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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227화 (227/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8화>

몰래 빠져나온 세 소녀가 빠른 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전통 시장. 수학여행 며칠 전부터 벼르던 코스였다.

“할머니가 그랬어! 그 나라의 정취를 생생하게 느끼려면 서민들이 가는 시장을 꼭 가야 한다고!”

“그럼, 그럼.”

“자기 주도적인 학습! 앞장서는 리더십! 그것이야말로 회장의 덕목!”

“좋아, 좋아.”

봄이가 호들갑을 떠는 건 일상이다.

한데, 평소라면 말려야 할 헤나까지 저렇게 부추기면 이건 아무리 임현지라도 막기 힘들었다.

“……할머님은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게 아닌 것 같은데…….”

왜일까. 맑은 하늘 저편에서 김연희의 얼굴이 아련하게 보이는 것 같다.

“얘들아, 그거 아니야…….”

한편 세 소녀가 웃고 떠드는 사이, 시장 상인의 시선이 세 소녀에게 집중된다.

일단 피부색부터 눈에 확 띈다.

한 명은 자신들과 비슷해도 둘은 동양인. 하지만 이런 사소한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아름답다.

셋 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미녀다.

당연히 시선이 쏠릴 수밖에.

다만 우스운 건, 이들 중 누구도 이들을 초등학생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박봄과 박헤나의 키는 이미 160을 넘겼으니까. 그나마 작은 임현지도 150 중반 즈음이다. 나이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성장.

여담이지만 이게 모두 박기혁 때문이다. 주말 수업 때마다 그렇게 영약을 먹여 댔으니 애들이 무슨 콩나물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 것이다.

“여기는 노점이 별로 없구나. 전부 상가 안에 들어가 있어.”

“그러게. 시장이라고 해서 한국이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르네.”

“날씨 때문이야. 워낙에 덥잖아. 햇볕도 강하고. 이 정도 더위면 식료품도 식료품이지만 의류도 손상될 수 있어. 그래서 상가마다 저렇게 천장이 있는 거야. 모두 더위 방지용이지.”

“그렇구나. 날씨 때문이구나.”

“역시 현지. 똑똑 박사야.”

“있어 봐. 이럴 줄 알고 내가 메모해 놨거든. 저기 저쪽에 보이는 게 대추야자라는 건데, 대추야자가 뭐냐면…….”

임현지의 조리 있는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봄이와 헤나.

얼마나 재미있는지 반쯤 넋을 놓고 들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둘의 손에 대추야자 박스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야?”

“딱 먹을 만큼만 산 건데?”

“한 끼에 다 먹어.”

이밖에도 대추야자와 마찬가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특산품인 향수를 사러 향수 가게에 들렀다.

머스키한 향이 물씬 풍기는 향수. 우드 향수라는데 나무와 산을 좋아하는 헤나의 취향 저격이었다.

“지르자!!”

“카드!”

“난 모르겠어. 여기 계산 좀 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길을 가다 눈에 확 띄는 목걸이를 샀다.

색색의 구슬을 엮어 만든 목걸인데, 색이 영롱한 게 딱 봄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렇게 알차게 쇼핑은 끝!

셋은 광장 한편에 앉아 음료수를 마셨다.

“히야, 시원하다. 알찼어 쇼핑. 마음에 쏙 들어.”

“나오길 잘했다. 테마 파크보다 훨씬 재미있어.”

“그래도 돌아가야 되는 거 알지? 슬슬 시간 다 돼 가.”

“알았어요, 현지 엄마.”

“맘, 잔소리 그만해요.”

“엄마 말 좀 들어, 이것들아. 내가 너희들 때문에 늙어요!”

“푸하하하! 목소리 이상해!”

“현지 바보 같아.”

“히히히.”

신나게 키득대던 세 소녀, 주변을 바라본다.

잘 조성된 광장에는 인공 호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지나치는 수많은 인파들.

하나같이 전부 세 소녀만큼이나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 멍하니 물가에서 발을 담구고 있는 남녀를 보던 헤나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이슬람 내전 때문에 중동으로 여행 안 온다고 하던데, 여기는 전혀 아닌 것 같아.”

