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19화>
마왕의 아이들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마왕 본인의 입이 시작이었다.
세쌍둥이을 낳고 처음 나선 공식 석상에서 박기혁은 ‘눈에 띄는 인재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요, 다들 그냥저냥 그렇던데요? 확실한 건, 떠드는 것만큼은 못했어요.”
이때만 해도 한국 초인계는 자신들의 입으로 최전성기라며 자축하던 때였다.
프리즘에는 ‘한국산 초인의 위엄!’ ‘한국이 이 정도일 줄은…….’이라는 국뽕 영상이 우후죽순 등장했고, 에이전트들도 너나할 것 없이 해외 진출을 노렸더랬다.
그러나.
박기혁은 이런 세간의 평가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금 초인들 몸값 보셨나요? 저도 어머니한테 들었는데, 미쳤더라고요. 만약 제게 그들이 몸값만큼이나 실력을 갖췄는지를 묻는다면…… 저는 모르겠군요. 이걸 뭐라 해야 하지? 거품? 거품이 좀 낀 건 사실이에요.”
“말 잘하셨어요. 평균적으로 실력이 상승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 있는 거 아시나요? 해마다 초인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마나를 느끼는 나이는 점점 내려가고 있고요. 몇 년이라도 일찍 마나를 느낀 애들이 실력이 좋은 건 당연한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평균 실력은 늘 겁니다. 말 나와서 말인데…….”
닥치고 입 벌려라, 팩폭 들어간다.
많은 이들이 불편했다.
그들 대부분은 초인 업계 관계자나 정부의 고위 관료들 같은 분들. 모두 흥하는 한국 초인 시장에서 이득을 보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불편해도 따질 수 없었다.
마왕이니까.
지들이 마르고 닳도록 찬양하던, 한국에서 제일 센 애가 그렇다는데.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20여 분간 지속된 노빠꾸 팩폭.
‘마왕의 아이들’은 이때 등장한다.
“제 뒤를 잇는 유망주라…… 있을 리 없잖아요.”
“다만 제 아이들이 자라면 또 모르겠네요. 걔들이라면 충분히 저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박봄, 박헤나, 이스마일, 올리버.
‘마왕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네 아이다.
사람들은 궁금했다.
일인 군단, 혹은 전술 병기로 취급받는 수호자조차도 감히 점접할 수 없는 게 마왕이었다.
도시 하나를 하루아침에 삭제시키고, 타고난 힘이 하늘에 닿았다는 이 천외천의 절대자가……
인정한 재능은 어떨까?
대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당연했다.
“비상! 비상! 국장님 특명이다. 마왕의 아이들, 걔들 정보 긁어모아. 나이, 몸무게, 뭐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상관없어. 몽땅. 알 수 있는 건 다 알아내! 어서!”
“쟤가 박봄이고, 쟤는 박헤나라고, 얼굴은 귀엽게 생겼는데 피지컬은 괴물이네. 다른 건 없어? 나머지 둘은? 이건 방송이니까 다른 사람도 다 알 거 아냐? 뭘 알아야 영입을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온갖 에이전트가 침을 질질 흘렸으며, 모든 방송국이 사진 한 장 건질 수 있을까 싶어 혈안이 됐다.
이건 한국만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마왕의 무서움을 피부로 느끼기에 절제가 됐지만, 해외의 다른 나라는 우격다짐으로 찔러 댔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네 아이의 정보를 얻으려고 했지만, 끝내 모두 실패했다.
이유?
아이들의 거주지가 검호가라서.
현재 한국에서 진룡과 검호는 명실공히 혈족들의 정점이다.
그런데 이곳에 거주하는 아이들에게 접근한다?
허락도 없이?
인간의 목숨은 하나고, 인간은 제 목숨 귀한 줄 안다. 고로 저들도 인간인 이상 허락 없이 입을 놀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본디 인간이란 닿지 못한 미지(未知)를 동경하는 법.
관심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더 거세져만 갔다.
봄헤나TV의 구독자가 3000만이 넘은 게 이때였다.
“헤나야, 이거 왜 이럴까?”
“뭐가.”
