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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244화 (244/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25화>

휘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이스마일과 올리버가 날아올랐다.

휘말린 파편들을 밟고서 도약하는데, 이미 하늘은 적으로 가득하다.

“개자식들이, 지겹지도 않나.”

“입이 험하십니다. 왕자님.”

“지랄 마!”

이스마일의 검이 빛났다.

성운을 품은 검이 허공을 가르자 조각나는 공간, 변하는 세계…… 도심이었던 공간이 사막으로 변한다. 도심에 몸을 숨기고 있던 적들이 고요한 사막에 덩그러니 놓였다.

환영이다!

적들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환영을 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물약을 먹는가 하면, 마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위로 돌아가자 마자막에는 자해까지 하는데.

모두 소용없다.

변화의 극의, 성운이 만든 환영을 깨부수기에 그들의 경지는 너무도 얄팍했다.

그 순간, 공간을 베고 나온 이스마일.

이스마일의 검이 허공을 가르고, 적의 머리통이 허무하게 모래바닥을 뒹굴었다.

놀란 적들이 반격을 하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올리버가 ‘계약’을 발효, 모든 공세를 ‘무(無)’로 돌려 버린다.

“던질게요.”

“배달만 해.”

올리버가 적의 신체를 잡아 던지면, 어김없이 이스마일의 검이 베어 냈다.

환영에 걸린 적들은 이 간단한 패턴을 끝내 파훼하지 못했고, 잠시 뒤…… 사막의 환영이 걷히고 배경이 도심으로 바뀌었을 때, 수십의 적들이 메말라 죽어 있었다.

이스마일이 쓰러진 적들을 무시하고 위를 봤다.

도심 한복판.

빌딩의 숲이 전장으로 변해 있었다.

네온사인보다 더 화려하게 마법이 터지고, 날붙이가 격돌하는 소리가 귀를 때리고 있다.

내가 아는 평온한 도시의 모습은 아니었다.

평화롭던 도시는 어디 갔는가.

이스마일은 이 모습에 염증이 날 것 같았다.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네.”

그때.

“불평하지 마, 약골.”

익숙한 목소리에 이스마일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박헤나의 창이 그의 옆머리를 스쳐 바닥에 꽂혔다.

충격에 바르르, 떨리는 창.

아스팔트가 울컥, 화산처럼 터지고 아래에 몸을 감췄던 적이 절명했다.

“내가 처리하려고 했는데.”

“말이나 못 하면.”

“아니, 그 정도는…….”

“됐어. 나 간다.”

“야! 야!! 갔잖아…….”

박헤나가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자, 타이밍에 맞춰 나무줄기가 그녀를 태웠다.

에우리아였다.

에우리아의 나무줄기가 하늘로 뻗어 나가며 가지를 뻗는다.

빌딩의 유리창을 뚫고, 때로는 전봇대를 감싸며 뿌리를 내리듯 터를 잡아 영역을 구축, 박헤나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전장을 마련해 줬다.

힘 대 힘의 전투를 선호하는 그녀는 공중전보다 지상전을 선호했는데, 사방으로 뻗은 줄기와 덩굴은 훌륭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박헤나가 인사한다.

“고마워, ‘마마’!”

잎사귀가 까딱였다.

잎사귀 너머로 기뻐하는 에우리아의 감정이 느껴졌다. 귀여운 인사에 박헤나의 입가에 잠깐이지만 해사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곧장 미소를 지운 박헤나가 가지와 덩굴을 밟고서 질주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 곁으로 따라붙는 인영 하나.

“진짜네? 진짜야. 너 안에 에우리아 있어!”

기간트였다.

포고 스틱, 한국에서는 ‘스카이 콩콩’이라고 불리는 기구를 탄 채 하늘을 날고 있는 기간트.

“기간트 이모, 바쁘거든요.”

“우와! 나 이모야? 이모 좋아! 이모 할래!”

“이모…….”

그 순간!

