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6화>
진정한 부가 뭔지 보여 주겠다는 이스마일의 말대로, 아이들은 압도적인 부의 향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무리 여기 있는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명문 혈족의 자제라지만…… 그래 봤자 가문이다. 감히 왕실과 비견할 수 있을까.
동원할 수 있는 부의 척도가 차원이 달랐다.
옆을 보면 황금이고, 다시 옆을 보면 보석이 즐비했다.
개개인에게 붙어 있는 수행원과 경호원들은 심혈을 기울여 손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으며, 우연히 뭔가 원한다는 눈치만 보이면 가격 불문 당장 그 물건을 손에 쥐여 줬다.
단순히 접대라는 의미를 넘은 수준.
아무리 왕가의 손님이라도 지나치게 저자세였다.
실제로 대신들 몇몇은, 아무리 국가의 보물이라는 이스마일 왕자의 친구들이라도 이토록 왕실이 굽힐 필요가 있느냐고 떠들기도 했다.
하지만 무함마드 왕은 그런 대신들의 수군거림에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쯧, 짐이 누누이 시야를 넓게 가지라고 했거늘…… 여봐라, 다들 생각이란 것이 없는가?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게. 개울을 보지 말고 저 드넓은 대양을 보란 말일세. 짐의 뜻이 거기 있거늘, 어찌 몰라주는가.”
저들이 누구인가.
단순히 사랑해 마지않는 동생의 친구인가?
아니다.
저들은 한국의, 그것도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명문 혈족의 자제들이며, 어린 나이임에도 찬란한 재능을 개화한 미래가 보증된 실력자들이었다.
한국.
명문 혈족.
미래가 보증된 재능.
무함마드 왕이 눈여겨보는 건 이 부분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현재 세계정세는 몹시 혼란스럽다. 중국은 침략 전쟁에서 패배하여 유리 조각처럼 부서지고 있고, 주변국들도 피해에 허덕이고 있지. 그렇다고 유럽은 전쟁의 여파에서 자유롭나? 그럴 리가. 그들도 피폐해지기는 마찬가지지.”
중국은 막대한 노동력을 앞세우며 세계의 공장 역할을 했다.
냉정히 말해, 중국의 폭주로 피해를 입지 않은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힘든 상황.
이런 힘든 시기에도 빠르게 수습한 몇몇 나라가 있었으니.
방대한 지하자원을 가진 러시아와 탄탄한 내수 시장을 갖춘 미국.
마지막으로, 한국이었다.
“전자인 러시아와 미국은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은 경우이니 제외하겠소. 어차피 우리와는 관계도 좋지 않으니.”
“놀랍게도 한국은 이번 침략 전쟁에서 참전국이었으나, 침략에 저항하는 것도 모자라, 사실상 전쟁의 마침표를 찍었지.”
무함마드 왕은 한국의 저력에 깊이 감탄했다.
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는 땅도, 인구도, 이렇다 할 지하자원도 갖추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할 하나를 갖췄다.
힘.
막대한 초인 전력 말이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소? 현재 짐의 궁전 안에 있는 저들은 한국의 기둥이 될 거란 말이오. 과장 조금 보태자면, 차기 한국의 초인 전력을 주도할 아이들이란 말이고.”
저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면 차후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할 터.
현재 옵티멈과 함께 여러 사업을 벌이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이는 몹시도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결국 모든 게 이 나라를 위한 투자.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건 짐이 이해할 터이다. 그럴 만하다고 여기니. 단……”
혹여나 초를 치거나, 실수한다면…….
“기대해도 좋을 것일세.”
왕의 경고가 대신들에게 들이박혔고.
그렇게, 수학여행 1일 차의 날이 저물고 있었다.
* * *
밤늦은 시각의 왕궁.
귀한 손님들을 위해 마련된 방에서는 아이들이 방방 뛰고 있었다.
“우와, 침대 무진장 커!”
“폭신폭신해. 진짜 부드러워. 깃털 같아~.”
“어? 여기 게임기 있었네! 나랑 붙을 사람!”
“우와, 이거 나 사고 싶었던 건데. 나랑 하자!”
“뭘 모르네. 수학여행은 베개 싸움이거든! 베개 싸움할 사람 모여라!”
“나! 나!!”
“조용해~! 우리 프리즘 보잖아!!”
“오빠 파트라고. 저기 가서 놀아!”
“햐, 존잘. 진짜 잘생겼어.”
“근데 저 오빠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올리버 닮지 않았어?”
“그래서 잘생긴 거거든.”
“맞지, 맞지.”
“잠깐. 나 좀 봐 줘. 짠! 이 옷 괜찮아?”
“우와, 예뻐! 예뻐! 공주 같아. 나도 입어 볼까!!”
