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33화 (233/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14화>

주말 아침.

맑은 하늘에 따사로운 햇살.

청명한 공기가 코끝을 스치고, 탁 트인 시야는 마음마저 깨끗하게 해 주며,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꽃놀이를 즐기고 싶은 오늘은.

박기혁과 진유리가 평생을 약속하는 날이다.

- 오늘은 마왕 박기혁과 마룡 진유리의 결혼식이 치러지는 날입니다. 여기 결혼식장은…….

- 결혼식장으로 가는 도로는 보시는 바 같이 차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꽃놀이 가는 차량이 합류하며 현재 도로는 극심한 정체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차량 운행에 각별히 주의를…….

- 김연희 대표는 결혼식 축의금 일체를 신랑 신부 이름으로 기부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한편 유출된 하객 명단에 대해서는 …….

마왕과 마룡.

개인으로도 절대적인 무위를 지닌 두 사람이지만 둘의 가문은 더 엄청나다.

검호와 진룡.

이들은 검과 마법으로 최고의 위치에 오른 가문이다.

세계 혈족 랭킹 10위권 내를 점령한 초절정 명문가.

그러니 궁금하지 않겠나. 이런 어마어마한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청첩장을 받았던 이들이 주목받았던 것도 관심의 발로였다. 하객 명단이 유출된 것은 결국 이런 관심이 지나쳐 벌어진 해프닝이었고.

그렇게 모두의 기대를 모으는 가운데.

세계 각지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한국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입국한 건 사우디 국왕 무함마드.

그는 자신의 전용기에 결혼을 축하하는 문구를 랩핑해 눈길을 자아냈다.

친우의 결혼을 축복하며, 우리의 우정이 영원하길

다음으로 도착한 이는 존 C. 타일러.

미국을 대표하는 에이전트 스타 히어로의 주인도 꽤 유머러스한 멘트를 남긴다.

“지옥에 온 걸 축하한다, 캡틴 타이거.”

이밖에도 미 동부를 대표하는 명문인 워싱턴가의 가주와 그의 딸 로자리아 빌랜드 워싱턴.

마찬가지로 미 서부의 특급 히어로 크리스토퍼 윌리엄.

독일의 긍지라는 프로이센이자 박수혁의 예비 신부 니나 폰 슈코르체니 등등.

여기에 각국의 대사들까지 속속 도착하자, 그 면면만으로 세계 정상 회담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이러니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마왕과 마룡의 결혼식에 세계 주요 인사들이 몰린다고?

이건 못 참지!

TV는 둘의 얼굴로 도배됐으며 실검 차트는 마왕과 마룡 등, 둘과 관련된 키워드들이 점령했다.

마나 허무증을 극복한 ‘마왕’과 진룡의 천형을 딛고 일어선 ‘마룡’.

고난을 극복한 남녀, 사랑으로 묶이다.

아카데미 천수만 학장 “성격도 실력도 상식 초월.” 그래서 다시 가르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절레절레.

유명 역술인 “내가 본 최고의 궁합. 둘은 이미 만날 운명.”

└ 이거 TV 고장 났나? 왜 같은 얼굴만 나오지.

└ ㅋㅋ 무슨 결혼식이 국가 행사인 줄 ㅋㅋㅋ

└ 여기가 마왕의 나라인가요?ww

└ 봄이 아빠 턱시도 핏 봐라. 멋져.

└ 외쳐. “착해. 다정해. 최고야.”

└ 봄헤나 드레스샷 본 사람? 귀여움 치사량.

└ 하, 왜 경고문 안 써놨어요. 내 심장 부서질 뻔ㅠ

└ 근데 관상쟁이는 좀 그만 나오면 안 되냐. 지겹다 이제.

대중들의 반응도 긍정적.

옵티멈이야 원래부터 이미지가 좋았고, 진룡가도 몇 년 전부터 기존의 신비 콘셉트를 벗어던지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중.

박봄도 빠질 수 없다.

봄헤나 TV에서 무지성 아빠 칭찬을 얼마나 했던가.

