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36화 (236/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17화>

“떠, 떴다!”

아카데미 입학시험.

1등 박봄!

2등 박헤나!

1등! 2등!!

최고야! 제~ 일 위라고!

“이야악!!”

누워 있던 박여름이 몸을 번쩍 튕겨 일어나더니, 다짜고짜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예압! 좋았으! 됐으! 이겼으!”

그 괴성에 같은 침대를 쓰던 박가을이 깨고.

“……잠 좀 자자, 바보야.”

옆 침대에 있던 박겨울도 덩달아 깬다.

“이상적인 수면 시간 8시간…… 1시간 모자라.”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가을이나, 24시간을 최적화해서 사용하는 겨울이에게 취침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상쾌해야 할 하루의 시작이 이 바보짓으로 방해받았다.

둘의 앙증맞은 미간에 골이 파였다.

둘은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엉덩이를 씰룩대는 박여름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와아아아! 언니! 우와아아아!! 언니!!”

“아침부터 바보짓이야. 가만히 좀 있어. 토할 것 같으니까.”

“여름, 좀 앉아. 앉아서 말이란 걸 해 봐.”

“언니 최고야!! 언니 짱이야!!”

“하아…… 겨울아, 사일런스 걸면 안 돼? 누나 올라올 것 같아.”

“여름이 저항력 높아. 마법 통하지 않아.”

육체 스펙만큼은 세쌍둥이 중 최고인 여름이.

근력, 지구력 같은 운동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마법 친화력과 저항력 또한 최상위 수준이었다.

“이 바보는 쓸데없이 튼튼하기…….”

“언니! 언니이!”

“……만 하다니까.”

“우워어!!”

“아씨! 시끄럽다고!!”

콰당-!

참다못한 가을이가 여름이를 걷어찼다. 발라당 날아가 구석에 처박히는 여름이.

하지만.

“헤헤!”

아무렇지도 않다.

여전히 해맑다.

발에 차여 바닥을 다섯 바퀴 구르고, 머리부터 구석에 처박혀 물구나무 선 듯 뒤집혀 있지만.

겨우 이 정도로는 천하무적 여름이를 막을 수 없지.

“언니이이!!”

“우욱, 토할 것 같아. 쟤 좀 어떻게 해 봐.”

“있어 봐.”

끝내 나서는 겨울이.

지금부터 인간의 탈을 쓴 야생의 짐승과 대화라는 것을 시도하겠습니다.

어.

그래.

응, 그렇군.

박여름이라는 짐승은 굉장히 난폭하지만 겨울이는 마법사다. 아버지 가라사대, 마법사란 진리를 찾는 자. 끈기 있게 말을 걸었고.

박겨울은 대화에 성공했다!

“아카데미 입학시험 순위가 나왔대.”

“봄이 언니! 헤나 언니! 역시 우리 언니들!”

“누나들이 1등하고 2등 했다고 하네.”

“다 주거쓰! 우리 언니들이 최고야! 최고라구!!”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었대. 끝이야.”

“하아~ 그러면 그렇다고 똑바로 말을 해야지.”

둘은 인정했다.

언니들 일이라면 저 바보가 흥분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세쌍둥이에게 박봄과 박헤나는 특별했으니까.

워낙에 터울이 큰 동생들이라 박봄과 박헤나는 세쌍둥이를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 기저귀를 가는 것은 예사였고, 밥을 먹이는 것도 도맡다시피 했다.

잠투정이 심했던 여름이는 언니들한테 안기면 귀신같이 잠들었고, 입이 짧아 아빠 엄마의 걱정을 한 몸에 받던 가을이는 언니들이 있어야만 숟가락에 입을 댔다.

심지어 겉으로나마 의젓하기로 유명한 겨울이조차 4살까지 봄이랑 함께 잤다.

누나랑 자면 머리가 맑아진다면서.

