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24화>
텅 빈 회장 안.
음산한 어둠이 내려깔린 이곳에, 색색의 빛깔이 번뜩였다.
- 오늘의 영국 뉴스입니다. 스코틀랜드 의회가 독립……
- 전 세계적으로 이상 게이트 현상이 극심해지는 인도 정부는……
- 상하이 의회가 최종 결정을 했습니다. 의회는 공산당을 정면 거부하는 법안……
.
.
- 잠시 후 이곳에서는 청와대 대변인의 기자 회견이 있을 예정입니다. 중요 안건으로는 ‘검호’의 수호자 탈퇴 이유와 미국 파병 문제로……
지지직-
지직-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TV 더미에서 전 세계의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불빛의 끄트머리에서 TV 더미를 보고 있는 여자.
스프링 같은 양갈래 포니테일을 한 흑인 소녀.
수호령 기간트였다.
쩝쩝-
“음- 믿고 먹는 한국산. 한국이 과자는 잘 만들어!”
허니버터랬지. 마음에 쏙 든다.
VR 고글을 착용한 기간트가 팝콘을 한 움큼 집다, 감질맛 났는지 냅다 통째로 입에 들이붓는다.
와그작와그작.
크리미한 버터의 풍미가 입안 가득 찼다. 손가락에 묻은 풍미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손가락을 쪽쪽 빤다.
기간트의 입술이 기름기로 번들거렸다.
기간트는 혀를 날름 빼내 싸악- 기름기를 걷어 내고 팝콘 박스를 머리 뒤로 던졌다.
툭, 아무렇게나 떨어진 팝콘 박스.
그 옆에는 이미 같은 모양의 팝콘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넘넘 마시쪄.”
기간트는 ‘기혁이한테 더 보내 달라고 해야지~!’라고 말하며 또다시 팝콘 박스의 뚜껑을 잡아 뜯었다.
그런 가운데 세계 뉴스는 저마다의 언어로 여전히 나오고 있는 중.
각국의 언어가 뒤섞이자 도저히 내용 확인이 어렵다.
이쯤 되면 소음…… 아니, 고문에 가까울 지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간트는 느긋하게 팝콘을 씹으며 모든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미국의 어느 채널에서 ‘기간트’의 이름이 거론되는데.
-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요르문간드의 테러는 우리가 자랑하던 도시를 하나하나 파괴하고 있습니다. 뉴욕, 보스턴, 로스엔젤레스…… 오, 쉿(Shit)! 장난해? 습격당하지 않은 도시를 찾는 게 더 빠르겠어.
- 아마 제 방송을 보던 몇몇 분은 전화기를 들고 있을 겁니다. 그분들은 자신이 아는 기관에 전화를 걸어 ‘내 세금 값을 하란 말이야!’ 꾸짖겠죠. 제가 그랬거든요. 저쪽에서는 ‘오늘도 건강하시네요. 스미스 씨.’라고 하더군요. 저는 찰스인데.
- 결론적으로 성급한 생각입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가 확인했어요. 모든 히어로를 총동원하고 있죠. 그런데 왜 당신 집 앞에 히어로는 없냐? 걔들 전부 게이트에 처박혀 있지! X됐어, 우리는!
- 큼큼, 어쨌든 보시는 대로 우리 미국은 건국 이래 최악의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이거예요.
- 대체 수호령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헤, 재미있네?”
스탠딩 코미디 프로.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스캔들, 혹은 사회 문제 따위를 제멋대로 풍자하는 가벼운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에서조차 수호령을 언급한다.
수호령이라는 소재가 한낱 웃음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
과연 미국, 헐리우드의 나라답게 이런 쪽으로도 오픈 마인드인가 싶지만.
본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중국의 대침략 이후, 세계가 대혼란에 허덕이던 시점.
미국은 훌륭하게 대혼란을 수습했었다.
아무래도 바다 너머의 일이잖나.
경제적 진통은 피할 수 없었지만 실질적인 피해, 그러니까 자국의 안위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미국은 오히려 이득을 본 셈이 된다.
자신은 현상 유지를 하는데, 주변 국가들이 알아서 꼬꾸라지면?
얼떨결에 선두가 된 것이다.
뜻밖의 호황.
당시 미국의 분위기는 ‘일단 즐겨’였다.
얼떨떨했지만 어쨌든 1등이 된 거 아닌가.
1등은 인정이지.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상 게이트 현상이 발발한 것이다.
