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포상금과 면담
성장형 게이트를 파훼한 3중대가 처음 맞이한 건 값비싼 무기와 방어구로 무장한 길드의 정규 헌터들이었다.
“어? 뭐야? 입구 열렸잖아?”
“의료진! 모두 이쪽으로 오세요! 다친 인원 없습니까?”
“특임대가 나왔다! 모두 게이트 진입 준비!”
창연 길드 소속 헌터들이 급하게 연락을 받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게이트 크기가 4미터에 육박한 상태.
이 정도라면 이미 D급에 속하는 게이트였기에 진입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게이트에서 빠져나오는 헌터 특임대는 많은 희생을 치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금 보이는 특임대의 모습은 너무나도 말끔했다.
“어? 뭐야, 부상 인원 없습니까?”
“게이트 입구 줄어드는 거 보니까 무력화했나 본데?”
“특임병들이?”
길드 소속 헌터들이 의문을 품는 것도 당연했다.
고작 특임대 한 개 중대론 막을 수 없는 게이트다.
최소 세 개. 어쩌면 그 이상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
거기다 그 한 개 중대마저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 들었는데.
다들 의문을 표하며 매니저를 보았고 김소희가 특임대 3중대를 살피며 사람 하나를 찾았다.
“역시 서윤진 대위.”
맨 앞에서 그들을 이끄는 사람을 확인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혈호가 있었군요.”
“혈호? 혈호가 여기서 근무하고 있었어?”
“이거 괜히 걱정했네. 뭐, 혈호면 걱정할 것 없지.”
“야, 이거 운이 좋네. 살다가 혈호 실물을 다 보고.”
서윤진이라는 이름을 들은 헌터들 대부분이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몇은 팬이라도 되는 듯 고개를 쭉 빼기까지 하며 서윤진 대위를 찾으려 했다.
맨 앞에서 중대를 이끌던 서윤진 대위도 이를 느꼈는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장형 게이트 때문에 저렇게들 모인 거야? 중대 전원 차에서 대기.”
어쨌든 일을 일단락 지어야 했기에 서윤진 대위가 길드 매니저 김소희 앞에 다가섰다.
“고생 많으세요. 언니.”
“오랜만이네. 우선 성장형 게이트가 맞았고, 우리가 처리했으니까 뒤처리는 부탁할게.”
“그럼요! 부속물 및 재료비는 추후 부대 계좌로 입금할게요.”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둘의 대화는 빨랐고 용무도 금방 끝났다.
일을 마친 서윤진 대위가 뒤돌려 할 때 김소희가 생글거리며 그녀의 옆으로 바싹 붙어 조잘거렸다.
“그런데 성장형 게이트인 점을 몰랐던 건 우리 쪽 실수니까 위로금을 드리고 싶은데요.”
“위로금?”
“그래서 말인데 혹시 공로별로 맞추어서 드릴 수 있게 이번 작전에서 어떤 분의 공로가 가장 컸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은근히 귀밑머리를 넘기며 상대를 올려다보는 김소희 특유의 전법.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뽀얀 피부, 귀여운 이목구비의 조합에 보통의 남자들이라면 헤벌쭉 웃으며 모든 정보를 알려 주었겠지만.
“몰라. 당연히 나겠지. 왜? 누구 공로가 가장 큰지 알려 주면 나중에 데려가게?”
“쳇.”
상대인 서윤진 대위도 여자였기에 아무 소용 없었다.
“아- 좀 알려 줘요. 어차피 언니네 길드 잘나가잖아요.”
“그게 내 길드냐, 할아버지 길드지. 요 꼬맹이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욕심이 많아요, 욕심이. 난 지금 대위 서윤진이고 중대원들 전부 지금은 내 새끼들이니까 괜히 건들 생각하지 마!”
“흥, 그거 싫으면 나중에 언니가 우리 길드 들어오던가. 중대원들 미래 생각하면 오히려 우리랑 연결해 줘야 하는 거 아녜요?”
“헛소리는, 쉽게 만족하는 성격도 아니면서, 괜히 애들 허파에 헛바람이나 넣을 줄 알지.”
김소희의 말을 그대로 끊어 버린 서윤진이 뒤돌다 멈칫했다.
그녀의 뇌리에 문득 누군가 스쳐 갔기 때문.
“그래도 정말 쓸 만한 친구 있으면 알려 줄게. 아직 확실친 않지만.”
“정말요? 어머, 어쩐 일로요?”
“하지 말까?”
“고마워요. 언니!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
“대신 우리 길드에도 알린다.”
“아, 치사하게 정말!”
어릴 적부터 얼굴을 익혀 왔던 둘이 잠깐 담소를 나누는 사이.
