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웨에에엥
보통 신병이 자대에 전입오면 선임들이 모여 환영해 주기 마련.
그때 이빨 보이며 웃으면 화려한 군 생활을 즐길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강현의 전입은 생각보다 조촐했다.
강현이 차에서 내릴 때, 막사 앞에는 짜증 가득한 표정의 상병 한 명만 있을 뿐이었다.
가슴팍에는 강형태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야, 신병.”
“이병 최강현!”
“일단 따라와라.”
교관이 떠난 후 강형태 상병이 강현을 데리고 건물 안쪽, 중대 행정반이란 팻말이 붙어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어진 간단한 신원 조사.
“나이, 학력, 잘하는 거 다 말해 봐.”
“이병 최강현! 나이는 21살. 고졸입니다!”
“잘하는 거는?”
“훈련소 때 사격 만발이었습니다!”
“쯧, 그딴 건 누구나 하는 거고 새꺄. 특기 없음, 취미는? 대충 TV 보기로 해라.”
딱 봐도 군 생활 대충하는 놈으로 보였다.
‘이런 인간이랑은 엮이지 않는 게 제일인데.’
저런 선임 만나면 일 다 떠맡으며 개고생한다.
강현이 흡수한 전역자의 기억에 따르면 그랬다.
“부모님은?”
“안 계십니다.”
“두 분 다?”
“네.”
“대학도 안 갔다며? 밖에선 뭐 했냐?”
“아르바이트했습니다.”
“쓰읍, 이 관심병사 새끼 총 주면 안 되겠는데. 야, 나중에 나 쏘면 안 된다.”
관심병사.
자살 징후 또는 군 생활에 문제가 있을 것 같은 병사를 그리 부른다.
대부분은 부대에서 관리했지만 심할 경우 군단 그린캠프에 보내기도 한다.
강형태 상병의 머리에 강현은 그런 놈으로 입력됐다.
그가 엔터를 신경질적으로 치더니 몸을 의자에 확 기댔다.
“에이씨, 이번에도 조졌네. 어째 괜찮은 신병 하나가 안 들어오냐, 하나가.”
대놓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발언이었지만 강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군대란 그런 곳이니까.
계급에 의해 상대의 인격을 쉽게 뭉갤 수 있는 곳.
“상병 꺾인 지가 언젠데 언제까지 X나 뺑이 쳐야 하냐고. 야, 그렇냐 안 그렇냐.”
“이병 최강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죄송하면 군 생활 끝나냐?”
“강형태 상병님의 짐을 덜어드렸어야 했는데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열심히 그리고 잘하겠습니다!”
보통의 신병이라면 YES or NO의 이지선다 앞에서 어버버하다 말실수하고 무한 갈굼의 늪에 빠지는 법이었지만.
“…어,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
“이병 최강현! 감사합니다!”
강현이 아예 그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자 강형태도 할 말을 잃었다.
각 잡혔지만 어리바리하지 않은 표정, 단단하면서도 큰 목소리, 거기다 언변 특성까지 겹치니 이등병답지 않은 분위기가 풍겼고 강형태도 이를 얼핏이나마 느꼈던 것.
사실 강현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엔 군대에서 만날 수 있는 개 같은 선임 유형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고 상황에 따른 탈출법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강현마저도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웨에에엥.
자신이 전입한 곳이 바로 헌터 특임대라는 것.
특히 헌터 특임대는 일반 부대와는 전혀 다른 임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
이는 앞선 훈련소 전역자도 겪어 본 적 없는 일.
갑작스러운 사이렌 소리에 강현의 고개가 퍼뜩 돌아갔다.
“아, 아, 전파합니다. 실제 작전 투입 상황. 실제 작전 투입 상황. 막사 내에 있는 전 병력은 무장을 갖추고 막사 앞으로 모여 주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전파합니다.”
방송에서 실제라는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담담한 목소리가 퍼져 나왔고 곧 위층에서부터 쿠당탕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방송을 들은 강형태가 슬쩍 강현을 바라보며 비열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딱 보니까 지 좀 잘났다고 생각하나 본데, 이런 새끼는 초장에 잡아야지.’
안 그래도 조금 전 강현의 대답에 아무 말도 못 했던 것이 자존심이 상했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사실 만만한 신병 잡고 늘어지기가 그의 특기였다.
“야, 들었냐? 실제 상황이란다. 나가서 몬스터랑 싸워야 하는 데 자신 있냐? 너 X됐어. 야, 신병. 너무 쫄아서 말도 안 나오냐?”
“…….”
“하, 이 새끼 쫄았네. 야, 대답 안 하냐? 이거 딱 보니 폐급이네. 야!”
마침 꼬투리를 잡았다는 생각에 신난 강형태가 차차 목소리를 올렸다.