국뽕에 잔뜩 취해 있던 미국은 처음에는 ‘오히려 좋아’를 시전했지만, 미국을 상징하던 타임스 스퀘어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리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때부터였다, ‘수호령’이란 말이 나온 게.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수호령이다. 당연히 국가의 위기에는 나서야 되는 거 아닌가?
엄밀히 말하면 오류다.
수호령은 ‘인류’를 수호하는 거지, 국가를 지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 봤자 소용없다. 어쨌든 그들은 이 땅에 자리 잡고 있고, 미국 전 국민이 그들을 이 땅의 수호령으로 여겼으니까.
그래서 도움의 손길을 바랐지만, 미국의 수호령 기간트와 레드 드래곤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쩔 수 있어? 위에서 허락해 주지 않는걸.”
신은 어느 순간부터 수호령의 힘을 제한해 나갔다.
가장 먼저 외부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대폭 축소시키더니, 나중에는 그 축소된 힘마저 거둬 갔다. 결국 현재에 이르러 영역 밖에서는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이제 바보라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수호령의 쓰임은 다했다는 것을.
“쯧, 이렇게 되네.”
솔직히 기간트는 쓰임이 다했다는 것에 크게 충격받지 않았다.
정말이다.
그냥 그렇구나, 이 정도다.
애초에 기간트의 행동 양식은 단순하다.
위그드라실 같은 숭고한 신념도, 황룡처럼 개인의 분노도 없다.
그저 재미없는 것은 버리고, 재미있는 것은 취한다.
막말로 그녀는 수호령이라는 자리에 목매지 않는다.
여러모로 편하게 놀 수 있기에 수호령을 하고 있는 거지만, 이게 뭐가 좋은지는 사실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매정해. 수고했다 인사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수호령이랍시고 전생의 기억을 싹 지운 채 냅다 이곳에 떨궈 놓더니, 이제는 쓰임을 다했다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다니…… 이건 조금 짜증 난다.
말이라도 해 주면 어디 덧나나.
“제멋대로야.”
이렇게 꿀꿀한 기분인데 인간들은 수호령의 의무를 들먹이면서 왜 도와주지 않느냐며 칭얼댄다.
솔직히 그게 곱게 보이겠는가.
물리적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뿐이지 기간트는 아직 수호령이다.
실력자들 중 그녀의 손을 타지 않은 이들이 있던가. 워싱턴가를 비롯해 미국을 대표하는 혈족들 모두가 그녀 밑에서 굴렀다.
만약 때맞춰 뜻밖의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오랜만에 제자들이 집합당했을 거다.
“에우리아가 올 줄은 몰랐지.”
와그작, 기간트가 팝콘을 씹으며 그때를 회상했다.
……
…
“오랜만입니…… 음, 아니죠.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건 처음이니…… 처음 뵙겠습니다, 기간트. 에우리아예요.”
수호령 자리에서 물러난 에우리아.
그녀가 기간트 팩토리로 찾아왔다.
기간트도 진심으로 반겨 주었다. 가죽 바지에 라이더 재킷을 입은 에우리아는 퍽 재미있었으니까.
보스턴에서 여기까지 바이크를 타고 왔다는 말에 물개 박수까지 쳤더랬다.
여러모로 재미있었던 인사 후,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말하면 화내실 수 있겠지만, 불편한 질문을 드려도 되나요.”
“에이, 신경 쓰지 마. 편하게 이야기해.”
“감사해요. 그럼 사양 않고…… 수호령이 가치를 다했다는 것을 깨달으셨나요?”
“응, 알아 나도. 설마 묻고 싶은 게 그거야?”
“설마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아시나요?”
“……?!”
“역시 모르나 보네요.”
“무슨 말이야? 시간이 남지 않았다니.”
“말 그대로예요.”
이상 게이트 현상.
전 세계에 불어닥친 변화의 폭풍.
이 폭풍이 왜 유독 미국에서만 거세게 몰아치는 것일까.
에우리아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를 관찰했고, 어느 정도 답에 근접하게 된다.
“신은 여러분을 노리는 것 같아요.”
“쟤가 우리를? 풋! 뭐 게이트에서 쏟아 낸 몬스터가 우리를 공격하기라도 해? 이야, 재미있겠는걸. 디펜스 게임 아냐?”
뿅뿅!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해맑게 웃던 기간트.
그러나 이어질 에우리아의 말에 웃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당신들의 본체를 노릴 순 없겠지만, 당신들의 영역. 게이트라면 말이 다르잖아요.”
“……결합 현상?”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우리가 아무리 수호령이래도 우리의 영역은 게이트죠. 만약 다른 게이트와 결합된다면…….”
“듣고 보니 그러네? 왜 내가 그 생각을 못 했지.”
