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41화 (241/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22화>

한국 옵티멈 본사.

대회의실 안에는 차가운 냉기가 감돌고 있다.

우측에는 김연희 대표와 유해련 전무.

“그러니까, 집행부의 입장은.”

“수호자를 뺄 수 없다는 말이네요.”

좌측에는 집행부장 지성철과 실무진들.

“당연합니다.”

“수호자란 말 그대로 이 나라를 수호하는 방패입니다. 미국의 위기 때문에 수호자를 파병한다? 설령 저희 집행부가 통과시켜도 위쪽에서 거절할 겁니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이유.

수호자를 미국으로 파병해 달라. 아니, 못 해 준다.

“저기…….”

유해련 특유의 우아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채웠다.

“여러분들, 현재 미국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했는지는 아시죠?”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요르문간드라는 집단이 미국 전역을 가리지 않고 테러 행위를 하고 있으며, 그들의 수와 전력은 전성기의 3대 빌런과 비교해도 엇비슷할 정도지요.”

이야기를 하던 실무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실무진 한 명이 서류를 돌렸다.

받아 든 서류에는 사진과 나이, 인적 사항들이 적혀 있었다.

“숫자만 많은 것도 아닙니다. 초인들의 싸움에서 실력자의 유무는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요르문간드는 더 위험합니다. TA와 진화단의 주요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말입니다.”

주요 간부들이 나열됐다.

특기를 비롯한 외모, 전투 형태와 전용 무기 등…… 간략한 브리핑이 이어진다.

“무엇보다 주목할 전력은 이 둘입니다.”

“원과 하이드겠죠.”

“맞습니다. 전 TA의 원이자, 현 요르문간드의 대표 ‘원(One)’. 마찬가지로 전 진화단의 단주이며, 현 요르문간드의 부대표 ‘하이드’. 이 둘을 비롯해 상위 간부 몇몇은 수호자와 최소 동급, 아니면 그 이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놀랍네요. 다 알면서도 딱 잘라서 거부한 거네요.”

어마어마한 숫자의 빌런.

그중 몇몇은 수호자에 버금간다.

그나마 미국 정도 되니까 어떻게든 견디고 있는 거지, 나라 하나 정도는 전복시킬 수도 있는 전력이란 말이다.

근데 그런 핵폭탄을 가만히 구경하자고?

유해련은 저 실무자들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저는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초인이라고 들었어요. 나름 현역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빌런 상대 안 해 보셨어요? 설마 쟤들이 미국 땅만 먹고, ‘아, 잘 놀았다. 만족했어.’라면서 배 두드리며 가만히 있을까요?”

노골적인 타박에 실무진 중 한 명이 쓰게 웃으며 나선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미국에 파병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르문간드의 성장은 저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며, 이미 대응 전력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에이전트와 연합하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면요.”

“다만 ‘수호자’ 파병은 불가하다는 겁니다.”

수호자는 이 나라,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방패다.

수호령 위그드라실이 사라진 현재, 이 나라를 지키는 방패는 수호자가 유일하다.

“……방패의 목적은 공격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유해련은 ‘내 사위는 방패로도 잘만 때려 부수던데…….’라며 혼잣말해 김연희에게 꼬집힘을 당하기도 했다.

어쨌든 수호자의 존재 의의에 따라 타국에 파병할 수 없다는 실무진 측의 말은 지극히 정론이다.

딱히 흠잡을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김연희가 답답함을 꾹꾹 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여러분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만, 이번 미국 건은 절대 좌시할 사항이 아닙니다. 여기 보시죠.”

불이 꺼지고 빔 프로젝트가 작동한다.

벽 한쪽을 가득 채우는 수십 개의 그래프들.

“저희 옵티멈이 세계에 지사를 두고 있다는 건 아실 겁니다. 현시점, 세계의 골칫덩이는 누가 뭐래도 ‘이상 게이트 현상’이죠. 이 그래프는 이제껏 게이트가 발생한 빈도를 도식화한 그래프입니다.”

국가별로, 년도별로, 게이트가 발생한 수치가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다.

방대한 네트워크를 갖춘 옵티멈만이 가능한 자료.

집행부 실무진이 눈을 빛내며 그래프를 본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상 게이트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특히나 더 그렇죠. 최소를 기록한 그리스에 비하면 거의 3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수치는 증가하고 있죠.”

저희가 주목한 부분은 여기입니다.

“미국은 대륙입니다. 미국을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땅은 가치의 차이가 현격합니다. 살기 좋고 기름진 땅에는 당연히 사람이 몰리고 도시가 형성되죠. 반대로 그렇지 않은 곳은 과감하게 버립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대륙이니까요.”

