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10화>
여기서 잠깐.
대중들이 보는 마왕 박기혁은 어떨까.
실력적인 부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참여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한두 개인가.
딱 하나만 말하자면, 삼합회 토벌.
도시 하나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삭제시킨, 그 경이로운 힘은 세계에 마왕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다만 소수의 몇몇은 수호자에 오르지 않은 것을 꼬투리 잡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수호자가 된 산군과 백호를 비롯한 가족들의 변호로 쏙 들어갔다.
“막내는 육아하느라 바쁩니다. 대신 제가 있으니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놔둬요. 기혁이도 자기 생각이 있겠죠.”
“하하하! 우리 아들이 바쁘다 보니!”
“또 기혁이 이야기예요? 하…… 좋아요, 기자님. 우리 툭 터놓고 이야기해 보자고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희 남편은 젊었을 때부터 수호자 자리를 지키고 있죠. 첫째는 몇 년 전에 수호자가 됐고, 이번에 둘째까지 수호자가 됐네요? 인간적으로 가족 중에 셋이나 수호자면, 한 명쯤은 자유로워도 되잖아요? 제 말 틀렸어요?”
그렇다면 실력이 아닌 인성적인 부분은, 사람 박기혁은 어떤 사람인가?
여기에서는 평가가 분분했다.
“그 새끼는 자기밖에 몰라. 무지 재수 없는 놈.”
“난 살면서 박기혁만큼 공감 능력 없는 놈은 못 봤어. 감정이란 게 없는 것 같다니까?”
“박기혁요? 말도 마요, 언니. 제가 걔랑 아카데미 동기였잖아요. 도라이에요.”
“나 걔 조에 지원했었거든? 걔! 박기혁 말이야. 인생 펼 뻔했다고? 하! 지랄. 뭘 알고 지껄여. 그 자식 첫 만남에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겁나 팼다. 나 그때 다리 부러져서 실려 갔잖아.”
“실력은 인정이지. 근데 인성은 글러 먹었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
공감 능력을 상실한 사이코패스.
수틀리면 주먹부터 내밀고, 모든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사회 부적응자.
물론 이런 부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음, 박기혁 말이야? 몇 번 보긴 했어. 시비? 아냐, 소문처럼 대화를 못 할 정도는 아니었어.”
“재수 없긴 한데, 틀린 말은 안 해. 그래서 더 재수 없는 건가? 어쨌든 그래.”
“의외로 인망은 있어. 한준우나 메르헴 공주가 계속 붙어 있는 것만 봐도…… 난 좀 부러웠는데. 뭔가 얻을 게 있으니 붙어 있는 거 아니야? 실제로 두 사람 실력 엄청 발전했고.”
“하긴, 그 봄이란 아이 데리고 아카데미 왔던 거 기억나. 제 식구는 살뜰하게 챙기는 것 같더라.”
남 눈치 보지 않는다.
틀린 말은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솔직해 인간관계에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일단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베풀 줄 안다.
욕하는 사람은 혐오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동경하고.
이처럼 박기혁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박기혁 본인은 이런 평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애초에 남의 시선 따위를 신경 쓰며 살던 사람도 아니고.
하지만 본인이 아무렇지 않아도 곁에 있는 이들은 다른 법.
김연희는 이런 중간 없는 아들의 이미지를 매우 못마땅해했다. 이미지 관리 좀 하라며 몇 번이고 타일렀을 정도.
박봄도 이런 경우였다.
“속상해!! 아빠 나쁜 사람 아닌데에!”
우주 최고로 멋진 아빠가 나쁜 소리를 듣는 게 싫어!
평가가 고쳐지길 원했다. 아빠의 슈퍼 다정함을 모두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
“봄이가 아빠를 가르쳐 줘야게써! 버찌야, 찍찍이 가져와!”
그렇다.
아빠의 멋짐을 알리려고 선택한 것은 방송인 것이다.
당시 박봄의 나이는 7살이었다.
- 안녕! 언니 오빠들. 봄이에요! 오늘은요, 아빠가 봄이에게 선물을 줬어요! 선물이 뭐냐면요? 두구두구두구! 짠! 엔젤 드래곤 인형! 멋지죠! 아빠가 봄이를 위해 특별히! 진짜 진짜 특별히! 만든 거예요! 우리 아빠 대단하죠? 훗!
오로지 아빠를 칭찬하려고 만들어진 채널.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봄의 채널은 초대박을 터뜨린다.
순식간에 1만을 찍더니 10만, 30만, 50만…… 나중에는 얼음공주 박헤나까지 합류하며 100만을 훌쩍 넘어, 현시점에는 2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초대형 채널로 발전하게 된다.
- 아빠가 무섭다고 누가 그래요! 아니야! 절대 아니에욧! 울 아빠는 무서운 사람이 저얼대~ 아니에요. 그치, 헤나야?
- 아버지는 못된 사람한테만 그래. 착한 사람한테는 착해.
- 들었죠? 언니 오빠들이 오해한 거라니까요. 오해하면 나 속상해요. 우리 한번 외치고 갈까요? 아빠는 착해! 아빠는 다정해! 아빠는 최고야!
