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새로운 쾌락
잠시 지난 주말을 떠올린 강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보상을 얻은 건 기쁜 일이었지만 한번 발동이 걸린 서윤진 대위의 훈련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왜 그녀가 핏빛 호랑이라 불리며 중대원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사는지 알 수 있을 정도.
이틀 연속으로 잠깐씩 쉬는 시간을 빼면 끔찍할 정도로 강현을 몰아붙였다.
‘그런 훈련을 견뎠는데 질 리가 없다.’
강현은 이를 견뎌 냈고 그만큼 새로운 스킬과 기존 능력의 성장을 이뤘다.
능력 평가는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군에 배치되어 있는 홀로그램 전투 측정기로 몬스터를 소환, 녀석들과 싸운다.
대부분 하급 헌터인 병사들을 배려해 소환할 수 있는 몬스터는 F~D급까지.
몬스터 등급에 따른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선택에 따라 D급은 한 마리, E급은 다섯, F급은 10마리씩 소환하여 평가를 치른다.
“최강현, 최강현 이병은 교장으로.”
자신을 평가할 무대를 마주한 강현이 깊은 심호흡으로 긴장을 털어 냈다.
언덕 위에서 강현을 지켜보고 있는 선임들과 간부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앙.
“이거 다른 부대 간부님들도 관심이 많으셔서요. 괜찮겠죠? 서윤진 대위.”
지원과장 박민우 대위가 계단 꼭대기에 서서 서윤진과 강현을 내려다보았다.
햇빛을 등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적대감과 시기심 서린 눈동자가 강현을 넘어 서윤진 대위에게 꽂혔다.
“그럼요. 우리 중대원 자랑하기 위한 판이 이 정도는 돼야죠.”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이를 가볍게 웃어넘겼다.
리더는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이 흔들리면 뒤에 선 이등병도 흔들린다.
서윤진 대위는 무리를 이끄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걱정과는 다르게 강현 또한 자신을 향하는 호기심 어린 시선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주 보며 가슴을 폈다.
“당돌하네. 이등병이.”
“뭐, 백 있고 옆에 중대장 있다는 거겠지.”
그 이등병답지 않게 당당한 표정에 몇몇 간부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나 상관없다.
저들은 자신의 직속 상관이 아니다.
위축될 것도, 긴장할 것도 없다.
서윤진 대위가 계단을 올라가기 전 강현을 돌아보았다.
“최강현.”
“이병 최강현!”
“중대장 실망시키지 마.”
“해내겠습니다! 반드시.”
“좋아, 가자.”
강현이 능력 평가장에 입장했다.
* * *
‘저 재수 없는 태도는 변하질 않는군.’
당당히 계단을 올라오는 서윤진 대위를 보며 박민우 대위가 속으로 짜증을 삼켰다.
주말 동안 저 이등병을 상대로 훈련을 도와주었다 들었다.
‘그래 봤자 접근전이랑 속도 빠른 몬스터 대처에 힘을 쏟았겠지.’
뻔하다.
이등병, 거기다 소총수가 낼 수 있는 화력은 한계가 있다.
약점 또한 뻔하다.
접근전과 속도.
박민우 대위나 서윤진 대위나 모두 알고 있는 정보.
‘그래도 내가 우위에 있다.’
그러나 저 둘이 모르는 정보가 있었다.
평가 시뮬레이션의 몬스터 정보가 최신 정보로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것.
시뮬레이션 장비 관리는 작전과, 지원과의 협력 사항이었고 박민우 대위는 지원과장인 만큼 관련 정보를 제일 먼저 알 수 있다.
반면 아직 공문이 내려오기 전이었기에 중대장은 위 사실을 모르는 상태.
‘아무리 뛰어 봤자 이등병이지.’
저 최강현이란 놈을 골탕 먹이기에는 충분하다.
‘대체 백이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저렇게 감싸고 도는 거야. 제기랄.’
박민우 대위 또한 단순히 박찬우 일병의 말을 듣고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르는 게 아니었다.
강현의 전입 명령서를 처음 받아들었던 게 바로 박민우 대위였고.
강현의 전입 과정에서 누군가의 입김이 닿았다는 것을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놈을 이용해서 진급 기회를 잡으려 했건만!
‘저 재수 없는 년이 있는 거, 없는 거 다 가져가려 한단 말이지. 오늘은 다를 거다. 서윤진.’
이참에 서윤진도 꺾고 저 최강현이라는 놈도 자신의 분수를 알게 해야 한다.
그래야 지원과에 와서 거만하게 굴지 않을 터.
결국 자신의 진급을 위한 디딤돌에 불과한 놈 아닌가.
즐거운 상상을 한 박민우 대위가 친절하게 서윤진 대위를 맞이했다.
“어떻게 같이 홀로그램실에 들어가겠습니까?”
“아니요. 여기서 지켜보겠습니다. 몬스터 선택과 소환은 지원과장님 소관이니까요.”
“참, 힌트를 드리자면 E급 다섯 마리를 부를 겁니다. 잠깐 시간을 드릴 테니 조언이라도 해 주시죠.”
