잠시 한눈을 팔았고 결국 뇌리를 감돌던 말이 불쑥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타 부대 간부들과 중대 선임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대대장님, 그것도 직속 상관의 물음에 이딴 대답을 꺼내다니.
‘이렇게 군 생활을 조져 버린다고? 혹시 꿈 아닐까?’
도저히 자신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아니길 바랐지만 모두의 놀란 눈을 보아하니 꿈이 아니었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강현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튼튼해진 몸은 쓰러질 기미조차 없었다.
“최강현! 그게 대대장님께 무슨 말버릇이야!”
이때다 싶어 박민우 대위가 강현을 혼내기 위해 홀로그램 조종실에서 뛰쳐나왔으나.
헌터 특임대 1대대 대대장 선설민 중령이 손을 번쩍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강현을 가리켰다.
손가락에서 빔이라도 나와서 저 건방진 이등병을 터뜨려 버리는 것 아닐까?
다들 침을 꿀떡 삼킬 때.
“대답. 흡족.”
선설민 중령의 평가가 떨어졌다.
“이 건방진 놈! 네. 네에?”
강현을 타박하려고 도끼눈을 뜨던 간부들이 일제히 선설민 중령 쪽으로 고개를 홱 꺾었다.
분명 차가운 표정을 보아선 화를 내는 듯 보였으나 대대장의 대답은 정반대였다.
“이성으로 납득할 수 없는 전투도 이기는 것. 그것이 군인 정신이다. 군인 정신이란 그런 것이니까.”
“아, 아아?”
중대원들 몇몇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가 서윤진 대위의 눈총을 받고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거 나 때문에 최강현 이병의 능력 평가 종료 축하도 못 하고 있군. 3중대 전체 회식, 대대장 사비 지원.”
“우, 우와아아아!”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사랑합니다! 대대장님!”
회식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 3중대원들이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으면 된다.
군대란 그런 곳이니까.
그 모습을 본 선설민 중령의 얼굴에 금이 가듯 작은 미소가 걸렸다 사라졌다.
“마침 오늘 혹한기에서 돌아오는 인원 것까지 넉넉히 챙겨 주지.”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3중대장, 최강현 이병 모두 흡족. 오늘은 즐기도록.”
보기에는 냉막해 보이는 선설민 중령이었지만 휘하에 있는 중대를 아끼는 마음은 진짜였다.
사실 오늘 신병 평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대대장실에서 아침부터 평가장을 지켜보길 몇 시간.
강현의 뛰어난 실력을 보고 부랴부랴 훈련장으로 향한 참이었다.
아니 사실 강현이 졌어도 위로차 훈련장으로 향했겠지만, 지금처럼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중대원들을 자기 새끼들이라 생각하는 그에게 자기 새끼가 잘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었다.
좋아하는 3중대원들을 나름 따뜻하게 바라보던 그의 고개가 지원과장으로 향했다.
“지원과장, 면담.”
박민우 대위를 바라보는 눈빛은 방금 3중대와 강현을 쳐다보던 눈빛과 달리 인상에 어울리는 삭막하고 차가운 기색이었다.
대위라는 인간이 총을 사용하는 신병을 상대로 전략적 카운터를 시도하고 심지어 지기까지 했다.
선설민 중령이 생각하기에 방금 지원과장이 한 행동은 비겁하고 치졸한, 군인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박민우 대위 또한 그런 그의 성격을 알았기에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지원과장이 패배한 개처럼 축 늘어져 훈련장을 빠져나간 후 다른 부대 간부들도 자리를 떴다.
“후우.”
비로소 긴장이 풀린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골렘을 상대했을 때보다 대대장에게 대답하고 나서가 더욱 무서웠다.
그래도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그때 서윤진 대위가 차가운 표정으로 강현 앞에 섰다.
“최강현.”
“이병 최강현!”
“중대장, 흡족.”
“감사합니다!”
“포옹 칭찬 한 번 적립.”
[서윤진 대위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선설민 중령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