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15화 (215/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215화>

세계가 충격에 빠진다.

프랑스, 짓밟히다!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가 공격받았다!

하루아침에 폐허로 변한 리크위르.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잃었다.

영국에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벌어진 사건.

테러? 습격? 침략?

명확히 정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르니까.

도시는 완전히 형체를 잃었고.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난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알고 있는 리크위르가 맞는가 싶었다.” 어느 구조대의 증언.

살아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목숨을 잃었으며.

생존자 도미니크 “평소와 같았다. 일을 끝내고 친구와 맥주를 마시는 날이었다. 그런데 땅이 흔들렸고 머리에 뭔가 부딪치며 기절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내 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집도, 가족도, 친구도…….”

흔적이라고는 부서진 잔해뿐.

“붕괴의 면면을 볼 때 전투의 여파에 휩쓸렸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피해가 커진 이유는 주말 저녁 인파가 몰릴 시간이나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격렬했던 전투가 주요했다는 의견…….”

원흉을 특정 지을 수도 없었다.

TA? 진화단? 아니면 제3의 빌런 집단? 용의선상에 오른 빌런들.

현장 전문가들, 이번 사태 ‘복수자’와 관련 없을 가능성 높다 밝혀. “복수자는 자기 과시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자신의 행보를 방송으로 송출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

갈 길 잃은 분노는 고이고 고여.

초유의 기자 회견, 분노의 13분. 욕설이 절반 이상이었다.

프랑스 대통령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될 일이 벌어졌다! 지옥 끝까지 찾아가 보복할 것!”

더 큰 분노를 낳았으니.

프랑스 의회 만장일치로 ‘전쟁 결의안’ 통과.

“프랑스는 폭력에 굴하지 않는다.”

마침내……

프랑스 전시 체제에 돌입하다.

대혼란의 씨앗이 꽃을 피웠다.

*   *   *

문을 열고 들어가자, 회의가 한창이다.

“……어젯밤, 프랑스 군대가 국경선에 집결했습니다. 자국의 에이전트에도 봉쇄 명령이 떨어졌으며 이밖에도…….”

“아니, 흉수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대체 누굴 공격한단 말입니까!”

“모릅니다. 프랑스는 확실히 전쟁을 치를 생각입니다.”

“현재 추산된 피해액은 이렇습니다. 그들이 그냥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느닷없이 공격당한 프랑스.

도시 하나가 잿더미로 변했고, 이에 분노한 프랑스가 군대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런 프랑스의 군사 행동은 유럽을 긴장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코앞에 다다른 세계 대전.

한국은 진룡 진도하를 필두로 비상 대책 위원회를 꾸려 이 초유의 사태에 대응하기로 했는데…….

내가 이곳에 불려온 이유였다.

자리로 이동하려다 단상 위에 앉아 있는 도하 아저씨랑 눈이 마주친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자, 누나가 눈을 흘겼다.

“늦었어.”

“아니, 갑자기 불렀는데 이보다 어떻게 더 빨리 와.”

“아무튼 빨리빨리 다녀. 괜히 밉보이지 말고.”

확실히 상황이 심각한가 보다. 누나가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우리 박민지 님이 누구신가. 말보다는 행동, 타협보다는 타도가 어울리는 이 시대의 참검호 아닌가. 그런 누나가 조심하고 있다니.

실제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다.

표정도 경직되어 있고.

여기 회의실에 있는 이들 전부가 우리나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초인들. 실력만큼이나 프라이드도 높은 걸 감안하면 이런 모습은 놀라울 정도다.

“회의 자료는 못 받았지?”

“그런 것도 있었어?”

“아까 나눠 줬어. 자, 내 거 봐. 난 다 봤어.”

그러며 내주는 패드. 나는 패드를 받아 들고는 유심히 살펴봤다.

처음으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폐허가 된 도시의 사진.

“흠…….”

이게 현장 사진이란 말이지.

이곳은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리크위르라는 도시란다.

아름답기로 유명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에 뽑혔다고 하네. 참고 자료에 무너지기 전 사진도 있는데, 뭔가 유럽의 좋은 감수성을 모조리 들고 있는 도시 같았다.

이런 아름다운 도시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됐다.

멀쩡한 건물은 한 채도 없고, 잘 닦인 길은 완전히 분쇄되어 흙이 돼 버렸다. 더군다나 여기는 실무 회의여서일까, 희생자의 모습이 필터링 없이 끼여 있어서인지 도시의 처참함이 피부로 와닿았다.

‘내가 영국에다가 했던 짓은 여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네.’

감상은 이만하고 본격적으로 현장을 살펴보자.

신경을 활짝 연다. 심상 세계의 일부를 열고 사진에서 보이는 모든 정보를 낱낱이 해부한다.

우선 내가 주목한 건 부서진 잔해들.

‘마법은 아니고…… 무기…… 검이네.’

널려 있는 잔해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흔적…… 검이다. 우리가 아는 무기, 검.

다만 검흔의 흔적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거다. 조금 더 살펴보니 그 이유를 알았다.

‘한 명? 두 명?’

두 명이다. 검을 쓰는 사람은 둘.

둘은 적이었고,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다.

거기에.