“그러게. 할머니가 조심하라고 걱정하셨는데 그럴 필요 없었어.”

둘의 물음에 이번에도 답을 내려 주는 건 현지.

“중립국이잖아. 중동에서 제대로 된 중립국은 여기 사우디아라비아밖에 없거든. 그러니 상인들이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오게 되고, 시장이 커지는 거야.”

“오히려 내전 때문에 이득 본 경우였네.”

“재미있는 거 가르쳐 줄까? 무함마드 왕이 적극적으로 관광산업을 키우고 있다고 해. 이 광장도 그 일환이고. 우리가 다녔던 시장이 관리가 잘된 것도 그 때문이야.”

“헤, 엘의 오빠가.”

“어쩐지 깨끗하더라니. 근데 현지야, 뭐가 재미있다는 거야? 하나도 재미없는걸?”

“계속 들어 봐. 참고로 너희랑도 연관된 거야.”

중동의 다른 나라들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리는데, 이곳 사우디아라비아만 한가하게 관광 산업이나 발전시키고 있다.

낡은 시장을 뜯어고치고, 멋들어진 광장을 재조성하며 중동의 타국과는 극과 극으로 온도 차이가 나 버린 것이다.

“실제로 다른 중동 국가들은 이 나라를 미워한다고 해. 알라를 배신하고 돈에 눈이 먼 돼지가 됐다며.”

임현지가 단순히 미워한다, 라며 순화시켰지만 사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동 내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한 증오는 도를 넘은 수준.

근데 이 부분에서 이상하지 않나?

그렇게 증오한다면 왜 이 나라에 쳐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아닌 말로 지금 중동은 내전 중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 나라가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인접 국가들의 시비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전이라는 전화의 불길에 휩쓸리지 않을 확고부동한 무력.

여기까지 듣자 뭔가 생각난 봄이.

“아! 알겠어. 옵티멈 때문이지?”

“맞아.”

현재 셰이드 왕가를 대표하는 무력은 집행인이다. 은신과 잠행에 특화된 최정예 전투 집단이자, 무함마드 왕의 날카로운 칼.

그리고 이 집행인을 만들 때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협조했던 게 옵티멈인 것이다.

“할머니가 중동 지사에 힘을 줬다고 그랬어.”

“맞다. 생각나.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장이라며, 왕 아저씨가 똑똑해서 투자할 만하다고 하셨어.”

“그것도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너희들 때문인 것 같아.”

곁에서 지켜본 임현지는 누구보다 잘 안다.

이 두 친구가 가진 규격 외의 잠재력을. 또 기혁 아저씨의 제자들이 얼마나 인간 같지 않은지.

봄이도, 헤나도, 엘도, 올리버도.

전부 하나같이 전설을 써 내려가도 모자라지 않은 천재들이다.

임현지는 김연희가 미래에 투자했다고 여겼다.

여기 있는 천재들의 미래에 말이다.

“너희들이 사이좋으니까 대표 할머님도 아낌없이 투자하시는 걸 거야.”

“음, 맞는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그러니까! 할머님 속 썩이지 말고 이제 돌아가자. 시간 다 됐어. 곧 있으면 2시간이라고.”

“벌써 그렇게 됐어? 그래, 가자.”

“재미있었어. 대만족.”

그렇게 자유 여행을 충분히 즐긴 세 소녀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만족스러움에 입가에는 세모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거야 그렇고, 우리야 즐거웠지만 저쪽은 초비상 아니겠나.

양심이 찌릿찌릿하다.

이제 와 생각하니 조금 미안한 봄이었다.

생각난 김에 이스마일에게 연락도 할 겸 휴대폰을 꺼내는데.

그런데, 그때.

불현듯 스쳐 가는 감각.

찰나의 순간,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멈춘다.

오소소, 돋아나는 솜털.

틀림없다. 이건……

‘피 냄새!’

표정이 지워진다.

세상 순수했던 봄이는 없다.

화사했던 미소가 걷힌 자리. 포식자의 모습을 한 박봄이 깨어났다.