“……순전히 제 우려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마 외부에서 다른 게이트랑 합쳐지면, 어떤 식으로든 변질되겠죠. 최악은 ‘수호령’이 아닌 ‘몬스터’가 될 수도요.”
“이야…….”
머리 썼네?
기간트는 하늘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기도 안 찼다.
신은 단순히 수호령의 손발을 자르려는 게 아니었다. 그냥 수호령이란 존재 자체를 지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와, 뭔가 기분이 매우 그래.”
“이해해요. 말하는 저조차도 편하지 않은데요. 그래도 매몰차게 버릴 생각은 아닐 거예요. 최악을 피할 방법이 여기, 당신 앞에 있잖아요.”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는 에우리아.
하고 싶은 말을 눈치챈 기간트가 픽, 웃었다.
“너처럼 수호령 자리에서 내려오면 된다?”
“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꽤 자유롭고 좋답니다.”
“으음…….”
“영생을 구가하는 상위 존재에서 일개 필멸자가 되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할 거예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신은 이미 우리의 마지막을 결정했는걸요. 어차피 우리에게 선택지는 몇 개 없어요.”
“끄응, 음흉한 놈한테는 가 봤어? 걔는 뭐래?”
“레드 드래곤을 말하는 거면, 아직 가 보지 않았어요. 당신에게 가장 먼저 온 거예요.”
“너, 착한 아이구나.”
“그리고 레드 드래곤이라면 절대 응하지 않을 거예요. 자존심이 강한 분이잖아요. 설령 몬스터가 되더라도 스스로 격을 낮추지는 않을 거예요.”
“음흉한 놈을 제대로 아네. 점점 마음에 들어.”
“안타깝긴 해요. 동료였잖아요.”
“동료? 우웩!”
잘 나가다가 갑자기 무슨 헛소리인가 했지만, 에우리아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동료죠. 비록 저마다 모습도, 생각도 달랐지만 우리는 같은 의무를 지켜 왔어요. 이 넓은 세계에서 오직 우리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런 우리가 동료가 아니면 뭐겠어요.”
“……그런가.”
수호령을 이해할 수 있는 건 같은 수호령밖에 없다.
울림이 있는 말이었다.
“……당신이 레드 드래곤과 사이가 나쁜 건 아는데, 너무 그러지 마세요. 어쨌든 이제 남은 건 당신과 그분뿐이잖아요.”
이제 이 세계에 남은 수호령은 기간트와 레드 드래곤.
에우리아는 쓰러지는 의무를 공유한 전 동료들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됐어. 돌아와. 우리 하던 이야기나 해.”
“어머, 고민할 시간을 드린 건데. 아직 결정 못 했나요.”
고민해 봤지만 에우리아의 말대로다.
신이 결정한 이상, 자신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인간과는 다르게 자신들은 존재 자체가 신의 의무에 묶여 있으니까.
답은 정해져 있다.
선택지도 앞에 놓여 있다.
필요한 건 기간트의 결심뿐이다.
“그래서 기간트, 어쩌시겠어요?”
수호령의 자리를 벗어나 필멸자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상위 존재로 남아 몬스터가 될 것인가.
“나는…….”
……
…
“모르겠다고 말했지.”
기간트는 끝내 그 자리에서 답을 내지 못했다.
이미 답이 정해진 문제에 고민한다? 고민할 시간에 행동부터 하는 그녀답지 않은 결정이지만.
이유는 있다.
왜냐하면.
“내게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는걸.”
소파에서 튕기듯 내려온다.
손에 들린 팝콘이 쏟아진다. 와르르 쏟아진 팝콘 위로 고글이 툭, 떨어졌다.
TV에서 나오는 색색의 빛을 즈려밟으며 문에 다다른다.
끼익-
양쪽으로 문을 젖히자, 익숙한 풍경이 그려졌다.
고막이 터질 듯 울려 대는 기계 모터와 쉼 없이 돌아가는 레일들. 레일들 위로 기계 팔들이 부지런히 뭔가를 찍어 대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감독하듯 내려다보는 거신병들.
기간트의 보금자리, 기간트 팩토리였다.
“어디다 뒀더라.”
어지럽게 쌓여 있던 물건을 헤집었고.
“찾았다!”
붉은 면포가 튀어나온다.
분명 그토록 원했건만 생각 이상으로 가치가 없어, 아무렇게나 처박아 둔 물건.
바로 ‘망토’였다.
기간트와 레드 드래곤의 존재를 완성시켜 주는 성물.