“우리 채널 말이야. 구독자가 계속 늘어가. 영상 올라가는 날도 아닌데…… 혹시 버그??”
“놔둬. 버그면 알아서 고쳐지겠지. 신경 쓰지 마.”
폭발적인 관심 속에 시간이 지나고……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어느덧 마왕의 아이들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며 검호가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것이다.
드디어 필드에 나왔다! 이제야 만날 수 있다!
대체 얼마나 눈부신 재능이기에 마왕씩이나 되는 사람이 금이야 옥이야 품어 가며 꽁꽁 감춰 뒀던 것일까!!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드디어 오늘.
그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화창한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친다.
성스러을 만큼 찬란한 빛을 띤 순백의 번개.
신의 진노가 아닐까 여겨질 만큼 강력한 이 번개의 정체는.
“내려쳐!!”
박봄이 품은 모든 혈족들의 총아.
혈마술
백뢰
혈마술 백뢰가 작열했다.
대지는 산산조각 난다. 건물은 과자 조각처럼 부스러졌다.
돌도, 나무도, 기구도, 백뢰의 파장이 닿는 모든 게 중력에서 벗어나 떠오른다.
여파에 휩쓸린 모든 지형지물이 형체를 잃어 갔다.
시야에 닿는 전역을 초토화시켰음에도 백뢰는 사그라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더! 더! 탐욕스럽게 파괴를 갈구하며 몸집을 불려 갔다.
그렇게 백뢰는 굶주린 맹수처럼 박봄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하지만 단 한 곳.
백뢰의 여파에서 자유로운 곳이 있었으니…… 이스마일, 그가 서 있는 권역이었다.
“후…….”
박봄의 혈마술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하나의 속성에 수십, 수백 개의 속성이 결합된 결정체.
저 백뢰만 해도 뇌전과 화염이 결합됐고, 속도를 증가시키는 축복과, 반대로 타격한 상대를 약화시키는 저주까지 결합된 복합 속성의 술법이다.
때문에 혈마술에 대응하려면.
속성을 분리하는 것부터다.
이스마일의 이마에 ‘별’이 떠오른다.
우주의 변화를 담은 별, 그래서 이를 ‘성운’이라 말하노니.
‘성운’이 빛을 발하는 순간.
그의 정면으로 검 한 자루가 떠올랐다.
유지의 술
속성 분리
시공이 멈춘 세계.
사방에서 백뢰가 조여 오는 이 시점에.
변화한다.
반전한다.
이스마일을 중심으로 모든 세계가.
‘성운’의 뜻대로.
푸지지지직-!
주변을 삼키고 있던 백뢰 다발들이 역으로 분리된다. 속성을 가닥가닥 쪼개 그 뿌리에 접촉, 역으로 해석해 성운의 힘으로 ‘변화’시켜 버렸다.
이 일련의 과정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지자, 주변의 시간이 되돌려지는 것 같아 보였다. 마치 백뢰가 역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때.
이스마일이 마침내 걸음을 내디뎠다.
목표는 박봄.
대검 ‘백귀’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게 꽤 여유로워 보이는데.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는지 보자고.’
변화의 묘
시공 접기
시공을 접어 박봄의 뒤를 잡는다. 박봄이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몸을 돌렸다.
시선을 마주친 두 사람이 검을 쥐었다.
박봄의 손에 들린 대검은 ‘백귀’.
마왕 박기혁이 ‘가마’에서 손수 만들어 낸 성검이었다.
이스마일의 손에 들린 장검, ‘극성.’
역시 마왕 박기혁이 ‘가마’에서 직접 두드린 마검이었다.
백귀와 극성.
성검과 마검이 격돌했다.
까아앙-!!
충격파가 동심원처럼 퍼져 주변을 삼켜 갔다.
그 폭풍의 핵에서 검을 맞대고 선 박봄과 이스마일.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둘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나오는 거야, 엘?”
“난 언제나 네게 진심이었어.”
“좋아, 그렇단 말이지.”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박봄이 리미트를 해제한다.
순백의 광채가 박봄을 감싸고.
우리엘 & 라파엘
전개
날개를 펼치며 마나 공명.
얼라이브
육체 재구성
무신체
이어서 육체 강화를 끝내면.
