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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242화 (242/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23화>

검호(劍虎).

마법에 진룡이 있다면 검술에는 검호가 있다.

오랜 세월, 이 나라가 대한민국으로 불리기 전부터 이름을 떨쳐 온 검의 명가.

그들은 무수히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해 냈다.

전율적인 무력으로 타국의 공포가 됐고, 아군에게는 경외의 대상이 됐다.

이 위대한 업적에 필요한 건 단 하나.

검(劍)

검을 쥔 검호는 무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무위를 가졌던 검호가 모든 권력자들의 기피 대상이었던 것은 아는가?

진룡은 무리를 이루고 인명을 귀히 여긴다. 반면 검호는 인명보다 본인의 성취를 중요시하니, 이는 ‘거악’이라 불려 마땅하다.

거악(巨惡).

거대한 악.

현대의 검호를 생각하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이미지지만, 이는 놀랍게도 사실이다. 실제로 과거의 검호는 압도적인 무력만큼이나 치명적인 위험을 지닌 존재였다.

이를테면 양날의 검이라고나 할까.

모든 문제는 검호 특유의 ‘본능’에서 시작됐다.

검호의 피를 이어받은 이라면 발휘되는 이 본능은, 정도 이상의 호전성을 지녔다.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광증’에 가까운 무언가.

이렇다 보니 검호는 전투를 쫓아다녔다.

자고 일어나면 싸우고, 밥을 먹다가도 죽인다.

역사 속 크고 작은 전쟁마다 검호가 빠지지 않는 이유가 이런 데 있었다.

검호들의 성품이 잔학무도하다고 알려진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성품이란 게 타고난 기질도 중요하지만 환경과 학습 같은 후천적인 요소도 중요한데, 검호는 이게 절망적이다.

피가 낭자하고, 목숨의 가치가 길바닥 동전보다 못한 전쟁터에서 인성이란 꽃이 제대로 피어날 리 만무했다.

이처럼 검호는 전투만을 쫓는 괴물이 되어 갔고.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된다.

“혀…… 형님.”

“동생아, 즐거웠다.”

쐐액-

“커, 컥!”

검호의 피를 나눈 혈족에게 이를 드러낸 것.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호전성이 머리끝까지 치솟은 검호에게 강자와의 결투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락이다.

검호에 필적할 강자라는 게 찾기 쉽나?

전쟁터를 돌아다니는 것도 여러모로 번거로운 일이다.

그런데 그걸 빠르고 확실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검호랑 싸우면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였다.

검호가 검호를 만나면 칼을 겨누게 된 것이.

산의 지배자는 하나면 족하다는 것처럼, 그들은 마지막 한 명의 검호가 남을 때까지 끊임없이 싸웠다.

진룡이 핏줄을 모아 세를 키우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였다.

이런 이유로 검호는 시대를 불문하고 최강의 검사로 불렸지만, 세력은 급격히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끔찍한 굴레는 불과 몇십 년 전, 박건이 검호가 되기 전까지도 남아 있었다.

……

“응? 건아,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야? 어이쿠, 아빠랑 놀고 싶어? 그럴까? 가자! 하하하하!”

박건의 아버지는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싫은 소리를 들어도 허허.

어머니가 뭐라 해도 껄껄.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늘 주변을 밝게 해 줬다. 자신이 조금 손해 보더라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웃음이 많은 검호는 ‘평범’을 꿈꿨다.

“박건, 이리 와서 앉아 봐. 아빠가 할 말이 있어.”

“음, 어떻게 말해야 하나. 우리 가족은 여기, 가슴속에 특별한 아이를 품고 있어. 심술궂고 제멋대로인 아이지.”

박건의 아버지는 자신의 피에 각인된 검호의 ‘본능’이 얼마나 난폭한지 알았다.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이 손에 검이 잡히는 순간,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평범’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검을 멀리했는데…… 피는 못 속이는 법. 어린 박건이 점점 싹을 틔우고 있었다.

박건의 아버지는 고심 끝에 검을 가르치기로 했다.

“아빠는 네가 이 아이랑 친하게 지내길 바란단다. 아빠는 그러지 못했어. 서로 이해하기에 우린 너무 멀리 왔거든. 그래서 늘 안타까웠지.”

“그러니 아들아. 네가 이 아이의 친구가 되어 줬으면 좋겠어.”

어쩌면 알았던 것일 수도 있다. 설령 자신이 가르치지 않아도 결국 박건은 검을 쥘 것이며, 검호의 본능을 각성할 것이다.

그럴 바에야 엇나가지 않게, 자신이 가르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은 기존의 검호와는 확연히 달랐다.

