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216화>
불현듯 찾아온 불행이 균형을 무너뜨린다.
혼란을 야기하고, 폭력을 부르고, 일상마저 파괴했을 때.
뒤늦게 깨닫는다.
재앙(災殃)이 찾아왔다고.
* * *
대만 해협.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대만 함대가 녹아 가고 있다.
“본부! 본부! 여기는 해안 경비대!”
“현재 중국의 함대 전력이 대만 영해를 침공하고 있다. 반복한다. 현재 중국의…….”
“적기 접근! 전타 회피! 회피! 회피!”
“갑판 화재 발생! 젠장! 함장님, 선체가!! 선체ㄱ…… 끄아아아악-!”
“마법 전단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실드 전개해! 막으란 말이야!!”
함장들이 목이 터져라 부르짖어 보지만 전력의 차이가 극명했다.
- 여기는 2전단. 병력 차가 극명하다. 적의 숫자가 줄어들 생각을 않는다.
- 3마법 전단. 후퇴 명령 바란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리다.
- 1전단. 단장 사망. 명령을 바란다. 다시 말한다. 단장 사망. 명령을 바란다.
“말도 안 돼. 아무리 중국이라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세계 최대 규모의 인구수를 자랑하는 중국.
이 막대한 인구 풀에서 나오는 초인 전력이 막강하다는 건 세계 모두가 잘 안다.
군사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하나 된 중국이라면 세계 패권을 노리기에 충분하다.’라고 하는 게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숫자는 말이 안 된단 말이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초인들.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별을 대신하는 건 형형색색의 마법들. 그 마법만으로 밤하늘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때맞춰 적의 전력을 파악하던 마나 레이더가 오류를 일으킨다. 측정 범위를 초과하며 일으키는 오류다. 이 전함에 설치된 레이더의 측정 범위는 1000만.
일, 십, 백, 천, 만…… 여기에 다시 1000을 곱한 숫자다.
어지간한 소국 인구에 버금가는 숫자.
이 1000만 이상의 초인이 지금 이 전장에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중국이라고 해도 이 정도 전력을 단일 전선에 투입하는 것은 말이 안 돼…….”
공식적으로 알려진 중국 상비군의 숫자는 300만이다. 이마저도 초인과 일반인 군인들을 전부 합친 숫자.
그런데 여기는 초인 병력만 1000만이 있다고!
이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이론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숫자다.
하지만 이 불가능한 숫자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말이 안 돼…….”
콰아아앙-!
함대의 사령관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휘함이 차가운 바다로 가라앉을 때까지도…….
* * *
같은 시간, 베트남에선 대만과 같은 격렬한 저항은 없었다.
왜냐하면……
저항한 이는 전부 죽었으니까.
적막이 감도는 도시.
기이할 정도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나마 들리는 거라곤 부서진 잔해가 불타는 소리, 보이는 것은 도시 전체를 자욱하게 뒤덮은 연기 뿐.
그렇다면 사라진 시민들은 어디있나.
이 질문의 답이 여기 있다.
“빨리 움직여!”
“어서 실어!”
“빨리 올라!”
붉은 무복을 입은 중국군의 재촉에 시민들이 움직인다.
시민들의 손과 발에 채워진 족쇄가 불쾌한 소리를 낸다. 짐짝처럼 시민들을 실은 트럭이 하나둘 출발하고, 그들은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제단이 세워지고 있었다.
하늘로 향하는 계단처럼, 높게 말이다.
* * *
중국이 폭주했다.
선전 포고도 없이 대만을 비롯한 베트남, 몽골, 네팔, 인도, 인접 국가를 침공하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침공.
이는 절대 상식적이지 않은 행위다.
전선이 길이와 전쟁의 난이도는 비례한다. 그래서 전쟁을 벌일 때는 전선을 최대한 축소하는 게 보통인데, 현재 중국은 이렇다 할 피아 식별조차 없이 닥치는 대로 들쑤시고 있다.
양면, 삼면을 넘어 거의 십면 전선. 이건 아무리 중국이라고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전략이다.
분명히 상식적으로 그러한데…… 전황은 상식을 벗어난다.
가장 먼저 베트남이 패망하더니, 이틀도 지나지 않아 대만이 정복당하고 만다.
곧이어 알려진 사실들.
이 두 전선에 들어간 초인 전력이 2천만이 넘는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 세계를 강타했다.
더욱 말도 안 되는 것은, 이들을 제외하고 다른 전선에 투입된 초인 전력마저도 몇천 만이 넘는다는 거다.
추정 전력 1억.
중국은 절대 불가능한 전쟁을, 절대 불가능한 초인의 숫자로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근본적인 의문.
1억.
대체 1억의 초인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땅에서 솟았나? 하늘에서 떨어졌나?
아니면 이제껏 중국이 숨겼는가?
숨겼다고 해도 1억이라는 숫자를 이제껏, 전 세계가 모르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이 의문의 사슬을 끊은 것은 한국이었다.
정확히는 비대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진도하’.
더욱 자세히 들어가자면, 박기혁의 말을 전해 들은 진도하였다.