옆을 보니 헤나도 마찬가지. 헤나의 검은 동공이 벌집 모양으로 균열이 나 있었다.

“헤나야.”

“알아.”

“너희들 왜 그…….”

“쉿.”

“현지야, 우리한테서 떨어지지 마.”

“온다……!”

순백의 실드가 펼쳐지는 순간.

콰아아아아앙-!

콰르릉-!!

*   *   *

화염이 내려치고 있는 도심.

고막을 때리는 폭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불꽃이 빠른 속도로 옮겨 붙는다. 파멸적으로 주변을 잠식하는데, 미리 숨겨 둔 폭약들이 2차로 폭발.

이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그리고 이때, 끼익! 요란한 브레이크음을 일으키며 멈춰 서는 차량들.

이 혼란을 일으킨 원흉의 등장이다.

터번을 쓴 남자들이 우수수 차량에서 내리더니.

“모두 싣고 뜬다.”

“인질부터 회수해.”

“시간 없어. 빨리 가!”

이들의 정체는 ‘신의 탐구자’.

쉽게 말해,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이었다.

내전에서 패배했던 잔당들이 중립국인 사우디아라비아로 숨어 들어온 것.

한데 숨어 들어왔으면 조용히 있으면 될 것을, 이 미치광이 광신도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습에 분노했다.

자신과 자신의 조국은 알라를 위한다는 신념을 지키고자 전쟁의 불길에 온몸을 내던졌는데, 이곳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억울했다.

투철한 신념을 지닌 자신들은 이렇게 비루하게 살아가는 게.

화가 났다.

탐욕에 신념을 버린 저들이 행복해하는 게.

그래서 ‘신의 탐구자’는 움직였다.

빈민층들을 중심으로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또 다른 광신도를 육성한 것이다.

하지만 무함마드 왕의 시대에 들어 최고의 호황을 이룬 사우디아라비아.

빈민층이 생각 이상으로 적었다.

결국 광신도 육성이 뜻대로 되지 못한 ‘신의 탐구자’는 차선책으로 이 나라의 음지를 접수하려 움직이는데.

그때 등장한 게 집행인이었다.

중립국이다 보니 이런 일이 다반사였고, 집행인들은 이미 그들이 굴러들어 온 것을 눈치채고 있던 것이다.

다음은?

간단하다.

졸개들은 즉결 처형. 수뇌부는 체포되며 마무리.

신문에 굳이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테러는 이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오늘 그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터번을 쓴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품에서 시가를 꺼낸 남자. 타고 있던 불길의 잔해로 시가에 불을 붙였다.

“후우~ 집행인들이 오기 전에 정리해야 한다. 신속히 움직이도록.”

이건 목적 없는 분노로 일으킨 테러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

시장과 광장을 불바다로 만들어 이 나라 또한 내전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첫 번째요.

혼란에서 최대한 많은 인질을 확보, 거래를 통해 감옥에 갇혀 있는 수뇌부들을 구출하는 것이 두 번째다.

목적이 확실해서일까, 아니면 훈련이 철저해서일까.

이들의 작전은 거침없었고, 또 굉장히 신속했다.

폭발이 일어난 지 십여 분도 안 되는 시간. 마련해 놨던 수송차량이 거의 다 차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지?”

- 조금이면 됩니다.

“조금은 없어. 확실하게.”

- 3분이면 됩니다.

“알았다.”

인질을 확보하는 것은 거의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확보한 인질들을 데리고 이곳을 탈출하는 것.

이에 필요한 것은.

커다란, 세상을 삼킬 만큼 커다란 화염이니.

사내가 시가를 문 채 지팡이를 내려찍었다.

딱-!

사내를 중심으로 확장되는 마법진들이 시장을 거쳐, 광장마저 잠식했다.

명백히 사내의 실력을 벗어난 규모의 마법진. 미리 숨겨 놓았던 마석이 있었지만, 그것으로도 설명이 될 수 없는 규모였다.

그리고 이 의문의 답은 곧 드러난다.

여기저기 흘러내린 피들이 깔려 있는 마법진으로 스며드는 것.