빌딩의 한쪽 벽면으로 해수가 뿜어져 나온다.

거대한 파도 속에서 물로 이뤄진 문어가 기괴한 울음을 토해 냈다. 그리고 여덟 짝의 발을 뻗을 때, 동시에 반대쪽 빌딩에서 뇌전 마법이 쏘아진다.

화려한 뇌전 뒤에 숨은 적.

적이 워해머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키에에엑-!

“디져라!!”

양쪽에서 몰아치는 공세.

이에 박헤나와 기간트가 눈빛을 교차하더니.

박헤나의 손에 생성되는 철퇴, 기간트의 등 뒤로 출렁이는 공간.

박헤나가 철퇴를 채찍처럼 내던진다. 기간트의 거신병이 공간을 뚫고 주먹을 내지른다.

공격이 교차한다.

서로의 등 뒤로.

헤나의 철퇴가 달려드는 물의 빨판을 짓뭉개고는 문어의 대가리를 날려 버렸다. 거신병의 주먹은 뇌전을 파괴한 것도 모자라 겁 없이 달려든 적을 산 채로 터트려 버렸다.

“우와! 헤나라고 했지? 너 대단하다. 상급 정령인데 한 방에 터트리네?”

“놀리는 거죠, 이모?”

“진심이거든! 무지 쎄. 대빵 쎄! 기혁이 닮았어!”

“아버지니까요.”

“친자식 아니…….”

기간트의 혓바닥이 잘못되려는 순간, 쏘아지는 나무줄기.

헛소리하는 기간트를 냅다 날려 버렸다.

“으아악-!”

저 멀리 하늘로 데굴데굴 날아가는 기간트. 그녀의 비명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여섯 장의 날개를 펼치며 싸우던 박봄이 이를 본다.

“이모!”

급히 날아가 기간트를 받아 드는데.

폭신~!

“오옷?!”

뭐지, 이 안정감?!

기간트는 괜찮냐고 말하는 박봄의 미드를 내려다본다.

“안정감의 비결……?!”

“네에?”

기간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박봄은 왜 그 모습에서 여름가을겨울이가 보일까? 어쩜, 하는 짓이 우리 꼬맹이들이랑 비슷했다. 오랜만에 집에 있을 동생들이 그려져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박봄과 기간트가 하늘을 유영할 때, 수십 명의 빌런들이 둘을 포위했다.

한 명 한 명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아찔한 살기에 대기가 타올랐다.

“이모.”

“엉.”

박봄이 품 안의 기간트를 적진으로 던져 벼렸다.

기간트가 데굴데굴 뒹굴며 날아가고, 그때 출렁이는 공간.

위였다.

구름 위에서 거신병의 상반신이 비집고 나와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은 훌륭한 대화 수단이라던가.

기세등등하던 적이 갑자기 움츠려 들었다.

그렇게 거신병이 시선을 끄는 사이 박봄은 주먹과 마법들을 피해 유유히 비행. 가장 근접한 적의 가슴에 대검, 백귀를 쑤셔 넣었다.

심장을 꿰뚫린 적이 비명조차 못 지르고 절명하는데, 박봄이 죽은 적의 시체에 혈마술과 마룡기 ‘박포실’을 각인시킨다.

우득우득, 콰드드득……

시체의 거죽 위로 울퉁불퉁,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꿈틀대며 형용하기 힘든 끔찍한 소음이 들려오고.

잠시 뒤 등가죽이 찢어지더니.

찬란한 빛과 함께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포실아, 뒤틀어.”

천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저 넓은 창공을 향해 활짝 날개를 펼쳤다.

천사의 뒤로 비치는 헤일로.

감각의 혈족 ‘무희’가 하늘에 드리운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감각을 빼앗긴 적들이었다.

자신의 감각에 배신당한 적들이 혼란에 빠졌고, 박봄의 백귀가 처형식을 벌였다.