“현재 중국의 초인들은 비정상적으로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예전 일본 사태 때, 이미 ‘셀루티스’가 비정상적인 초인을 만들어 낸 경우가 있었다. 마나 대신 ‘생명력’을 사용해 초인이 된 첫 번째 사례일 것이다.
이번 중국의 경우는 한층 더 질이 나빴는데.
“일본 사태가 ‘자신’의 생명력을 사용해 초인이 됐다면, 이번의 중국은 ‘타인’의 생명력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으로 만들어진 초인이란 겁니다. 그 증거가 바로 이 제단입니다.”
인신 공양(人身供養).
인간을 바치는 행위.
다수의 민간인들을 바쳐 하나의 초인을 각성시킨다.
“이렇게 양성된 초인은 세뇌 작업에 들어가며, 주인의 뜻에 따라 목숨도 내던지는 노예가 됩니다. 우리는 이를 ‘권속’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권속(眷屬).
권속의 계약.
황룡이 만들어 낸 악의의 꽃이 만개했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차츰차츰 그 세를 넓혀 가고 있었다.
“끝이 아닙니다. 이 비인도적이며, 용납될 수 없는 학살 행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입니다.”
“현재에 이르러 중국의 의도는 더 이상 중요치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내전을 통해 자국민을 짓밟았고, 현재에는 타국까지 침략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국민과 타국민을 가릴 것 없이 제단에 바쳐 초인들을 찍어 내고 있습니다.”
중국은 멈추질 않을 것이다.
이미 뒤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 재앙을 멈출 수 있는 마지막 방법.
“바로 ‘우리’가 멈춰야만 합니다.”
불쌍해서? 아니다.
가여워서? 아니다.
지키기 위해, 다름 아닌 나 자신, 우리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진도하는 호소했다.
“저 재앙이 더욱 커지기 전에, 그래서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기 전에…….”
“우리가 멈춰야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대한민국.
전시체제 돌입.
그리고 그 순간.
숨죽여 기다리던 맹수들이 눈을 떴다.
“명령 내려왔다. 이제 싸워도 된단다.”
흑백의 기류로 뒤덮이는 검호 박건.
마룡기 ‘프레데터(Predator)’
“아버지도요. 연세를 생각하셔야죠.”
황금의 왕관을 쓰는 산군 박수혁.
마룡기 ‘크라운(Crown)’
“둘 다, 조심해.”
순백의 날개 신을 신은 백호 박민지.
마룡기 ‘탈라리아(Talaria)’
마룡기로 무장한 세 검호가 각자의 검을 빼 든다.
그 순간, 맹수의 살기가 일대를 지배했다.
그리고 박건의 당부가 끝나는 순간.
“몸 조심해라. 너희 엄마 걱정시키면 혼난다.”
빛살처럼 전선을 가로지른다.
목표는 저기, 까마득히 대기 중인 중국군.
평야를 가로지르는 세 사람.
그리고 잠시 뒤, 그들의 뒤로 대한 사령부 전 병력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참전
參戰
* * *
그리고 그 시각, 옵티멈 본사.
가족 모두를 전선에 보낸 김연희는 가만히 있지 않았는데.
“모두 왔나요?”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아직 약속 시간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이미 옵티멈 전력이 전선에 지원했다. 이것도 모자라 한국에 있는 에이전트 전체가 지원토록 만들었다.
그들 전부에게 막대한 보상을 약속해야만 했으나.
그게 대수인가.
그녀에게 그깟 재화는 아무것도 아니다. 가족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면 전 재산을 들어부어도 상관없다.
밑바닥에서 일군 결과다. 언제든 다시 세울 수 있다.
“……다들 올까요?”
“올 겁니다.”
돌이켜보면 옵티멈의 시작은 비루했다.
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김연희와 유해련, 검호인 박건이 있었지만…… 당시 검호는 말만 검호지 끈 떨어진 검호였다.
그렇게 허름한 건물에 딸린 창고에서 시작한 게 옵티멈이다.
비록 초라한 시작이었지만, 옵티멈은 빠르게 비상했다.
눈부신 성공에는 많은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불세출의 투자자인 김연희의 투자 감각이나,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검객이라는 검호 박건의 명성.
흔히들 옵티멈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정작 김연희는 이 두 가지보다 다른 하나, 지금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존재야말로 지금의 옵티멈을 낳았다고 믿는다.
“좋은 일로 모여야 하는데, 이런 일로…….”
“자책하지 마십시오.”
최강의 검객 검호 박건에게 단련받고, 김연희가 전력을 다해 투자했으며, ‘광휘의 선봉’이라 불리는 유해련이 이끌었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부대.
“비서실장님!!”
“뭡니까?”
“왔습니다! 오셨다고요.”
“대표님!”
“갑시다.”
김연희가 달려가 문을 열자
“오랜만입니다, 대장님.”
“인마, 대표님이라고 해야지.”
“대표님은 어째 옛날이랑 똑같습니다?”
추억의 목소리가 들린다.
옛날, 무수히 많은 전장을 함께 누볐던 전우들. 그리고 이들의 선봉에는 영혼의 단짝인 유해련이 있었다.
