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46화 (246/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27화>

남쪽 전선.

미 육군 소속 군인들이 대기 중이다.

“아오, 이게 무슨 고생이야.”

“담배 있는 사람.”

“여기.”

현재 요르문간드와의 전쟁에서 주요 전선은 세 군데다.

뉴욕과 동부를 타격한 북동 전선, LA와 서부의 주요 대도시를 붕괴시킨 북서 전선. 마지막으로 여기, 비교적 주목도가 덜한 남쪽 전선이 있다.

“움직임 없지?”

“있겠냐? 쟤들은 허접이잖아. 싸울 생각도 없을걸.”

“X밥들이지. 전투 벌어지면 질질 지릴 거다.”

“키킥. 볼만하겠는데?”

요르문간드 세력이 가장 몰려 있는 곳은 북동 전선이다. 뉴욕이나 워싱턴 D.C등 미국을 상징하는 도시가 몰린 곳답게, TA 시절 한 자릿수 넘버링들이나 진화단의 정예 요원들이 배치된 것이다.

다음으로 북서 전선.

이곳도 LA 같은 대도시가 즐비한 곳인 만큼 소강상태임에도 꽤 격렬한 전투를 이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앞선 두 곳과 다르게 이곳 남쪽 전선은 평화롭다.

최근에 일어난 전투가 4일 전. 그마저도 서로의 순찰대가 마주쳐 마법 몇 번 갈긴 게 전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다른 전선과는 대비되는 상황.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챌 수밖에 없다. 요르간문드가 남쪽 전선을 포기했다는 것을 말이다.

당연히 전황을 읽은 이들의 입에서 먼저 선공을 가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바로 이 병사처럼.

“소대장님, 이럴 거면 차라리 우리가 먼저 치는 게 낫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러면…….”

“근데 맞는 말도 아니야.”

결론부터 말하면 미 육군은 ‘현상 유지’를 고수하기로 했다.

왜?

어차피 이 전쟁은 승리한 전쟁이니까.

소대장은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못 알아듣는 병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얌마, 생각해 봐. 승리한 전쟁이라고. 이미 샴페인을 터뜨렸단 말이야.”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저기 적들이 있잖습니까.”

“그치, 맞지. 적이 있지. 그런데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저기 윗분들은, 이미 이 전쟁은 끝났고 이후를 생각해고 있거든. 정치의 영역이라 이거지.”

“아…….”

허접인 줄 아는데도 쳐들어가지 않는 것?

간단하다.

자리를 고수하며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거다.

절대 나쁜 생각이 아니다. 공명심에 눈이 멀어 병사들을 희생시키는 지휘관보다는 낫지 않나.

소대장이 어깨를 툭툭 쳐 주며 몸을 일으킨다.

“내 말 알았지? 적당히, 적당히 해. 중간만 하란 말이야.”

“네, 넷. 알겠습니다.”

그렇게 얼타는 병사를 격려하고, 소대장이 다른 초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뭐야?”

하늘 저편이 이상했다.

담배 연기 사이로 어둠이 몰려든다. 이질적이며 괴이한, 그러면서도 불길하기 그지없는 어둠이 이곳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이 하늘에 몰려 있던 그때.

푹!

“어?”

아래를 보자, 심장을 뚫고 나온 검은 무언가.

꼬챙이? 창? 작살?

인지하기 전에 이미 소대장의 몸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부하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생을 다했다.

대지 아래에서 솟구친 검은 작살들이 병사들의 심장을 꿰뚫었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차가운 대지 위로 쓰러진다.

밤이 찾아왔다.

지옥의 밤이.

*   *   *

옵티멈 상황실.

“어떻게 된 건가요?”

문을 열고 들어선 김연희가 대형 화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남쪽 전선이 괴멸됐다니. 비서실장님?”

“네, 여기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말해 주세요. 분명히 토벌은 순조로웠잖습니까.”

“그게…….”

김연희 말대로였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미 전역을 휩쓸던 요르문간드는 궁지에 몰렸다. 반면 미국은 게이트에서 복귀하는 히어로들이 합류하며 전력상 우위를 잡았다.

완전히 넘어온 승기.

이제 승리의 마침표를 찍을 일만 남은 미국.

김연희도 이때쯤 한숨을 돌렸다. 어지간한 실책이 있지 않는 이상 미국이 패배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

큰 문제 중 하나가 해결된 것이었다.

이때부터 김연희 머릿속에서 ‘요르문간드’란 이름은 조금씩 잊혀 갔다.

대신에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있었으니.

게이트(Gate)

이 예측 불가의 변수였다.

현재 미 대륙에는 말이 되나 싶을 만큼 게이트가 생성돼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까지…… 미국을 제외한 세계 전 지역의 게이트 숫자보다 현재 미국의 게이트 숫자가 더 많다.

비록 얼마 전부터 생성되는 속도가 소폭 하락했다지만 기존에 생성됐던 게이트는 여전했고, 이 게이트들은 암세포처럼 미국 전체에 퍼져 있었다.