- 착해. 다정해. 최고야.
- 좋았어요! 훌륭해요, 언니 오빠들.
- 잡담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가. 너, 그 이야기하기로 했잖아. 크리스마스.
- 아! 깜빡할 뻔했네. 헤나야, 고마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해 볼 거예요. 바로 며칠 전이 크리스마스였잖아요. 올해도 산타 할아버지가 오셨어요. 짜잔, 우리 같이 선물 언박싱을 해 볼까요. 쉿! 나도 알아요. 산타 할아버지가 아빠란 거. 그래도 우리끼리 비밀이에요. 아빠 실망한다니까요.
- 비밀이야.
- 꼭!
보고만 있어도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는 두 소녀가 “아빠 착해, 아빠 다정해, 아빠 최고야!”라고 무한 칭찬을 하는데 이걸 어떻게 버텨.
이렇게 두 딸이 아빠 이미지 바꾸겠다고 발 벗고 나섰고, 노력이 보답을 받는 것인지 박기혁의 이미지는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어 갔으며…….
“뭐라고요? 사인?”
“네! 저, 저…… ‘언니 오빠’예요!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아버님.”
“저도요! 착하고 다정하고 최고인 아버지! 팬이에요! 빵집에서 만나다니!”
“데스티니!”
“아…… 언니 오빠라면 우리 애들 채널 구독자구나. 여기 사인요. 그거 손에 든 거 아직 계산 안 하셨죠? 제가 계산해 드릴 게요. 드시고 싶은 빵 있으면 더 고르세요.”
“괜찮은데.”
“정말 괜찮아요!”
“부담 가지지 마세요. 공짜 아니니까. 우리 애들 잘 봐 달라고 사 드리는 거예요.”
“역시 봄이 헤나 아버지.”
“착해…… 다정해…… 최고야…….”
……
…
└ 박기혁 인성 터진 거 유명하지 않나.
└ 아닌데요? 완전 멋지고 완전 착한데요?
└ 맞아요. 알지도 못하면 모함하지 마세요. 사인도 잘해 주시고 저희 빵도 사 주셨어요!
└ 완전 스윗함ㅎㅎ
어느새 호감형 아빠의 대표 주자가 돼 있었다. 가족 예능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섭외가 들어올 만큼 말이다.
이기주의자에 사이코패스, 사회 부적응자라고 평가받던 과거가 무색하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 박기혁.
그래서였을까?
박기혁과 진유리의 결혼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화제가 되고 있었다.
청첩장을 받은 이들마저 화제가 될 정도로.
* * *
“제작사 픽쳐스입니…… 아…… 대표님은 지금 자리를 비우셨…….”
“대표님은 외부 출장 중이십니다. 언제 오실지는 모릅…….”
“마왕과 마룡의 결혼식에 참석하냐고 묻는 거죠? 저희도 모릅니다. 대표님 개인 스케줄은 저희가 관리를…….”
제작사 픽쳐스.
중소 제작사에서 시작해, 현재는 세계에 ‘K-장르’를 알린 선구자로 불리며 공룡 제작사가 된, 영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대표작으로는 19금을 달고서 천만 관객을 찍은 최초의 영화 ‘태양바라기’, 찌질하기에 아름다운 20대의 연애를 여과 없이 보여 주며 역시나 천만 관객을 돌파한 ‘내가 찍은 C급 로맨스’, 한국 좀비물의 시초로 알려진 ‘인천항’과, 한층 더 발전한 한국의 좀비물을 세계에 알린 ‘왕조’.
이처럼 수없이 많은 대표작을 만들어 낸 픽쳐스.
하지만 픽쳐스의 대표가 꼽는 대표작은 하나다.
아이들의 영원한 영웅 ‘캡틴 타이거.’
이것이야말로 픽쳐스를 대표하는 단 한 작품이었다.
꽝-!
“대표님!!”
“깜짝이야!”
문을 박차고 들어온 김 전무가 대표를 노려봤다.
결혼식 날 뭘 입을까 한창 양복을 정리하던 대표는, 김 전무의 도끼눈에 찔끔 침을 삼켰다.
“아니, 형! 나 도저히 안 되겠다. 결혼식! 결혼식! 그놈의 결혼식 전화 대문에 업무를 못 하겠어!”
“아니, 그걸 왜 다 받고 있어. 그냥 무시해. 선 다 빼 놔.”
“그러니까 폰으로 연락 오잖아!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으니까 카메라 감독에, 조명 감독. 저기 방송사 PD는 물론이고 작년에 제작한 영화의 배우. 우리랑 연관된 사람들 다 연락 온다고!”
“그…… 그래? 그렇게 심각해?”
“확실한 건, 지금 몇 주나 남은 결혼식에 뭘 입을까 고민할 때는 아니란 거야!”
픽쳐스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작은 제작사였다. 그것도 한창 인기가 식어 가던 ‘특촬물’ 전문 제작사.
누가 봐도 제가 악당이라 생각될 만큼 1차원적인 괴물을 상대로 정의와 용기로 똘똘 뭉친 용사들이 싸운다.