“너도 선물 받은 옷 있지? 입어 봐. 얼른.”
“잠깐만 기다려.”
침대가 부서져라 방방 뛰는 아이들.
한편에선 부모님이 끝내 사 주지 않는 최신형 게임기를 붙잡고 있었고, 그 너머에서는 격렬한 베개 싸움이 한창이다.
반면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끼리 모여 있다.
오늘 선물받은 패드를 껴안은 채 저마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자랑하기 여념이 없다가, 누군가가 선물받은 옷을 입고 나오자 곧바로 작은 패션쇼가 펼쳐졌다.
잠에 들 시간은 한참 지난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휘황찬란했던 환영식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일까, 쉬이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오늘도 뭉쳐 있는 세 소녀.
박봄, 박헤나, 임현지.
용호 재능 교육관의 트리오였다.
“멋져! 역시 선물 이모! 용기 있는 자가 사랑을 쟁취. 크으~! 너무너무 멋져!!”
침대에 누워 있던 박봄이 천장으로 주먹을 내지르며 말했고.
“근데 엉덩이의 매력이 뭘까. 도통 모르겠어. 정말 크면 알게 되나? 헤나는 어떻게 생각해?”
봄이 옆에 있던 임현지는 씰룩이던 봄이의 엉덩이를 보며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데.
“많이 생각하지 마. 각자의 취향이겠지.”
이에 머리를 말리던 박헤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조금 전 메르헴의 연애 시절 이야기에 푹 빠진 박봄, 박헤나, 임현지.
선물 공세에 취해 있는 다른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평소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하다는 세 아이다웠다.
“근데 내일 일정이 어떻지?”
“놀이공원 간다고 안 했어? 나는 그렇게 아는데. 잠깐만.”
헤나의 말에 일정을 들추는 현지.
살림꾼 현지답게 폰에는 일정으로 한가득이었다.
“여기 있네! 맞아. 놀이공원 갔다가, 서커스 공연 보고, 쇼핑센터에서 자유 쇼핑하고, 궁전으로 돌아오는 거야.”
“또 선물이야. 하여튼 엘 이 녀석은 적당히라는 걸 몰라.”
“훗. 엘도 집에 와서 좋은 거겠지. 좋게 봐줘.”
“우쭐해져서는……”
“진정, 진정. 우리 헤나 착하지.”
“칫. 아무튼 마음에 안 들어.”
“봄이도 그만 바둥대고.”
현지가 진정하라며 팔을 쭉 뻗어 끌어안자, 툴툴되던 헤나는 거부하지 않고 현지의 품에 안긴다. 동시에 현지는 여전히 ‘멋져! 멋져! 이모 멋져!’라며 깨방정을 떠는 봄이를 진정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기한 노릇이다.
박봄과 박헤나.
누구보다 강인하며, 비범하기로 유명한 두 아이가 임현지의 말은 제법 잘 듣는 모습이다.
마치 엄마 같다고나 보일까.
그리고 이건 실제로도 그러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헤나나 봄이나 마이 페이스인 경향이 짙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 같다고나 할까.
김연희는 이를 보고는 ‘제 아빠를 보고 배워서’라며 가슴을 칠 정도였다.
영특했던 임현지는 단번에 자신의 포지션을 찾았다.
내가 얘들을 챙겨 줘야겠구나. 아니면 큰 사고 나겠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둘을 살살 달래 진정시키거나, 안 되면 터질 장소와 위치를 컨트롤해 주는 것.
이게 이 세 친구 내에서 임현지의 포지션이었다.
이른바 컨트롤러랄까.
이건 단순히 아이의 처세 따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둘의 할머니인 김연희, 옵티멈의 마녀라 불리는 그 김연희가 임현지를 앉혀 놓고 부탁한 것이다.
“현지야. 할머니는 말이야, 현지가 남 같지 않아요. 어쩜 이렇게 착하고 올바른지. 그에 비하면 우리 애들은…… 하아……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봄이랑 헤나가 좀 말썽쟁이니? 정말 할머니는 말이야, 현지 같이 지혜로운 아이가 우리 애들과 친구해 주는 게 너무 고맙고 감사해. 정말이야.”
이게 끝이냐.
천만의 말씀.
진룡가의 안주인이자, 이번 침략 전쟁에서 눈부신 성과를 냈던 성갑기마대의 단장 유해련도 임현지를 만날 때면 항상 용돈을 쥐여 준다.
애들을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봄이와 헤나의 외할머니예요. 현지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어요. 아무쪼록 우리 애들이랑 잘 지내 주세요.”
여기에 마지막.
애들의 엄마가 된 진유리도 잊지 않았다.