이 모든 게 시너지 효과를 이루며 대중들은 둘의 결혼식을 국가적 축제처럼 여기게 된다.

하지만.

한국이 이렇게 즐기고 있는 사이, 세계에서 조금 다른 의미로 박기혁과 진유리은 화제가 되는데.

업계 전문가들 ‘힘의 지각 변동 예고.’

BBS 특별 편성. 검호와 진룡의 결합이 차후 세계 초인계에 미칠 영향과 미국이 취해야 할 스탠스.

근 10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3대 빌런 셀루티스가 우상을 앞새워 국가 전복을 꾀한 ‘일본 사태’, 복수자라는 정체불명의 빌런이 영국의 절반을 공포로 빠트린 ‘치욕의 날’.

그 밖에도 삼합회 몰살이나, 대(大)이슬람 내전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더해지며 공포가 급속도로 팽창하던 그때.

중국의 침략 전쟁이 터지며 팽창했던 공포는 폭발한다.

“연쇄적으로 벌어진 사건들로 세계 초인계가 무너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고착화돼 있던 초인계가 바뀌길 바랐습니다만, 이런 걸 바란 건 아닙니다. 너무 빨라요.”

“세계 초인 기구는 신용을 잃었습니다. 셀루티스가 일본을 노릴 때 그들은 뭘 했죠? 중국이 인접국을 침략할 때 그들은 뭘 했냐고요. 우리는 더 이상 저들이 초인을 억제하리라 믿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의 음지에서는 지금도 빌런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이 혼란 속에서 한몫을 챙기고 싶어 하죠.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 빼고 다 이 꼴이란 거죠. 이걸 다행이라고 말하니 씁쓸하군요.”

혼란 속에서도 굳건한 한국.

아니, 오히려 저력을 보여 주며 비상하고 있다.

세계의 평가가 한층 더 높아진 건 당연한 수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패자로

마왕 박기혁과 마룡 진유리의 결혼은.

이 비상의 축포였다.

*   *   *

결혼식 30분 전.

꽉 막힌 도로 위에서 한 남자가 시계를 본다.

“미치겠네…… 안 빠지려나.”

초조함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떠는 이 남자는 권용준.

박기혁이 행복 보육원에서 만난 동생이었다.

권용준에게 박기혁이란 형님이고, 스승이며, 정신적 지주. 이런 박기혁이 결혼을 하는데 권용준이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오히려 청첩장을 못 받았으면 서운했겠지.

참석해야 한다.

설령 하늘이 두 쪽 나도 두 쪽 난 하늘을 이어 붙여서 참석해야 한다.

이런 일념으로 오늘만을 기다렸건만…….

현실은 도로 한가운데.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게이트에 가지 않을걸.”

갑자기 발생한 게이트가 문제였다.

세계적으로 게이트 발생률이 점점 증가하는 상황. 국내도 요즘 저레벨 게이트의 발생으로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권용준도 이 케이스였다.

옵티멈의 일원으로서 한창 순찰 중이던 권용준. 그러다 코앞에서 게이트가 발생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2레벨 퍼플 게이트.

저레벨이라 권용준의 안위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위치가 문제였다. 주거지 한복판, 주택 담벼락에 반쯤 걸쳐져 있는 채로 열린 것이다.

자칫 잘못해 민간인이 여기에 휘말린다면?

참혹한 일이 벌어진다. 빠르게 판단을 마친 권용준은 동료들을 불러 공략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때가 이틀 전이었다.

잠도 자지 않고 몬스터를 처리했거늘, 도저히 이 이상은 시간을 줄이지 못했던 것이다.

제길! 제길!

핸들을 때려 댔다.

“중간에 퍼즐이 나왔잖아! 이건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는 도중 벌써 5분이 지나고, 이제 25분밖에 남지 않았다. 반면 차량은 50미터도 가지 못했고, 남은 거리는…… 차마 끔찍해 보지 못하겠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해…….

뚝.

땀방울이 떨어졌다.