전용 무기는 필수.
필살기 제창 국룰.
오색 빛깔 쫄쫄이를 입은 용사들은 정의 포즈를 잡으며 등장, 악당을 물리친다.
……라는, 뭐 그런 내용의 아동용 전대물 시리즈를 제작했었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 특촬물의 인기는 빠르게 식어 가던 중.
어쩔 수 없다. 그 또한 시대의 변화였으니.
프리즘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상 플랫폼이 등장하며 TV를 보던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데, 작은 영세 아동용 특촬물을 만드는 제작사가 살아남을 수 있겠나?
불가능했다.
픽쳐스는 허름한 사무실의 보증금을 깎아먹으며 사라질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한데, 기적이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부족하지만 옵티멈 에이전트 비서실장을 맡고 있습니다.”
품위 넘치는 명함을 내미는 신사.
그는 그날, 그 자리에서 억 소리 나는 투자를 했다. 약속이 아니라, 바로 통장으로 꽂아 준 것이다.
대체 왜? 대표인 자신조차 이 회사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대체 무슨 깡으로 이 거금을 덜컥 투자하는 것인가?
심지어 여기 있던 김 전무는 몰래 폰으로 112를 누르고 있었다.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중에 알았지. 마왕의 보물이라는 박봄 님이 황송하게도 캡틴 타이거의 팬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캡틴 타이거, 질풍 돌격 편’은 차질 없지?”
“하, 장난해? 그게 중요하냐고?”
“얌마, 이 회사에 캡틴 타이거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냐. 빨리 말해. 차질 없지?”
“없어. 이미 제작 들어갔잖아. 투자만 제대로 되면 제작이 멈출 리 없다는 건 나보다 형이 더 잘 알잖아.”
“휴, 다행이다.”
“이상한 소리 말고, 저기 전화부터 어떻게 해 봐. 차라리 인터뷰를 해라. 청첩장 받았다고, 옵티멈의 마녀랑 친분이 있다고 속 시원히 말하란 말이야.”
“얘는, 옵티멈의 마녀가 뭐냐. 우리 회사의 대주‘주님’이신데.”
옵티멈의 투자를 받은 뒤부터 픽쳐스는 비상한다.
미친 듯이 일이 잘 풀렸다. 뒤로 넘어져도 금이 있고, 앞으로 넘어지면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모두가 힘들었던 일본 사태 때에도 수준 높기로 유명한 일본의 애니메이터들을 대거 고용해 몸집을 키웠고, 몇 단계 높은 CG 기술을 선보였다.
세계에서도 경쟁이 가능한 수준이었고, 국내에서는 감히 적수가 없을 완성도였다.
이거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제 이 한국에서 픽쳐스를 제외한 특촬물 제작사는 남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돈도 안 되는 특촬물인데 기술마저 부족하니 이 파이를 붙잡고 있겠나? 결국 픽쳐스가 독점하게 된 것.
이처럼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픽쳐스가 이 기세를 몰아 만든 게 캡틴 타이거 시리즈다.
벌써 시즌 7까지 제작된 캡틴 타이거.
이것도 모자라 무수한 극장판을 남겼는데 흑룡의 습격, 천룡섬 유토파, 격돌 타이거vs라이언, 곤충 도시 에어리 등등, 지금까지 나온 것만 총 13편이다.
설날이다, 추석이다, 명절에 개봉되는 캡틴 타이거를 보려고 극장가에 줄을 선 아이들을 보는 게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느껴질 지경인 것이다.
픽쳐스 대표는 픽쳐스의 성공을 본인이 이룬 거라 생각지 않는다.
실제로 그러하니까.
이건 은혜다.
저기 대주‘주님’이 내린 은혜이며, 또한 마왕님이 굽어 살피신 것이고,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사랑 박봄 님이 도와주심이다.
대표는 오늘도 자신에게 내려진 은혜를 감사히 여기며 기도한다.
“언니 오빠…….”
“뭐래는 거야.”
“알았다, 알았어. 화 좀 그만 내라. 내가 김 기자랑 전화할게. 됐지?”
“말만 하지 말고, 지금 여기, 내가 보는 자리에서 해.”
“어허, 김 전무. 이럼 곤란해. 여기 회사야. 회사에 위계질서가 있어야지. 김 전무 이거 못 쓰겠네.”
“네, 네에. 대표님,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전화 거시죠. 농담이 아니라 밖에 심각해. 이러다가 기자들이 찾아오겠…….”
쿵-!
“저기 전무님! 대표님! 찾아왔어요! 기자들! 기자들요!!”
“……벌써 왔네. 어쩔 거야?”
“쯧, 아직 뭐 입을지 결정 못 했는데. 알았어. 내가 해결 볼 게. 정리 좀 부탁하자.”
“알았으니까 얼른 가 봐.”
대표는 펼쳐 놨던 정장을 동생에게 맡기고는 나가는데.
“걱정이 돼서 그러는데, 캡틴 타이거 제작 잘되고 있는 거 맞지?”
“좀 가라고!!”
“생각난 김에 제작 현장 좀 들러야겠다.”
박봄 님을 실망시킬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