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35화 (235/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16화>

안녕, 내 이름은 버찌. 이 몸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고양이야. 왜냐하면 아빠의 딸이거든! 대단하지? 나도 알아, 나 대단한 거. 훗.

그런데 나처럼 대단하고 똑똑한 고양이가 힘들다면 믿겨져?

에휴, 정말이야. 요즘 나 너무 힘들어.

뭐? 관심 없다고? 너 나가. 싫어.

왜 힘드냐고? 그래, 이거지. 넌 착하구나. 고마워.

그래서 내가 왜 힘드냐면……

“버찌이이이이!! 너 안 나오면 내가 필살기 쓴다!!”

“어디 있을까~ 여기 있나아~ 버찌 언니~?”

“……버찌…….”

……쟤들 때문이야.

에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내 동생들. 이 몸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난 악동들이지. 악동도 이런 악동이 없다니까.

소개해 달라고? 빌어 봐, 인간아. 힛. 장난이야. 해 줄게.

여름이부터 해 줄게.

이름 박여름, 나이 8세, 성별 여아.

간발의 차이로 세쌍둥이의 맏이가 된 아이야. 여름처럼 뜨거운 아이지. 그래서 제일 방방 뛰는 애 찾으면 돼. 저기 봐봐, 제일 먼저 뛰어오지?

“버찌야! 버찌야! 박가을, 버찌 못 찾았어?! 박겨울! 너 뭐해! 빨리 찾으라고!!”

여름이를 표현하자면 ‘아빠의 별난 점과 엄마의 별난 점을 합쳐 놓은 아이’야.

혹시나 오해할까 싶어 말하는데, 이건 내 생각이 아니야. 할머니가 실제로 하셨던 말이거든.

여름이는 이 사실을 무지 자랑스러워해. 그래서 항상 양 갈래 머리만 하는데, 저게 각자 아빠와 엄마를 상징하는 거야.

조금 다르지?

아침마다 아빠하고 엄마한테 한 쪽씩 땋아 달라고 하는 거야.

아빠가 해 준 건 호랑이 꼬리, 엄마가 해 준 건 용 꼬리.

저게 꼬리냐, 라고 물으면…… 나도 몰라. 나도 쟤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거든.

다음으로는 박가을.

여름이랑 똑 닮은 공주님이야.

키부터 외모, 체형, 전부 똑같아서 헷갈리기 쉬운데, 노하우가 있어.

눈초리!

여름이는 눈초리가 올라갔다면 가을이는 내려가 있어. 봄이 언니랑 많이 닮았지.

“언니가 어디 있을까~ 꼬순내가 나는 거 보니…… 여기 있지! 아니네~.”

가을이는 이렇게 보면 돼.

‘애교 많은 진유리. 사회성 갖춘 박기혁.’

역시 할머니가 해 주셨던 말이야.

사고는 사고대로 치는데 하는 짓을 보면 도저히 미워할 수 없다던가. 확실히 가을이가 ‘가을이가~.’ 하면서 애교를 부리면 우리 집 전부가 넘어가.

그나마 나나 엄마가 침착하지. 아빠도 쟤 앞에는 바닥을 기어.

애가 약았다니까 정말.

마지막으로 문제의 막내, 박겨울 왕자님.

겨울이는 앞서 말한 여름이와 가을이랑은 완전히 달라. 조용하고 말수도 적지. 해도 조곤조곤 조용하게 말해.

그래서 겨울이를 처음 본 아줌마들은 ‘애가 왜 이렇게 의젓해요?’라고 부러워하는데……

절대 아니야.

얘야말로 진짜 요주의 인물이야.

겨울이는 말이야……

“……누나, 뭐 해?”

“키야아-?! (겨울이-?!).”

“쉿. 애들 와.”

“냐으- (으으-).”

……아빠야. 아빠 2호!

방금 ‘블링크’로 내 뒤에 온 거 봤지?

얘는 용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야. 그냥 마법. 마법 그 자체라고!

마왕인 아빠랑 똑같지.

같은 건 마법뿐만이 아니야. 성격도 완전 판박이야.

지고는 못 살아.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려 줘야 해. 특히 마법에 관해서는 양보란 게 없어. 모르는 게 있으면 잠도 못 자고, 이해가 안 되면 될 때까지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와.

며칠 전에도 외할아버지한테 마법 체스 졌다면서 울며 밤새워 공부하더라.

아빠는 그런 겨울이를 보면서 머리를 붙잡았어.

‘영감탱이가 말한 게 이런 의미구나.’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여기까지가 우리 집 세 쌍둥이었어.

어때, 듣기만 해도 정신없지? 함께해 봐. 1시간만 같이 있어도 기가 쪽쪽 빨린다니까.

그런데 난 얘들이랑 24시간, 365일 붙어 다녀. 이러니 힘이 들지 않겠어? 나처럼 똑똑한 고양이를 이런 악동들에게 붙여 놓다니. 삶이 너무 피곤해.