“아줌마 번호야. 언제나 전화 걸어도 돼. 알았지?”
옵티멈의 마녀 김연희에, 진룡가의 안주인 유해련. 그리고 마룡 진유리까지.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인맥을 겨우 이 나이에 맺은 것이다.
보통의 아이라면 우쭐해도 되는 상황. 아니, 굳이 아이가 아니라도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하다.
하지만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봄이와 헤나가 어울리는 임현지도 보통이 아니었다. 비록 무력과 재능은 부족할지언정 반짝이는 지혜로움을 가졌으니.
임현지는 오만해지기는커녕, 나이에 맞지 않게 겸손하고 신중하게 됐다.
“이제 잘 시간 다 됐어. 불 끄자.”
“박봄, 불 꺼! 현지가 불 끄래. 야, 박봄! 뭐야. 얘가 갑자기 이상한 표정 짓고 있어.”
“흐음…… 고민 중. 고민 중.”
“됐어. 내가 끌게.”
현지가 상냥하게 웃으며 불을 끄고, 세 사람이 같은 이불에 쏙, 들어갔다.
“잘 자.”
“현지도 잘 자.”
“봄이는 인사 안 해 줘?”
“냅둬.”
그 순간.
박봄이 ‘고민 중…… 고민 중…….’이라고 중얼거리다, 눈을 빛내더니.
“고민 끝!”
몸을 옆으로 누이며 전투적으로 묻는다.
“너희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
“푸웁-!”
“……또 시작이니?”
잠?
어림도 없지!
아직 우리의 밤은 길다!
박봄의 황당한 물음에 뿜어낸 것은 임현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은 헤나였다.
“왜 있잖아. 눈만 마주쳐도 가슴이 콩닥거리고,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오밤중에 시작된 사랑학개론.
둘은 이제 그러려니 했다.
모든 아이들의 귀감이 될 만큼 점잖은 박봄.
선생님들의 기대, 학부모님들의 부러움과, 아이들의 존경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박봄이지만, 그들은 모른다.
이 완벽한 아이가 실은 제 식구 앞에선 누구보다 발랄하고 엉뚱한 아이 것을.
이런 봄이의 엉뚱함에 박기혁은 ‘네가 묻었다.’며 진유리를 타박했지만, 진유리는 오히려 봄이를 둥기둥기 하며 ‘봄이 하고 싶은 거 다해.’ 격려해 줬다.
“좋아하는 사람 없어? 있을 거야! 나한테만 살짝, 아주 살짝 말해 봐. 비밀 지켜 줄게!”
언니 믿지? 에헴!
봄이가 가슴을 펴며 의기양양하게 말하지만 현지와 헤나는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저기 봄아. 너도 알다시피 우리 매일 붙어 다녀. 엄마보다도 많이 보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미 다 알지 않았을까?”
“질문도 그래. 너 며칠 전에도 똑같은 질문했다. 좋아하는 사람 없냐고. 생각해 보니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네. 이 정도면 붕어 맞는 듯.”
“아니이~ 잘 생각해 봐아.”
“잠깐만! 헤나 말대로 요즘 계속 이 주제네? 이거 수상한데…….”
“그치?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이 정도면 합리적 의심이 들잖아.”
“너희들끼리 무슨 말이야?”
“혹시 봄아,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헉! 그게 무슨 말이야.”
“괜찮아. 우리한테만 말해 봐. 아버지한테는 말 안 할게.”
“가, 갑자기 나는 왜!”
“수상해. 몹시 수상해.”
“그치? 추궁이 필요하겠지?”
“헥?!”
“응. 헤나야, 잡아.”
“박봄, 거기서.”
“자, 잠깐. 다가오지 마! 만지지 마! 악, 간지러워어~! 항복! 항복!”
이불 속에서 아이들이 마구 뒤엉킨다.
우당탕탕!
순식간에 엉망이 되는 잠자리. 그래도 세 아이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 * *
그러나.
세 소녀가 우애를 쌓았다면, 이쪽은 사뭇 다르다.
왕궁에 마련된 공터.
달빛을 벗 삼아 두 소년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른다.
마나의 기류가 찌릿찌릿, 전격을 토해 낸다. 서로가 장악한 영역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의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겨우 이 나이 때 소년들이 만들었다기에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너 마음에 안 들었어.”
목검을 든 이스마일의 이마가 반짝인다.
검왕의 씨앗, 성운이 ‘변화’의 묘리를 뿜어 낼 때.
“모처럼 마음이 통했네요.”
손짓 한 번으로 이스마일의 기운을 거둔 소년.
올리버.
불가사의의 근원이 주변을 잠식했다.
“제대로 붙어 보자.”
“내기를 시작해 보죠.”
둘이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