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이 좋은 걸 안 써?
보통 게이트는 던전형과 필드형 둘로 나뉜다.
그 안에서도 함정형, 시간제한형 등 다양한 형태가 있었지만 결국 공통점은 몬스터가 나온다는 것.
군단 특임대 3중대가 진입한 곳은 그중에서도 필드형 게이트였다.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사람 허리까지 오는 억센 풀이 가득한 들판.
각자 무기를 꼬나쥔 중대원들이 백백한 풀을 밀어내며 전진할 때.
쏴아아아.
갑작스러운 돌풍이 들판을 어질러 놨다.
종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풀들과 긴장한 병사들의 땀 냄새.
선두에 선 중대장이 잠시 코를 킁킁거리더니 갑작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1열 방패 들어!”
지금껏 수화로만 명령하던 중대장의 목소리에 대원들이 일제히 방패를 들어 올렸고.
“키에엑!”
돌풍과 들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몬스터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수풀 사이에서 고블린의 머리통이 우수수 솟아나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도 수십.
“진열 정비! 1열 방어 후 2열 공격 준비!”
“꿰르르륵!”
분위기가 급하게 흘러갔다.
맨 앞에서 괴물들의 공격을 받아내야 하는 탱커들의 목울대가 긴장으로 꿀렁거렸다.
그리고 서윤진 대위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중에도 날카로운 눈매로 전장을 훑어보고 있었다.
특임대의 제일 목표는 게이트의 무력화.
지금 수풀 속에서 몸을 숨기고 달려오는 놈들의 행동을 보아서는 지휘하는 놈이 있을 터.
“쿠웨엑!”
“버텨!”
뛰어오른 고블린들과 1열이 거칠게 부딪혔고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1열이 1차 공격을 막아 내고 고블린을 뒤로 밀치면 2열 딜러들이 무기로 놈들을 베어 낸다.
그중에서도 중대장 서윤진 대위의 무력은 압도적이었다.
무기 하나 없이 맨손으로도 고블린의 목을 쉽게 꺾었고 단번에 죽였다.
어느새 그녀 주위로 고블린 시체가 쌓여 가고 있었다.
“3열 보충 인원 교대!”
그러나 서윤진 대위의 선전에도 전황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풀숲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고블린의 숫자는 줄지 않았고 중대를 조여 오는 움직임이 점점 치밀해졌다.
야성에 미쳐 마구 덤비는 일반적인 놈들이 아니었다.
그때 서윤진 대위의 눈에 다른 고블린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놈이 소리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놈이 원흉이다.
“크르르. 중대 버텨라.”
적 지휘관을 발견한 서윤진 대위의 눈이 맹수의 그것처럼 새빨갛게 빛났다.
으르렁거림을 뱉어 낸 그녀가 막 달려들려는 찰나에.
탕!
던전에서 듣기 어려운 총성이 들판에 울려 퍼졌고.
고블린 지휘관이 풀썩 수풀 사이로 쓰러졌다.
다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대체 누가? 라는 의문을 떠올리는 순간.
“야, 이 미친 새끼야. 제정신이야? 어디 신병 새끼가 총을 쏴 재껴!”
총을 어깨 위에 올려놓은 강현에게 욕을 뱉어 내는 강형태 상병의 고함이 전쟁터를 울렸다.
* * *
강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다들 총을 안 쓰지?’
중대원 전체가 약속이라도 한 듯 총을 뒤로 비켜 멘 채 싸우고 있었다.
심지어 몇은 개머리판을 접어 두기까지 한 모습.
마치 필요 없는 물건 취급하는 듯했다.
강현이 자신이 든 총을 잠시 쳐다보자.
[사용자의 경험을 불러옵니다]
휴가자의 기억이 들어오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스킬들이 없구나.’
아무리 던전 광물로 만들고 보급형 마력탄을 준다고 하나, 본래 본인이 쓰던 스킬만큼 익숙지도 위력적이지도 않다.
거기다 전투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몬스터들과 뒤섞이게 되고 접근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위력이 제한적이고 합격에 방해되는 총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
강현이 들고 있는 이 총의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경험치가 적은 건 아쉽지만 이미 스킬은 충분하게 있다.’
그러나 강현은 달랐다.
현재 가진 스킬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전 훈련소에서 받은 일반 총으로도 고블린 다섯을 잡았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총과 총알이라면 더욱 강한 위력을 낼 터.
‘다만 타이밍이 문제겠지.’
강현의 눈이 아직 반짝거리고 있는 퀘스트 목록을 훑었다.
이제 막 전입 온 신병.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선입견으로 쌓일 시기였다.
차기 에이스가 되느냐 관심병사가 되느냐는 한 끗 차이.
잠시 상황을 살피던 강현의 눈에 다른 고블린보다 키가 한 뼘은 큰 놈이 들어왔다.
‘어차피 눈에 띌 거 어중이떠중이로는 안 돼.’