아무튼 내 이야기 들어 줘서 고마워. 이렇게라도 말하니까 후련하네.

이제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

조심히 들어가고, 다음에 봐. 안녕.

……

“시간 빠르다. 애들이 벌써 아카데미에 들어가다니. 우리 애들 시험 잘 보겠지?”

“말이라고 하냐? 다 씹어 먹겠지. 문 열어. 손 없다.”

덜컹.

“얘들아 엄마 왔ㄷ……!!”

“……!!”

“이, 이거 뭐야! 집안 꼴이 왜 이래! 누가 식탁 부숴 놨어! 커튼은 왜 찢어져 있고.”

“……음, 숨바꼭질했나 보네.”

“숨바꼭질? 수움바악꼬옥지일?! 이것들이 진짜!”

“유리야, 진정하고.”

“당신은 빠져. 여름가을겨울! 나와!! 당장-!!”

*   *   *

마왕 박기혁과 마룡 진유리.

두 절대자의 결혼이 있은 지도 8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 8년 동안 격동이라는 표현조차 모자랄 만큼 엄청난 변화들이 있었다.

일단 세계 정세부터 보자면…….

중국이 쪼개졌다.

비뚤어진 신념으로 일으켰던 침략 전쟁이 절망적인 패배로 결말나고, 자연히 침략당한 국가들은 중국에 막대한 배상금을 청구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갚을 방법이 없던 중국은 결국 디폴트 선언, 사실상 대륙에 사망 선고가 떨어진다.

결국 중국이 내놓은 수 있는 답은 몇 개 없었다.

中 시민들 거리로 나오다.

살 사람은 살아야겠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천명하다.’

중국 쓰촨성 자치 정부 선언. “공산당과 무림맹은 전범!” 선을 긋다.

중국은 도시나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된 자치 정부를 꾸리게 된다. 연방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화제도 아닌 요상한 형태의 체계.

이렇게 중국은 더 이상 하나의 대륙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중국에게 침략받은 대만이나 인도 등의 국가들은 아직도 전쟁의 상처에 고통받고 있는 중.

아프리카 연합을 휘몰아치던 대이슬람 내전이 사그라들기는커녕 더욱 격화됐으며, 일단의 사고가 벌어졌던 유럽의 정세 또한 차갑게 얼어붙었다.

다음은 ‘파이브 시스터즈’의 해체.

에이전트계의 다섯 기둥이었던 이들 중, 두 곳이 자취를 감췄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는 붕괴된 것이고, 하나는 본래의 목적을 찾아 에이전트라는 가면을 벗어던졌다는 게 맞았다.

붕괴된 곳은 유럽을 대표하던 ‘로열 쉬벌리’.

영국에 거점을 둔 로열 쉬벌리는 복수자가 일으킨 ‘치욕의 날’의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영국 왕실. ‘로열 쉬벌리’에게 고통 분담을 명령하다.

“시민들은 테러의 상처에 흐느끼는데, 저들은 장사를 하려 한다.” 영국 언론의 맹비난.

왕실의 외면, 시민 감정의 악화 등 여러 요인으로 로열 쉬벌리는 해체해 왕실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한편, 가면을 벗어던진 곳은 아프리카 연합의 ‘호루스의 눈’.

이집트 왕조가 직접 세운 호루스의 눈은 다시 권력을 잡았다.

격화되는 이슬람 내전에서 이 나라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파라오 공식 기자 회견 “왕으로 돌아온 게 아니다. 수호자로 돌아온 것이다.”

풍전등화의 아프리카 연합, ‘호루스의 눈’이 대안책이 되나?

이런 이유로 두 에이전트가 사라졌고, 파이브 시스터즈라는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리고 현재는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된다.

마왕과 마룡의 결혼을 기점으로 검호와 진룡이 결합될 것이고…….

성갑 기마대 전원 복귀. ‘광휘의 선봉’ 유해련도 복귀.

유해련 전무 “내가 온 이상 옵티멈은 전처럼 말랑하지 않다.”

<독점> 진룡가의 사람들이 옵티멈을 찾는 이유?

힘을 합친 그들은 세계 초인계를 뒤흔들 것이다.

김연희 대표 “이상 게이트 발생 현상에 적극적 대응하겠다.”

‘옵티멈’ 해외 지사 확장 및 적극적인 해외 진출 선언!

옵티멈의 대약진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세계정세의 혼란과 에이전트 업계의 변화, 이것만으로도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지만.

아직 하나가 더 남았다.

앞서 두 가지는 장난처럼 느껴질 사건.

따지고 보면 세계의 격동을 일으킨 원흉 같은 사건.

수호령 에우리아 사라지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수호령 위그드라실 “오늘부로 저 위그드라실은 수호령의 자리를 내려놓습니다.”

수호령이 족쇄를 벗어던졌다.

*   *   *

박봄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늘어뜨린 백색의 대검 ‘백귀’가 바닥을 가른다. 스르르 갈라지는 모래…… 이곳은 사막이었다.

“입학시험에 사막이라니.”

