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9화>
행복이란 무엇일까.
김연희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을 꼽자면, 바로 이른 아침의 이 시간이다.
잘 다려진 정장을 입고서, 상쾌하게 출근해, 비서실장이 내려 준 커피를 받아 든다. 몇십 년째 곁을 지킨 비서실장이 내린 커피는 향부터가 자기 취향에 딱 맞다.
이 커피를 들고서 자리에 앉아 모니터에 붙여 놓은 가족들 사진을 보면…….
이게 김연희에게 최고의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근데.
그런데.
오늘따라 사진을 보는 김연희의 얼굴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시…… 실례지만, 전하. 제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다,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자세히…… 부탁드립니다, 전하.”
- 얼마든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소녀.
얼마나 예쁜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우리 강세이들.
이 강세이들이 테러에 휘말렸다고?
- ……시장과 광장이 있는 도시 중심에 테러가 발생했네. 테러 조직의 정체는 극단주의 집단. 세태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그릇된 신념에 휩싸인 광신도들일세…….
제일 인파가 집중될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도심지를 타격, 혼란을 일으킨다.
공포와 비명은 도심의 기능을 일순간 정지시켰고, 정지된 도시로 테러범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움직인다.
- ……테러범들은 인명을 살상하기보다는 인질을 확보했다네. 애초에 테러의 목적은 복수나 공포가 아닌, 우리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 자신들의 수장을 빼낼 때 쓸, 인질들이었던 거지.
“…….”
- 테러 혐의로 체포된 우두머리를 구출하려 다시 테러를 일으킨다. 굉장히 폭력적이며, 유치한 사고이지만, 웃기게도 그래서 설득력이 있네. 차후 심문이 진행되며 다른 정보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아마 맞을 걸세.
말없이 듣고 있던 김연희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본래 전쟁이란 이성과 합리의 영역이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이었다.
다만 그녀의 뒷목을 잡는 부분은, 그 비합리의 영역에 우리 강새이들이 발을 들이민 거였다.
“저희 아이들이 마침 그곳에 있었다는 거네요. 수학여행 중 몰래 빠져나와서 말이죠.”
- 그 점은 짐이 개인적으로 사과하네. 더욱 만전을 기했어야 했어.
비록 왕이지만 둘은 서로 협력하는 파트너. 무함마드 왕은 경호에 빈틈이 생겼다는 점에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하지만 김연희는 괜찮다는 답을 보냈다.
‘쟤들이 숨으려 들면 나도 못 찾아.’
애초에 두 아이가 품은 힘은 규격에서 벗어난 힘이다. 일반적인 초인들과는 괘를 달리하는 힘인 만큼,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성을 되찾은 뒤로는 이해하기 쉬웠다.
행렬에서 몰래 벗어난 아이들이 테러에 휘말리고, 사람들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는 정의감에 불타올라 직접 나선 거다.
이 과정에서 다행히 인질은 모두 구출했지만 시장으로 향하는 일부 구간이 초토화, 문자 그대로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박살 난 것이다.
“하…… 죄송합니다. 피해 복구는 저희 쪽에서…….”
- 아니오. 설마 짐이 마담에게 보상을 바라겠소. 과실 여부를 따지자면 우리 측 과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오. 어쨌든 경호에 구멍이 뚫렸으니.
“그래도…….”
- 사실 마담에게만 말하는 거지만, 짐은 이번 일로 얻은 이득이 적지 않소.
이번 테러에 무함마드의 작은아버지, 한때 왕위 계승전에서 그와 왕위를 다투던 대공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 아무리 뜻이 같지 않다 하여도 선왕의 동생이며 왕가의 피를 이은 자. 손을 대기가 부담스러웠지만 이제 구실이 생긴 거네.
“숙청이군요.”
- 안타깝지만, 왕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전혀 안타깝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는 무함마드 왕.
김연희는 쓰게 웃었다.
새삼 느낀다. 지금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한 나라의 왕이란 것을.
하지만 그녀는 알까?
일국의 최정점에 오른 왕과 이토록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현재 김연희의 위치를 단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을.
이렇게 김연희는 서로 협조해 이번 일을 처리하기로 합의를 보고는 통화를 끝내려 했다.
그때.
- 한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소.
사실 지금의 통화도 이것 때문에 이뤄졌다는 듯, 잔뜩 뜸을 들이는 무함마드.
이때쯤 김연희는 눈치챘다.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받는 질문.
바로 그 질문일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 마왕의 결혼식은 언제인가?
“글쎄요…….”
지금부터 알아봐야겠네요.
김연희의 눈이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박기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혼란스럽다.
난 왜 맞고 있는 거지?
이를 악무시고 등짝을 때리는 어머니. 아들은 그저 맞을 수밖에 없다.
“아빠가! 헛짓거리를! 하니까! 애들! 교육이!…….”
“악! 악! 어머니, 잠깐만!”
“내가! 못 살아! 정마알!!
찰싹찰싹.
참 찰지게도 때리신다.