혈마술
백뢰, 백염, 백야, ……극광, 진룡, 검호 ……초신성, 신기묘산……
혈마술 장전.
날개를 펼친 박봄의 등 뒤로 장전된 혈마술이 붉은 별처럼 떠올랐다.
이스마일도 성운을 극한으로 뽑아냈다.
변화의 묘
공간이 조각난다.
조각난 공간의 파편이 이스마일을 비추고.
유지의 술
비친 ‘이스마일’들이 공간을 뚫고 나왔다.
빛무리처럼 새하얀 형태의 이스마일은 곧이어 한 자루의 검으로 변하며.
속성의 형
수십 자루의 검에 제각각 다른 속성들이 깃든다.
불과 물, 바람과 대지, 빛과 어둠……
검을 든 대마법사라는 ‘검왕’의 비기가 이스마일의 손에서 재현된다.
성운의 극
날개를 펼친 박봄과 검을 깨운 이스마일.
‘혈마술’과 ‘성운의 극’이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서로를 겨누고, 둘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순간.
격돌한다!
절멸하는 세계.
붕괴되는 대지.
점유하던 마나는 한없이 무한에 가까워졌다.
* * *
같은 시간.
공방을 주고받던 박헤나와 올리버가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돌렸다.
“……!”
“……!”
시선이 가리키는 공간이 흑백으로 변한다.
얼어붙은 시공이 멈추더니, 곧이어 마력의 헤일이 물감처럼 주변의 색을 뒤틀고 있었다.
‘봄이 쟤는 아무리 학장님이 허락했어도…….’
‘저건 너무 진심인데요?’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쟤들 진심인데?”
“그러게요.”
웃던 박헤나가 물끄러미 손을 내려다본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미묘한 균열이 일어난다.
봄이는 마음껏 즐기고 있는데, 난 뭐 하고 있는 거지?
헤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화나네?”
“헤, 헤나?……?!”
“안 되겠어.”
“헤나, 참으세요.”
“쟤들은 시원하게 붙는데, 우리는 이게 뭐야.”
“헤나, 헤나? 저기요?”
“이건 불공평해. 나도 놀아야겠어.”
“이런…… 듣지 않는군요.”
틀렸다.
적당히 대치하자던 협정은 박헤나의 동공이 갈라지는 순간 끝났다.
재빨리 ‘계약’을 체결하는 올리버.
‘공격하지 않는다.’를 비롯한 십여 개의 ‘계약’들이 올리버의 방어를 강화시키고 있다.
흥분한 헤나의 공격을 맨몸으로 맞는 것은 자살행위.
이것도 부족하다!
곧이어 꽂히는 헤나의 창날.
쿠우웅-!!
“……!!”
‘계약’을 두른 올리버가 공격을 막아 보지만.
밀린다.
고위급 마법마저 막을 수 있는 방어가 속수무책으로 밀려 나간다.
마왕의 아이들 중 육체만큼은 단연 발군인 박헤나.
마왕 박기혁조차 힘만큼은 자신과 비견된다고 말할 만큼, 박헤나의 육체 포텐셜은 규격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절대적인 힘 앞에서 모든 기술은 무의미하니.
헤나는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인간이었다.
“소꿉놀이는 그만이야. 이제부터가 진짜야.”
육체 활성화
오른팔과 왼팔
바포메트
아수라
오른발과 왼발
키메라
펜릴
마나 코어 가동.
공명(共鳴).
녹빛의 마나가 박헤나를 뒤덮는 순간.
우드드득!
뼈가 뒤틀리며 헤나의 육체가 개조됐다.
리미트 해제, 골격 최적화, 근육 증가, 신경 가속…… 육체가 전투 모드로 변한다.
헤나의 피부 위로 매끈한 갑각이 뒤덮였다.
곤충의 갑각처럼 생긴, 폭발적인 신체 능력을 갈무리할 수 있는 장갑(裝甲).
테라포밍 초월체
격을 초월한 박헤나.
기다란 뿔과 요정의 날개가 녹빛 대자연의 빛무리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대한 변화를 마주한 올리버가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박헤나가 박기혁을 닮은 건 육체적인 힘뿐만이 아니다.