운도 없어라.

박봄이 쓰게 웃었다.

위그드라실이 있었을 때의 아카데미 입학시험은 그녀의 게이트인 ‘지혜의 숲’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위그드라실이 수호령의 자리를 내려놓는 순간, 지혜의 숲은 사라졌다.

위그드라실이 더 이상 불사가 아니란 의미인 것이다.

박봄은 아빠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영생의 고리를 끊어야, 신의 의무도 끊긴다.”

아빠는 위그드라실이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며 박수를 쳐 줬다. 자유 없는 발전은 없다면서 말이다.

아무튼 지혜의 숲이 사라진 덕분에, 아카데미 입학시험은 해마다 다른 게이트에서 진행된다.

당연히 환경이 다른 만큼 방식도 달라졌다.

어쩔 때는 몬스터 사냥이고, 어쩔 때는 목표 지역까지 도달, 때로는 최후의 한 명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등이 있다.

그리고 올해는 이 세 가지가 짬뽕됐다.

새로운 학장의 의지라나?

“하여튼 ‘요정 이모’, 못 말린다니…….”

순간, 말을 멈췄다.

박봄의 감각에 걸린 인기척.

좌측 600미터, 5명. 동맹을 맺었는지 함께 ‘모래족 트롤’을 사냥하고 있다.

“운 없다는 말 취소.”

오브를 들어 보니 5라는 숫자가 보인다. 이 게이트에서 남은 수험생의 인원이 5명이라는 뜻.

고로 저 무리만 잡으면 시험이 종료된다는 것이다.

박봄이 혀를 입술을 쓸었다. 누가 박기혁 딸 아니랄까 봐 아빠의 버릇이 똑같이 나왔다.

가자.

발을 박차는 순간.

천사의 날개가 펄럭이고, 무서운 속도로 거리를 좁힌다.

아니, 이건 거리를 ‘접는’ 수준.

숨을 고르기도 부족한 시간에 거리를 주파, 박봄은 모래족 트롤을 상대 중인 5명의 수험생 앞에 등장했다.

“뭐?!”

“저건!”

일단 한 명.

가장 근처에 있던 남자에게 숄더 차지를 날렸다.

끼이익- 콰아앙!!

중장비가 충돌하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렸다.

부딪힌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기절해,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막아!”

“트롤은 버려! 쟤부터!”

박봄은 저들의 대응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그랬다.

힘의 격차를 깨닫는 것도 실력이라고. 박봄이 저 입장이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를 선택했을 거다.

박봄의 발이 달려드는 시험생에게 날아들었다.

일격에 실드가 깨졌다.

비산하는 실드 파편을 보며 넋을 놓는 수험생. 이제껏 느껴 보지 못한 힘의 격차에 몸이 얼었고, 이게 패착이었다.

박봄의 손바닥이 시험생의 얼굴을 잡아.

“잘 자요.”

쿠우웅!

모래바닥에 심어 버렸다.

규격 외의 근력, 완벽에 가까운 기술, 풍부한 실전 경험.

어렸을 때부터 박기혁에게 배운 박봄은 이미 완성된 초인이다. 고작 수험생 몇몇이 감당하기에는 무리라는 말이었다.

몇 합도 안 되어 모래 바닥에 쓰러지는 나머지 세 사람.

이제 남은 건.

“트롤이네.”

자신을 무시했다는 걸 아는 것일까. ‘모래족 트롤’이 제 가슴을 두드리며 한층 더 광분했다.

“으~ 입 냄새.”

손대기 싫어. 혈마술 사용할까?

고민하던 박봄이 고개를 젓는다.

애들이랑 약속했다. 입학시험에서 ‘혈마술’은 사용하지 않기로. 대신 헤나는 ‘충술’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고, 이스마일과 올리버도 각자 장기 하나를 봉인했다.

“뭐, 원거리가 혈마술만 있는 건 아니니까.”

새하얀 마법진이 떠오른다.

원과 별, 백색의 육망성.

박봄의 고유 마법 ‘얼라이브(탄생:誕生)’다.

박봄은 8년간의 공부로 얼라이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깨달았다. 아빠의 아포칼립스처럼 활용하기에는 얼라이브의 속성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니 ‘탄생’이라는 속성에 맞춘다.

얼라이브가 박봄의 몸 곳곳에 둘러졌다.

얼라이브

육체 재구성

거인체

강화가 아니다.

신체의 재구성.

가능성을 확장해, 내가 가진 한계를 초월한다.

대검 백귀가 무자비하게 떨어졌다.

기술 따위 없다. 무식할 정도로 그냥 내려쳤다. 거인의 힘을 가진 난 아무도 못 막는다.

죽어! 죽어!

내적 외침을 지르며 내려치길 얼마 뒤.

육편으로 변한 모래족 트롤의 시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시험 끝.”

오브가 빛을 발하며 박봄이 광채와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아카데미 입학시험>

1등 박봄

2등 박헤나

3등 올리버

4등 이스마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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