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37화 (237/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18화>

수호령.

인류를 수호한다.

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요.

위그드라실은 이 숭고한 의무를 사랑했다.

조화를 추구하는 위그드라실에게 수호란, 다른 의미의 조화였다. 숲이 짐승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면 짐승들은 숲을 지켜 준다.

서로를 보듬어 가며 살아가는 삶. 이것이야말로 조화가 아니겠나.

그렇게 위그드라실은 기꺼이 의무를 짊어진 채 수호령으로서 살아갔다.

하지만 문제의 사건들이 발생한다.

같은 수호령인 태사자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인간을 노예로 부렸고, 황룡은 동료였던 ‘자유의 깃발’을 잡아먹고는 세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위그드라실은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태사자가 수호령치고 욕심이 많은 것은 알았다. 그러나 노예로 부리며 인체 실험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황룡이 이해하기 힘든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 분노의 화살이 신을 노리고, 학살을 벌일 줄은 몰랐다.

수호령이! 인류를 지킨다는 의무를 쥔 자들이!

어찌 이렇게 끔찍한 짓을 할 수 있나요!

위그드라실은 회의를 느꼈다.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올바른 길이었는지조차 의심이 들었다.

“너희 수호령이야말로 이 문제의 근원이다.”

박기혁이 옳았다.

필사적으로 부정해 보아도 모든 결과는 박기혁이 옳다 말하고 있다.

인류를 수호하라.

이 세상을 조화롭게 지키리라.

위그드라실의 신념이 짓밟힌 것이다.

그때 불현듯, 신의 마지막 계시가 생각났다.

“마지막이다.”

“간섭하지 마라.”

마지막…… 마지막…….

어쩌면 신이 말한 마지막이란, 이 세계에 더 이상 수호령의 존재가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렇게 위그드라실이 자신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 의심에 빠졌을 때, 그녀의 의심에 방점을 찍을 사건이 벌어진다.

뭐냐 하면, 또 다른 수호령 에우리아가 수호령임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위그드라실, 이제 우리의 역할은 끝난 것 같아요.”

그 누구보다 인간을 사랑했던 수호령, 에우리아.

하지만 에우리아는 고백했다. 이제껏 수호령으로서 인간을 지키려고 했던 일들이, 사실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며.

“헤나를 보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나는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했는가. 아니었어요.”

헤나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 에우리아는 그제야 깨닫는다.

애정(愛情)이 아닌 동정(同情).

에우리아가 이제껏 인간에게 가진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가엽게 여긴 거였다.

“무의식적으로 인간을 아래로 보았던 것 같아요. 함께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이웃이 아니라, 보살펴야 할 자들로 본 거죠.”

우리가 인간에게 준 것은 많다.

인간들이 발전한 것도 맞다.

그러나 그게 온전히 인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인가?

그토록 인간을 사랑했던 에우리아조차 이 질문에 쉬이 답하지 못했다.

“이 세계의 주인은 수호령이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어요. 설령 스스로가 부정해도 결국 그렇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이미 시작부터 비틀린 관계.

에우리아는 지금이라도 이 관계를 되돌리고 싶었다.

“위그드라실도 신의 말씀을 들으셨을 거예요. ‘마지막’. 저는요, 이 말씀이 잘못을 되돌릴 마지막 기회라고 이해했어요. 그래서 떠나려고 해요. 저도 수호령이 아닌 이 세계의 일원이 되고 싶어요.”

에우리아는 그 말을 남기고 종적을 감췄다.

모든 의무를 벗어던진 채. 이제 더 이상 에우리아는 수호령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에우리아가 사라지고 아프리카 연합은 혼란을 맞이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수호령이 사라진 것이니까.

그러나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간들은 빠르게 수호령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설령 그것이 수호령처럼 숭고한 의무감이 아닌 한낱 권력에 가진 욕심이었지만.

위그드라실은 생각했다.

저 욕심마저 인간의 일부라고.

그렇게 인정하자, 비로소 깨달았다.

신이 말한 ‘마지막’의 의미를.

“오늘부로 저 위그드라실은 수호령의 자리를 내려놓습니다.”

신의 의무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다.

위그드라실은 수호령이란 족쇄를 벗어던진다.

그렇게 그녀는 ‘지혜의 숲’의 마지막 인사를 받으며 정든 아카데미를 떠나게 된 것이다.

*   *   *

“그러면 아카데미를 떠나고 무엇을 하셨나요.”

취재진의 질문에 위그드라실이 인자하게 미소 짓는다.