도시에 발생한 게이트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가 입장에서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사항. 당연히 도시에 발생한 게이트부터 처리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살지 않는 땅에 발생한 게이트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막말로, 조금 미뤄도 상관없다는 거다.

“이렇게 방치된 게이트가 이렇습니다.”

사진이 바뀐다.

인공위성으로 찍은 미 대륙의 사진.

그런데 치즈에 난 구멍처럼 숭숭, 구멍들이 나 있었다.

“게이트는 사진으로 관측할 수 없다는 점을 역이용해 만든 게이트 관측 시스템입니다. 여기 나 있는 구멍들이 모두 게이트입니다.”

“……?!”

회의실의 분위기가 일순 얼어붙는다.

미국에서 유독 이상 게이트 현상이 심각하다, 심각하다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실무진들은 할 말을 잃었다.

“역시 눈으로 보니까 더 이해하기 쉬우시죠. 보시는 대로 도시 근방은 깨끗합니다. 펜타곤이 신경 쓰고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조금만 벗어나면 상황이 달라져요.”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었다.

다닥다닥, 좁쌀만 한 구멍이 뚫리다 못해 어느 순간 합쳐지고 있었다.

“현역에서 뛰시는 분들이라고 하셨죠? 아마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거, 게이트 결합 현상입니다.”

게이트 결합.

서로 다른 게이트가 결합에 상위 레벨 게이트로 변하는 것.

지금 미국의 변두리에서는 이 게이트 결합이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는 중이다.

“이 속도라면 8레벨이 아니라 9레벨 게이트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

“아직 인류는 9레벨 게이트를 마주한 적이 없습니다. 8레벨 게이트를 보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죠.”

9레벨 게이트가 보통의 게이트처럼 가만히 자리를 지킬 수도 있다. 정말 8레벨 게이트에서 규모만 커지고 몬스터만 더 강해지는, 그런 정석적인 계단식 변형.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믿을 만한 조언자가 그러더군요. 9레벨 게이트는 발생 즉시 몬스터를 쏟아 낼 거라고요. 레드 게이트처럼요.”

“그런…….”

“말도 안 됩니다.”

“대체 누가 그딴 말을.”

“저희 막둥이가요.”

“…….”

막둥이.

세 글자에 실무진들이 입을 다문다.

김연희의 막둥이는 마왕, 현존 최강의 초인이었으니까.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어요.”

“어머니, 생각해 보세요. 한쪽에서만 열리는 문을 문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게이트 이거, 원래 레드 게이트가 기본값이었을 거예요. 쌍방향으로 열릴 수 있게.”

“그러면 블루 게이트와 퍼플 게이트는 무엇일까. 이건 유예죠. 일종의 맛보기? 인간이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거예요. 요즘 초인들이 많아지는 것도 다 이런 이유고.”

“9레벨 게이트가 시작이다. 이후로 모든 게이트는 레드 게이트로 변할 것이며, 비로소 그때부터 인류는 이 세계의 주인으로서 투쟁의 시간을 보낼 거라고 했죠.”

“근거 있는 이야기입니까?”

“말했잖아요. 제 막둥이가 한 이야기라고요.”

“아니, 마왕이라고 다 아는 건…….”

말을 이어 가던 실무진이 입을 닫았다.

마왕의 무위는 이미 하늘에 닿았다는 게 증명된 상태.

이 정도 강하다면 우리가 아는 것 그 이상으로 세계의 진실에 닿았을 수도 있다.

“……좋습니다. 마왕의 말이 다 맞다고 칩시다. 그러면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꾸몄단 말입니까.”

“글쎄요.”

김연희도 물어봤다.

누가 이런 일을 기획했냐며.

이에 그녀의 막둥이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지성철이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자리를 정리한다.

“다들 바람 좀 쐬고 와.”

“부장님.”

“어서.”

모두가 나가고, 지성철이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쳤다.

“2차전 시작하지.”

*   *   *

2차전은 지성철부터였다.

“위에서는 너희의 행동을 우려하고 있다.”

검호와 진룡의 결합.

마왕 박기혁과 마룡 진유리의 결혼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초인계는 급부상했다.

에이전트는 너 나 할 것 없이 해외 지사를 세웠고, 믿고 쓰는 한국산 초인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한국의 초인들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모두가 해피한 상황에.

정부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검호와 진룡, 이 두 가문의 힘이 너무 비정상적으로 커졌으니까.

“당장 수호자만 몇이냐. 진룡, 검호, 산군, 백호…… 이밖에도 진룡가는 이 땅의 수호 가문. 비상시를 대비해 수호자급 전력 몇몇이 마련돼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지.”