“하하하! 검은 재미있는 거야. 즐겨. 재미있게 검을 휘둘러. 네 안의 친구와 이야기해 봐. 들리지 않니? 친구의 웃음소리가. 껄껄껄!”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다.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검을 즐기는 것. 그래서 피에 숨겨진 ‘본능’과 호흡하는 것.

이걸 가르쳤다.

그는 몰랐다.

그가 가르치는 방식이 시대를 회귀해 검호가 태동했던 그 시절의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박건은 본능에 휘둘리는 검호가 아닌, 본능과 소통하는 검호가 되어 갔다.

하지만.

불행은 불시에 찾아온다 했던가.

“……형님.”

“오랜만이구나, 동생아. 어디 숨어 있는가 했더니 이렇게 도시에서 살고 있었구나. 호, 그 아이는? 네 아들이냐?”

“……인사드려라. 백부님이시다.”

“됐다. 서로 죽일 사이에 인사는 무슨. 검이나 뽑아라.”

“형님, 저는 이제 검을 들지 않습니다.”

“재미있군. 형제들 중 가장 뛰어났던 네가 검을 저버렸단 말이더냐. 재미있어. 눈물 나게 재미있는 일이야.”

그날, 박건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처음 본 백부란 자의 손에.

박건도 울었고, 하늘도 울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분노가 불길처럼 마음을 태워 갔다. 그래서 박건이 검을 쥐려 했는데, 아버지의 마지막 전언이 박건의 손을 멈췄다.

“아빠랑 약속하자. 즐겁게, 재미…… 있게…… 웃으…… 렴.”

아빠처럼 운명에 도망치지도.

백부처럼 운명에 굴복하지도.

말라.

너는 운명의 친구가 되거라.

함께 걸어가는 친구.

“검이라도 빼 들 줄 알았더니 용케 참았구나. 재미있군. 마음에 들었다. 옛다, 받아라.”

“심심풀이로 끄적여 놓은 거다. 무럭무럭 자라, 꼭 복수하러 오거라. 기다리고 있으마, 조카야.”

하루아침에 달라진 삶.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어머니는 충격에 빠지셨다.

박건은 몸이 약했던 어머니가 잘못될까 두려웠지만, 어머니는 강인하게 버텨 내셨다.

아버지의 유언장을 본 것이다.

머리말에 ‘미안합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유언장은 담담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유언장을 본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박건을 안아 주었다. 그리고 네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는 엄마가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약속을 지키셨다.

박건이 아카데미에 입학하며 홀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녀는 눈을 감았다.

할 일을 다했다는 것처럼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야 물어보네…… 네 아빠가 뭐라고 했니?”

“……즐겁게…… 재미있게 웃으라고…… 하셨어요.”

“웃으라니…… 참 나, 당신은 마지막까지 당신이었네…… 그래…… 그거면 돼. 그거면…….”

즐겁게, 재미있게, 웃으며.

박건은 어머니의 장례식 날, 울지 않았다.

그분들이 원치 않을 걸 알기에.

그날, 박건은 어른이 되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쏙 빼닮아 유쾌하고 웃음이 많은 어른 말이다.

그렇게 평생의 반려자인 김연희를 만나고.

“졸업하면 결혼하자.”

“혹시 해서 묻는 건데, 우리 오늘 사귄 거 알지?”

“그게 중요해?”

“……굉장하네.”

많은 일들을 겪으며 성장.

“저기…… 건아. 부탁할 게 있어.”

“알았다.”

“뭘 알아. 부탁할 게 있다니까.”

“알았다!”

“혹시 내가 뭘 부탁할 줄 알고 있어……?”

“모른다.”

“……근데?”

“그냥 알았다.”

“후우…… 좋아, 너도 에이전트 같이하기로 한 거야? 에이전트 이름은 옵티멈. 괜찮지?”

비로소 한 마리의 검호가 됐을 때.

“다녀올게.”

“……몸 조심히 돌아와.”

“하하. 걱정 마. 내가 어디 가겠어.”

박건은 나아갔다.

“오랜만이구나, 조카야.”

“하하. 백부님도 오랜만입니다.”

“웃음. 정겹군…… 씨 도둑질은 못 한다더니 네 아비랑 판박이구나. 그래서, 복수하러 온 게냐.”

“아니요.”

“그럼.”

“가문의 굴레를 끊으러 왔습니다.”

핏줄이 핏줄에게 검을 겨누는.

검호가를 둘러싼 비극적인 운명의 굴레를.

박건은 직접 그의 두 손으로 끓어 냈다.