흠칫 놀라 밑을 보니, 이미 흥건하다. 권용준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려 댄 것이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대로는 진짜 큰일 난다.

권용준은 자신의 오판을 인정해야 했다.

지금은 고민이고 판단이고 할 시간이 아니다. 몸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이 땀이 그 증거였다.

넥타이를 거칠게 벗은 권용준.

옷을 벗었다. 정장에서 옵티멈 전투 슈트로.

환복을 마친 그는.

발을 뻗었다.

쾅-!

차량의 문을 부술 것처럼 박찼다. 실제로 반쯤 너덜거리는 문짝. 보닛이 살짝 들렸다.

말 모양이 그려진 붉은 스포츠카가 ‘스’와 ‘포츠카’로 나눠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권용준은 생각이란 것을 잃은 광전사.

그딴 게 눈에 보일 리 없다.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차량을 담았다.

그리고 달린다.

차량으로 꽉 막힌 도로를 질주했다.

‘역시 이게 맞았어.’

권용준의 장기가 뭔가.

발이다.

속도는 기본, 경쾌한 기동과 우월한 몸놀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움직이는 회피형 탱커.

권용준은 장기를 십분 발휘했다.

보스를 바보로 만들던 발을 놀려 차량 사이를 요리조리 헤집었다.

좋다. 충분하다.

시계를 보니 이 스피드면 식장까지 무려 5분이나 남겨 두고 도착할 수 있다.

기혁 형님과 인사하고, 유리 선배님과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시간.

좋다!

마나를 일으킨다.

오늘 난 한계를 뛰어넘는다.

달려라, 발아.

“으아아악!”

아스팔트 도로가 살짝 패일 정도로 발에 마나를 집중했다.

그리고 이런 권용준의 대승적 결단은 생각보다 많은 감명을 남겼는데.

“……천잰데?”

“내가 왜 저 생각을 못 했지?”

“야, 옷 없어? 남는 옷!”

자리가 자리인 만큼, 여기 오는 이들 대부분이 상당한 실력의 초인들.

질 수 없지!

모두가 문을 박차고 나와,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로 한복판에는 뜻밖의 마라톤이 개최되고 있었다.

*   *   *

“쟤들 뭐 하냐?”

나는 황당한 얼굴로 봄이가 내민 폰을 보고 있다.

차량이 버젓이 있는데도 맨몸으로 도로를 질주하는 인파들.

차량 뚜껑을 밟고 뛰는 건 기본에, 몇몇은 수인으로 변신까지 했다.

개중에는 하늘을 나는 놈도 있었는데, 밑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비겁하다며 손가락질했다.

……대체 뭐가 비겁한데?

아니, 이게 뭔 일인지가 먼저인가?

이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우리 착한 딸 봄이는 친절히 설명해 준다.

“여기로 오는 길이래!”

“여기?”

“응! 아빠 결혼식장 오는 길인데, 차가 막혀서 사람들이 뛰고 있다고 아나운서 언니가 말했어.”

“아하…….”

잘하는 짓이다.

그러게 일찍 다니지.

혀를 한 번 차며 봄이를 안았다.

타이트한 턱시도가 살짝 불편했지만 새하얀 공주님 드레스를 입은 봄이는 참을 수 없지.

밖으로 나가자 탁 트인 시야가 들어온다.

“경치 좋지?

“그러게. 봄이가 그렇게 자랑하더니, 그럴 만하다. 진짜 좋다.”

푸른 초목 위에 드넓은 창공이 비친다.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경치.

용호 재능 교육관이라고 했나. 여기, 경치 맛집이었다.

그렇다.

나와 유리의 결혼식장으로 낙점된 곳은 우리 딸내미들의 학교인 용호 재능 교육관이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 아빠 엄마 결혼식을 울 학교에서 열 줄은.”

“그래서 싫어?”

“아니, 무지 좋아! 하늘만큼 땅만큼!”

손을 번쩍 뻗으며 방실방실 웃는 봄이.

그렇게 좋을까…… 과정을 아는 나는 차마 웃지 못했다.

