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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232화 (232/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13화>

결혼식이라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3일 앞으로 둔 박기혁.

보통의 예비 신랑이라면 복잡 미묘한 감정에 휩쓸려야겠지만, 여기는 뭐 없다. 평소처럼 일어나 애들을 깨우고, 평소처럼 식구들과 함께 아침을 먹는다.

애들 학교에 데려다 주고, 뽀뽀하고, 학교로 보내고, 어리광 피우는 진유리 둥가둥가 좀 해 주다가,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조금 허전하다 싶을 때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전화가 울린다.

십중팔구 검호 박씨들이다.

박건, 박수혁, 박민지.

심심하지? 놀자!

마귀를 챙겨서 저택 뒤에 숨겨진 대련용 게이트로 향하면 어김없이 검을 든 가족들을 볼 수 있다.

신나는 대련 시간.

이 모든 게 평범한 박기혁의 일상이었다.

저 남자, 진서준이 오기 전까지는.

“우와아-!”

구름 꼭대기에서 추락하던 진서준이 환하게 웃는다.

흔히들 배우가 웃으면 빛이 난다는데, 진서준이 꼭 그랬다. 그는 박기혁이 본 남자 중 가장 잘생긴 남자였고, 게이트의 태양보다도 빛났다.

그때 마찬가지로 구름을 뚫고 나오는 남자.

황금빛 마나를 줄기줄기 내뿜는 남자는 박수혁, 수호자 산군이었다.

“사돈! 이게 끝입니까!”

“설마요. 이제 시작인데!”

후우!

진서준이 숨을 뱉어 내자 불꽃이 쏟아져 나왔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홍염.

불꽃은 생명을 가진 것처럼 진서준을 휘감았고…….

발화.

변화.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추락하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다시 날아오르는 진서준.

붉은 용의 머리 위에 서 뒷짐을 진 채 박수혁을 올려다봤다.

박수혁도 지지 않는다.

군왕을 깨운다.

머리칼이 금빛으로 변하고, 황금빛 금안과 함께 구름을 뚫고 황금의 검 수백 자루가 검형을 드러냈다.

“제대로 즐겨 봅시다.”

“동감입니다.”

아래에서는 진서준의 ‘용염’이.

위에서는 박수혁의 ‘군왕’이.

불꽃과 황금이 서로를 탐하고.

하늘이 부서졌다.

콰아아아앙-!!

붉은 황금일까, 아니면 황금빛 불꽃일까.

뭐래도 좋았다.

누가 뭐래도 저건, 한 폭의 그림이었다.

***

그림이지, 그림…….

난 저 아름다운 그림에 이런 이름을 지어 주고 싶다.

언제쯤 끝나나요?

“저 바보가 진짜! 쟤 왜 저래! 언제 끝나는 거야!!”

“글쎄.”

“내가 미쳤지, 괜히 집으로 불러서…….”

“그렇게 따지면 우리 형이 문제가 아닐까. 먼저 대련하자고 한 건 수혁 형인데.”

“내가 아주버님한테 뭐라 할 순 없잖아! 여보, 이러기야? 나 곤란하게 할래?!”

“릴랙스. 흥분하지 마.”

“후우, 후우. 내가 다시 저 바보를 부르면 미친X이다.”

사건의 시작은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평범한 일상을 영유하던 우리 부부.

애들을 보낸 우리는 연구실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었다.

내가 요즘 관심을 가진 ‘혈족’을 연구했다면, 진유리는 태교에 좋다는 노래를 들으며 한창 요가 동작을 하던 중이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사건의 신호탄이었다.

- 유리야, 오빠 왔다. 휴가 나왔지. 너희 결혼식 있잖아. 오빠가 동생 결혼식에 가야지. 어디야? 밥 먹자.”

돌이켜 보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이때 우리가 집으로 모시는 대신 단골 고깃집으로 갔다면, 그래서 수혁 형과 서준 형님이 마주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사돈. 진서준입니다.”

“사돈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기혁이의 큰형, 박수혁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지만 굉장히…… 미남이시네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근데 사돈도 굉장히 잘생기셨는데요. 산군이 배우인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진룡의 피를 이어받은 자,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다는 말이 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뭐 이딴 황당한 말이 있냐면서 유리를 타박했는데, 이유를 듣자 바로 납득됐다.

진룡의 피가 섞이면 전부 아름답다.

무조건!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말이다.

그래서 타고난 외모만으로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거다.

이건 비밀인데, 실제로 내로라하는 배우 중 몇몇은 옅게나마 진룡의 피가 흐르고 있단다.

진서준은 이 진룡가에서도 비정상적으로 아름다운 남자다.

나조차도 첫 만남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

인간이 이렇게 생길 수 있나? 엘프도 저렇게는 안 생겼다. 저 정도면 외모가 재능이라고 바야 한다.

유리한테는 미안하지만, 서준 형님에 비하면 유리는 지극히 평범한 얼굴이었다.

이러니 외모 이야기를 안 할 수 있나.