“힌트 고맙네요. 보답으로 조언이 필요하시다니 하나 해 드리죠. 그거로는 모자랄 겁니다.”
오히려 역으로 놀림을 당한 박민우 대위가 표정을 굳히더니 휙 돌아섰다.
그리고 평가장 가운데에 서 있는 강현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최강현, 준비 끝났나?”
“이병 최강현. 평가 준비 끝!”
“그럼 능력 평가를 실시하겠다.”
강현의 우렁찬 대답이 평가장을 울렸고 지원과장이 준비해 놓은 홀로그램 버튼을 누르자.
우우웅.
마나가 일정한 형태를 갖추며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시뻘건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며 강현을 위협했다.
“역시 블러드 울프지 말입니다.”
“E급 중에서는 가장 빠르고 집단 사냥 기술이 뛰어나니까.”
“몸이 핏덩어리니까 맞추기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역시나 예상대로 총을 쓰는 강현의 약점을 노린 몬스터가 등장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숫자가 넷이네?”
“저 바위 설마 스톤 골렘은 아니겠지요?”
“음, 박민우 대위가 이번에 머리를 좀 썼네.”
블러드 울프 넷에 돌 골렘 하나.
E급 몬스터 다섯이지만 총을 쓰는 하급 헌터에게는 꽤 위협적인 조합이었다.
피로 이루어진 늑대 블러드 울프, 액체처럼 기묘하게 움직이며 집단 사냥을 즐기는 녀석들이 빠르게 쇄도했고.
뒤에선 총알에 끄떡도 없는 스톤 골렘이 묵직하게 따라왔다.
“전형적인 사냥 방식이지만 경험 없는 헌터면 쉽게 당하는 조합이지.”
블러드 울프에게 쫓겨 우왕좌왕하다가 골렘에게 한방에 무력화.
한눈에 그려지는 그림에 다들 이제 갓 전입 왔다는 이등병의 패배를 직감했다.
그러나.
[총기 마스터리 스킬 발동 위력이 증가합니다]
[총기에 마나 집약에 따라 탄알의 위력이 지속적으로 강해집니다]
[장비에 담을 수 있는 마나 한계에 도달하였습니다]
강현의 총이 푸르스름하게 빛나길 잠깐.
파앙!
일반적인 사격보다 몇 배는 강한 반동과 여파가 평가장을 뒤흔들었고.
우어어어
동시에 돌 골렘의 가슴팍이 뻥 뚫려 버렸다.
“역시! 최강현!”
“믿고 있었다고 미친!”
단 한 발.
일반적인 화기라면 기관총으로도 죽이기 힘든 돌 골렘을 단번에 격퇴해 버렸다.
키가 3m에 육박하는 골렘이 그대로 뒤로 쓰러지며 커다란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다들 강현이 보인 능력에 환호하거나 눈살을 찌푸렸지만.
‘다음은 블러드 울프.’
강현은 오히려 더욱 침착하고 냉정한 상태였다.
서윤진 대위를 상대하며 익힌 전투 방법.
마나를 총뿐만 아니라 탄에 집약해 위력을 강화한다.
듣기에는 무제한으로 강한 탄을 쏠 수 있을 듯싶지만, 문제는.
[총기가 파괴되었습니다]
힘 조절을 잘못하면 지금처럼 반동 때문에 총 자체가 부서져 버린다는 점.
단 한 발에 총 하나가 날아갔다.
강현이 재빨리 망가진 총을 버린 뒤 뒤에 멘 총을 들어 올렸다.
[새로운 총기와 접촉했습니다]
[경험을 흡수합니다]
[튜토리얼 보상 효과로 경험치 두 배 적용, 칭호 효과로 훈련 효율 50% 증가 적용]
블러드 울프들이 달려드는 와중에도 알림은 꾸준히 강현의 성장을 알렸다.
놈들이 아가리가 도달하기 전.
[스킬 전진 무의탁 사격 자세 변경 속도 증가]
[스킬 유연한 움직임 발동 회피력 및 민첩성 증가]
강현이 자리에서 벗어나며 사격을 시작했다.
지난 시간 동안 늘어난 체력과 근력, 민첩 스텟에 따라 근육이 수축하며 힘을 뿜어냈고.
스킬의 보조를 받은 총구가 몬스터를 향해 불을 뿜었다.
“키이잉!”
압도적인 전력.
분명 총을 사용하는 강현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이었으나 상대보다 월등히 강하면 이러한 작전도 소용없는 법.
강현은 탄알집을 갈아 끼며 총알을 난사했고 오히려 달려들던 블러드 울프들이 사방팔방으로 도망 다니기 바빴다.
“강현아 끝내 버려라!”
“바로 그거지! 3중대, 파이팅!”
“파이팅!”
“최강현, 파이팅!”
“파이팅!”
팔은 안으로 굽는다.
3중대 선임들도 다른 부대 간부들이 좋아하는 꼴을 보기 싫었는지 더욱 힘차게 강현을 응원했다.
타 부대 간부들도 강현의 우세한 실력과 3중대의 응원을 보며 별말 하지 않았다.