배 아파 낳은 진유리 입장에서는 언니와 누나만 찾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을 정도였다.

“여보, 얘들 우리 새끼 맞지?”

“이거 몇 개야?”

“두 개.”

“멀쩡하네.”

“갑자기?”

“눈 있으면 봐봐. 너랑 나 판박이야.”

“그치? 근데 왜일까. 나보다 봄이하고 헤나를 더 따르는 거 같은 이 기분은? 봐봐. 여름이, 엄마가 안고 있는데도 봄이한테 가려고 바둥대잖아. 뭔가 기분이 이상해. 이게 소외감?”

“복에 겨운 소리 하지 말고 등이나 두들겨. 옳지, 우리 겨울이. 트림 잘했네.”

“나만 섭섭해? 나만 못된 엄마인거야?”

아무튼 이러다 보니 오남매의 유대감이 남다를 수밖에.

세쌍둥이는 모두 언니, 누나 바라기였다. 그러니 이 기쁜 소식을 누구보다 축하해 줘야 한다. 우리가 언니와 누나를 사랑하는 만큼!!

가을이가 말한다.

“언니한테 갈 거지?”

겨울이가 동의하고.

“응.”

여름이는 행동한다.

“우워어어! 언니!!”

콰앙-!!

문을 부술 듯, 아니, 반쯤 부순 여름이가 계단 난간을 박차고 날 듯이 뛰쳐나간다.

세 아이의 방은 3층, 언니들 방은 2층.

고로 박여름은 계단 대신 날아서 뛰어내린 것. 한 마리의 짐승처럼 표홀한 몸짓이었다.

“하여튼 바보 멍충이.”

반면 가을이는 침착했다.

클린 마법으로 얼굴부터 머리까지 가다듬는다. 잠옷 상태는 괜찮고, 마지막으로 눈약을 챙겨 문을 나선다.

그리고 언니들 방 앞에서.

한 방울씩 똑똑, 감동의 눈물이 주르륵 흐르면 준비 완료.

최대한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언니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가장 빠른 사람은 박겨울.

“누나, 자?”

“오잉? 겨울아?”

“겨울이 벌써 깼어?”

아무리 날고뛰어도 공간을 이동하는 겨울이보다 빠를 수 없는 법. 손짓 한 번으로 누나들 곁으로 온 박겨울이 팔을 벌리고, 봄이가 안아 들었다.

“누나들 입학시험 축하해.”

“오구오구, 그랬구나. 우리 겨울이가 누나들 축하해 주러 왔구나.”

“겨울이 귀여…….”

콰아앙-!

“언니이, 최고야아!!”

“언니이~ 축하해에에~.”

“아하핫, 울 귀요미들 왔다. 아주 귀여워 죽겠다니까.”

“이리 와, 여름이 가을이. 언니들 축하해 주러 왔구나.”

꺄르륵 꺄르륵.

우애 깊은 박씨네 오남매.

오늘도 다섯 남매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다만.

“여름가을겨울! 문짝 부수지 말라했지!! 내가 못살아, 증말!!”

여기 진유리만 빼고.

*   *   *

서울의 어느 고깃집.

“저, 저기 지배인님.”

“응, 철수 씨. 왜요?”

“이거 이상한데요. 저기 룸이요. 빌지에 80인분이라고 쓰여 있어요.”

“아, 거기요…… 잘못된 거 아니에요. 80인분 맞아요.”

“네에?”

“맞다고요. 80인분.”

“철수 씨,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주방에 가 보세요.”

“아…… 아, 네.”

알바는 주방으로 뛰어가면서도 이해가 안 됐다.

남자 한 명, 여자 셋, 거기에 미취학 아동 셋이 있는 팀이 80인분을 먹는다고?

먹는다.

거뜬하다.

오히려 부족하다.

이들은 검호가의 아이들이니까.

치이익-

지글지글.

박봄과 박헤나가 우수한 성적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축하 파티를 위해 외식을 나온 박씨네 식구들.