수혁 형이 감탄하면 서준 형님이 한발 빼고, 다시 서준 형님이 오히려 사돈이 부럽다고, 자신은 선이 굵은 사돈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며 칭찬하면 다시 수혁 형이 한발 빼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서로 칭찬을 하다가.

“……혹시 대련 좋아하십니까?

“대련요? 좋고 싫고를 따진다면 좋아하는 쪽이긴 하는데.”

“오! 그렇습니까.”

“다만 제 힘이 좀 폭력적이서요. 웬만하면 사사로이 사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오! 그렇습니까!!”

용염은 말 그대로 용의 불꽃.

불꽃은 굉장히 폭급한 힘이다. 때문에 서준 형님 나름대로 배려 차원에서 말한 것이지만, 상대가 하필이면 수혁 형이다.

싸움이라면 죽고 못 사는 형은 서준 형님의 말에 온몸을 부르르 떨어 댔다.

이미 눈은 반쯤 맛이 간 게, 말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 결과.

우리 부부는 정확히 4시간 8분, 방금 1분이 추가되어 4시간 9분째 둘의 대련을 관전하고 있는 것이다.

“징그럽다 정말!”

“누가 알았겠냐. 4시간 동안 싸우실 줄.”

“하, 좀 있으면 애들 오고, 또 애들 보면 저 바보는 틀림없이 삐댈 건데.”

“그러다 어머니 아버지까지 오면 반갑다며 술 한잔하고?”

“그러다 본가에 연락하겠지. 엄마 아빠가 아끼는 술이라며 잔뜩 들고 오라고.”

“술판은 밤늦도록 계속되고.”

“잠은 다 잔 거야.”

진짜 싫어!!

유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한참을 괴로워하던 유리. 뭔가 결심했는지 나를 불쌍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여보야, 여보가 나서 주라. 단방에 기절시키는 거야. 그리고 침대에 올려놓는 거지. 아주버님이 깨면 내가 맡을게. 저 바보는 신경 쓸 필요 없어. 지가 뭘 했는지도 모를걸.”

“차라리 수호령을 때려잡아 달라고 해라.”

“짜증 나아, 진짜!!”

내가 뭐라고 하겠나. 그냥 닥치고 웃는 거지.

“그래도 재미있지 않냐?”

“박기혁, 너도 그럴래? 나 돌아 버리는 거 볼래?”

“잘 봐. 진정하고 냉정히 보라고. 너희 오빠가 쓰는 저 용염이라는 힘. 마법사의 시선으로 보면 정말 흥미로운 거라고.”

“하…… 또다. 또야.”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거다.

마법으로 불꽃을 만드는 게 아닌 불꽃으로 마법을 구현하는 원리라니.

확실히 저 용염이라는 힘…… 힘의 형태나, 작동 원리, 발현 방식 모두 궤를 달리하는 힘이다.

내가 조곤조곤 타이르자 화가 난 진유리마저 ‘그건 그렇지.’라며 인정했다.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유별났어.”

“네가 할 소리는 아닌데.”

“여보, 나 말하고 있잖아?”

“계속하시죠.”

“큼, 오빠는 열 살 즈음까지 마법을 못 했거든. 이런 말하면 욕먹지만, 우리 진룡가 애들은 대부분 어릴 때 각성해. 근데 가주의 아들이 마법을 발현하지 못해. 산 전체가 난리 난 거지.”

“그럴 만하네. 나도 그 기분 알아. 마나 허무…….”

“쉿! 그거 말하는 거 아니거든. 쓸데없는 기억은 지워. 어쨌든 오빠는 본의 아니게 아룡원의 주목을 받게 돼. 나쁜 쪽으로 말이야. 근데 저 바보가 유별난 게, 그 정도로 부담을 주면 기가 죽거나 반항해야 하는데…….”

“그런데?”

“무시했어. 아예 무시. 뭐랄까, 안중에도 없는 듯이. 그깟 마법 따윈 없어도 잘살 수 있어, 이런 느낌이었어. 그때는 용염도 깨닫기 전인데 말이야.”

“음, 뭔지 알겠다.”

아마 어린 진서준은 어렴풋이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힘과 조우했을 거다.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기에는 너무도 강대하며 폭력적인 용염.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은 것이다.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다.

보통은 내면의 힘을 알아채기까지 지난한 세월이 걸리니까.

“몇 년이 지나고 오빠가 용염을 깨달아. 도민 삼촌은 그것보라며, 서준이는 재능이 있다며 아빠와 아룡원을 들들 볶았던 게 기억나.”

“스승이랬지?”

“응, 그래서 오빠는 아직도 아빠보다 도민 삼촌을 더 따라. 도민 삼촌도 거의 아들 키우듯 하셨지. 아카데미보다 가마를 추천한 것도 도민 삼촌일걸? 오빠는 아카데미가 굳이 필요 없다나? 저 바보 오빠는 두말없이 입대했지.”

가마라고 했던가.

익히 들었다.

이 나라의 마법학이 총망라된 세계 최고이자, 최대, 최강의 아티팩트라고. 그걸로 군용 아티팩트를 찍어 낸다나?

