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12화>
화창한 날씨.
바람도 선선하고, 빛도 쨍쨍하다.
청소하기 딱 좋은 날.
진룡가의 가주전도 대청소로 분주했다.
“여러분, 마당부터 쓸어 주세요. 잔디는 신경 쓰지 마세요. 사람들 오기로 했거든요. 영미 씨, 쓰레기통 모아 왔어요? 빨리 좀 부탁해요.”
바쁘게 눈을 굴리며 청소를 진두지휘하는 유해련.
평소 사용인들에게 자비롭기로 유명한 그녀지만, 날이 날인지라 오늘 그녀의 눈은 매섭기 그지없다.
흡사 성갑 기마대를 이끌고 출진하려는 기세로, 유해련은 앞치마를 질끈 둘러맨 채 동분서주하며 빗질을 이어 나갔다.
“지선 씨! 지선 씨! 지금 닦으시는 동상은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저희 박 서방 선물이거든요. 예민하니까 가급적 마나를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화장실 청소는 제가 어제 다 해 놨으니 괜찮아요. 여러분은 방을 치워 주세요. 네? 이상한 게 있다고요? 어머나, 거기 유리 방인데…… 하, 이년이 정말 이딴 건 어디서…… 죄송해요. 제가 치울게요.”
하던 일을 멈추고 웬수 같은 딸의 방을 치운다.
생전 청소라고는 하지 않는 진유리답게 방은 개판 오 분 전이었다.
“이게 돼지우리지 방구석이야…….”
대체 어떤 신박한 방법으로 방을 어지르면 이렇게 더러워질 수 있을까.
적어도 유해련의 상식으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화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지금이야 방구석을 이 꼴로 만들어 놔도 내가 치우면 된다. 워 아머를 부위별로 전시하든, 물구나무를 서서 공중제비 열일곱 바퀴를 돌든 유해련이 등짝 몇 대 때리면 그만이란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안 된다.
얘는 이제 결혼한다고!
“망나니 치울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검호가에서 이 꼴을 보여 주면……
유해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참담하다.
앞이 캄캄한데, 희한할 정도로 유쾌하지 않은 미래가 그려졌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유해련이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진열장 쪽으로 몸을 돌린다.
이제 마지막이다.
앞치마에서 마른 헝겊을 꺼내 슥슥 닦는데, 불현듯 진열장 안으로 눈에 간다.
사진들로 가득한 진열장.
“얘는 사진 찍는 거 싫어하더니…….”
딸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사진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던 아이였다.
생각해 보면 사진만이 아니다. 어린 진유리는 그냥 매사가 불만이었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천사에서 악마를 오가던 예민 덩어리였다.
어쩔 수 없긴 했다.
워낙에 아팠으니까.
하늘에 닿은 재능 탓에 생사의 기로에서 외줄타기를 했던 아이. 그게 진유리였다.
이야기가 잠시 샜지만, 어린 진유리는 사진을 이렇게 평했다.
“엄마는 몰라! 내 고귀한 영혼이 사진쪼가리에 속박되는 거야. 미치도록 답답할 거야!”
고귀한…… 속박…….
그게 몇 살 때더라…… 아마 10살이었던 것 같다.
차마 아팠던 딸아이에게 쓴소리는 못했지만, 어린 게 못 하는 말이 없다고 생각했던 유해련이었다.
이런 이유로 진유리의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 찾아보기 힘든 사진이.
“여기는 많네.”
바다며, 산이며…… 꽃놀이 풍경도 있고, 놀이공원에서 찍은 것도 있으며, 새하얀 눈이 즐비한 스키장도 있다.
각각의 사진마다 다른 풍경, 똑같은 배경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풍경이 달라져도, 배경이 바뀌어도.
인물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봄의 벚꽃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는 박봄. 한겨울의 수선화처럼 청초하게 미소 짓는 박헤나.
그리고 박기혁과 진유리가 손을 잡고 있다.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꼬옥.
유해련은 사진 속 딸이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얘는, 그렇게 좋을까.”
시원섭섭하다.
딸을 보내는 엄마의 심정이 이런 거구나.
유해련은 오늘따라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었다.
* * *
한편, 청소가 한창인 가주전에서 조금 떨어진 연구실에서는 진도하와 진도민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게 모두의 뜻이라고?”
“네, 형님. 용아병도, 아룡원도…… 저희 운룡대도 모두 같은 마음입니다.”
진도하의 동생 진도민이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이름 석 자를 입에 담는다.
“진서준. 형님의 아들이 가주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
“허…….”
흔히들 알려지길, 혈족의 가주 자리는 세습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혈족은 ‘혈족 계승’의 매개체인 ‘피’를 보존하는 것을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한다. 자연히 혈족은 폐쇄적으로 변했고, 강력한 억제력을 가져야만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혈족들이 이 억제력을 혈통의 영속성에서 찾았다.
