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23화 (223/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외전 4화>

드넓은 활주로.

오직 비행기만이 오가는 이곳에 수백 명의 관리인들이 들이닥쳤다.

일사불란하게 줄을 선 관리인들.

그들의 앞으로 한 노인이 나섰다.

고풍스러운 검은 정장에,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흰 장갑을 착용한 노인. 왕족들 사이에서는 친근함을 담아 ‘할아범’으로 불리는 수석 집사였다.

“오늘 우리는 왕실을 대표해 귀빈들을 모시게 될 겁니다. 이미 충분히 회의했지만 전하가 각별히 관심을 가지시는 귀한 손님들. 몇 번을 설명해도 모자랄 겁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설명하겠습니다.

노인의 말에 관리인들이 전부 수첩을 빼 든다.

수석 집사는 대를 이어 왕실을 보필한, 셰이드 왕가가 가장 신용하는 가문의 장자였다.

그래서일까? 왕실은 노인에게 왕족인 메르헴 공주와 이스마일 왕자를 맡겼다.

둘 모두 역대 최고의 현군이라 불리고 있는 무함마드 왕의 동생들.

무함마드 왕이 동생들을 끔찍이 아끼는 만큼, 그의 권력은 고위 귀족들조차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

“……청결함은 기본입니다. 청소 팀은 회의가 끝나는 즉시 활주로를 정비할 겁니다. 여기 오기 전 저희가 귀빈들이 묵을 궁전을 청소한 것처럼 먼지 한 톨도 보이면 안 될 겁니다.”

모실 차량은 귀빈들의 취향에 맞춰 세단보다는 오픈이 되는 하이퍼카. 도로 통제를 맡은 팀은 이 점 각별히 유의. 귀빈들이 움직일 동선 체크…….

귀빈들의 정보를 숙지해 알레르기, 취향, 선호하는 음식 등을 고려해 식사 메뉴 선정하고 식당을 섭외.

더 나아가 섭외한 식당의 재료의 신선도 및 상태 체크.

그리고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란.

“……떡볶이 집은 무조건 경유해야 합니다. 무조건! 귀빈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이 떡볶이를 아주 좋아하십니다. 절대 잊지 마십시오.”

떡볶이를 아주 좋아하는 중요한 손님.

박봄과 박헤나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게 그분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지만…… 노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말을 아꼈다.

그 후로 몇 가지를 더 언급한 뒤 짧지만 밀도 높은 회의가 끝났다.

이제 움직일 시간.

“한 치의 소홀함도 용납하면 안 됩니다. 시작하죠.”

노인을 필두로 관리인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왕실의 전용기가 활주로에 안착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레드 카펫이 깔렸다. 곧이어 왕실 근위복을 입은 군인들이 레드 카펫 주위를 보호하듯 시립했으니.

아이들이 환호했다.

“우와아아!”

“멋져어!!”

“대단해에!”

기계처럼 한 몸처럼 움직이는 근위대.

거의 기예에 가까운 제식.

근 한 달을 준비했을 만큼 완벽한 호흡이었다.

이어서 근위대 뒤에 있던 군악대가 팡파르를 울리고, 음악에 맞춰 무희들이 환영의 춤사위를 벌인다. 형형색색의 조명들은 한층 더 무희들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드넓은 활주로가 일순간 공연장이 됐다.

화려함에 눈이 멀 것 같다.

정신을 못 차리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곁으로 무희들이 나풀거리며 다가선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이들의 목에 환영의 꽃목걸이가 걸리는데, 근데 이 꽃…… 이상하다. 금색의 꽃인데 단순히 금박을 한 것치곤 지나치게 단단하다.

그렇다.

이 꽃목걸이는 전부 금이다.

24K 순금 말이다.

왕의 어머니인, 파티마 대비가 장인에게 주문해 한 땀 한 땀 만든 순금 꽃목걸이였다.

아이들은 목에 걸린 순금 꽃목걸이를 보며 눈이 빛난다.

“허업!”

“빛나!”

“예뻐라!”

아직은 순수한 아이들. 이 목걸이의 가치보다는 아름다움에 눈이 먼다.

반면 뒤따르는 선생님들은 좀 달랐는데.

“이거 금 맞죠?”

“네, 맞습니다. 순금이에요.”

“……미쳤네요.”

지도 선생님으로 따라왔는데 상상도 못 한 선물을 받았다.