베고, 베고, 베고……

무한히 이어지는 검격이 허공에 선을 새겨 넣는다. 그 위로 음표처럼 그려지는 핏줄기.

피의 레퀘엠이 연주됐다.

그렇게 아릿한 혈향에 취할 때쯤.

박봄의 백귀가 멈춘다.

백귀가 검 끝에서 핏방울을 떨어뜨리며 군침을 흘렸지만, 없었다.

적어도 하늘 위에서 박봄의 적은 없었다.

“이야! 멋져! 대단해에!”

“이모가 도와줘서 쉬웠어요.”

“아냐, 아냐. 네가 대단한 거야! 너 내 제자 해라. 이모가 가르쳐 줄게. 기혁이도 나한테 배웠어.”

“음, 생각해 볼게요. 일단 저기부터 정리하고요.”

도심은 이미 자욱한 연기로 가득하고, 보이는 모든 게 넝마가 되어 있다. 영광의 상징이었던 마천루들은 앙상한 뼈대만 남기고 있었다.

이미 도시는 도시로서의 생명을 다했다.

도시를 복구하는 것보다 맨땅에서 도시를 짓는 게 빠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 도시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스마일이 검을 들었고, 올리버가 적을 막아 냈다. 에우리아는 헤나를 보조했고, 헤나는 적을 분쇄했다.

‘할아버지는 어디 있지?’

저기 있었다.

박건은 호쾌하게 웃으며 적의 목을 분리해 낸다. 아마 근처에서 제일 강한 놈이었을 거다. 할아버지의 송곳니는 강한 놈만 노리니까

이밖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국의 히어로 팀들이 격렬하게 저항했다.

모두가 이 생명을 다한 도시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고 있다.

멋지다.

진심으로 멋진 모습이다.

박봄이 눈을 반짝였다.

“먼저 가 볼게요.”

박봄이 날개를 펼치며 활강한다.

‘생각해 보기다! 꼭이야!’

등 뒤로 기간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박봄은 미소를 지으며 연기가 자욱한 전장으로 몸을 던졌다.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박봄은 이 멋진 사람들과 함께라는 게 몹시도 자랑스러웠다.

*   *   *

같은 시간.

미 대륙의 반대편, 요르문간드의 지부.

도시의 전황이 시시각각 전해지고 있었다.

‘인간들’로 엮인 사각 틀을 통해.

- 막아! 멍청아!! 거기가 아니라고!

- 어? 어?! 커헉!

- 겨우 꼬맹이한테…… Fuck…… 인생 드럽…… 게 불공평…… 하군.

일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상들.

진화단의 기술로 숙주에 심어 놓은 ‘각인’을 통해 영상을 전달받는 기술이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면 영상이 다운되는데, 현재 영상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부대표 하이드가 말했다.

“보고 있으니 욱신거리는군. 견디기 힘들어.”

하이드의 손이 얼굴을 감싼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실밥들. 수십 마리의 지네를 풀어 놓은 듯 실밥들이 어지럽게 엮여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상대는 검호다. 한 수 위의 상대와 결전을 치렀는데 목숨을 부지했다면 남는 장사다.”

목소리의 주인은 원(One).

전 TA의 정점이자 현 요르문간드의 대표였다.

“한 수 위라는 건, 자존심 상하는군. ‘본체’만 더 있었으면 충분히 노려 볼 만했다.”

“승부에 ‘충분히’란 사족은 의미 없다. 무인에게 변명은 죄악이다.”

“말조심해라. 난 무인이 아니다. 네가 뭔데 날 평가하는 거지.”

“평가는 승자의 권리. 난 네게 승리했고, 널 평가할 권리가 있다.”

“그래도 말은 조심해야 할 거다. 난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

하이드가 짙은 살의를 풍기는데, 정작 원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계속 우문(愚問)을 이어 갈 텐가. 곧 ‘웨스트 뉴욕’도 우리 손을 벗어날 것 같은데.”

턱으로 영상을 가리키는 원.