고블린 한두 마리 잡는다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총기 사용자라며 불평이나 하겠지.
그렇기에 눈에 띄는 놈을 잡아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한 강현이 총을 어깨에 견착했다.
연이어 떠오르는 스킬 적용 알림들.
침착하게 놈의 머리통을 겨냥한 후.
탕!
선임들이 싸우느라 잠시 벌어진 틈새로 총알을 발사했고 그대로 고블린 지휘관이 꺼꾸러졌다.
지난번처럼 눈을 노렸으니 다시 일어나진 못할 것이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제정신이야? 어디 신병 새끼가 총을 쏴 재껴!”
옆에서 강형태가 뭐라 뭐라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강현은 침착하게 곧 떠오를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고블린 지휘관을 처치했습니다. 고블린들의 전투력이 급감합니다]
강현이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 새끼야 선임이 말하는데 씹어? 어?”
강현의 태도에 더욱 화를 내던 강형태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멈칫했다.
지휘관을 잃은 고블린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중대장이 아직 어리둥절해하는 병사들을 밀치며 강현에게 다가왔다.
“너 이 새끼!”
군복 곳곳에 고블린의 피를 묻힌 채 씩씩거리는 서윤진 대위의 기세가 자못 살벌했다.
“넌 뒈졌다. 중대장님 개빡치면 얼마나 무서운질 모르니 그딴 짓을 하지.”
강형태 상병이 확신에 찬 눈으로 강현을 보며 눈을 부라릴 때.
“이 이쁜 자식!”
서윤진 대위가 대뜸 강현을 번쩍 껴안아 들어 올렸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마치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듯했다.
“으윽, 이병 최강현! 중대장님 갈, 갈비뼈가 나갈 것 같습니다!”
“참아. 칭찬이니까.”
“이병 최강현!”
자신보다 키도 작은 서윤진 대위에게 안긴 채 캑캑 대고 있는 강현을 본 선임들이 중얼거렸다.
“와, 포상 오졌고.”
“전입 오자마자 중대장님 포상을 받네.”
그들의 부러운 눈빛을 본 강현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미친놈들아, 후임 죽는다고!’
강현이 순간 계급을 잊고 비명을 꽥 지르기 직전에야 서윤진 대위가 힘을 풀었다.
“사격 스킬이냐?”
“이병 최강현! 총기 관련 스킬 보유했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 몰려오는 고블린 새끼 중 어디까지가 사격 범위야?”
고민할 것도 없다.
“보이는 놈 전부입니다.”
“그 너머는?”
“명중률이 떨어지겠지만 타격은 가능합니다.”
“방해물은?”
“고지대가 아니어서 시야에 제한이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대화.
확실한 강현의 대답에 서윤진 대위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이 정도면 믿을 수 있겠어.’
마치 짬이 좀 있는 부사관이나 작전 경험이 많은 병사와 대화하는 느낌.
신병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태도에 서윤진 대위가 오랜만에 만족했다.
실망의 대명사 중대장으로선 이례적인 일.
“모두 신병, 아니 최강현 이병을 중심으로 방진을 짠다!”
서윤진 대위가 바로 부대 전술을 변경했다.
야전 지휘관은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부대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법.
“1열과 2열은 합심해서 다가오는 적을 격살하고 3열은 스나이퍼 최강현 이병을 지키도록!”
“예!”
스나이퍼, 멀리 떨어진 적을 총 한 자루로 제압하는 포지션.
이 넓은 들판에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적을 상대로 뒤엉켜 싸우느니 사살 능력이 있는 포대를 박아 두고 주변을 지킨다.
강현의 존재가 중대의 작전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물론 신병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긴다는 불안함이 있었으나 현재로선 가장 효율적인 전투 방식.
“전체 집결!”
강현을 중심으로 두터운 방벽이 세워졌다.
그리고 때맞춰 다시 고블린 무리가 특임대 3중대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강형태.”
“상병 강형태.”
“너에겐 특별 임무를 부여하겠다.”
“트, 특별 임무 말씀이십니까?”
“그래.”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엎드려.”
“잘못 들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말씀이십니까?”
“엎드려. 새꺄! 아니 그렇게 말고 그냥 쪼그려서 엎드리라고!”
서윤진 대위의 호통에 강형태 상병이 몸을 웅크린 채 엎드렸고 비로소 중대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강현 이병은 여기 강형태 상병 등짝 위에 올라서서 쏘도록.”
“주, 중대장님?”
“너 신병한테 욕한 거 못 들었을 줄 알아? 정기 휴가 잘릴래? 발판 할래? 징계 위원회 열어서 휴가 확 날려 줘?”
“…발판 하겠습니다.”
“잘 버티면 넘어가 줄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형태 상병의 대답을 들은 서윤진 대위가 훌쩍 뛰어올라 병사들 위를 넘어갔다.
“이병 최강현! 실례하겠습니다. 강형태 상병님!”
