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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230화 (230/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11화>

청첩장을 받아 든 픽쳐스 대표가 희희낙락하며 결혼식 정장을 고르고 있었다면, 여기 미라클 에이전트의 대표 연수지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결국 가는구나.”

다양한 사업으로 한국 3대 그룹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칠성 그룹.

미라클 에이전트는 이 칠성 그룹이 야심차게 일으킨 신사업이었다.

당시 업계는 올 게 왔다는 분위기였다. 연정운 칠성 그룹 회장이 초인 산업을 탐내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니까.

“연수지, 넌 알 거다. 아비가 얼마나 초인이 되고 싶었는지…… 내 아버지, 너의 할아버지는 초인이고 헌터셨다. 게이트를 돌아다니며 몬스터의 부산물과 아티팩트를 구해 돈을 버셨지. 칠성 그룹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린 내게 아버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도 커서 아버지처럼 되길 바랐지. 하나 마나란 놈은 내게 손을 내밀지 않았어. 아버지는 오히려 잘됐다며 경영 수업에 집중하라고 위로하셨지만, 내심 아쉬워하시는 게 티가 났어.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내가 초인 산업에 집착했던 게.”

“이제 연수지, 네가 내 꿈을 이어받아야 한다. 하기 싫다면, 그저 재벌가 딸내미로서 살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넌 그렇게 살고 싶지 않겠지?”

연수지는 미라클 에이전트의 핵심이었다.

아카데미 재학 중 틈틈이 나이트로 활동할 만큼 실력이 출중했고, 4년 내내 조장과 팀장으로서 사람들을 이끌 정도로 통솔력과 리더십,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재였다.

무엇보다 이게 중요한데…… 회장의 자제였다.

뭐가 더 필요한가.

상황이 이러하니 신생 에이전트인 미라클이 연수지 중심으로 돌아가리란 것을 모두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미라클 홍보부는 연수지의 행보를 ‘제2의 김연희’ 혹은 ‘포스트 옵티멈’이라며 추켜세우기도 했다.

물론 화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미라클은 예상대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옵티멈에는 비할 바가 못 됐지만 그 옵티멈이 지나치게 비정상적인 것이고, 칠성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미라클은 일반 에이전트와는 아예 출발선 자체가 달랐던 거다.

그리고 이 성공적인 출발에는 당시 연수지 수석 팀장이 해결한 ‘삼합회 마약 사건’이 주요했는데.

삼합회, 국내 ‘마약 유통’ 시도.

삼합회의 암수에서 나라를 지킨 ‘미라클’ 에이전트.

미라클 에이전트 수석 팀장 연수지, “혼자만의 성과 아냐.”

신생 에이전트 ‘미라클’을 알아보자.

삼합회가 ‘영혼 추출제’를 마약으로 속여 유통, ‘제물’을 구했던 사건.

이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은 청소년을 타깃으로 마약을 유통했다는 것이었다.

연수지는 배를 타고 국외로 도주하려던 삼합회를 습격, 일거에 소탕하는 엄청난 성과를 이룬다.

이 일로 단숨에 전 국민의 관심을 쓸어 담게 되고, 미라클은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기념비적인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연수지는 알고 있었다.

이 성공적인 출발이 온전히 자신의 역량이 아니란 것을.

아니,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냥 운이 좋아 적선받은 거다.

여기 이 청첩장의 주인, 박기혁에게.

여기까지 생각하자 또 한숨이 나온다.

아쉬움? 미련? 후회……?

모르겠다.

“하아…… 어떻게든 잡았어야 했나?”

따지고 보면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 물론 100퍼센트 연수지 입장에서 말이다.

연수지는 처음 박기혁과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빌어먹을 동생인 연재훈이 주제도 모르고 설치다 박기혁을 건드렸고 이에 김연희가 극대노, 칠성 그룹 차원에서 박기혁에게 보상하는 자리였다.

당시 박기혁은 ‘마나허무증’이라는 낙인을 벗어던지며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휘어잡아 초특급 루키로 급부상하던 중.

연정운 회장이 평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뭔가.

‘상인에게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닌 결과다.’였다. 시작이고 과정이고 어쨌든 결국 눈앞에 박기혁이 있는 거 아닌가?

그가 이 찬스를 놓칠 리 없었고, 한창 팀장으로 바빴던 연수지를 불러왔다.

그러고는 당부했다.

잘해 보라고, 비록 불미스러운 일로 이뤄진 만남이지만 최대 유망주를 사전에 접촉할 수 있는 기회라며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맞았어. 지금 마왕의 명성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저점일 때였지. 하…….”

거의 거저라 할 정도다.

근데 연수지는 이 일생일대의 기회를 저버린다.

취향이 심히 의심스러운…… 까놓고 시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였다.