결혼식의 전권은 두 가문의 안주인인 장모님과 어머님에게 있었다.

당연히 결혼식장 선정도 두 분의 몫.

어머니는 현대적인 분위기의 결혼식장을 원했고, 장모님은 전통 혼례가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식장을 원했다.

전통과 현대.

서로 양보가 필요했다.

문제는 두 분의 타협이 실로 격렬했다는 것.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 그때의 두 분은 용맹한 전사였다.

“하, 이게.”

“어쩌라고.”

“말 다했냐?”

“다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잊자. 오늘은 기쁜 날이다. 끔찍한 기억은 머리에서 지워 냈다.

어쨌든 최후에 와서야 기적적으로 협상이 이뤄졌고, 두 가문이 처음으로 합작해 설립한 이 용호 재능 교육관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다.

“어찌 됐든 나쁘지 않네.”

“뭐가?”

“여기, 봄이 학교 좋다고.”

“응, 좋아.”

그때 저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아버지!!”

“어? 헤나다.”

“어? 아버지.”

우다다, 돌담을 밟고 올라오는 아이.

나의 보물 헤나다.

쪽빛 드레스를 입은 헤나…… 물망초 요정이다. 인간일 수 없어.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예쁜걸.

내게 달려온 헤나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나는 또 참지 못했다.

안아 들자.

턱시도고 뭐고 안아 들어야겠다.

“웃차. 헤나는 왼쪽입니다.”

“으아아.”

“난 오른쪽이야?”

“봄이는 오른쪽.”

보통은 위치로 서열을 나누지만, 걱정 마라. 아빠는 양손잡이니까.

좌 헤나, 우 봄.

드디어 황금 밸런스가 맞춰졌다.

완벽해.

이들과 따로 자리를 마련하려던 내 계획은 성공했다. 이제 마음 깊이 감춰 뒀던 이야기를 꺼낼 차례.

“얘들아.”

“응?”

“네?”

“섭섭하지 않아?”

헤나는 ‘섭섭?’ 하며 갸우뚱거린다.

봄이가 ‘아…….’ 하며 뭔가 아는 것 같다. 이런 거 보면 확실히 봄이가 생각이 깊다.

“아빠 결혼하잖아. 동생들도 생기고…….”

솔직히 걱정이었다.

혹시 소외된다거나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엄마가 생기는 거고, 동생들이 생기는 거 아닌가. 물론 이제껏 잘 지내고, 좋아하고, 서로 아무 문제도 없지만.

막상 결혼식장에 선 아빠와 엄마를 보면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물론 괜한 걱정이었다.

우리 의젓한 딸들은 웃으며.

“아닌데?”

“너무 좋아요!”

엄마가 생긴 것도 좋다.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가 생긴 것도, 가족들이 많아진 것도 모두 행복하지만.

그중 최고는…….

“우리가 함께인 게 좋아요.”

“가족이잖아요.”

그래, 너희가 나보다 낫다.

어쩌면 진짜 걱정인 건 나였을 수도 있다. 혹시나 저 미소를 잃을까 싶어서.

“아빠가 약속할게. 아빠한테 너희들은 전부 소중해.”

“나도 아빠가 소중해.”

“저도요.”

행복하게 해 줄게.

너희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니.

두 아이가 내 머리를 꼭 끌어안고, 나는 손을 들어 애들을 다시금 안아 들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있던 때.

헤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버지, 이럴 때가 아니에요. 할머니 화나셨다고요.”

이렇게요.

헤나가 양손가락으로 뿔을 만들며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화난 얼굴을 흉내 내 보려는 것 같은데, 틀렸다 헤나야. 넌 못생겨지는 건 절대 못 하겠어.

그래도 어머니가 화나셨다니.

“가 볼까.”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심연을 품은 망토가 우리 세 사람을 덮고, 모습을 드러낸 곳은 식장 접수대 뒤.

“쉿. 조용.”

“쉿.”

“쉿!”

셋이 손가락을 올리고 몰래 나간…….

“……박기혁!!”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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