지성철은 박기혁과 진유리를 입에 담지 않았다.

저 이레귤러 부부까지 언급하면 대화조차 성립되지 않으니까.

“솔직히 말하마. 중앙기관으로서 너희는 부담스럽다. 너무 커, 인간적으로 체급이 말이 안 되잖냐.”

지성철 본인을 포함해 집행부 전력을 쏟아부어도 이 두 가문 연합에 제동이나 걸 수 있을까? 지성철은 쉬이 장담하기 힘들었다.

수호자를 데려다 쓰면 안 되냐고 묻는 놈이 있다면 당장 골통을 부숴놓을 것이다.

수호자 중 넷이다.

그것도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닌, 수호자 중에서도 탑 레벨의 전력이 넷이라고.

상식적으로 저 넷이 자기 가문을 칠까?

이거 너무 당연한 말이잖아.

그래도.

“이제껏 참았다. 너희들 덕을 본 부분이 많으니까. 나나 윗분들이나 어쩌겠냐. 아니꼬워도 너희들 덕분에 이 나라의 명성이 높아지는데.”

실제로 세계에서 한국의 명성은 그 어느 때보다 드높았다.

프리즘에 한국을 치면 ‘초인’이란 연관 검색어가 뜰 정도였고, 국민들은 이걸 보며 국뽕을 채워 갔다. 상황이 이러하니 초인 산업은 한국의 중요 산업이 된 지 오래였고.

이런 이점들 덕분에 정부는 진룡과 검호 연합이 몸집을 부풀리는 걸 우려하면서도 용인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관계에 균열이 일어났지.”

“설마, ‘가마’ 때문이야?”

유해련의 말에 지성철이 쓰게 웃었다.

국가가 가졌던 최대의 무기, ‘가마’를 빼앗긴 것.

정확히는 마왕 박기혁과 현 진룡 가주인 화룡 진서준이 가마를 완성시킨 것이다.

“너희들은 개인 연구용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국가 입장에서 이번 ‘가마’ 건은 치명적이었어.”

“아니, 화로도 하나야. 그냥 개인 무장이나 만드는 건데…….”

“화로가 하나든 두 개든 중요한 게 아니야. 완벽한 형태의 가마를 만들었다. 이게 중요해.”

하나를 만들 수 있으면 두 개를 만들 수 있다.

국가 최고 기밀을 유출당한 거나 다름없다.

“사령부에서도 벼르고 있어. 그들에게 가마는 목숨이나 다름없는데, 그걸 홀랑 훔쳐 갔잖냐.”

“잠깐, 오빠. 말은 똑바로 하자. 서준이가 가마치 님께 분명히 말했어. 이거 만들어 봐도 되냐고. 가마치 님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고.”

“허락만 해 줬지. 진짜 만들 줄 생각하셨겠냐.”

한국의 가마는 유명하다. 상등급 이상의 아티팩트를 무한으로 찍어 낼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아티팩트 화로.

그렇다면 이걸 베끼려는 시도가 없었겠나.

아주 많다.

너무 많아서 차마 셀 수도 없을 정도다.

그런데 가마는 지금까지 하나라는 것.

이 말인즉, 모두 실패했다는 거다.

마왕은 모두가 실패한 이 가마를 단 몇 년 만에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유해련, 너 말 잘했다. 가마가 가마치 님 거야? 소속은 대한사령부, 엄밀히 말해 국민 모두의 것이야.”

“오빠, 치사하게 나오기야?”

“그만큼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거다.”

지성철 본인조차도 검호와 진룡과 연관된 게 아니냐며 추궁이 들어올 지경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왕과 마왕의 아이들이 결정타인 것 같다. 윗분들의 인내심이 끊어진 게.”

“우리 애들이 왜.”

“걔들이 무슨 상관이야.”

유해련은 물론이고, 이야기를 잘 듣던 김연희조차 애들 이야기가 나오자 도끼눈을 떴다.

지성철은 둘의 반응에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니들이 보기에 걔들이 정상이냐?”

“정상이 아닌 건 뭔데?”

“얼마나 착한데.”

“손자 손녀로서 말고, 무력적으로, 능력적으로 말이야.”

아카데미를 다니며 규격 외의 무력을 드러낸 경우는 종종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김연희의 자식 셋이 그러했고, 유해련의 망나니가 그러했다.

그러나 마왕의 아이들은 특별하다.

걔들 전부 마왕 박기혁의 제자 아닌가.

“잘 봐라. 이제껏 모두가 실패했던 가마도 만들어 냈어. 그런데 실력자도 쑥쑥 뽑아낸다. 너희들이 윗분들 입장이 돼 봐라. 불안하지 않을까?”