이를테면 순혈주의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가주는 세습되고, 결혼조차도 시대착오적인 정략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반적인 혈통들이 이럴진대, 진룡가는 어떻겠나. 이 나라 최고 명문 혈족 진룡가라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란 게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진룡가는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룡가의 가주는 세습이 아닌 철저히 ‘선출’로 이뤄졌다. 그리고 이 선출의 기준은 진룡가를 부흥시킬 수 있는 명약관화한 ‘실력’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난 서강이를 밀었다.”
“제 자식은 제가 잘 압니다. 그 녀석은 많이 부족합니다.”
“지나친 겸손이야. 내가 본 서강이는 부족함이 없었다.”
진서강.
운룡대주 진도민의 장남.
어렸을 때부터 눈부신 성취를 이루며 가문의 주목을 받았던 아이였다.
마법적 재능도 재능이지만 가장 큰 장점은 부동심. 어떤 상황에도, 위기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거석과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고작 30살의 나이에 운룡대 부대주로서 너의 곁을 보필하는 아이다.”
“달리 말하면 무려 30살이란 나이에도 저를 넘지 못한 아이입니다. 대(大)진룡가를 맡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서강이의 ‘진룡술식’을 본 적 있나. 매우 정교했어. ‘7식 용각’은 그 아이의 굳건한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 변형까지 이뤘더군.”
“진룡술식이라 하셨으니 저도 그 부분을 짚겠습니다. 7식 용각, 인정합니다. 녀석의 ‘용각’은 제가 봐도 인상 깊었습니다. 다만 그뿐입니다. ‘용린’, ‘용미’, ‘용조’…… 다른 술식은 볼 게 없습니다.”
“어디서 억지를! 네가 말한 것은 모두 신체 변형에 관련된 술식이야. 경험이 채워지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어.”
“경험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자체가 자질의 부족을 증명하는 겁니다! 가주라면, 이 대진룡가를 이끌 가주라면 경험 따위는 재능으로 씹어 먹어야 합니다. 유리나 서준이처럼요!”
“도민이 너!”
“형님!”
진도하는 진도민의 아들이 가주가 되길 원한다.
진도민은 진도하의 아들이 진룡가를 이끌기를 원한다.
서로 각자의 아들을 밀고 있다.
이게 진룡가의 저력이다.
그들에게 가주란 일족의 부흥을 책임지는 자리다.
진룡가의 술식을 발전시키고, 가문의 대소사를 챙긴다.
각종 외교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가문의 힘을 투사해야 할 때도 있다. 이 판단 또한 가주의 것이었다.
이렇게 눈을 뜨고 잠에 들 때까지 오로지 진룡가만 생각하는 것.
그래서 나는 사라지고 진룡만이 남는, 자유는 사라지고 영광만이 남는 자리였다.
이런 가주의 자리에 오르는 일이다.
사리사욕?
이해관계?
이런 인간적인 감성이 끼어들기에는 그 자리의 무게가 터무니없이 무겁다.
때문에 진룡이라는 칭호는 오로지 가주에게만 부여하는 거다.
진룡가가 바라는 가주는 세상사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간’이 아닌, 모든 걸 초탈해 세상을 굽어보는 ‘용’이었으니까.
“좋다. 네 말이 맞다 치자. 하지만 서준이에게는 중대한 결점이 있다. 너도 알고 있겠지. 걔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저 재능이 없는 거지요.”
“꼬투리 잡지 마라. 절망적인 마법적 재능. 매직 미사일도 겨우 구현해 냈던 게 서준이다. 녀석 스스로도 이를 인정해 군대로 들어간 거 잊었느냐.”
“형님이야말로 꼬투리 잡지 마십시오. 저는 서준이를 잘 압니다. 제가 걔를 가르쳤으니까요. 그 아이는 말입니다, 마법을 못 하는 게 아닙니다. 마법이 필요 없는 겁니다!”
“조삼모사. 결국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거다. 우리 가문의 근본은 마법이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가주라니, 이건 말이 안 돼.”
가주 회의를 열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
진도하의 입장은 단호했다.
맞다.
진도하의 말은 어느 하나 틀린 게 없다. 마법 명문 진룡가에서 마법을 못 하는 가주란 성립될 수 없다.
하지만.
“안 되긴 왜 안 됩니까!”
이를 극복할 만한 힘이 있다면.
마법 또한 힘의 수단이니, 모든 단점을 상쇄시킬 압도적이며 파괴적인 힘을 가졌다면…….
“서준이는 ‘용염(龍炎)’의 주인인데.”
불가능할 게 뭐 있나?
* * *
진서준.
진도하와 유해련의 아들이자, 진유리의 오빠.
이 남자는 이상할 정도로 정보가 없다.
나이, 키, 외모…… 어느 하나 알려진 게 없다.
이러니 대중들이 진서준을 모르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업계 관계자들조차 대부분 진유리가 무남독녀인 줄 안다.
심지어 진룡산 내에서조차 진서준을 본 이가 손에 꼽힐 정도였으니.
그러나.
아는 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진서준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진유리가 마법으로 하늘에 닿을 재능을 가졌다면, 진서준의 마법적 재능은 처참하다.
마법의 발현은 크게 술식, 마나, 발현으로 이뤄지는데 진도하는 이 ‘술식’부터 받아들이지 못했다. 똑똑한 머리를 가졌으면서도 납득이 안 될 정도로 술식을 이해 못 했다.