왕실이 직접 의뢰한 순금 꽃목걸이 가치가 얼마일까?

몇몇은 몸을 떨었다.

그 순간.

이스마일이 인파를 뚫고 나온다.

‘내가 호스트인 만큼, 오늘은 내가 대장이야.’

오늘이야말로 봄이에게 나 이스마일의 남자다움을 보여 줄 테다!

굳은 결의를 품고서 앞장서는 이스마일이었는데…….

“봄아, 저기!”

“응?”

헤나의 손길이 닿는 곳. 저 멀리, 레드 카펫 저편에 보이는 여인.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새빨간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채, 한 손에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

항상 봄이한테 한아름 선물을 줘, 선물 이모라 불렸던 셰이드 메르헴이었다.

앞장서는 이스마일을 쌩, 하고 지나친 박봄.

근위대가 시립하고 있는 레드 카펫을 쏜살같이 주파했다. 아이가 내달리는 속도를 아득히 벗어난 움직임.

순간 시립했던 근위대들조차도 흠칫할 정도였지만, 그 끝에 있던 메르헴은 태연하게 무릎을 굽히며 남은 한 손을 내밀었고.

포옥, 안겼다.

“이모오!”

“봄이 양, 어서 와요. 보고 싶었어요.”

그 순간.

미리 준비했던 폭죽들이 쏘아지고.

허공을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수놓았다.

역대급 수학여행의 시작이었다.

*   *   *

한편 박봄과 아이들이 환영을 받으며 왕궁으로 향하던 그때.

사우디아라비아의 어느 시장 뒤편. 인적이 드문 동네에서는 긴장감이 감돈다.

음습한 분위기의 빈민가.

사람들이 발길이 닿지 않는 곳.

범죄자들의 은신처로 사용되기 딱 좋은 환경이었고, 캄캄한 어둠 사이로 한 남자가 들어선다.

- 구역 봉쇄했습니다.

- ‘미치광이’들이 모이는 것 확인했습니다. 내전에서 패배한 잔당들로 보이며, 무장 상태 4레벨. 전원 중급 이상의 아티팩트로 무장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저들이 말하는 ‘미치광이’의 정체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몇 년 전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오직 알라만이 유일신이리라.’라는 기치를 들고서 아프리카 연합을 차지하려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아프리카 연합의 수호령 에우리아까지 건드는데, 하필이면 박기혁에게 걸려 수뇌부들이 다 갈려 나가게 되었다.

과격하고, 폭력적이며, 그릇된 신념에 미쳐 버린 광신도들.

이 비뚤어진 광기를 이끌던 선장이 사라지며 그들은 폭주. 대(大)이슬람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이슬람 종교인들은 각자의 신념을 증명하는 성전이라 말하지만, 제삼자가 보기에는 한 줌이라도 더 많은 이득을 차지하려는 추악한 발버둥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 현재에 이르러, 지금까지도 이 추악한 발버둥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내전의 불길은 사그라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층 더 격화해 중동을 화약고로 만들고 있었다.

한편, 여담이지만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눈부신 성장에는 이 이슬람 내전이 큰 기여를 했다. 중동이 내전의 불길에 휩쓸릴 때, 유일하게 그 불길에서 살아남은 국가가 이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였기 때문이다.

“짐은 이성적으로 나라를 이끌 것이다.”

무함마드는 왕위에 오르며 허울뿐인 종교와 교리보다는 빵과 안전을 제공하겠다, 천명한다.

상권을 발전시키며, 종교를 억누른다.

계급과 차별을 파격적으로 깨부수며, 이 나라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정확하고, 신속하게 행동했다.

그 결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모조리 숙청, 중동의 유일한 평화국이자 중재자로 떠오르며 반사 이익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익의 중심에 등장한 무력.

집행인

모든 법령을 초월한 무함마드 왕의 검이었다.

그리고 이 집행인의 수장은.

한준우.

이 남자였다.

“늦어. 시간 없다. 여기는 내가 맡지.”

- 그렇다면 저희는 다른 쪽에 집중하겠습니다.

- 최소 인원만 남기고 이동.

인원이 빠지는 것을 확인한 한준우가 혈족을 깨운다.

혈족, 무희(舞姬).

감각이 무한히 확장되며.

이 구역의 지배권을 탈취.

준비 끝.

양손으로 검을 빼든다.

“돌입.”

허공에 오브를 던지며 도약, 순식간에 어둠을 주파했다.