“도저히 안 되겠다. 난 이 끔찍한 곳을 벗어나야겠어. 나가자. 곧 애들 올 시간이야.”

“30분 남았는데?”

“저 꼴을 보니 심신이 지쳤잖아. 울 귀염둥이들 보고 정화해야겠어. 박 기사, 운전해.”

“그래, 가자.”

공주님 안기로 진유리를 안은 채 게이트를 벗어난다.

쨍쨍하던 게이트와는 다르게 하늘의 태양이 점점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가마의 불꽃, 저 태양 같으려나.

‘기회가 되면 보고 싶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지.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

박봄은 행복했다.

사실 봄이는 행복하지 않은 날보다 행복한 날이 대부분이지만 오늘은 더, 특별히, 행복해!

“외삼초오온!”

“오, 봄아.”

외삼촌이 왔다.

명절 때나 볼 수 있는 삼촌인데, 오늘 학교를 마치니 선물 같이 눈앞에 띠용~ 하고 있었다.

너무 기뻐.

어린 봄이가 보기에도 외삼촌은 엄청 잘생겼다. 이건 헤나마저도 인정한 부분이었다.

“안녕하세요, 외삼촌.”

“헤나도 어서 와라. 오랜만이지?”

하지만 두 소녀의 마음속 1픽은 박기혁.

미적 기준이 아빠에게 맞춰진 두 소녀가 보기에 진서준은 잘생기긴 했는데, 너무 말랐다.

“오늘도 야위었네요.”

“외삼촌! 밥 많이 먹어야 해요. 그래야 건강해져요.”

“어? 응, 그래? 하하. 삼촌은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랐어?”

“음, 솔직히 말해도 돼요?”

“물론이지.”

“볼품…… 읍!”

“외삼촌! 헤나가 아직 한국말이 약해요. 헤헤.”

그렇다면 두 소녀가 진서준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고것은 바로바로!

마술.

신기방기한 불꽃 마술 때문이었다.

“오늘도 마술해 줄까?”

“우와아아! 좋아요! 볼래요!”

“애들 불러와도 돼요? 두 명 더 있는데, 전부 아버지 제자예요. 착하고 성실해요.”

“얼마든지. 방은 위험하니까 나가서 하자.”

“네!!”

“애들 불러올게요.”

“그럼 난 먹을 거 가져갈래!”

불꽃이 여러 형태로 변하는 마술. 호랑이나 용처럼 짐승 형태도 되고, 피라미드나 63빌딩도 된다.

이에 더해, 진서준이 입속에 불꽃을 넣고 뿡하며 방귀를 뀌면 불의 곰돌이가 쿠어엉! 하고 귀엽게 포효했다.

“우와, 귀여워.”

“대박, 귀엽다.”

“뭐지? 뭐야? 올리버, 너 알겠어?”

“모르겠네요. 저도 이해가 안 돼요.”

“훗. 마술이란 건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요.”

“외삼촌, 한 번 더!”

“한 번 더!”

“이번에는 본다. 저 마술이 뭔지 파악하고 말 거야.”

“신기하네요. 저도 노력해 봐야겠어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될 점.

여기 모인 애들은 전부 천재들이다. 재능이 하늘에 닿고, 가능성은 감히 측정 불가. 실력만 본다면 당장 아카데미에 입학해도 무방한 수준이란 거다.

저런 아이들이 고작 마술 하나에 저토록 열렬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뭘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 몰라서다.

불꽃이 어떻게 피어오르는지, 어떤 원리로 움직이고 변형하는지 등, 진서준이 다루는 용염이 어떤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한 것이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모르는 힘이 있다는 게 충격이며, 동시에 즐거움이었다.

뭔가 도전 의식을 자극한다나?

이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감정이었고, 이게 아이들을 열광케 하는 것이었다.

짜짝짝짝!!

대단해요! 재미있어요!

네 아이들의 열렬한 호응에 진서준도 흥이 올랐다.

“좋다.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여 줄게.”

“오오!”

“삼촌이 저 깊디깊은 동굴 아래에서 몇 년간 수련한 신기술!”

“오오오!!”

“기대하시라.”

진서준의 뱃속 깊은 곳에서 꿀렁, 꿀렁…… 무언가 올라왔다. 위장을 타고, 식도로 올라 입으로 나온 불꽃.

그 불꽃은 영롱했다.

그 불꽃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불꽃은……

터무니없이 황홀했다.

넋을 놓을 정도로.

“똑똑? 관객 여러분? 감상이 없는데요.”

“어, 어…….”

이해 못 할 황홀함에 아이들이 어벙벙,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그게 가마의 불꽃입니까, 형님?”

“어? 언제 있었어?”

박기혁이었다.

스치듯 본 것만으로 불꽃의 진위를 파악한 것.

동시에 가치도 파악했다.

“형님, 저랑 사업해 보실래요?”

무료했는데 잘됐다.

가마라고 했지?

저거, 가져야겠다.

……

그때, 박기혁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3일 뒤가 결혼식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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