기형적으로 발달한 전투 센스와 호전성.
다시 말해, 싸움을 무진장 좋아한다는 거다.
“하는 수 없군요.”
이쯤 되면 막는 것은 불가능.
선택지가 사라지자 올리버는 오히려 후련해졌다.
이쪽도 마왕의 제자이긴 매한가지.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마왕의 아이들 중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올리버가 엄지를 깨문다.
까득-
손톱이 깨지며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붉디붉은 핏방울이 혀끝에 닿는 순간.
불가사의
계약서 소환
떠오르는 계약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진짜 계약서, 양피지가 이스마일 옆에 떠 있었다.
불가사의의 근원을 형상화한 계약서.
이능과 이적을 뛰어넘어 신의 영역에 다다른, 불가해의 기적에 닿을 수 있는 계약서.
이게 올리버의 힘이었다.
달려드는 박헤나를 보며 올리버가 결의를 다진다.
‘시작하자.’
하얀 양피지에 검은 글자들이 쓰여 간다.
계약 1. 무기를 들지 않는다.
계약 2. 공격할 수 없다.
계약 3.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계약 4. 이능을 버린다.
계약 5. 신체를 강화하지 않는다.
계약 6. 타인을 약화시키지……
줄줄줄, 계약들이 쓰이고…….
올리버가 박헤나의 공세를 정면에서 막아 냈다.
초월체로 변한 박헤나의 막강한 파괴력을 올리버는 단순하게, 그렇지만 확실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려한 박봄과 이스마일의 전투에 비하면, 둘의 전투는 굉장히 투박하며 단출하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것만일 뿐이지, 여파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
주먹이 맞부딪치면 바닥이 뒤집히고, 다리를 교차하면 건물들이 먼지가 됐다.
충격의 여파만으로 주변이 삭제되고 있던 것이다.
“오, 꽤 늘었는데?”
충술
무기 구현
철퇴
“저는 원래 꽤 했습니다.”
……는다.
계약 73. 3초간 시야를 잃는……
“농담도 할 줄 알아?”
충술
무기 구현
언월도
“농담이라니요. 진실입니다.”
……한다.
계약 75. 후각을 상실한다.
계약 76.……
“하하하!! 좋아! 좋아!”
공방을 주고받던 박헤나가 크게 웃는다.
쩌렁쩌렁 울리는 웃음소리. 강화된 육체로 웃음소리마저 물리력을 가졌는지 주변이 출렁였다.
“싸움은 이래야지. 이래야 제맛이지.”
박헤나의 손으로 벌레들이 모여든다.
그녀의 특기인 ‘충술’이다.
파르르르, 날갯짓을 하며 모여든 벌레들이 한데 모여 형상을 이루고…… 마왕 박기혁이 만들어 낸 역작 ‘포식.’
밤을 닮은 묵빛 창이 떠올랐다.
“저런, 정말 ‘마룡기’만 빼고 다 사용할 셈인가요.”
올리버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꽤 기쁜지 입은 웃고 있었는데, 웃는 얼굴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손에 들린 건.
한 자루의 만년필.
마왕 박기혁이 손수 만들어 낸 신기 ‘특약’.
단 한 줄, 원하는 계약을 아무런 대가 없이 쓸 수 있는 신기였다.
이제 둘은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한 명이 쓰러질 때까지.
이 싸움의 끝을 볼 것이다.
“어디까지 견디나 해 보자고.”
“그래요, 저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이 치열한 결투의 끝에.
자신이 서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콰아아앙-!!
박봄과 박헤나.
올리버와 이스마일.
마왕 박기혁의 뒤를 이을 인외의 괴물들이 세상을 향해 부르짖고 있었다.
내가 최고라고.
* * *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의 결투는 실시간으로 세계에 송출되고 있었다.
“하, 학장님. 이래도 되는 건가요?”
“제가 말했잖아요. 파격적으로 바뀔 거라고요.”
안주하는 이 세계에 파란을 일으키는 일이다.
세대교체의 서막이라고 해야 하나.
“저 아이들만큼 파격적인 게 또 어디 있겠어요.”
아그작.
위그드라실이 팝콘을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