아무튼, 대충 나오는 단어를 조합해 보면 우리 딸내미들이 무슨 일을 벌인 것 같은데.
자연히 의문이 따른다.
애들 수학여행 중이잖아? 수학여행 중에 사고를 쳐 봤자 얼마나 친다고?
근데 우리 딸내미들, 나의 비루한 상상력을 비웃듯 화끈하게 놀았던 것 같다.
함께 온 진유리가 서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사우디에서 테러…… 어? 어?! 어머님, 설마 여기에 애들이 관련…….”
“어휴! 내가!! 창피해서!! 못 산다니까!!”
“잠깐만요. 악! 어머니! 마나는 반칙! 악!!”
결론부터 말하면, 사우디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이 테러를 일으켰고, 내 새끼들이 이걸 수습한 것 같다.
처음에는 또 어떤 겁대가리 상실한 놈들이 내 새끼들을 노렸나, 또 움직일 때가 됐나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란다.
안심했다.
“안심은! 무슨! 안심이야악!!”
“어쨌든 애들 모두 무사하잖아요. 무함마드도 괜찮다고 했고. 그럼 된 거죠.”
“너! 너어!! 너어엇!!”
“유리야, 물! 밖에서 물 좀 달라고 해. 어머니 기운 떨어지시겠다.”
“응!”
어지간히 쌓인 게 많으셨나 보다.
어머니는 이후로도 한참 내 등짝을 때리시더라…… 이런 것으로나마 어머니의 응어리가 풀어질 수 있다면 나는 괜찮았다.
오히려 손이 여전히 매우신 거 보니 정정하신 것 같아 안심이 될 정도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해련 아줌마, 장모님이 오신 뒤에야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앉으셨다.
이걸로 나의 수난 시대는 끝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지.
후반전이 시작된다.
“박 서방, 괜찮아? 희땡이 넌 왜 가만히 있는 박 서방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조용해라…… 알지도 못하면서…….”
“맞습니다, 장모님. 제가 잘못을…….”
“아니야, 박 서방. 잘못을 했으면 말로 하면 되지 어디 교양 없이 함부로 손을 들어 올려? 그리고 박 서방은 말이야, 큰일을 할 사람이에요. 소소한 잘못은 넘어가 줘야지, 왜 애 기죽게…….”
“엄만 조용해! 낄낄빠빠 몰라?”
“야! 진유리!”
“조용해, 박건 셋째 아들. 왜 우리 며느리한테 큰 소리야. 유리야, 너희 엄마는 구식이라 낄낄빠빠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라는 말인지 몰라.”
“너? 너어!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내가 널 그렇게 키웠어?!”
“해쫑, 출가외인 몰라? 이제 유리는 우리 집안사람이야. 괜찮아, 아가야. 이리 오렴.”
“어머니~.”
“허, 이것들이!”
이렇듯 사위 사랑이 각별하신 우리 장모님, 무조건 내 편을 들어 주신다.
어머니는 사돈이 된 친구의 잔소리에 이를 빠득 깨물고, 여기에 제발 참아 줬으면 좋을 것 같은 진유리가 어머니 편을 들면 부릉부릉.
자존심 강한 두 어머님의 배틀이 시작되는 거다.
자연히 중간에 낀 난 고달픈 것이고.
어쩜 두 분 다 만날 때마다 이러시는지.
진유리가 말하길 찐친이라서 그렇단다. 원래 진짜 친한 친구는 저렇다나…… 난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세 여자가 모이는 자리에는 가급적 함께하지 않지만, 오늘은 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우리 결혼식에 대해 말하는 자리였거든.
우선 모두 진정시켜야겠다.
나는 ‘너도 딱 너 같은 딸을 낳아 봐!’라며 살 떨리는 말을 하시는 장모님을 가볍게 안아 드리며 달래고, ‘흥? 잘살 건데? 너무 좋은데?’라고 약 올리는 진유리의 뒷목을 잡아 말을 끊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어머니, 시간 없잖아요. 결혼식 이야기부터 하죠.”
“말이나 못하면.”
“엄마아!”
“흥.”
한차례 흘겨본 어머니는 슬슬 이 자존심이 걸린 기 싸움을 걷었다.
“대화는 적당히 했으니, 중요한 일부터 의논하자. 유리 결혼식, 어쩔 거야?”
장모님도 방금 전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셨던 게 거짓말처럼, 우아한 표정으로 커피 잔을 들었다.
“우리야 언제나 스텐바이지. 너희 쪽은 어떤데?”
“우리야 우리 가족이 전부인데, 모이라면 금방 모이지.”
“최대한 빨리 해치워야 할 것 같은데? 쟤 보니까 벌써 배가 불러 와.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예쁘게 보여야 할 거 아니야.”
“괜찮아. 저 정도는 드레스로 커버할 수 있어.”
“네가 그렇다면야.”
한창 두 분이서 이야기를 나누던 때…… 진유리, 슬며시 손을 드는데.