“와, 김소희 존나 이쁘다.”
“창연 길드 들어가면 김소희 매일 볼 수 있는 겁니까? 전역하면 무조건 창연 길드 갈 겁니다.”
“야,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에서 너를 왜 받아 주냐?”
“아니… 사무직으로라도 입사하렵니다. 혹시 압니까? 제 능력을 보고 반할지.”
“창연 길드 후계자께서 참으로 그러시겠다.”
아이돌이라 착각할 만한 김소희의 아름다운 외모를 본 군인들의 정신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거기에 국내 오대 길드 중 하나인 창연 길드의 후계자이기까지 하니 정말 연예인을 보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와, 그런데 우리 중대장님 미모 안 밀리는 거 실화냐? 정말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에 가슴이 다 웅장해진다.”
“하긴 군대 아니면 중대장님 같은 분이랑 말 한 번 섞기도 어렵겠지. 안 그러냐 강현아?”
“이병 최강현! 맞습니다.”
강현 또한 선임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만큼 둘이 서 있는 모습은 마치 화보 같았다.
그 주위에 둘러서 있는 창연 길드 소속 헌터들마저도 병풍으로 만드는 위력이라니.
‘나도 언젠간 저기에 낄 수 있을까?’
문득 저 둘 사이에 껴 상황을 주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봤지만 아무래도 어려웠다.
고작 이등병인 자신이 어찌 저들과 같겠는가.
그런데 그때 김소희의 눈과 강현의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는 건가? 생각도 잠시.
‘착각도 유분수지.’
강현이 고개를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 때.
김소희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 정말 나였어?’
강현이 어쩔까 우물쭈물하는 동안.
“야, 김소희가 나 보고 손 흔든다!”
“접니다! 저보고 손 흔드는 겁니다!”
“우와 졸라 이쁘다!”
선임들이 우르르 창문에 붙어서 마구 손을 흔들었다.
발광하는 모습이 군 위문공연이라도 온 듯한 분위기.
“이 새끼들아 앉아!”
버스에 탄 중대장의 고함이 있고 나서야 중대원들이 진정했고 버스가 현장을 벗어났다.
이를 끝까지 지켜보던 김소희가 생글생글 웃는 것을 멈추고는 연분홍빛 입술을 매만졌다.
“처음 보는 신병이 있네요? 분명 언니가 복무하는 중대원들의 신상은 모두 외우고 있는데 말이죠.”
“알아볼까요?”
“네, 알아봐 주세요. 평소랑 다른 반응도 그렇고… 아마 뭔가 있는 모양이에요.”
고민을 끝낸 김소희가 다시 방긋 웃으며 뒤돌았다.
잠재력 있는 헌터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 * *
“이병 최강현. 이게 무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열어 봐.”
부대에 도착한 후 서윤진 대위를 따라 중대장실에 들어선 강현이 받은 건 두터운 흰 봉투였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봉투를 슬며시 열어 보자 안에는 지폐가 빼곡히 차 있었다.
생각보다 큰 액수에 강현의 동공이 흔들렸다.
‘한 달 알바비는 쉽게 넘겠는데.’
얼추 눈대중으로 봐도 한 달치 최저임금보다 월등히 높은 액수.
휘둥그레진 강현의 눈을 본 서윤진 대위가 살포시 웃었다.
“이번 작전에 대한 포상금이야. 원래 첫 작전 포상금은 현금으로 건네는 게 부대 전통이거든. 그런데 이등병, 그것도 전입 첫날에 포상금을 건네 줄 줄은 정말 몰랐네.”
“이병 최강현! 감사합니다!”
“그래, 앞으로 이렇게만 하면 이 중대장이 실망할 일은 전혀 없을 것 같다.”
“이병 최강현! 감사합니다!”
강현의 우렁찬 목소리에 서윤진 대위가 옆에 있는 의자로 손짓했다.
“앉아 봐. 포상은 포상이고 또 신병 면담도 이 중대장의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강현이, 오늘 활약에 대해선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훈련소에서 능력을 개방했다고?”
“이병 최강현. 그렇습니다!”
“훈련소 행군 중에 고블린 다섯을 죽였고 부대로 바로 전입이라… 능력은 총기 관련? 아니면 사격 전반적인 능력이야?”
“총기 관련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중대장이 돌연 눈을 빛냈다.
“우선 우리 3중대에 온 걸 축하해.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 혹한기 훈련을 나가 있는 상태라 추후 인원들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도 만날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또 한 가지. 중대장이기도 하지만 헌터 선배로서 충고 하나 할게. 선임들이 스킬에 대해 자세히 물어봐도 모두 사실대로 대답하지마. 거짓말하라는 말이 아니고 분대에 피해 주지 않을 정도 선에서 적절하게… 알겠니?”