“나도 어렸다. 겨우 취향 차이로 박기혁을 차냐.”

확실한 것도 아니다. 좀 더 대화해 보면 시체에 꽂힌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는데, 그냥 막연히 그런 낌새가 보였다고 학을 뗐다.

어려서였다.

막 아카데미 3학년이 됐을 때다.

나이로 보면 20살이다. 20살이 뭘 알겠나? 현실을 산다며 어른스러운 척을 해 봐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꿈을 먹고 사는 풋내기였다.

가뜩이나 3학년에도 팀장이 되며 자신감이 대기권을 뚫고 우주를 부술 정도인데, 하자가 있는 박기혁이 눈에 차겠나.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소리 같지만!! 박기혁이 얼마나 대단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더 높은 곳에 오를 줄 알았다.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자괴감이 든다.

“내가 미친년이지.”

시체를 좋아하는 건? 확실하지도 않잖아. 그리고 진짜 좋아하면 또 어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별다른 흠도 아니다. 재벌 집 자제 중 그보다 더 추잡한 취향을 가진 놈들도 봤는데.

참을걸…….

수그리고 박기혁 밑으로 들어가 후배에게 도움을 준다는 구실로 찰싹 달라붙었으면…… 진유리처럼 체면 불구 스트레이트로 마음을 전했다면…….

이 청첩장의 상대가 달라졌을까?

“하…….”

미라클 에이전트는 여전히 순항 중이지만, 박기혁이 있었다면 옵티멈만큼이나 성장하지 않았을까?

유망주를 넘어 이제는 어엿한 실력자가 된 그녀였지만 박기혁의 곁이라면 한준우나 메르헴, 진유리처럼 성장하지 않았을까?

후회, 미련, 아쉬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이너스 감정들.

“안 되겠어.”

오늘은 한잔해야겠다.

취하지 못하면 도저히 잠들지 못할 것 같은 연수지였다.

*   *   *

한편 같은 시각.

검호가 한편에 위치한 노천 온천에서는 박봄과 박헤나, 그리고 진유리가 목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본래는 목욕을 좋아하는 박민지 때문에 만들어진 노천 온천인데, 정작 여기 세 모녀가 훨씬 더 자주 즐기고 있었다.

“으으, 안 되겠어. 한잔해야겠어.”

“엄마, 나도!”

“저도요!”

“응.”

아공간에서 꺼낸 단지 우유에 빨대를 꽂는다.

똑. 똑. 똑.

양 머리를 쓰고 있는 세 모녀가 나란히 단지 우유를 쪼옥, 빨았다.

“좋다.”

“좋아.”

“좋지.”

뒤로는 산이요, 앞으로는 강이요, 옆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들.

이곳이 천국이리라.

진유리가 웃자, 마찬가지로 박봄과 박헤나가 배시시 웃었다.

“어쩜 이리 예쁜지. 우쭈쭈.”

“아아앙. 엄마, 얼굴, 축축해.”

“시끄러. 이리 와. 헤나는 어딜 슬슬 빠져. 얼른 이리 와.”

“……네.”

부비적 부비적.

진유리가 아이들의 얼굴을 문대고는 양손으로 볼따구니를 꾸욱, 누른다.

젖살이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귀여워…… 톡 튀어나온 입에 입맞춤했다.

“엄마는요, 궁금해요. 이렇게 천사 같은 따님 분들이, 왜 그런 사고를 쳤을까요?”

“억.”

“큭.”

예상외의 일격에 뜨끔한 두 악동들.

여기서 사고는 사우디 때의 그 건이다.

엇나가기 전에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한다는 김연희와 유해련의 다그침에 박기혁은 오랜만에 훈육이란 걸 하고 있는 중이다.

“박봄, 박헤나. 아빠가 한소리 안 하는데, 이번에는 해야겠어. 아빠가 뭐랬어! 상황에 맞춰야 한다고 했지.”

힘이 다가 아니다.

섬세함도 필요하다.

몸을 숨겨야 할 때면 숨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 여기서부터 이상했다.

“아빠였다면 우선 마법으로 카메라부터 지우고, 최대한 은밀하게 상황을 정리할 거야. 그다음 흔적을 없애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복귀하면 상황 종료.”

“아앗!”

“역시 아빠!”

“어때. 아빠 말 이해했어?”

들켰으니 문제가 되는 거다.

들키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적의 논리에 박봄과 박헤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가슴이 벅차다. 역시 아빠는 천재였구나.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김연희가 이 모습을 봤다면 화병으로 드러누웠을 것이고, 유해련은 바닥을 치며 통곡했을 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모습을 함께 본 이는 진유리.

그녀가 누구인가? 진룡가의 망나니다.