“왔어, 희땡.”
“고마워…….”
“뭘, 사돈 부탁인데.”
에이전트 역사상 최강의 전력이라 불렸던 무력 집단.
성갑 기마대
聖鉀 騎馬隊
그들이 도착했다.
유해련이 김연희에게 눈을 찡긋하며 신수 ‘기린’에 올라탔다. 뒤이어 성갑 기마대 전원이 유니콘에 올라탔다.
“깃발 올려.”
“대장님이 깃발 올리시란다!”
깃발을 들어 올린다. 국보급 아티팩트의 버프가 주위를 감싸고.
“출진.”
성갑 기마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는 성갑 기마대.
이제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
‘제발 무사히 돌아오길.’
이제 김연희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할 뿐.
‘다쳐서 돌아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돌아오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돌아오기만, 제발 돌아오기만…….’
* * *
한편, 한국의 전력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서는 시각.
베트남, 대만에 이어 인도마저 짓밟히고 있었다.
“살려 줘!!”
“엄마아-!!”
중국 다음가는 인구를 보유한 인도. 자연히 초인 전력도 수준 이상일 수밖에 없다.
일단 인구풀이 다르잖나.
앞서 짓밟힌 베트남과 대만과 비교하면 체급 자체가 다른 수준.
하지만 이런 인도가 처절하게 짓밟히고 만다.
모두 이 남자…… 아니, 이제는 사람이라고 불리기 힘든 이 존재.
황룡에게.
“……많군.”
좋은 영양분들이다.
황룡이 뒤를 따르는 붉은 무복의 무인에게 손가락을 까딱인다. 붉은 피로 그득한 바닥으로 넙죽 부복하는 무인은 명을 기다리고.
“빨리 세워라.”
“존명.”
무인이 전음으로 동료들에게 전파하고, 명령을 전달받은 무인들의 손속이 한층 더 거칠어졌다.
그리고 펼쳐진 지옥.
“커헉!”
“으아아악-!
“꺄악!!”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다리가 달린 모든 게 죽어 버린다.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발에 매달려 애원해 보지만 무인들은 감정이 거세된 인형처럼 검을 들어 죽음을 찾는다.
인도가 자랑하는 집단군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제단으로 실려 간 지 오래고, 이제는 여기 있는 사람들까지 하나둘 지금 세워지는 저 제단의 주춧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황룡은 제단 앞에 마련된 어좌에 앉았다.
“인원은.”
“대기 중입니다.”
“최대한 빨리.”
“존명.”
저 밖의 인간들은 이 제단이 초인을 만들 인신 공양용으로 여기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진정한 목적은 바로 황룡의 영혼을 성장시키는 것.
초인을 만드는 것은 껍데기만으로 충분하다. 그들을 자신의 권속으로 부리며, 이후 성장한 영혼마저 흡수하면 쏠쏠하지.
무림맹 무인들이 순식간에 제단을 완성시켰고, 권속이 될 후보들을 데려온다. 인원이 인원인 만큼 수백 대의 버스가 불타는 도시의 시내로 들어왔고, 이제 사람들을 토해 내야 하는데.
“……응?”
왜 열리지 않지.
한 대의 차량도 문을 열지 않는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무인 몇몇이 검을 든 채 몸을 움직인다.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접근해.
번쩍! 검기를 뿜어냈다.
한 대 정도는 버려도 상관없다는 손속.
그렇게 버스가 두 조각났을 때 버스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뭐지.”
그때.
“뭐긴.”
“……!!”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무인이 본능적으로 검을 잡았다.
하지만, 잡힌 손이 떨린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빨이 딱딱딱, 요동쳤다.
움직일 수 없다.
저항할 수 없다.
뒤에서 나온 손바닥이 툭툭, 무인을 두드리자, 바닥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지 않는다면 뭔가 다음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선택은 정확했다.
“옳지, 잘했어. 기특하니까, 넌 특별히 ‘죽여’ 줄게.”
무인이 늦게나마 뒤를 본 순간.
그곳에는 지팡이에서 시작된 촉수가 동료들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우지끈.
뜯어낸 머리를 등 뒤로 던진 박기혁이 도시 저편, 관으로 세워진 제단을 향해 검을 들었다.
그 순간 거인의 상반신이 현신, 아포칼립스로 만들어진 검을 들고 기수식을 취한다.
검호류 파괴
역천
逆天
일곱 획의 검기가 하늘에 그려지는 순간, 하늘이 부서지며, 제단의 꼭대기부터 허물어졌다.
마치 하늘에 도전한 이카루스가 태양의 불길에 날개를 잃고서 추락하듯, 제단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제단이 부서지며 먼지의 파도가 도시를 감싼다.
박기혁의 검은 묻고 있었다.
감히 내 앞에서 하늘을 논하는가.
“거기, 누런 지렁이. 한 판 붙자.”
저벅, 저벅.
안개 속에서 인영이 다가온다.
“건방진 놈이군.”
“내가 할 말인데.”
박기혁과 황룡.
마침내 둘이 만났다.
서로를 향해 검을 빼 드는 박기혁과 황룡.
이제 세계관 최강자들의 전투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