“크윽!”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현은 거침없이 등짝 위에 올라섰다.
‘처음부터 지랄했었지.’
아까 전에 욕먹은 원한까지 담아 등을 꾹꾹 누르며 디딤발을 안정시킨 후 총을 견착했다.
조금 높은 장소에 올라섰을 뿐인데 시야가 탁 트였다.
그러자 어서 터뜨려 달라는 듯 수풀 사이로 불쑥불쑥 솟아나 있는 고블린의 머리통이 시야에 잡혔다.
‘경험치가 달겠구나!’
군침이 싹 도는 풍경에 강현이 입맛을 다시며 찬찬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고블린 지휘관을 사살했습니다. 경험치를 흡수합니다!]
[경험치 두 배 효과가 적용됩니다]
탕!
[고블린 싸움꾼을 사살했습니다. 경험치를 흡수합니다!]
[총기 사용이 능숙해집니다. 모든 총기 관련 스킬의 경험치가 오릅니다]
[경험치 두 배 효과가 적용됩니다]
[새로운 스킬 서서 쏴가 생성되었습니다. 현재 자세에서 명중률이 올라갑니다]
[히든 조건 앉아 쏴, 엎드려 쏴, 서서 쏴 스킬을 모두 획득하라를 만족하셨습니다]
[새로운 스킬 전진무의탁 사격 자세가 생성되었습니다!]
[사격 효율이 증가합니다]
한 발에 한 마리.
강현은 아무 고블린이나 사낭하지 않았다.
유독 덩치가 큰 놈 또는 목소리가 사납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놈을 첫 번째 타깃으로 삼았다.
그다음에는 원거리 공격을 하려는 놈.
마구잡이로 달려오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우지직
“크르릉!”
서윤진 대위께서 손수 찢어발겼으니까.
강현이 원거리에서 피곤한 놈들을 죽이는 동안 흘러나온 놈들은 특임대에서 처리한다.
강현에겐 그야말로 달달한 꿀통이나 다름없었다.
위험에 노출될 일도 없이 계속해서 강한 놈의 경험치만 쪽쪽 빨아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모습이 선임병들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원샷, 원킬!”
“강현이가 원거리 고블린도 죽이고 있으니까 위축되지마!”
“모두 힘을 비축해 둬!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생기면 우리가 싸워야 한다!”
혹한기 훈련 중에 터진 실제 상황.
이런 경우에 종종 사고가 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다들 긴장한 상태였는데 강현 덕에 한결 작전이 편해졌다.
신병이란 말에 처음엔 좀 의심하는 눈으로 봤는데 지금 사격 실력을 보니 저절로 믿음이 갔다.
군대는 계급도 중요하지만 실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헌터 특임대처럼 목숨 걸고 실제 작전을 펼치는 곳이라면 더더욱.
“이병 최강현! 탄이 다 떨어졌습니다!”
마침 탄이 다 떨어진 강현이 보고를 하는 순간.
우르르르.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선임들이 자신들의 총과 탄을 강현 앞에 쌓아 놓았다.
그중 병장 한 명이 탄알집까지 낀 총을 강현에게 건넸다.
“걱정 말고 쏴 재껴라. 네 앞은 우리가 막아 주마 신병.”
“오올, 심 병장님 웬일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얼마 전에 본 웹툰에서 본 대삽니까?”
“…어떻게 알았냐?”
“저도 그 웹툰 봅니다.”
병장 둘이 서로 농담을 던지며 강현의 앞을 방패로 막아서는 순간.
[메인 퀘스트 강렬한 첫인상]
[현재 2/3 만족]
이제 메인 퀘스트를 깨려면 한 명만 더 강현을 인정하면 된다.
강현이 다시 사냥을 시작하기 위해 많이 사용해 뻑뻑해진 총을 버리고 건네받은 새로운 총을 견착하자.
[새로운 총기와 접촉했습니다. 경험치를 흡수합니다]
[경험치 두 배가 적용됩니다]
[스킬 총기 마스터리의 레벨이 가득찼습니다 등급이 오릅니다]
[총기 마스터리(F)가 (E)로 바뀝니다. 기존 사격 스킬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다른 총을 들면 그 안에 든 경험도 빨아 온다고?’
새롭게 안 사실에 강현이 전율했다.
‘그럼 이 앞에 쌓여 있는 총 모두가?’
선임들이 모아 놓은 총이 마치 황금 무더기처럼 보였다.
오래된 물건만 있다면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
잠시 강현이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힐 때.
뿌우우!
커다란 뿔피리 소리와 함께 들판 저 멀리 빠르게 달려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병사들 중 시력 관련 특성이 있는 누군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설마, 고블린 라이더?”
다들 예상치 못한 적의 등장에 당황할 때.
‘오, 새로운 경험치 덩어리 어서 오고.’
강현은 남들과는 좀 다른 이유로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