그래서 김연희는 게이트에 초점을 뒀었는데,

게다가 얼마 전 김하니가 ‘게이트 결합’ 가능성을 제시하기까지 했으니, 김연희는 더욱 예민하게 게이트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관심을 껐던 요르문간드가 반격을 가했다.

전선 하나를 통째로 괴멸시키며.

“……이렇게 브리핑을 드리고 있지만, 대부분 추측입니다. 남쪽 전선이 무너졌고 생존자가 없다. 현재 펜타곤(미 국방부)측에서 알려 주는 정보는 이게 전부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요.”

김연희가 미간을 구겼다.

정보가 없다?

이 타이밍에 펜타곤이 옵티멈에게 정보를 숨길 리 없다. 고로 자신들도 모른다는 것.

이게 의미하는 바는?

“말 그대로 ‘전멸’이네요.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전멸. 그러니까 정보를 얻을 구석이 없는 거예요.”

“전투 당시 위성 관측도 마비됐습니다.”

“전부요?”

“네, 남쪽 전선 전부. 빠짐없이. 여기.”

건네준 사진을 본다.

남서쪽 일대를 원형의 뿌연 안개가 뒤덮고 있다.

“마법진치고는 너무 규모가 큰데요? 뭐랄까, 게이트 같다고 해야 하나.”

“저희는 대규모 마법진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쪽에는 대표님도 잘 아시는 ‘하이드 박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러네요. 맞아요. 하이드, 그 괴물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죠.”

굳이 마석이 아니라도 인간에게서 마력을 뽑아낼 수 있는 ‘하이드’라면 규모는 의미가 없다. 이미 양질의 시체는 차고 넘치니까.

뭔가 생각날 것 같지만 정보도, 시간도 없다.

김연희는 빠르게 정보를 확인했다.

“전멸은 확정. 생존자 없음. 적의 규모는 측정 불가. 하이드, 혹은 하이드에 준하는 대마법사가 있음…… 미국도 패닉 상태. 우리 측 피해는요? 남쪽 전선을 맡은 게 미 육군이었죠.”

“없습니다. 대표님 말씀대로 남서쪽은 미 육군 소속입니다.”

“다행이군요. 우리 측 피해는 없다. 펜타곤의 공백을 누가 채워야 하나…….”

무섭도록 차가운 말투가 이어 진다

비서실장은 김연희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오기 전까지 상황실은 패닉이었다.

전선이 무너졌다.

이 간단한 문장에 담긴 피의 무게에 짓눌렸다. 최소 만 단위가 한번에 쓸려 나간 거였다.

그런데 김연희는 이 충격적인 사실을 들은 지 고작 몇 분 만에 상황을 정리했다.

무섭도록 냉철한 판단력이었다.

“알겠어요. 자자, 모이세요.”

짝짝, 박수로 주위의 시선을 모은 김연희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우선 해외 지사에 있던 전용기들 모두 불러들입시다. 아마도 추가 파병이 급하게 이뤄질 것 같네요…….”

“다음은 인원 점검. 성갑 기마대를 비롯해 파병 희망자 있죠?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시고 파병 의사 재확인하세요. 유해련 전무한테는 제가 개인적으로…….”

상황이 급박해졌다고 해서 나까지 급박해질 필요는 없다.

김연희의 차분한 목소리가 상황실의 혼란을 가라앉혔다.

“마지막으로 비서실장님. 미국 쪽과 집행부 쪽에 계속해서 연락 넣으세요. 혼란은 혼란이고 알 건 알아야죠.”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미국 측에서 산군과 백호의 파병을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강력하게 요청하겠죠.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그건 저희 쪽이 아니라 집행부로 연락하라 하세요. 걔들은 옵티멈 소속이기 이전에 수호자니까요.”

“그리고…….”

“요점만 빠르게 말해 주세요. 한시가 급하니까요.”

“그게.”

비서실장이 눈치를 보며.

“마룡과 마왕의 파병도 언급했습니다.”

잠정적으로 은퇴한 건 알겠지만,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도 잠시 복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집행부 측에서도 말은 하지 않았으나 대표님이 설득해 주시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음, 힘들겠네요.”

막둥이의 사정을 아는 김연희는 고개를 저었다.

“기혁이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요.”

*   *   *

한편 그 시각.

박기혁과 진유리가 아이들을 재우고 TV를 보고 있다.

채널은 세계 뉴스.

해외 토픽을 엄선해서 알려 주는 채널이지만, 요르문간드가 미국을 침공했을 때부터는 그냥 미국 뉴스라고 봐도 됐다.

진유리는 못마땅한지 다리로 바닥을 탁탁 치며 말했다.

“왜 질질 끄는 거야. 이미 게임 끝이잖아. 빠르게 몰아쳐서 끝내야지.”

“시간 끄는 거지. 시간은 자기들 편이니까. 피해를 줄이려는 것도 있을 거고.”

“내가 이해 못 하는 게 그거야. 시간을 끌 게 따로 있지, 저딴 놈들을 방치한다고?”

봄이와 헤나 때문에 흥분한 진유리가 다다다 쏘아 댔다.

반면 박기혁은 차분한 눈으로 뉴스에 집중했다.

“네 말대로 확실히 이상하긴 해.”