아니 머릿속이 복잡해서 하지 못했다.
‘서윤진 저 인간한텐 왜 저렇게 좋은 패가 자꾸 붙는 거야!’
‘저 친구, 생각보다 실력이 있네. 우리 부대에 와야 했는데 아쉽구먼.’
몇몇은 서윤진 대위에 대한 시기심을 더욱 키웠고 몇몇은 강현을 눈여겨보며 나중을 기약했다.
강현 또한 전황이 유리하다는 점을 알았기에 힐끔 눈을 돌려 지원과장을 쳐다봤다.
‘어때? 이래도 내가 전투 자원이 아니냐? 아직도 관심병사로 보여?’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지난번 강형태 상병도 그렇고 지원과장도 그렇고 자꾸 자신을 관심병사 취급하는 게 싫었다.
‘그냥 운이 없었을 뿐이었어! 난 최선을 다했어! 항상!’
불운하게 부모님이 실종되었을 뿐이었다.
자신이 원해서 그런 운명을 맞이한 게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되며 할 수 있는 알바는 모두 했다.
재난처럼 닥친 현실을 어떻게든 뒤바꿔 보고자 노력했다.
안주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군대 들어오기 전날까지도 일용직 노가다를 뛰고 일당을 저축했다.
‘너희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사람을 멋대로 판단하고 틀에 가두려 한다.
더는 호락호락하게 무너지지 않는다.
강현이 결심하며 블러드 울프 무리를 끝장내려 할 때.
‘웃어?’
강현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원과장이 스산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상황이 변했다.
블러드 울프들이 쓰러져 있는 스톤 골렘으로 향했고 강현의 총알에 맞아 뻥 뚫린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꾸륵, 꾸르르륵.
물이 차오른 소리가 들리길 잠깐.
블러드 울프들이 스톤 골렘의 몸을 장악했고 곧 놈이 몸을 일으켰다.
“저거 뭐야? 홀로그램 오류야?”
“블러드 울프가 스톤 골렘에 기생도 하는 겁니까?”
“몰라, 지금껏 본적이 없었는데!”
“저거 정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최강현 이병이 이긴 싸움이었습니다!”
이를 본 3중대 인원들이 놀라 아우성쳤지만.
“아, 이번에 새롭게 업데이트된 시뮬레이션 정보입니다. 얼마 전 블러드 울프와 돌 골렘의 상생에 대해 새로운 발견이 있었고 이번에 적용되었습니다. 병사들은 진정해 주길 바랍니다.”
지원과장의 담담한 목소리가 아우성을 내리눌렀다.
“아, 이번에 새롭게 갱신된 정보가 저거였나? 생각보다 위협적이네.”
“지원과장 노림수가 이거였군요.”
반면에 작전과 간부들은 지원과장의 수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처음부터 비장의 수를 보여 주지 않고 막판에 뒤집기를 시도하는 치밀함.
이윽고 융합을 끝낸 골렘이 강현에게 달려들었고 주먹을 뻗자 팔이 주욱 늘어났다.
콰아앙!
강현이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생각한 순간.
늘어난 피에서 블러드 울프의 머리가 솟아나더니 이빨을 들이밀었다.
[총검술 사용, 기본 검술 스킬 효과로 파괴력이 증가합니다]
강현이 총을 휘둘러 놈의 머리를 쳐냈으나.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골렘이 강현의 몸을 쳤다.
“크윽!”
강현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고 박민우 대위가 서윤진 대위를 보며 입술을 삐뚤게 끌어올렸다.
“어떻게 3중대장님 멈출까요? 힘들어 보이는데.”
스톤 골렘의 단단함에 블러드 울프의 유연함과 속도가 합쳐졌다.
이등병이 이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잠시 그를 노려보던 서윤진 대위기 힘겹게 입을 열려 할 때.
“이병 최강현! 아직 할 수 있습니다!”
강현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의 눈동자는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강한 빛을 품은 채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서윤진 대위가 주먹을 꾸욱 쥐었다.
‘중대장이 중대원을 믿어야지!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대체!’
자신이 직접 훈련시킨 중대원이다.
그의 투지와 힘을 알고 있다.
지난 이틀간 본인이 직접 보고 겪지 않았던가!
서윤진이 아직 꺾이지 않은 강현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멈출 필요 없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중대원을 믿고 기다리는 것 또한 중대장이 할 일. 최강현 이병은 약하지 않아요.”
서윤진 대위가 신뢰감이 담긴 눈으로 강현을 보았고 강현이 입술을 꾹 물었다.
도저히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새로운 고물 마나 홀로그램과 접촉했습니다]
[경험치를 흡수합니다]
[마나 운용에 대한 이해력이 증가합니다!]
[경험치 두 배, 훈련 효율 50% 증가가 적용되었습니다]
골렘에게 한 방 얻어맞는 순간 떠오른 메시지.
어찌 이런 알림을 듣고도 이 싸움을 포기하겠느냔 말이다!
“더 때려 봐. 이 새끼야!”
새로운 쾌락에 눈을 떠 버리고만, 강현이 실실 웃으며 골렘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