김연희와 유해련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복잡하다. 아이들까지 걸고넘어질 정도면 정말 현 정부의 인내심이 끊겼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김연희가 독한 마음을 먹으면 이 신경전의 승리는 그녀일 거다.

가령 남편 놈과 아이들에게 수호자 자리를 반납하라고 말한다면? 가족 바보인 그들은 한 치의 미련 없이 김연희의 말을 들어주리라.

이렇게 되면 결국 머리를 숙이는 건 저쪽이다. 단숨에 수호자 세 자리가 공석이 되는 거잖나.

하지만 김연희는 극단적인 수는 치워 놓았다.

‘이제 곧 있으면 봄이와 헤나가 아카데미를 졸업해. 걔들한테 에이전트를 물려주려면 시간이 필요해.’

어느 집단이든 권력이 재편될 때 가장 취약한 법.

옵티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제 그녀는 늙었고, 다음을 준비해야 했다.

“어쩌길 바라? 정확하게 말해 봐.”

“확장을 멈춰.”

고개를 끄덕이는 김연희.

어차피 이쯤에서 멈추려고 했다.

이건 수용 가능.

“또.”

“한일 혈족회를 우리 쪽에 넘겨.”

마찬가지로 끄덕인다.

일본과 한국의 명문 혈족들이 모인 단체.

처음에는 좋은 의미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짐짝이 된 단체다.

오히려 이쪽이 땡큐다.

“또. 어디 마음껏 말해 봐.”

“그렇게 눈치 주지 마라. 마지막이니까.”

지성철이 두 여자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하는데.

“마왕과 마룡이 수호자로…….”

“어림도 없는 소리.”

“절대 안 돼!”

둘 다 이것만은 절대 용납 못 한다는 듯 격렬히 거부했다.

“조용히, 예쁘게 살고 있는 아이들이야. 가만히 놔두면 안 돼?”

“오빠, 오빠가 박 서방이랑 유리가 걱정된다며. 그럼 조용히 놔둬야 하는 거 아니야? 왜 말이 계속 달라져?”

“……그 둘이 독보적이니까.”

현존 수호자들 중 누구 하나 마왕과 마룡에게 승부를 장담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수호자들 사이에서도 저 둘의 무력은 경외에 가까웠다.

거기다 이번 마왕의 아이들로 이들의 육성 실력 또한 범상치 않다는 게 입증됐다.

저들이 만약 국가의 인재들을 키운다면?

전력이 얼마나 상승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지경이다.

“둘 중 하나라도 어떻게 안 되나.”

“안 돼.”

“노. 이러면 타협은 없어.”

“끄응…….”

어쩌면 앞선 두 조건보다 이게 더 중요한데.

지성철이 어떻게 이 두 여자를 설득할까, 고민하던 그때.

문이 부서진다.

콰앙-!

곧이어 들려오는 호쾌한 웃음소리.

“푸하하! 재미있었습니다, 형님!”

감정적이며, 바보처럼 웃을 줄만 알고, 입만 열면 정의, 의리, 열혈을 외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계산적이고 냉철한 남자.

암살자와 검사를 넘나들며, 사선을 제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현존 최강의 스폐셜리스트.

검호 박건이었다.

“여보, 마누라.”

“어, 응?”

“됐어. 부탁하지 마. 내가 해결할 테니까.”

“어?”

툭.

던져진 카드.

지성철이 눈을 부릅뜬다.

검과 방패, 무궁화가 문양으로 새겨진 카드.

수호자를 상징하는 카드였다.

“여기, 수호자 반납하겠소.”

“박건.”

박건이 송곳니를 드러내는 순간.

검은 섬광이 번뜩인다.

지성철의 뺨을 머리카락 하나 차이로 스치며 뒤쪽 벽에 새겨진 한 줄기 검 자국.

대응조차 못 했다. 과거 만창이었던 그인데 검날조차 구경 못 했던 것이다.

지성철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제야 생각났다.

저 검호랑이의 ‘과거’가.

먹고 먹히는, 잔인했던 검호의 굴레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저 남자에게 ‘가족’은 역린이었다. 자신은, 정부는 저 맹수의 역린을 건드렸다.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자칫 잘못하면 죽는다.

만창이고 집행부장이고 간에 박건이라면 당장이라도 검을 빼 들리라.

저 남자는 그런 남자였으니까.

씨익, 환하게 웃는 박건.

“형님, 어울리지도 않는 전령 노릇은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은퇴식이냐.”

“좋네. 은퇴식.”

박건이 껄껄 웃으며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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