“그치? 무법자든 뭐든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뭔가 사고가 터진 것 같은데.”

“……어엉?”

문제없다. 우리는 승리한다.

박기혁은 지금 대변인이 말하는 온갖 미사어구가 뭔가를 감추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딱히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원래 저랬잖아.”

“오늘따라 유난히 더 저러잖아. 뭐가 불안한지 몇 번을 반복해.”

“에이, 설마.”

방금 스치듯 지나간 국방부 장관의 눈빛에 깃든 감정은 ‘절망’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재 박기혁은 남쪽 전선이 전멸한 것은 모르는 상태.

그럼에도 그는 확신했다.

심각한 사고가 벌어졌다는 것을.

“어머니한테 전화해야 하나…….”

“갑자기?”

“조금 찝찝해.”

걱정인 건 진유리만이 아니다. 박기혁도 혹시나 애들이 다칠까 밤잠을 못 이루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뭔가 터졌다는 걸 알게 되자 걱정이 폭발한 것이다.

그때, 호들갑을 떨던 진유리가 오히려 차분해졌다.

“여보, 섣불리 끼어들면 안 돼.”

“…….”

“알지? 여보야 ‘경고’ 많이 받은 거.”

끼어들면 안 된다.

경고…….

현존 최강의 절대자, 박기혁에게 경고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진유리가 말한 ‘경고’는 누가에게 받은 것인가.

바로 신.

이 세계의 창조자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신은 수호령을 없앴다. 그들의 존재 가치는 다했고, 다가올 미래에 걸림돌이 될 거란 뜻이었다.

이런 신이 수호령을 능가한 힘을 가진 박기혁에게 시선을 두지 않을 리 없다.

“여보야, 여보야가 그랬잖아. 삼둥이들 낳을 때 신이랑 인사했다며.”

“음, 그랬지.”

자중하라. 간섭하지 마라.

이런 ‘계시’에 박기혁은 거침없이 답했다.

“자중하든 말든 내가 알아서 한다. 그쪽이나 간섭하지 마. 이렇게 답했다며.”

“쑥스럽구만.”

“칭찬하는 거 아니거든!!”

진유리는 답답했다.

아니, 명색이 신이란 사람이 부탁했으면 조금 좋게 답해 줘도 되잖나. 왜 시비를 거냐고!

그녀는 남편의 절망적인 사회생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다음은 또 언제야. ‘가마’ 만들 때였지. 그때는 무슨 말 들었어? 제발 좀 자중하라고 또 들었잖아. 근데 어쨌어.”

“하하…….”

본래 ‘가마’는 자연 발생적인 아티팩트. 신의 힘이 일부 들어간 물건이다.

그런데 이 ‘가마’를 인간의 힘만으로 만들었다.

신은 꽤 충격을 받았던지 바로 박기혁을 소환했다.

그리고 ‘제발’이란 부사를 붙여 가며 얌전히 있기를 부탁했다.

박기혁의 답은 같았다. 내가 알아서 한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작년이야. ‘혈족’의 비밀을 찾았다며 방방 뛰었잖아. 이제 모두 ‘혈족’이 될 수 있다며!”

“그건 좀 대단하지 않았냐?”

“대단하긴 했…… 아니, 지금 내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

작년에 박기혁이 발견한 거다.

혈족 계승을 연구하던 중, 혈족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낸 것. 그리고 이를 응용해 누구나 혈족이 될 수 있는 기적의 약을 개발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적의 약은 폐기돼야만 했다.

신이 개입한 것이다.

더 이상 세계의 질서를 해치지 마라.

이례적인 경고와 함께 말이다.

“근데 쪼잔한 거 아냐? 인간이 스스로 발전하게 놔두라니. 나는 인간 아닌가.”

“여보야.”

“빨리 발전하면 어디 덧나나. 거참, 신이란 양반이…….”

“사.랑.하.는 여보야!”

진유리가 눈을 부라리자 입을 닫는 박기혁.

“여보야, 여보는 이제 홀몸이 아니야. 나도 있고 애들도 있잖아.”

진유리도 안다.

이 사회성 떨어지는 남편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존재인지.

신마저 함부로 제재하기 힘들 만큼 크고, 힘으로 억제하려다간 이 세계도 함께 무너질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인간의 거죽을 쓰고 있지만 사실상 반신(半神)에 가까운 존재, 그게 박기혁이다.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

반신인 박기혁이 일으킨 여파를 견디기에는 인간은 너무도 연약하고, 가련했으니까.

“난 여보야가 언제나처럼 우리 가족 옆에 있길 바라. 이기적이라도 해도 상관없어. 그만큼 여보야가 소중한걸.”

“알았다. 할배랑…….”

“쓰읍.”

“……신이랑 잘 지낼게.”

“믿을게, 여보.”

자러 가자.

진유리가 박기혁의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확히 8시간 만에.

상황이 바뀌는데.

“여보세요. 네, 어머니. 네?! 9레벨 게이트라고요?”

명분이 생겼다.

박기혁이 마귀를 짊어졌다.

“애들 보러 가자.”

그의 신영이 어둠에 휩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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