“자유를 만끽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여행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여행을 떠나 봤죠. 처음은 핀란드였어요. 풍경이 제법 멋진 곳으로 기억해요.”

위그드라실이 여행기를 풀어놓는다.

핀란드에서 스웨덴, 노르웨이를 거쳐 이뤄진 유럽 일주에 취재진들은 한 글자라도 놓칠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올해 최고의 이슈가 눈앞에 있잖나.

위그드라실.

수호령의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아직도 수호령의 부재를 염려하는 관계자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 그녀가 복귀하자, 사라진 수호령의 자리에 오를까 기대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위그드라실이 지금 앉아 있는 곳은 ‘학장실’.

그녀는 수호령이 아닌 한 명의 교육자로서, 그녀가 일궜던 아카데미로 돌아온 것이다.

때마침 유럽에서 시작된 여행기가 중동까지 와 일단락되고, 기자는 조심스레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번 질문은 민감한 주제입니다.”

“짐작되네요.”

“유명한 문제죠. ‘이상 게이트 발생 현상’에 대한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게이트 생성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들어 보셨습니까?”

“네, 많이 들어 봤어요.”

“며칠 전에는 도심 중심에서 발생해 다수의 시민들이 게이트에 휩쓸리는 사고도 벌어졌습니다.”

마석의 유전쯤으로 여겨졌던 게이트인데, 생성 빈도가 급격히 증가하며 위협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상 게이트 현상이 일어난 시점이 아주 우연찮게도.

“……위그드라실 님과 에우리아 님이 수호령을 그만두시고 난 뒤부터입니다.”

“공교롭네요.”

혹시 아는 것이 있냐, 취재진의 노골적인 눈빛에 위그드라실은 쓰게 웃었다.

“안타깝게도 제가 아는 것은 없네요. 죄송해요.”

“아…… 네.”

“또한 믿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저와 에우리아가 수호령의 자리를 놓아서 생긴 문제도 아닐 거예요.”

“그, 그렇습니까.”

“네.”

물론 짐작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위그드라실은 말을 아꼈다. 만약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어차피 이것 또한 자연의 섭리와 같은 것.

인간이 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과정 중 하나일 것이다.

마지막 질문이 왔다.

앞으로의 포부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위그드라실은 카메라를 직시하고는 부드럽게, 하나 똑똑히 이야기했다.

“저는 위그드라실입니다. 나무는 뿌리를 내린 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제 뿌리가 여기에 닿고 있기에, 결국 돌아올 운명이었습니다.”

그녀가 학장으로 취임한 이유도 같다.

이곳이, 아카데미가 그녀의 뿌리니까.

“홀로 완성되는 숲은 없다. 조화를 추구하는 제 신념입니다. 저는 이 신념으로 아카데미를 세웠습니다.”

조화란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할 때 이루어진다.

나무를 키워서 숲을 이루는 것처럼, 아이들을 가르쳐서 그 아이들이 이 세계의 큰 나무로 성장한다면.

“이야말로 진정한 의미로 조화가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믿는답니다. 이게 제가 이 자리에 돌아온 이유입니다.”

위그드라실이 방긋 웃다……

“아! 그리고요.”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꼭 가르쳐 보고 싶은 아이들도 있네요.”

어쩌면 수호령의 빈자리를 채워 줄 아이들.

그녀의 시선이 책상에 흩뿌려진 서류 속에서 웃고 있는 박봄과 박헤나의 사진에 닿는다.

*   *   *

많은 기대 속에 아카데미의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위그드라실이 학장으로 부임한 첫 해이니만큼 많은 것이 달라지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이는 정확했다.

“기쁜 소식이에요. 지루했던 이론 수업의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줄일 거예요. 자연히 실전이 주를 이룰 거고요. 신나시죠?”

통상 아카데미의 1학년은 대개 이론 수업이 주를 이룬다.

이론으로 기초를 다지고, 2학년부터 실전을 맛보고, 제대로 공략이라 부를 수 있는 건 3학년부터.

그래서 3학년부터는 조장이 아니라 팀장인 것이다.

한데 위그드라실은 첫날부터 이를 뜯어고쳤다.

온화한 그녀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실로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무리수를 둔다며 혀를 찼지만, 위그드라실은 생각이 달랐다.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요. 이상 게이트 현상으로 게이트가 늘어나고 있지만, 초인의 숫자도 점점 증가하고 있어요. 게다가 마나를 각성하는 나이도 줄어들고 있죠.”

왜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이 18살부터인가.