그러나 강현이 굳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벌어진 문틈 사이 슬그머니 나타난 눈동자를 마주쳤고.
‘맹수? 아니, 사람?’
군부대에 있어선 안 되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강현의 눈길을 눈치챈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며 행정반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야, 강형태 이 새끼야. 너 신병 괴롭히고 있었냐? 엎드려.”
“아닙니다.”
“중대장 말에 토 달아? 엎드려!”
“엎드려!”
실망의 대명사.
반드시 병사들에게 실망해야만 하는 직책 중대장.
특히 중대 행정병이라면 보급관 또는 중대장과 자주 마주치는 만큼 가까우면서도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직책이었다.
‘여자였어?’
그리고 중대장을 마주한 강현도 잠시 놀랐다.
붉은빛이 강하게 도는 긴 생머리에 날카롭게 생긴 이목구비, 비록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확연히 굴곡이 드러나는 몸.
밖에서 봤다면 모델이라고 착각할 만한 외모.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것은 아름다운 외형에도 불구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은 야생성과 강함이 느껴졌다는 점.
‘강하다.’
잠시 강형태를 보며 으르렁거리던 중대장이 휙 고개를 돌려 강현을 살폈다.
찬찬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강현을 뜯어보는 눈빛이 마치 한 마리 호랑이를 마주한 느낌.
고블린 다섯을 마주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었다.
비록 강현의 키에 조금 못 미쳤지만 분위기와 아름다운 외모가 너무 압도적이라 왠지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강현 앞에 바짝 다가온 그녀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차갑게 물었다.
“신병인가?”
“충-성! 이병 최강현! 맞습니다!”
“무서워하지 않네?”
중대장의 말에 강현이 잠시 생각했다.
무엇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본인을 아니면 강형태 상병을?
중대장의 눈을 살핀 강현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그딴 것을 신경 쓸 위치가 아니다.
강형태처럼 자신의 강인함을 억지로 주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게 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자.
거기다 방금 강형태에게 윽박지른 것으로 보아 그런 짓을 싫어하기까지 한다.
“훈련소에서 실제 상황에 긴장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배웠습니다!”
“머리도 나쁘지 않고.”
강현에 대답에 중대장이 만족스러운 듯 슬며시 웃었다.
그 모습마저도 마치 배부른 호랑이가 미소 짓는 것 같았다.
금방 웃음기를 거둔 중대장이 엎드려 있는 강형태 상병를 향해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일단 신병한테 휴가자 보급 무장 나눠 주고 현장으로 데려간다.”
“잘못 들었습니다? 신병도 데려갑니까? 저랑 같이 영내 대기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 대부분 혹한기 훈련 나간 거 알아, 몰라? 머릿수 채우려면 짬타이거라도 데려가야 할 상황이니까 두말 말고 움직여. 너도 가는 거니까 같이 준비해서 막사 앞으로 나와.”
“으… 알겠습니다.”
중대장이 나간 후.
“이런 X발!”
강형태 상병이 작게 욕을 짓씹고는 강현을 노려보며 턱짓했다.
“따라와. 새꺄.”
강현이 무표정을 유지하며 생활관으로 따라가니 강형태가 훈련소와 같은 모양의 관물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헌터용 보급 총이다. 훈련소에서 배웠지? 저기 장구류 있으니까 가서 착용해.”
물론 배운 적 없다.
강현은 헌터 신병 교육대가 아닌 일반병 훈련소에서 배출된 인원.
관물대에 세워진 총과 차곡차곡 쌓여 있는 장구류 모두 처음 보는 물건이었지만.
‘상관없어.’
개의치 않았다.
강현에겐 지난 훈련소에서 얻은 확신이 있었다.
누군가 사용했던 물건이라면, 오래 사용했으면 사용했을수록 거기에는 누군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법.
그리고 강현의 능력, 고물 수집가는 물건에 담긴 경험을 빨아들일 수 있다.
비록 훈련소에서 배운 적 없더라도, 처음 보는 장비라도 겁먹을 것 없다.
오히려 심장이 두근거렸다.
‘분명 휴가자 것이라 했지.’
훈련소에서 배우는 이론과 부대에서 겪는 실제 임무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병은 이 적응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러나 강현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가 준비된 총을 집어 들자.
[새로운 고물 보급 총 K-2H와 접촉하였습니다]
[이전 사용자들의 경험을 흡수합니다]
[장비 사용법에 익숙해집니다]
[새로운 고물 대몬스터용 기본 방호복과 접촉하였습니다]
[이전 사용자들의 경험을 흡수합니다]
[장비 사용법에 익숙해집니다]
경험을 빨아들인 강현이 몇십 번은 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검은 방호복을 전투복 위에 겹쳐 입고 K-2H보다 좀 더 길이가 긴 총을 어깨에 둘러멨다.