유일하기에 둘 중 하나밖에 ‘완성’될 수 없다. 기간트와 레드 드래곤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망토’가 세간에 알려진 대로 전능한 힘을 지녔다면, 왜 이 먼지 구덩이에 파묻혀 있었을까.
“나도 몰랐지. 이게 말하는 ‘완성’이 그런 의미인 줄.”
그렇다.
이 ‘망토’가, ‘날개’가 갖는 ‘완성’의 의미.
그건 수호령의 격을 완성시켜 하늘로 향하는, 승천을 이루는 유일한 열쇠였기 때문이다.
기간트는 ‘망토’를 보며 고심에 빠졌다.
“어쩌지…….”
수호령 자리를 벗어나 필멸자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상위 존재로 남아 몬스터가 될 것인가.
앞선 두 개의 선택지에 하나가 추가된다.
수호령으로서 완성돼 승천할 것인가.
“마음 같아선 한 대 때리고 싶긴 해.”
저 위에 놈 말이야…….
고민하던 기간트가 고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심각한 표정으로 망토를 주시하고 있는 모습.
기간트의 입에서 불현듯 웃음이 터졌다.
“하하, 웃겨. 내가 언제부터 이런 고민했다고.”
나답게 가자. 나답게.
재미없는 것은 버리고, 재미있는 것을 취한다.
간단하지 않나.
Simple is best. 간단하게 가면 된다.
“그거면 돼.”
기간트가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문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공장을 울려 댔던 모터의 굉음이 들리지 않는다.
레일이 멈춘다.
기계 장치들이 정지한다.
순간.
벽을 지키고 서 있던 거신병들이 분해돼 간다.
육중한 거신을 떠받치던 다리가 녹슬며 바스러진다. 볼트와 너트, 쇳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작동을 멈춘다.
끝내 멈춰진 공장.
기간트 팩토리의 최후였다.
* * *
기간트가 수호령의 자리를 포기하고 일주일 뒤.
기계 거인이 한달음에 하이 캐슬 정상에 도달했다.
영롱한 색의 게이트. 레드 드래곤의 영역인 ‘드래곤 레어’였다.
거인이 육중한 몸체를 굽힌다.
무릎을 굽히며 조심스레 어깨 위의 주인을 받쳐 게이트 앞으로 향했다.
“수고했어.”
툭.
기간트가 땅을 밟고.
외친다.
“음흉한 놈 나와! 나 보이잖아!”
팔을 하늘로 들어 몇 번 방방 휘두르니 곧이어 드래곤 레어가 출렁이며 금발 벽안의 귀공자, 레드 드래곤이 나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의 눈에 비친 감정이 평소와 달랐다.
원래라면 경멸, 분노 따위가 담겨야 할 눈이 슬픔? 측은? 외로움?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너도 결국 그렇게 됐나.”
“수호령 포기한 거? 나쁘지 않아. 꽤 괜찮다구.”
맛있는 것도 많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할 걸.
혼잣말을 하자, 레드 드래곤이 씁쓸하게 웃는다.
“이제 정녕 이 몸 혼자군.”
“너도 때려치워.”
“거절한다.”
“너 그러다가 몬스터 돼. 알아?”
“안다.”
“그때가 되면 네 이지가 정상일지 장담 못 해. 그래도?”
“그래도, 거절한다.”
레드 드래곤도 알고 있다.
신이 수호령 자체를 지우려 한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드래곤이다. 드래곤이 어찌 격을 버리고 필멸자로 남겠는가.
“나는 마지막까지 드래곤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 뭐, 네 선택이 그렇다면.”
“가라. 마지막에 봐서 즐거웠다.”
“나도.”
미운 정도 정인가 보다. 평생 서로에게 날을 세웠음에도 반가운 것이.
등을 돌리는 레드 드래곤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때.
툭-
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레드 드래곤이 돌아선다.
그리고 그의 다리 앞에는 ‘망토’, 그는 ‘날개’라 부르는 성물이 놓여 있었다.
“이건…….”
“이별 선물이야.”
“……넌?
“난 아직 이 세계가 재미있으니까.”
“…….”
“잘 가, 음흉한 놈.”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기간트는 손을 몇 번 휘젓고는 거신병을 타고 자리를 벗어났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참으로 기간트다운 행보였다.
레드 드래곤은 선물받은 ‘날개’를 바라보다.
본신으로 현신.
쿠아아아-!
힘차게 날개를 펼쳤다.
그는 최후까지 드래곤으로 남아, 하늘로 향하게 됐다.
그렇게 ‘드래곤 레어’가 닫히고.
이제 이 세계에 수호령은 사라졌다.
인간의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