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참 달다 달아
K-2H, 군 생활을 하다 보면 지긋지긋하게 만지는 총.
사격하랴, 총기 수입하랴 훈련 때는 껴안고 잠까지 자야 하니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건 훈련소가 끝난 후 자대에 가서 겪을 이야기.
이제 막 군대 튜토리얼을 시작한 훈련병들 입장에선 어색하고 낯선 무기임은 분명했다.
“안전 검사 실시. 약실 확인, 약실 이상 무. 격발, 격발 이상 무.”
그러나 지금 어깨 위에 총을 올린 채 안전 검사를 실시하는 강현의 행동엔 막힘이 없었다.
마치 익숙한 일이라는 듯 주변을 흘끔거리며 자신이 맞는지 확인하지도 않는다.
강현이 능숙하게 분해를 끝냈다.
“총기 이상 무.”
그리고는 다시 결합을 시작했다.
보통 훈련병이라면 시간에 쫓겨, 뻑뻑한 훈련병용 총이 익숙지 않아 한 번쯤 버벅거릴 만한데 오히려 강현의 손길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모든 과정을 끝마친 강현이 총을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교관이 들고 있던 초시계 버튼을 꾹 눌렀다.
“1분 4초.”
“오오.”
“아까보다 빨라졌네.”
아까보다 훨씬 단축된 시간에 다른 동기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놀람에 이견이 없다는 듯 교관 또한 훈련병들의 입을 막지 않았다.
“조교는 몇 초였지?”
“…1분 27초입니다.”
“졌네?”
“죄송합니다.”
“죄송까지야.”
대답하는 조교도 강현을 질렸다는 듯 볼 뿐 아까처럼 화난 기색은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도 너무 잘했기 때문.
예전 조교가 신병 시절 총기 분해 및 결합을 알려 주던 선임이 생각날 정도였다.
물론 그 인간은 전역한 지 오래였지만 말이다.
“훈련병.”
“182번 훈련병 최강현!”
“본 교관, 매우 만족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조교 통해서 초코파이 한 박스 주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우와아아!”
좋아하는 훈련병들을 보던 교관이 강현을 힐끔 보고는 다른 훈련병들을 살피러 떠났다.
“우와아…….”
혹시라도 조교의 보복이 있을까 걱정한 훈련병들이 목소리를 사그라뜨렸으나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182번 훈련병은 나와서 총기 분해 결합 교보재 합니다. 훈련병들은 조교 설명 다시 듣습니다.”
“알겠습니다!”
다만 약간의 심술 풀이는 하고 싶었는지 강현을 억지로 붙잡아 둔 조교 덕에 강현만 총기 결합을 수십 번 되풀이 해야 했으나.
[총기 관련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총기 관련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총기에 녹아 있는 경험치를 흡수합니다]
[총기 마스터리(F)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강현에겐 고생이 아닌 행복의 시작이었다.
총을 처음 받을 때까지만 해도 단단하고 무거운 질감이 강현에겐 어색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하게 익숙했다.
마치 수십, 수백 번 총기를 결합한 듯한 감촉.
그뿐만 아니다.
‘연결 핀 부분이 뻑뻑하니 강하게 내리쳐야 한다.’
분명 처음 만져 보는 총이건만 마치 오랫동안 사용한 듯 문제 있는 부분까지 떠올랐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도.
강현은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이 기억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메시지와 관련이 있음을 분명히 알았다.
[총기에 녹아 있는 경험치를 흡수합니다]
메시지가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강현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총에 담긴 기억이구나.’
얼마나 많은 훈련병의 손을 거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경험과 기억이 강현에게 녹아 들어오고 있다는 점은 확실했다.
그리고 어제 꾸었던 꿈.
베개를 베고 자려는 순간.
[능력을 개방하셨습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베개에 접촉하셨습니다]
[녹아 있는 경험과 기억을 흡수합니다]
[튜토리얼 퀘스트 훈련소를 시작합니다]
살면서 처음 본 알림 창이 눈앞에 떠올랐고 누군가의 군 생활을 꿈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의 경험이 흡수되어 강현의 능력이 되었다.
[이름 모를 전역자의 경험이 발휘됩니다]
[기억 일부를 불러옵니다]
동시에 그가 군 생활 내내 반복해서 가르쳤던 앞으로의 훈련이 떠올랐고 훈련병들에게 지적했던 사항이 저절로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건 대박이잖아.’
그래, 그야말로 대박.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남의 경험과 능력을 빨아들이는 능력이라니.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이 능력과 함께라면 군 생활쯤은 아무것도 아니리라.
그런데 능력이라면.