죽어 마땅한 놈들 때려잡았다는데 뭐가 잘못됐는가. 심지어 죽이지도 않았잖아? 실제로 진유리는 이 건으로 아이들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박봄과 박헤나가 당황하는 거다.

그럼에도 굳이 지금, 진유리가 이미 끝난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 두 딸이 너무 예쁘고 소중해서다.

“나쁜 사람을 혼내 주는 건 좋아. 곤란한 분들을 도와주는 것도 좋아. 단, 너희 둘이 위험하지 않아야 돼.”

“…….”

“엄마는 여기 착한 따님들과는 다르게 아주 못됐어요. 그래서 둘이 제일 소중하단다.”

“네…….”

“죄송해요.”

“좋아, 약속.”

손가락 걸고 약속!

“좋아, 끝! 풀 죽을 필요 없어. 약속했으니 끝난 거야.”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내 아이가 위험에 빠지는 게 싫다.

진유리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그런데 이때, 허를 찌르는 말이 들려온다.

“어머니, 그럼요…….”

헤나가 고심했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신중히 말하는데.

“위험하지 않으면 되네요? 아버지처럼요.”

“엉?”

“그렇잖아요. 어머니는 아버지 걱정하지 않으시잖아요.”

“내, 내가 그랬나?”

“그러셨어요. 아버지는 알아서 잘한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

애 앞에서는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진유리.

진유리는 입조심하기로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헤나는 여전히 진지 모드 중.

“적어도 지금 저희를 대하시는 것처럼, 아버지를 걱정하시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생각해 봤어요. 어머니는 왜 우리는 걱정하시고 아버지는 걱정하지 않으실까. 답은 쉽게 나왔죠.”

“뭐야?”

봄이의 물음에 헤나가 무슨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처럼 말한다.

“약해서.”

“허업!”

“모두 우리가 약해서야.”

“……!!”

무력 만능 무엇?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잘못돼도 대단히 잘못됐다.

아무리 진유리가 망나니라도 이게 10대 소녀의 감성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다.

다급하게 오해라며, 아니라며 고쳐 주려고 하는데 애들의 얼굴에는 이미 믿음이 충만했다.

“잘 봐. 내 말대로 아빠처럼 강하면 위험할 일이 없겠지? 그러면 할머니하고 외할머니가 걱정하실까?”

“들켰으니 문제가 되는 거다. 들키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전투를 통제할 만큼 강해지라는 말이네?”

“그렇지, 강력한 힘이지.”

“그럼 위험할 일이 없고!”

“그러면 어머니가 걱정하실 필요도 없겠지.”

“할머니도 안심하시겠지?”

“모두가 해피!”

“천재야, 헤나!”

서로 주먹을 치며 훗, 하고 웃는 두 아이.

자신들의 깜찍한 머리통으로 생각해 낸 답이 퍽이나 만족스러운가 보다. 벌써부터 훈련을 추가하겠다며 의욕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반면 진유리는?

“어, 음……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말할지, 잠시 로딩 과정을 거치다.

“……너희들이 만족했으면 됐어.”

그래…… 뭐든지 강하면 좋은 법이지.

자신과 박기혁 사이에서 자라는 아이들인데, 엄마 아빠 걱정 안 시키겠다고 강해지겠다는 정도면 바르게 자라는 거 아닌가.

쟤들은 적어도 누구처럼 실력 좀 보겠다며 친구들에게 글러브를 던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제멋대로 안 된다고 드러누워 시위를 하진 않잖나.

이 정도면 건전한 생각이지.

더 이상 바라는 건 욕심이다. 무릇 올바른 부모란 자녀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지 않는 법이니.

이렇게 어떻게 하면 좋은 엄마가 될까, 생각하다 진유리가 ‘풋’ 하고 웃는다.

‘희한해.’

적응이 안 된다.

누가 알았을까.

천하의 진유리가 애들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게.

생물학적으로 따지면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들이다. 유전자의 ‘유’ 자도 관계없는 아이들. 분명히 그러한데 이 이유 모를 끌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첫 만남부터 이상했다.

보육원에서 봄이를 처음 본 날도, 에우리아의 거처에서 헤나를 처음 본 날도,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이 아이들과는 아주 오래 함께할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리고 이런 생각은 봄이와 헤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딸기 언니 때부터 좋았어.’

‘신기하게도 불편하지 않았지.’

진유리는 이게 ‘인연’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기혁이 그랬다. 자연의 섭리만큼이나 인간의 인연은 오묘하다고.

“만날 사람은 만난다고 했지.”

“응?”

“뭐라고요?

“아냐, 이제 갈까?”

“응!”

“응!”

만날 사람은 만난다.

뭔가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이다. 우리는 만날 인연이기에 만났을까?

진유리는 아마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뭐, 이리하든 저리하든 뭐가 중요한가.

행복하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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