마지막으로 검은 고글이 올려진 흑색 방탄모까지 쓰면 끝.
강현이 모든 준비를 끝낸 반면 강형태는 아직도 낑낑거리며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지금 실 작전이라잖아. 빨리 입어야지! 너 나보다 늦게 입으면 뒈진다! 어? 뭐야?”
강형태가 상병 짬을 뽐내려고 뒤를 도는 순간,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강현을 보고는 입을 헤 벌렸다.
“다, 다 입었어?”
“그렇습니다.”
“엉망이야, 엉망! 넌 작전 끝나고 줘 털릴 각오해라.”
아까부터 신병에게 밀린 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괜히 꽥 윽박지른 놈이 나가려 할 때.
강현이 강형태를 불러 세웠다.
“강형태 상병님?”
“왜?”
“방탄모 두고 가셨습니다.”
“X발. 왜 갑자기 상황이 터져서는…….”
나지막이 욕을 뱉으며 강현의 손에서 방탄모를 낚아챈 강형태가 휙 생활관을 나갔고.
“저 새낀 챙겨 줘도 지랄이야?”
슬며시 뒷담화를 깐 강현이 고개를 저으며 생활관을 나섰다.
[장구류를 착용했습니다. 사용에 능숙해집니다]
[흡수한 경험과 싱크로율이 상승합니다]
[새로운 총기 및 사용 경험 축적으로 총기 마스터리 경험치가 오릅니다]
[경험치 두 배가 적용됩니다]
이러는 와중에도 시끄럽게 울어 대는 알림에 금방 그나마 기분이 풀렸다.
그리고 동시에 속으로 바랐다.
‘이대로는 안 돼. 저런 재수 없는 놈이랑 계속 엮이면 끝장이다. 이번 작전 때 퀘스트를 깨야 한다.’
강현은 부대에 진입했을 때 떠오른 퀘스트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메인 퀘스트 강렬한 첫인상]
[부대에 처음 전입 온 당신, 최소 세 명의 눈길을 끌어야만 이 험난한 군 생활이 조금은 편해질 것입니다]
[서브 퀘스트 인명을 구조하라]
[앞으로의 수많은 작전에서 총 10명을 구출하라]
마치 퀘스트에 맞춰 터진 듯한 상황.
강현은 건물 밖으로 나가며 반드시 퀘스트를 깨리라 다짐했다.
* * *
“현재 인원이 부족하니 분대별로 임무를 재조정한다. 각 분대 탱커가 일선, 이선에 딜러가 선다. 보충 인원들은 삼선에서 명에 따라 교체할 수 있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부대에서 30분가량 떨어진 도로 한복판.
중대장의 명령에 우렁차게 대답한 중대원들이 이전 훈련받은 대로 각자 자신의 포지션에 위치했다.
평소라면 분대별로 움직이겠지만 현재 혹한기 훈련 때문에 반절 이상의 간부와 병사들이 나가 있는 상황.
차라리 뭉쳐 이동하는 게 났다는 중대장의 판단이었다.
‘저게 게이트.’
강현은 난생처음 보는 20층 아파트 반만 한 크기의 입구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저 안에 들어가면 말로만 듣던 필드 또는 던전이 있을 터.
대체 무슨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을까.
“헌터 특임대 3중대 전진!”
“전진!”
중대장이 검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응답한 중대원들이 발맞춰 전진하기 시작했다.
개인은 커다란 게이트 앞에서 초라했지만 단결된 힘은 지금껏 오랜 시간 동안 인류를 지켰다.
자신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에 강현의 심장이 더욱 거세게 뛰었다.
“중대 게이트 진입!”
“우와아아!”
우렁찬 함성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서는 게… 아니라?
‘어? 여기가 아냐? 어디 가는 거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입구를 마주한 강현의 가슴이 막 웅장해지려는 순간.
중대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거대 게이트를 지나쳤다.
당황한 강현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때.
빼꼼.
커다란 게이트 뒤쪽, 앞선 것에 비하면 참으로 작디작은 게이트 하나가 수줍게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간부 우선 진입 후 탱커부터 차례로 진입한다!”
그 작은 구멍으로 다들 몸을 욱여넣는 모습이 얼핏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
맨 뒤에 남은 강현이 자기 키만 한 게이트에 진입하려 할 때.
“으으으, 들어가기 싫은데. X발 어쩌지.”
강형태 상병이 앞에서 겁에 질린 채 손을 달달 떨며 멈춰 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강현이 문득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어? 저기 고블린?”
“우와아악!”
강형태 상병이 기겁을 하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고 강현이 그 모습에 숨죽여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중대 모두가 들어간 후.
작았던 게이트 입구가 방금보다 한 뼘가량 커졌단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