‘보통 불을 뿜거나 사자로 변신하거나 그런 거 아니었나?’
게이트가 생기고 헌터가 생긴 지 꽤 오래.
그만큼 상태창이라는 개념이 이상하거나 어색한 것은 아니었다.
신체 강화계, 특수 능력계, 탐지계, 인물계 등등 온갖 능력이 밝혀지고 카테고리를 나눌 만큼 다양하다지만 이런 식의 능력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TV에서 봐 온 헌터들의 모습이야 대부분 싸움박질하는 모습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이트에 들어가 몬스터를 잡고 세상이 망하는 걸 막는 영웅들.
물론 신인류다, 계층 간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킨다, 적폐가 되기 전에 규제해야 한다 등 그냥 남 잘난 거 꼴 보기 싫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헌터를 좋아했다.
아니 부러워했다.
슈퍼히어로가 실존하고 그게 내가 될지도 모른다니 멋있지 않은가?
다만.
‘이 능력으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TV에서나 보던 괴물을 잡을 수 있을까?’
군 생활 하기엔 대박인 능력인데 과연 헌터까지 할 만한 능력인지를 모르겠다.
일반인에겐 대박이라도 목숨 걸고 전투를 하기엔 막상 부족한 능력 아닐까?
강현의 머릿속에 계속 의문이 맴돌았다.
‘그냥 생활계 능력으로 둘까?’
벌어먹고 살기 딱 좋은 간편한 능력.
만일 그렇다면 밝히지 않는 편이 좋다.
남들에게 치트키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보다는 이를 가지고 남은 인생 편하게 살면 되니까.
강현이 이기적인 것이 아닌 현대 헌터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통으로 하는 생각이었다.
헌터는 헌터로, 일반인은 일반인으로 능력 차가 명확한 두 인류는 이렇게라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혹시 아는가? 나중에 음식점이라도 열면 대박 날지.
[총기 관련 경험치가 올라갑니다]
[총기 관련 경험치가 올라갑니다]
[스킬 총기 마스터리 숙련도가 올라갑니다]
“와, 저 새끼 미친 거 아니냐?”
“야, 강현아 쉬엄쉬엄해 팔꿈치 안 아프냐? 나 뒈질 것 같은데.”
“어휴, 나는 불알 얼어붙겠다.”
“나는 이미 떨어진 듯.”
지금만 해도 그렇다.
강현은 딴생각하는 와중에도 피 나고 알 배기고 이 갈린다는 PRI훈련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다른 동기들은 초겨울 꽝꽝 얼기 시작한 땅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떠는 와중에도 강현의 총구는 흔들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오르는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 알림 창을 보느라 추위마저 잊었다.
꾸준히 성장한다는 즐거움.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성취감.
‘경험치 달다 달아.’
마치 게임을 하듯 쑥쑥 올라가는 경험치를 보며 강현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동기들은 강현의 인내심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히든 업적 훈련 교관을 만족시켜라를 달성했습니다]
[사격 자세 숙련도가 크게 증가합니다]
[스킬 안정된 사격을 얻었습니다]
강현의 훈련 태도를 보고 있던 건 동기들뿐만이 아니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 교관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
‘쓰읍, 저놈 물건 같은데.’
아침에 보였던 총기 분해 결합 실력에 이어 훈련 태도를 보니 절로 흡족한 마음이 일었다.
열심히 하는데 잘하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조교감이지. 볼수록 맘에 들어.’
딱 보아하니 조교로 차출하기 좋은 인원으로 보였던 것.
15년 넘는 군 생활 중 10년 이상 훈련병을 보아 왔던 짬밥으로 보건대 저놈은 분명 에이스가 될 상이었다.
본인은 속으로만 생각했지만 그 생각마저도 강현에겐 보상이 되어 돌아왔다.
‘하루 만에 스킬 두 개라고? 달다 달아!’
끊임없이 떠오르는 알림 창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삼키고 있는 강현이었다.
“182번 훈련병.”
“182번 훈련병 최강현!”
“잠시 일어나 쉬도록 합니다.”
“감사합니다, 조교님!”
그리고 강현의 이런 태도는 교관뿐만 아니라 조교의 마음마저 움직였다.
다른 훈련병들이 초겨울 추위를 못 이긴 채 허리를 자꾸 들썩들썩하는 동안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그를 쉬게 배려까지 해 주었다.
동기들의 부러운 시선이 쏟아졌건만 강현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아, 계속 경험치 얻어야 하는데… 새로운 스킬 숙련도도 올려야 하고.’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엎드려 있기만 해도 절로 굴러 들어오는 경험치와 숙련도가 아쉬울 뿐이었다.