테러로 죽은 사망자들을 이용해, 잠깐이지만 닿지 못한 경지에 오른 것이다.

준비 끝.

이제 발현만 남았다.

“아무리 집행인이라도.”

이 정도나 되는 피해를 단번에 수습하고 우리를 추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내가 지팡이를 내려쳤다.

어스퀘이크

Earthquake

대지가 진동한다.

이제 곧 지진이 일어나며 일대가 초토화되겠지.

사내는 자신이 만들 참상을 상상하며 히죽, 웃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또 시간이 지나도…… 마땅히 일어나야 할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미약한 진동만이 마법이 발현됐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다.

뭔가 잘못됐다.

사내가 깨닫는 순간 동시에 뛰었다.

‘뭐, 뭐지?’라는 3류 악당 같은 대사를 내뱉으며 멍청하게 사태를 관망하지 않은 것만 해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대처였다.

“빨리 출발해!”

“아직 인질이…….”

“시간 없어! 당장 이곳을 떠야 해!”

사내의 명령에 수하들이 급히 차량에 올라타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끼이이이익-!!

공회전을 하는 바퀴들.

운전수가 당황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이게 무슨……!”

차량이 떠 있다.

십여 대의 군용 수송 차량이 지면에서 떠 있다.

혈마술

혈족 소환

박봄의 16마리 혈족들이 수송 트럭을 번쩍, 들고 있던 것.

이를 모르는 테러범들은 당황했고, 이 잠깐의 당황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박봄이 말한다.

“난 인질.”

박헤나가 말한다.

“난 녀석들.”

맹수의 눈과 곤충의 눈을 한 두 아이가 도약, 단숨에 차량에 안착하고.

각자의 역할로 들어갔다.

박봄이 맨손으로 문을 찢어 인질들을 구출했다.

“포실아.”

마룡기

박포실

포실포실, 슬라임 모습을 한 박포실이 인질들을 다 삼키고, 옆 차량의 인질들을 구하러 건너갈 때.

헤나는 피를 보고 있었다.

운전선 문을 잡아 뜯은 헤나가 창을 뻗는다.

섬전 같이 쏘아지는 창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테러범들…… 몸에 구멍을 뚫어 버렸다.

“커헉!”

“끄악!!”

배, 어깨, 허벅지에 구멍이 뚫린 채 나가떨어지는 테러범들.

심장을 꿰뚫으면 더 확실하지만, 아버지가 아직은 사람 죽이지 말라고 해서 놔두는 거다.

경멸하는 눈으로 쓰러진 테러범을 한차례 흘겨본 박헤나는, 박봄과 마찬가지로 다른 차량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렇게 불과 몇 분 만에 인질들을 모두 구한 박봄.

대검을 들고 밖에 나오자 전투 중인 헤나가 보인다.

이쪽은 문제없다.

오히려 저쪽, 저 멀리…… 도망치는 저 남자.

놈을 잡는 게 먼저다.

“멀어.”

확실히 실력자.

그 틈에 도망간 거리가 꽤 된다.

애매하다.

그때, 불현듯 아빠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애매할 때는 확실한 걸 때려 박아야 해.”

“확실하게.”

대검을 양손으로 잡는다.

대검의 날 끝이 태양을 삼킬 듯 치솟고, 이를 받치는 다리는 대지와 한 몸이 된다.

까드드득, 까드드득…….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박봄의 신체 곳곳에서 하얀 마나가 일렁이는 순간.

“후우.”

호흡과 동시에 대검을 내려친다.

아빠가 가장 좋아하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검술.

검호류 강검술

산사태

내려친 검격을 중심으로 해서 일렬로 대지가 무너졌다.

초토화되는 길목. 차량도, 전봇대도, 건물도 흙더미에 모두 파묻혀 갔고.

끝내.

균열은 도망치던 남자를 집어삼켰다.

“후…….”

성공했다.

겨우 웃음을 내비치는 봄이.

근데 이내 심각해진다.

테러범들을 잡은 것에는 성공했는데……

폐허가 돼 있었다.

주변 일대가.

“이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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