위그드라실이 아카데미를 세울 때만 해도 18살에 마나를 각성하는 게 평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16살. 무려 2년이란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 강남 대치동에 아카데미 입시 학원들이 우후죽순 세워지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더 이상 아카데미는 ‘기초’를 다지는 곳이 아니에요. 단단히 각오하고 들어오셔야 할 거예요.”

그렇게 위그드라실의 파격 선언과 함께 시작된 학기는……

실로 엄청났다.

“룰은 간단해요. 여기 모이신 분들 전부 한 팀. 저는 혼자. 이렇게 붙어서 이기면 여러분은 저희 조예요. 대신 기절하신 분은 조용히 주무시면 돼요. 그럼, 몸의 대화를 시작해 볼까요.”

……

아카데미 1조장 박봄 조원 신청자. 47명 전원 실신.

박봄 “살살했어요.” 순진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 인성 문제 있어?

핏줄은 못 속인다. 누군가가 생각나는 건 기분 탓?

1조장 박봄이 테스트란 이름으로 동기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것이다.

이로 인해 1조는 박봄과 박헤나, 마지막으로 임현지 단 셋으로 출발하고…… 삼총사의 거침없는 행보가 시작됐다.

“여기가 출구 없는 지옥. 아빠가 만든 동아리…….”

“우리가 접수한다!”

“둘 다, 제발 좀 참아.”

동아리 ‘출구 없는 지옥’으로 돌격.

선배들을 모조리 눕히고 회장 자리를 쟁취했다.

이렇게 박봄을 앞세운 삼총사가 요란스럽게 휘젓자, 일각에서는 1학년 주제에 건방지단 소리가 나왔고, 보다 못한 선배들이 버릇을 고쳐 주러 갔지만…….

“헤에, 선배님. 너무 재미있어요. 한 판 더 붙을까요?”

“아, 아니. 이제 난 됐…….”

“그러지 말고, 한 번 더 해요? 네!”

“사, 살려…… 끼아악!”

순수악이 이런 것일까.

해맑게 웃으며 목검을 드는 박봄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제2의 재앙이란 타이틀이 붙을 정도.

다만 박봄이 박기혁과 다른 것은, 교수들과 사이가 좋다는 거였다. 교수들에게 싹싹한 것은 기본이고, 수업이나 과제 모두 성실히 임한다.

그야말로 모범생 그 자체.

“박봄 학생, 수업 태도가 아주 발라요.”

“그렇죠, 교수님? 저도 처음에는 박기혁이나 진유리를 닮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완전히 딴판이더라고요.”

“박헤나 학생도 그래요. 과제를 어찌나 잘해 오던지, 한번 보실애요? 정말 마음에 쏙 들어요.”

“뭐, 괴팍한 면이 아예 없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 사이에 잡음이 많긴 해요.”

“놔두세요. 학생들 일인데요. 우리 교수진들이야 수업만 잘 들으면 되죠. 안 그래요?”

박봄과 박헤나가 활개를 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런 성실한 모습도 없지 않았다.

여기에 위그드라실의 말마따나 실전 수업이 늘어나며 둘의 활약은 더 늘어났다.

1학년임에도 퍼플 게이트를 클리어하며 다녔는데, 그렇게 게이트를 처리하다 주목을 받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도심을 덮친 게이트! 아카데미 1학년들이 지우다!

박헤나(아카데미 재학생. 18세) “친구들이랑 쇼핑하러 왔는데, 게이트 봤다. 그래서 들어갔고 클리어했다. 끝이다.”

2레벨 게이트를 단 4시간 만에 주파했다.

앞을 막는 몬스터를 삭제시키며 일직선으로 보스에게 달려가, 보스였던 오크 히어로의 골통을 바스라트렸다.

게이트에 있던 시민이 이를 보고 오크가 불쌍해 보였다며 말했을 만큼 박봄과 박헤나는 압도적인 신위를 보여 줬다.

이렇게 박봄의 1조가 활발히 아카데미를 휘어잡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시작된 문제의 중간고사.

1학년 1학기 첫 중간고사는 모두가 알다시피 데스 매치.

박기혁이 있을 당시 중간고사에서 10개 조가 해체됐다.

아빠의 아성의 도전하는 박봄과 박헤나는 몇 개의 조를 해체시킬까.

재학생들은 엄습하는 재앙에 오들오들 떨었다.

그리고 중간고사 당일.

바짝 날이 선 박봄과 박헤나 앞을 두 사람이 막아서는데.

2조장 이스마일과.

“한번 붙어 보고 싶었어.”

부조장 올리버.

“최선을 다해 주세요.”

위그드라실이 말했던 기대주들.

마왕의 아이들이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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