* * *
어느덧 4주차 사격 측정 날이 되었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강현이 지난 시간 동안 얻은 스킬을 시험해 볼 무대가 다가왔다.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잠시 조용하던 사격 교장에 첫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이를 따르듯 연달아 터지는 총성이 교장을 울렸다.
“와, 총소리 졸라 크네.”
“게임에서 나는 소리는 별거 아니었구나.”
“그냥 서든어택처럼 헤드 라인 잡고 쏘면 되는 거 아니냐?”
“미친, 이 새끼 졸라 불안하네. 총구는 절대 돌리지 마라. 그러면 조교나 교관이 발로 깐다더라.”
“어떤 미친놈이 그런 짓을 하냐.”
난생처음 들어보는 실제 사격 소리에 놀란 훈련병들이 서로 속닥거렸다.
물론 조교를 바로 앞에 두고 있는 강현은 입도 벙긋 못 했지만, 그 또한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방향이 조금 달랐다.
‘만발이면 전화할 수 있다.’
전역자의 경험으로부터 자연스레 떠오른 사실.
그가 받아들인 경험 덕에 산에서 메아리치는 총소리도, 첫 사격을 끝내고 내려오는 흥분한 훈련병들에게서 풍기는 화약 냄새도 강현에겐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현을 두근거리게 만든 건 사격 만발을 맞추면 잠깐이라도 집에 통화할 기회를 얻는다는 사실이었다.
“6조 안전 검사 끝났습니다.”
“올려 보내.”
“6조 1사로부터 교장으로! 교장 들어가면서 사로 외치며 들어갑니다!”
교관의 말에 강현을 비롯한 생활관 동기들이 차례차례 교장을 향해 올라갔다.
“1사로!”
“2사로!”
“3사로!”
.
.
.
“10사로 번호 끝!”
마지막 사로까지 진입을 끝낸 후 탄알집과 탄피 받이까지 결합을 끝낸 강현은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엎드려 쏴 자세를 잡았다.
‘막상 잡으니까 떨리네.’
아무리 경험치를 흡수했다지만 실전과 이론은 다르니까.
강현이 긴장할 때.
[스킬 총기 마스터리를 적용합니다]
[안정된 사격 스킬과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효율이 대폭 상승합니다]
[지난 총기 사용자들의 경험을 불러옵니다]
[사격 실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치 만발쯤은 문제없을 것이라는 듯 쏟아지는 메시지를 본 강현의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좌사로 준비 끝!”
“우사로 준비 끝!”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드디어 중대장의 사격 명령이 떨어졌고 저 멀리 검은 표지가 불쑥 솟아올랐다.
처음은 100M 표적.
몸을 이완한 채 가늠자와 노리쇠를 일치시켰다. 이후 잔뜩 들이켠 숨을 내뱉으며 멈춘다. 찬찬히 손가락을 당겨 격발.
PRI훈련을 비롯해 사격 교장에 오르기 전까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사격의 정석.
실제 표적이 올라와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그러나 마음 급한 훈련병은 그 시간을 다 활용할 틈도 없이 방아쇠를 당겨 버리기 일쑤였다.
타앙!
역시나 표적이 올라옴과 동시에 총소리가 교장을 울렸고 첫발은 실수라 여긴 조교가 조언했다.
“급하게 쏘지 말고 찬찬히 시간 들여서 조준합니다.”
그러나.
탕!
다음 200M 표지에서도.
탕!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250M 표적이 올라왔을 때도 어김없이 바로 총소리가 울렸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 다른 훈련병들도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고 6조의 사격이 금방 끝났다.
“전사로 사격 끝!”
“아니 천천히 표적 보고 쏘라니까 왜 이렇게 급하게 쏘는 거야? 제일 처음 쏜 훈련병 누구야?”
이를 본 교관이 씩씩거리며 범인을 색출했고 강현이 손을 들었다.
“182번 훈련병 최강현.”
“야, 조교. 너 얘한테 천천히 쏘라고 옆에서 말 안 해 줬어? 표적 올리자마자 바로 쏘잖아!”
“해 줬습니다.”
“근데도 그랬단 말야?”
조교의 말에 화가 난 교관이 눈을 부라리며 강현에게 다가올 때.
“182번 훈련병 만발이다.”
확성기에서 흘러나온 중대장의 목소리에 교관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야, 조교. 만발 누구라고?”
“…182번 훈련병이랍니다.”
둘의 벙찐 문답이 오갈 때.
“182번 훈련병 최강현. 만발입니다.”
강현의 목소리가 쐐기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