“알겠습니다.”
의외의 말에 강현이 속으로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 대답했다.
서윤진 대위도 그런 강현의 속을 짐작했는지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목표가 뭐니?”
“목표 말씀이십니까?”
“뭐, 군대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좋고 사회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좋고.”
목표? 의례적으로 대답해도 되는 질문이었지만 강현에겐 남다르게 다가왔다.
어린 강현과 갓 태어난 여동생만을 남겨 두고 사라진 부모님.
늙은 몸을 이끌고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
이전엔 비참한 현실 속에서 바둥거려야 했다.
전단지 돌리기부터 고깃집 알바, 공사장 일용직 등.
할 수 있는 노력은 모두 해 봤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능력이 생겼으니 조금 욕심을 부려도 되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강현이 입을 열었다.
“잘 살고 싶습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
재력이든 능력이든 그 무엇이든 더는 삶에 휘둘리거나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야말로 잘 살고 싶었다.
강현의 솔직한 대답에 창밖을 보던 서윤진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은 목표네. 중대장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결국 군 생활은 잠깐이고 삶은 긴 법이니까. 내겐 직장이지만 너희에겐 아니잖아?”
“그렇습니다…….”
“사실 오늘 같은 공이라면 밖에선 포상금보다 최소 두 배 많으면 다섯 배는 더 받을 수 있었겠지. 그렇기 때문에 포상금을 못 받는 누군가는 후임들의 정보를 팔아 돈을 벌 수도 있고.”
“그건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중대장은 그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 국방의 의무를 자랑스럽게 여겨라 같은 헛소리를 하진 않아. 대신.”
서윤진 대위가 당당히 가슴을 폈다.
“최선을 다하고 실적을 쌓아. 그 모든 기록을 자세히 남겨서 이력서로 만들어 줄 테니까. 어떤 작전에 참여했는지 또 어떤 능력으로 전투에 영향을 미쳤는지 모두 강현이의 이력이 될 거야.”
“알겠습니다.”
“뭐, 잘한다면 좋은 곳에 다리를 놔줄 수도 있겠지? 물론 추천서 같은 거로 말야.”
찡긋, 윙크까지 건네는 서윤진 대위의 넉살에 강현의 입가에도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어떻게 보면 너무 현실적인 이유라 거부감이 들 법도 했지만 이게 서윤진 대위가 부대를 이끄는 방법이었고 강현은 꽤 만족했다.
“좋아. 이 정도면 훈수 둘 건 다 뒀고 이제 두툼한 돈 봉투 들고 나가 봐.”
“그… 혹시 중대장님, 앞으로 받게 되는 포상금은 모두 제 계좌로 들어오는 겁니까?”
“일단은? 왜? 포상금 나올 때마다 현금으로 줄까?”
“그것이 아니라 다른 계좌로 옮겨 놓으려 합니다.”
“다른 계좌? 그건 어려운데. 일단 본인 손으로 들어가는 게 최우선이라.”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저, 곧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할머니께서도 좀 몸이 아프셔서…….”
“그럼 더더욱 계좌 돌려 줄 수 없겠네. 야, 최강현.”
“이병 최강현. 죄송합니다.”
무언가 실수한 걸까.
단호한 중대장의 대답에 강현이 잠시 입술을 물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강현을 노려보던 중대장이 포근하게 미소 지었다.
“앞으로 너는 무조건 현금으로 받아. 그리고 그거 직접 계좌이체 하면서 할머니께 돈 부칠 때마다 안부 전화 드려. 일병 달 때까지는 매번 중대장한테 보고하고. 알겠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턴 신병 전용 작업이 부여될 테니까 저녁에 푹 쉬어 둬. 나가 봐.”
“감사합니다. 충-성!”
“충성.”
강현이 나간 후.
잠시 문을 먹먹하게 바라보던 중대장이 약간 빨개진 코를 문질렀다.
유독 가족에 관한 거라면 감수성이 폭발하는 그녀였다.
[서윤진 대위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일정 이상 호감도를 획득하여 인물 관련 정보를 갱신합니다. 일정 호감도 이상을 획득할 때마다 인물 관련 혜택, 퀘스트 등을 부여받습니다]
어? 이건 또 뭐야.
‘인물창’
설마 하는 마음으로 해 본 생각에 정말 이전 상태창과는 다른 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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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윤진
직책: 대위
나이: 27
호감도: 30
정보: 군복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은 엄청난 글래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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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씨, 미친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