오브에서 울리는 음악 소리.

그의 취향이 듬뿍 담긴 걸그룹 노래가 들려오고, 한준우는 그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발을 놀렸다.

“죽여!!”

“쏴! 쏘라고!”

빗발치는 총알과,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내려치는 마법의 폭격. 골목의 벽이 허물어지며 터번을 쓴 적들이 검을 빼 들고 달려든다.

잔해가 일으킨 먼지와 골목의 환경으로 콜라보로 전장에는 어둠이 짙어지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한준우를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검광들이 그려졌다.

쿵, 쿠웅!

음악에 몸을 맞기고 홀린 듯 검을 휘두르자 검의 궤적마다 처절한 비명이 쏟아진다.

비명이 또 다른 음악처럼 들려오며 기존 음악에 화음처럼 이어졌으니, 한준우의 몸놀림이 가벼워지며 춤사위도 한층 더 현란해졌다.

“젠장, 맞질 않아!”

“어디야! 어디냐고!”

“계약과 다르잖아! 이런 괴물이 있다고는……!”

공포가 전염될수록 비명은 짙어지고.

이는 한준우의 춤사위를 격정적으로 만들었다.

“끄악!”

빠르게.

“커흑, 살려 줘-!”

빠르게.

“비켜! 난 살아야겠어!”

더 빠르게.

도망갈 수 없다.

무희의 혈족이 발동한 순간, 이 어둠은 감각의 감옥으로 바뀌었으니.

이제 걸그룹 노래는 들리지 않는다.

미칠 듯 내지르는 비명 속에 죽음의 춤사위는 살기를 더해 갔다.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던 혼란의 불씨.

불씨는 몸집을 키워 가고 끝내, 찬란하게 발광한다.

그리고…… 허무하게 저물어 간다.

처절하게 울리던 비명도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도, 어둠을 수놓던 색색의 궤적도, 모두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종국에 닥친 침묵.

“…….”

골목 안.

혈향을 머금은 어둠을 뚫고 한준우가 나섰을 때, 골목 안은 적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처리 끝났다. 거기는?”

- 여기도 끝.

- 도망자 없음.

- 작전 완료.

- 수고하셨습니다, 마스터.

- 뒤처리 진행하겠습니다.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 낸 검이 검집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대기 중이던 차량에 급히 타 폰을 들었다.

“벌써 왔다고? 알았다. 최대한 빨리 갈게.”

폰을 든 한준우가 손을 휘젓자, 운전을 하던 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엑셀을 힘껏 밟았다.

차량이 도심을 질주했다.

*   *   *

부와 명예.

태어남과 동시에 이 모든 것의 정점을 누릴 수 있는 왕족.

그러나 그들이 못 누리는 딱 하나가 있었으니.

자유.

영원히 국가에 속박될 운명.

왕족의 숙명이었다.

국가가 없으면 그들도 없으니까.

명민했던 셰이드 메르헴은 이 사실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그때부터 모든 게 답답했다.

왕궁은 새장 같았고, 일상은 지루했다.

다가오는 이들은 전부 바보처럼 웃고 있고, 좋은 말만 한다.

그들이 말하는 세상은 천국의 꽃밭이었다. 어느 누구도 현실을 말하는 자는 없었다.

메르헴은 지쳐 갔다.

감정들이 시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일상이라는 게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당장이라도 이 새장을 탈출하고 싶었지만, 왕족이란 사슬은 그녀를 단단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대로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아.”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어? 어? 어어?”

“공주마마, 식사 시간ㅇ…… 에에?!”

식사 예절을 배우던 자리에서 나이프를 띄운 것.

마나를 느낀 것이다.

명민했던 메르헴은 자신이 이뤄 낸 기적의 크기를 똑바로 알았다.

또한 누구와 딜을 해야 할지도 잘 알았다.

“아바마마, 한국으로 보내 주세요. 아카데미에 들어가겠어요.”

아프리카 연합에도 아카데미가 있지만, 거기를 간다면 이 왕실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 곳으로 가자.

메르헴의 한국행은 그렇게 결정됐다.

결과론적으로 생각하면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되니까.

“너희들은…… 계속 너희라 부르니까 조금 그러네. 간단하게 통성명부터 하자. 난 박기혁. 너희들 조장.”

“한준우.”

박기혁과 한준우.

족쇄를 부수고 메르헴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 줄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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