“저기 두 분, 저희 결혼식 안 해도 되는데요…….”
나름대로 어제 밤새 고민한 의견을 내놓지만…….
“그래서, 장소는?”
“우리 진룡산으로 하는 게 어때? 우리 일족 아이들 중에 여기서 스몰 웨딩 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몰 웨딩?”
“에이, 아마추어처럼. 말이 스몰 웨딩이지, 빅으로 하면 돼. 빅 웨딩.”
“저기 엄마? 어머님?”
“음, 괜찮을까.”
“너희 쪽이나 여기나 올 손님들이 적당한 수준은 아니잖아. 사람들이 모일 게 뻔한데, 결혼식장에서 하기는 좀 그렇지 않아?”
“그것도 그러네.”
“저기요, 제 말 들려요?”
“장소는 넘어가자. 다음은 드레스.”
깔끔하게 무시당한 진유리.
그럴 줄 알았지.
내가 괜히 조용히 있는 게 아니다.
가문의 대소사를 꽉 쥔 어머님과 장모님이시다. 일단 두 분이 밀어붙이는 일은 거의 실현된다고 봐야 한다. 결혼 문제도 이 연장선상인 것이고.
“아가야, 결혼식은 너희만의 행사가 아니야. 가족과 가족이 합쳐지는 일이란다.”
“그래도 바쁘시면…….”
“우리 진룡 가문이나 검호 가문이나 명문 중의 명문이야. 이건 단순히 너희가 너희 편한 대로 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결혼식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에 진유리가 부루퉁, 불만을 표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진유리와 비슷하게 결혼식 따위가 꼭 필요한가, 라는 입장이었지만…… 나는 두 분의 마음 역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왜 제국에서도 귀족들의 자제들이 결혼할 때면 성대하게 결혼식을 했지 않나. 이건 결혼하는 귀족들의 권위를 내보이는 자리임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인맥들을 관리하는, 일종의 격식 같은 거다.
필요하다면 해야겠지.
다만, 정확하게 말해 줘야 한다.
할 땐 하더라도 우리의 의사를 분명하게!
난 열정적으로 결혼식의 의미를 설명하는 두 분의 말을 끊고는 내 의사를 못 박았다.
“하는 건 괜찮은데, 유리가 홀몸이 아니잖아요. 최대한 무리는 가지 않게 하죠.”
이렇게 우리의 결혼식 날은 오늘 이 자리에서 확정되었다.
* * *
마왕과 마룡이 결혼한다.
대한민국의 최고 명문.
검호가와 진룡가의 결합이 알려지며, 메스컴에서는 앞다퉈 기사를 냈다.
비공식 절대자 ‘마왕’과 ‘마룡’ 드디어 결혼하나??
동거 중이었던 마마 커플. 결혼식은 어디에서?
옵티멈의 마녀 난색. “조용하게 치렀으면 좋겠지만…… 오신다는 분이 너무 많아.”
‘혹시 결혼식장은 진룡산?’ 진룡가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진룡산 모습 공개
둘 다.
한국을 대표하는 혈족인 만큼 관심은 폭발적.
게다가 박기혁이 누구인가. 검으로 극의를 본 검사이자, 새로운 마법 체계를 개발한 마법의 종주다.
진유리는 또 어떻고. 모든 혈족을 통틀어 마법적 재능만큼은 가장 탁월하다는 진룡. 그 진룡 가문에서도 돌연변이라고 부를 만큼 극의에 다다른 마법사였다.
가문의 결합도 결합이거니와, 이 둘이 결합해 만들어 낼 결실은 얼마나 찬란하겠나.
└ 검호와 진룡의 결합, 키야아~ 가슴이 웅장해진다!
└ 둘이 아이 낳으면 어떻게 불러야 하나? 마호ㅎ? 검룡ㅎ?
└ 검하고 마법 함께 쓰는 거 아닌가?
└ 말이 되는 소리, 다혈족 불가능하잖아.
└ 아니 가능함. 내가 봤음. 옵티멈의 ‘악신’ 혈족 두 개 사용함.
└ 악신이라면 송새벽이잖아. 송새벽 박기혁 제자 아님? ㅋㅋㅋㅋㅋㅋㅋ
└ 근데 얘들아.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이미 두 딸이 있는 걸로 아는데. 박봄이랑 박헤나라 했던가.
└ 봄이 헤나 귀여어~
└ 귀여어!
└ 봄바라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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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양이나 친자 같은 단어는 신고합니다.
└ 애한테 상처 되는 말은 하지 마세요.
└ 근데 엄연히 말해 둘은……
└ 이보세요. 위엣분. 어깨 위에 있는 건 장식이 아닙니다.
└ 생각을 하고 키보드를 누르세요. 죽고 싶지 않으면.
이렇듯 박기혁과 진유리의 결합은 가문으로나 실력으로나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지 얼마 안 되는 시간.
여전히 둘의 결혼식으로 시끄러운 이때.
마침내 오늘, 청첩장이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