아이들이 화장실을 간 사이, 진유리는 집게로 고기를 뒤집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이제 웃음밖에 안 나온다. 무슨 문짝을 하루가 멀다 하고 부숴?”

“하루는 아니다. 일주일은 버텼어.”

“여보야, 내가 그 이야기하니?”

“기운이 넘치나 보지.”

“어이쿠, 그래요? 기운 두 번 넘치면 집을 부수겠습니다?”

“부수면 새로 짓지. 뭘 그런 걸로 신경 써.”

“하, 여보야는 웃음이 나와?”

“그럼 울까?”

진유리는 ‘내가 못산다며’ 투덜댔지만 박기혁은 대수롭지 않았다.

“애들이 놀다 보면 문짝도 부수고 가구도 망가뜨릴 수 있는 거지, 뭘 그런 걸 신경 쓰나.”

“여보야, 보통의 애들은 그렇게 안 놀아요.”

“보통 애들이 아니잖아, 우리 둥이들은.”

박기혁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세쌍둥이를 처음 안았을 때 그 벅찬 감동, 그리고 안에 품은 기이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안 그래도 한번 말하려고 했어. 너 요즘 너무 예민해. 솔직히 둥이들 입장에서 이것도 조심하고 있다는 거, 너도 알잖아.”

“알지…….”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계속 뭐라 하면 기분이 어떻겠어.”

“알지, 안다고.”

진유리라고 모를까.

오히려 둥이들의 뛰어남은 진유리가 더 잘 안다. 이 배로 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둥이들은 학교에 가야 한다.

사람을 부수면 그때는 일이 커진다고!

“집을 부수는 거? 오케이. 부숴도 상관없어. 여보 말대로 다시 지으면 되니까. 근데! 내일 모래면 쟤들 학교 가. 애들이랑 놀면서 힘 조절 안 되면? 그때는 어쩔래?”

“으음…….”

“내가 이런 말할 줄 몰랐지만, 사회성이란 거 필요해. 인생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 나나 자기야 운 좋게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서 살았다지만, 애들은? 그럴 보장 있어?”

“에이, 벌써 그런 생각을 해.”

“이보세요, 박기혁 씨 이 엄마는요,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겠어요?”

“알았다. 알았어. 나도 한번 알아볼게. 애들 온다. 표정 풀어. 오늘 기쁜 날이잖아.”

“으이구, 나만 못된 엄마지.”

쯧, 혀를 찬 진유리가 표정을 풀고 잠시 뒤, 박봄과 박헤나를 따라 둥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우와, 맛있겠다. 그치 애들아?”

“어머니, 제가 할게요.”

“우와아아, 고기 고기!”

“맛있겠다~.”

“누나, 우리 저기 가.”

쪼로록 앉는 아이들. 박기혁이 환하게 웃으며 고기를 한 움큼 담아 줬다.

“많이들 먹어.”

“네에에!!”

오물오물, 냠냠냠.

쌍둥이들이 고기를 마구 먹었다.

얼마나 복스럽게 먹는지 불판 5개를 풀로 돌려도 부족했다.

볼에 가득 고기를 채우고 꿀꺽, 다시 고기를 찾는다.

진유리가 ‘고기만 먹지 말고, 채소도 먹어.’라며 풀떼기를 올려 두면 슬쩍 빼내다, 진유리의 미간이 찌푸려지면 찔끔해 억지로 풀떼기를 삼켰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진 박봄.

웃음은 빠르게 전염돼 박씨네 식구들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박기혁은 봄이와 헤나에게 고기를 주며 이야기를 걸었다.

“너희들 조장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1등하고 2등이면 찢어져야 하는데. 찢어질 거야?”

봄이는 배시시 웃었다.

“설마요.”

헤나는 어깨를 으쓱인다.

“이미 말 다 해 놨죠.”