그래서 어렸을 적 스승이었던 삼촌, 진도민이 물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왜 해야 하나 모르겠어요.”
술식만이 아니다.
‘마나’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쪽은 묻거나 말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진서준은 마나를 느끼지 못했다.
단 한 톨의 마나도 말이다.
“모르겠네…… 모르겠어.”
마지막, ‘발현’
술식도 갖춰지지 않았다.
마나도 느끼지 못했다.
발현이 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식도 없는데 답을 찾는 건 불가능했고, 당연히 진서준은 마법을 발현하지 못했다.
“도저히 모르겠어요. 저는 이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여기까지만 보면 진서준은 철저하게 평범한 일반이이다.
진룡가라고 무조건 혈족 계승을 받는 것이 아니고, 모두 마나를 다루는 초인도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인이 더 많았다. 실제로 몇몇 아룡원 원로들은 진서준을 무능력자라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도민은 생각이 달랐다.
“분명히 뭔가 있는데…… 얘는 뭔가 있어.”
곁에서 본 진서준의 재능은 특별했다. 마나나 육체처럼……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인간 자체가 특별했다.
뭔가 꼬집을 수 없는 부분.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날이 흐르던 중 어느 날, 진도민은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느낀 특별함을.
“너 뭐 먹냐?”
“아, 삼촌. 그게…….”
“혼자 먹지 말고 삼촌도 줘 봐라.”
“여기요…….”
“……!!”
진서준이 먹고 있던 것.
불이었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
진서준은 마법을 못 쓰는 게 아니다. 마법이 필요 없는 거다.
불꽃이 있으니까.
마법으로 불꽃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불꽃으로 마법을 만들어 내는 거다.
용의 불꽃.
용염(龍炎).
진서준이 가진 천형이자, 재능이었다.
* * *
백두산.
대한국군 사령부의 최심처.
이곳에서 이 나라 최중요 기밀이 ‘타오르고’ 있다.
콰르르르릉-!
대한국군의 무장은 세계에서도 유명했다. 무기와 방패는 상급 이상의 아티팩트였고, 몸에 걸치는 건 모조리 중급 이상은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무장이 일반 사병이나 간부나 차이 없이 동일하게 돌아간다는 것.
아티팩트가 귀하다는 중국에서는 군용 검 하나만 들고 가도 집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인데, 이걸 작대기 하나인 이등병부터 대대장까지 동일하게 쓴다는 것이다.
그만큼 대한국군 내부에서 아티팩트는 흔히 볼 수 있고, 이건 고스란히 이 나라의 저력이 되었다.
그렇다면 물을 것이다.
왜?
그들은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구하고 싶어도 물량이 없어서 구할 수 없는 아티팩트를 이토록 흔하게 들고 다니는 것일까.
그 답은 하나다.
가마
세계 최대 규모의 제작 아티팩트 때문이었다.
화르르르륵-!!
거대한 용광로가 쇳물을 뿜어낸다. 마나를 듬뿍 머금은 쇳물은 백염에 가까웠다.
깡깡깡깡-!!
장인들은 이 쇳물을 이용해 망치를 두드린다.
이곳에 있는 장인들은 모두 국가 공인 장인들. 실력과 인성 등,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최고의 장인만이 ‘가마’를 다룰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이 아티팩트 제작에서 부동의 1위라는 걸 생각한다면 이들 전부가 세계 최고의 장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가마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
가마의 불꽃에 제일 가까워 선택받은 자만이 망치를 두드릴 수 있다는 이 자리에.
바로 이 가마의 정점, 가마치가 있다.
“좋구나!”
깡! 깡-!!
넘실대는 불꽃 속에서 보이는 인영.
분명히 머리는 새하얀 노년의 그것이다.
그러나 몸집은 달랐다.
우락부락하게 올라온 근육으로 땀방울이 고여 있다. 비대한 근육이 땀을 잡고 있는 거다.
저 정도 근비대면 박기혁마저 리스펙할 정도다.
그만큼 노인은 속된 말로 지렸다.
한데 놀라운 점은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마의 열기가 극한에 다다른 곳.
단순히 열기만이 아니다. 불꽃, 가마에서 뿜어내는 화염이 노출되는 곳이다.
화염 저항력이 극위를 넘었거나, 화염 친화력이 일가를 이루어야 가능한 일.
때문에 가마치를 수발하는 장인들조차 이 자리에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 가마치의 곁에는 인영이 있다.
그것도 터무니없이 젊은 사내가.
“하던 말 계속해 봐라. 집으로 간다고?”
“그렇게 됐네요. 동생이 결혼한대요. 결혼식에는 가야죠.”
사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가마의 화염을 손으로 집어 입으로 넣었다.
우적우적, 불꽃을 씹어 먹는다.
불꽃을 먹는 아이는 용이 되었다.
용염을 쥔 진짜 용 말이다.
“기왕 나가는 김에 선물이라도 사 올까요?”
씨익, 웃는 입에서 불꽃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