“크큭…… 커헙…… 크큭. 결국 나도…… 이렇게 가는구나.”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다…… 승자는…… 옳고, 패자는…… 그르니. 네가 맞고…… 난 틀린 거지.”

“아니요, 모두가 패자였습니다. 우린 길을 잘못 들었던 겁니다.”

“길을…… 잘못…… 그런가…… 네가…… 그리 생각한…… 다면…….”

길을 잘못 들었다.

너무도 오랜 시간 방황했고, 제자리를 찾았을 때 남은 자는 하나.

박건이 유일했다.

하나,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비록 지금은 혼자일지라도 그의 곁에는 함께할 이가 있었으니.

“왔어?”

“다녀왔다.”

박건은 오늘도 웃었다.

*   *   *

“푸하하하하!!”

흑색과 백색의 선이 허공에 그어진다.

흑아와 백아.

박건의 두 송곳니가 허공에 궤적을 새기고, 빌딩을 휘감고 있던 거대한 뱀을 베어 낸다.

푸쉬익-!

“개자…… 커헉!”

뱀의 머리 위에 있던 적의 가슴으로 검은 칼날이 뚫고 나왔다.

흑아였다.

콰드득.

칼날을 비틀어 확인 사살.

곧바로 망토를 휘날리며 자리를 벗어나자, 박건이 있던 자리로 공격들이 쏟아졌다.

마법, 주술, 저주, 화살, 창……

형형색색의 폭격이 몰아치는 가운데, 박건은 착실히 적의 숨통을 끊어 갔다.

한편 요르문간드의 습격으로 도시는 시시각각 무너지는 중.

거대 뱀들이 빌딩마다 오르고 있었고, 하늘에는 뼈로 만들어진 괴조가, 땅에는 살덩이 거인들이 발광하며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저 난장판 속에 손녀들이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박건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동요는 잠깐.

냉정하게 전황을 판단.

‘저기에 섞여 봤자 아무 의미 없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적에 집중할 때.

양손이 번뜩였다.

흑백의 섬광이 어지럽게 난무했다.

“커헉!”

사신의-

“젠…… 끄아아악!”

손길처럼-

“개X아! 죽어엇!!”

콰직-!

일수에 하나씩.

생명의 결정을 수확해 갔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든 핏빛의 카펫을 지나, 마침내 적의 중심부에 도달했을 때.

박건은 한 남자와 마주하게 된다.

“하이드?”

“…….”

과거 진화단의 단주이자.

현재는 요르문간드의 이인자가 된 남자.

하이드 박사였다.

“검호가 지원 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정말이었던가.

“흐흐. 설마 널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땡잡았네.”

둘의 눈빛이 교차되더니.

“죽여야겠군.”

“죽여야겠어.”

동시에 적의를 표한 두 사람.

결전에 돌입했다.

하이드의 신체 곳곳에서 실밥이 풀린다.

어깨, 팔뚝, 배, 허벅지, 종아리…… 실밥이 풀리며 핏물이 튀었다.

봉인돼 있던 상처가 아가리를 벌리고…….

입에 담기 힘든 장면이 펼쳐진다.

푸쉬이익-

붉은 혈액과 허연 지방, 핑크빛 근육들이 뭉쳐진 살덩이가 상처를 비집고 나오며,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살덩이들이 생명을 가진 듯 꿈틀대더니 ‘인간의 팔’로 변했다.

수인을 맺는 하이드의 ‘팔’들.

현란하게 움직이는 팔들에 맞춰 주변의 풍경이 마법진으로 채워져 갔다.

반면 박건은 고요했다.

“…….”

호흡 한번에 시야가 변한다.

이곳은 심상 세계, 박건의 내면이다.

백부의 목숨을 거뒀을 때, 그의 내면세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었다.

고독했다. 외로웠다.

하지만, 하나씩 채워진다.

저기, 사랑하는 여보, 마누라가

“남편 놈아. 제발, 모범을 보여.”

첫째 수혁이가.

“아버지, 한 수 어떠십니까.”

둘째 박민지가.

“사기야. 다시 해.”

셋째 기혁이가.

“와, 저 빼고 놀기 있습니까. 같이 놀아야죠.”

손자, 손녀가 뛰어놀고, 며느리들이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박건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풍경 속에 녹아든다.

‘보고 계십니까, 아버지. 어머니.’

제가 만든 가족들입니다. 저는 이제 즐겁습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십시오.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을 때.

박건은 흑백의 마나에 잠식됐고.

마룡기

프레데터(Predator)

“놀아 보자꾸나!”

하늘이 절단됐다.

흑백의 궤적이 아름다운 호선을 그렸을 때.

도시의 불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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