진유리가 고기를 얹어 주며 이야기를 받는다.

“조장 안 하고?”

“귀찮아요. 어머니도 알잖아요. 제 성질에 조장 맡으면 어떻게 될지.”

“어머, 우리 헤나 성격이 어때서. 네 동생들에 비하면 넌 공주님이야.”

“아, 엄마아아-!!”

“우리가 왜에~.”

“쉿. 조용해, 이것들아. 엄마 언니랑 이야기하고 있잖아. 그러면 봄이 조에 들어갈 거야?”

“네, 그러려고요.”

“현지도 함께할 거예요. 히히.”

박봄과 박헤나, 그리고 임현지.

용호 재능 교육관 때부터 함께한 삼총사는 기어코 아카데미에서까지 서로의 등을 맡기게 됐다.

박기혁이 다시 묻는다.

“현지는 어떻게 됐어? 시험은 잘 봤대?”

“맞아. 엄마도 물어보려고 했어. 현지 실력이면 충분히 10위 안에 들 건데, 이상하게 보이지 않더라?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박기혁도 유리 말마따나 임현지가 못해도 10등 안은 들 줄 알았다.

그가 딸을 가르치는데 딸의 친구를 정 없이 놔둘까. 당연히 임현지도 박기혁이 개인 과외를 해 줬다. 게다가 여기 진유리도 참여해 마법을 손봐 주기도 했다.

말만 안 했지 제자와 다를 바 없는 수준.

실제로 임현지는 박기혁과 진유리를 스승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굴해, 발전시켜,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개화하게끔 도움을 줬으니까.

봄이는 현지를 생각하니 뭔가 미안한 건지 머리를 긁적였고, 그래서 질문에 답하는 쪽은 헤나였다.

“현지는 전략적으로 선택을 한다고 했어요. 자기도 상위권이면 흐름상 조장을 해야 한다고, 그러면 저희랑 같은 조를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아, 그랬어?”

봄이가 쓰게 웃는다.

“네…… 헤나랑 저랑 성적이 안 좋으면 사람들이 납득 못 한다고, 자기가 조절을 한다고 했어요.”

현지가 말하길, 자기는 조장을 할 그릇이 못 된다며, 부담 가지지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 보면 정당한 평가를 못 받는 거잖나. 보는 사람에 따라선 안 좋게 볼 수도 있는 거고.

그러나 박기혁과 진유리는 생각이 달랐다.

“역시 현지가 똑똑해.”

“내가 말했잖아. 걔가 감이 좋다고.”

재능마다 특징이 있다.

홀로 빛나는 재능이 있다면, 함께해야 더 빛이 나는 재능이 있다. 임현지는 함께해야 빛나는 재능이다. 그것도 자신보다 동료가 강자일수록 더 빛이 나는 부류 말이다.

그럼 이쪽은 신경 쓸 필요 없고.

박기혁은 나머지 애들에 대해 묻는다.

“그럼, 이스마일하고 올리버는? 걔들은 어떻게 할 거래?”

“어머, 맞네. 이스마일은 4등이고, 올리버는 3등이랬나. 걔들은 어쩌려나. 봄이랑 같은 조에 가려나? 근데 그러면 밸런스가 너무 안 맞는걸.”

1등부터 4등까지 전부 한 조에 모인다? 이건 애초에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뭐, 하겠다면 못 할 건 없지만 천수만 다음으로 새롭게 학장의 자리에 오른 ‘그녀’가 이를 가만히 볼 리 없다고 생각됐다.

박헤나와 박봄도 이를 아는지 서로를 보다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스마일하고 올리버도 저희 조에 오고 싶어 하는데, 안 될 것 같아요.”

“요정 이모 성격에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잖아요.”

그렇다.

천수만 다음으로 학장이 된 그녀의 정체는.

요정 이모, 위그드라실.

수호령 자리를 박차고 사라졌던 그녀가 다시 아카데미에 복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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