잠깐 대화하는 사이 ‘인간 틀’ 안에 있는 영상이 반절 이상 줄어 있다. 뉴욕 주에 이어 뉴저지에서도 물러난다면, 사실상 동부의 주요 지역은 모두 놓치는 것.

“우리의 본래 목적을 잊지 마라.”

이상 게이트 현상이라는 혼란을 틈타 미국 본토에 최대 회생 불가, 최소 10년은 멈출 수밖에 없는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남미를 점령.

세력을 키워 다시 세계로 진출, 진정한 신세계를 여는 것이다.

한데 현재 전복시킨 지역은 대부분 비교적 가치가 떨어지는 곳. 이대로라면 게이트에 투입된 전력이 복귀하면 금방 복구가 가능하다.

하이드가 이를 모를 리 만무.

그러나 아무리 그라도 0퍼센트의 확률을 성공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말했지만, 저들이 온 이상, 제로 가능성이었다. 우리는 패배 속에서 챙길 것만 챙기면 된다.”

“우리가 챙길 건 정보다. 진행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하이드가 자랑스러운 눈으로 허공에 떠 있는 ‘머리’를 본다.

최상위 마도 공학과 인체의 신비가 결합된 현존 최고의 인공 지능 PC, ‘지킬’이었다.

‘지킬’의 눈이 탁한 잿빛으로 빛난다.

숙주의 눈을 통해 전달받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취합, 분석했다.

“미국의 히어로는 필요 없다. 히어로들 정보는 지킬이 뽑아낸 정보와 83.1퍼센트 동일했다. 대응 체계도 훌륭하게 통했지.”

문제는 한국 측 인원과 갑작스레 합류한 두 수호령.

지킬의 정수리가 쪼개지며 빛을 쏘아 낸다. 마치 영사기처럼 한국의 주요 인원들의 신상이 떠올랐다.

“박봄, 박헤나, 이스마일, 올리버, 검호 박건. 그 외는 옵티멈 지원팀들이다.”

“수호령도 빼놓지 마라.”

“물론이다. 수호령도 변수지.”

하이드가 지킬의 뇌에 손을 박아 넣고, 분석하는 정보를 읽어 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수호령의 전투력은 이전만 못하다.”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다. 강하긴 하지만 손을 쓰지 못할 수준은 아니란 거다.”

에우리아나 기간트나 필멸자가 되며 수호령 때의 무위를 잃은 상태.

하이드는 이를 정확히 체크해 냈다.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제동을 거는 정도라면 우리 측 정예 전력을 붙일 시 가능하다.”

“그건 너의 판단인가, 대가리의 판단인가.”

“나와 지킬 모두의 판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말조심해라. 대가리가 아니라 지킬이다. 한 번만 더 대가리라고 했다간 머리에 숨구멍을 내 주마.”

“음…… 아직 기회는 있단 말이군.”

저쪽이 한국이라는 비장의 패로 전황을 역전시켰다면, 이쪽도 숨겨 놓은 비장의 패가 대기 중이다.

“슬슬 가르쳐 줄 때도 되지 않았나. 네가 준비한 그 ‘한 수’가 뭔지 알아야, 나와 지킬도 작전을 세울 수 있다.”

“안 그래도 이미 불렀다.”

‘지금쯤 오고 있겠군.’이라고 말하는데, 때맞춰 밑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찰박찰박, 물기 있는 소리가 들린다.

이 공간에 가득한 핏물을 밟고 오는 인기척이었다.

시체의 길을 걷는 남자.

순백의 사제복과, 성스러운 주교관.

발목을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은 반성의 상징.

눈 밑에 그려진 눈물 문신은 고통의 회고.

“안녕하십니까.”

남자가 스스로를 소개한다.

“셀루티스의 성자, ‘에밀’입니다.”

과거 ‘그분’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거짓된 신앙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해사하게 웃는 에밀의 귓가에 ‘십자가 피어싱’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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