‘한 명이 더 있어.’

이 한 명은 한쪽 편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것 같은데, 약간 떨어져 있다. 아마도 지원을 하는 것 같네.

‘싸움에 휘말렸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흔적만 보자면 저들은 시민들에게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는다. 다만 둘의 공세가 상식을 초월할 만큼 커다래, 고래 싸움에 휘말린 새우처럼 시민들이 죽어 나간 거다.

이렇게 계속해서 사고를 넓힌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사건의 그림을 끼워 맞춰 가는데…….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내 발목을 잡는다.

현장 사진을 딱 처음 봤을 때부터 든 의문.

‘이거 아무래도…….’

인간이 한 짓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정정하겠다. 물음표를 지워도 되겠다. 이거 인간이 한 짓이 아니다.

수호령이다. 걔들이 벌인 일이다.

자연스럽게 의문이 이어진다.

‘걔들이 왜? 무슨 이유로?’

며칠 전에 만난 위그드라실은 내게 허리 굽혀 사과했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다며.

“정식으로 사과할게요. 기혁 군의 말이 맞아요. 우리는 인간을 위한다는 말로 우리의 이기심을 포장한 것 같아요. 우리의 진심이 어떻든 간에 적어도 결과는 그렇게 말하고 있네요.”

“저희 수호령들은 한동안 자숙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조용히 세상과 떨어져, 다시금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와 역할을 되새기려고 해요.”

위그드라실이 나를 기만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진실된 몸의 대화(?)를 나눈 사이니까. 물론 단순히 믿음만으로 근거를 삼지 않는다.

수호령이 지닌 제약, 인간을 지켜라.

수호령이 싸웠다면 저런 현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저 끔찍한 현장 어디를 봐도 ‘인간을 지켜라’는 없으니까.

그러면 수호령에 준하는 힘을 소유한 놈이라는 건데…….

그 순간 내 머리를 번쩍 스쳐 가는 정보.

“……하나 있네.”

“만약 황룡이 신이 내린 의무에서 벗어났다면, 저희 입장에서는 황룡이 ‘소멸’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다른 수호령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건 ‘의무의 고리’로 엮여 있기 때문이죠.”

신에게 불만을 가진 수호령.

신이 내린 의무를 족쇄라고 표현하며, 수호령이라는 칭호를 죄수복이라고 말한 수호령.

“황룡.”

그리고 그 순간.

덜컹-!

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람.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을 한 신의 대리인.

위그드라실이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기혁 군, 잠깐 이야기 좀 해요!”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것 같네.

*   *   *

위그드라실은 믿기지 않는 소식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대체 왜?”

여덟 수호령 중 하나인 황룡이 소멸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하나가 소멸했다.

자유의 깃발.

그녀가 이 세계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죽을 수 있죠…….”

누가! 무슨 이유로!

갑자기 일어난 사고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때맞춰 프랑스가 공격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서진 건물들, 잔해가 흙처럼 쌓여 있고, 그 속에서 처참하게 뒹굴고 있는 시체들이 보인다.

“말도 안 돼.”

위그드라실은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인간이 그린 지옥도가 아니다. 상위 존재, 나와 동일한 수호령이 만들어 낸 지옥도였다.

그리고 사실에 가까운 확률로 자유의 깃발과 연관돼 있을 거다. 아마도 그녀의 힘을 노린 거겠지.

모든 제약에서 자유롭게 만드는 기적.

이 부분에서 누군가 생각난다.

“설마 기혁 군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박기혁이었다. 그라면, 인간을 뛰어넘어 세계선마저 벗어난 그 남자라면 자유의 깃발을 죽이는 것도 가능할 거다.

그가 인간을 뛰어넘어 하늘에 가까워지려 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저었다.

“기혁 군은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박기혁이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으로 남길 원한다.

아들로, 동생으로, 친구로, 애인으로, 아버지로…….

그에게 중요한 건 이런 것이지, 상위 존재나 수호령 따위가 아니었다.

그렇게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누구인가. 누가 자유의 깃발을 죽였나.

미궁이었다.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다. 위그드라실이기에 절대 풀 수 없는 의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극히 정상적인 수호령이니까.

그녀의 사고 회로에서는 소멸한 수호령이 인간의 거죽을 쓴 채 다시 태어났을 거란 개념 자체가 없었고, 그 수호령이 한때 동료였던 수호령의 힘을 약탈할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박기혁을 찾았을 때, 그녀는 경악하고 만다.

“황룡이야. 그래, 네가 소멸됐다고 믿던 황룡. 걔 맞아.”

스스로를 소멸시키고, 인간의 거죽을 입고 다시 태어나, 신의 의무에서 자유로워진다.

“근데 녀석은 자유로워지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란 거지.”

하늘을 향한 분노.

황룡은 이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라도 강해져야만 했다. 아주 빠르게 말이다.

“중국 내전 알지? 거기서 관으로 만들어진 제단이 발견됐어. 그게 뭘까? 인신 공양이야.”

초대량의 인간을 바쳐 힘을 회복한 황룡은 이제 마지막, 인간으로서의 탈까지 벗어던진다.

“자유의 깃발이란 놈을 잡아서. 어때, 시나리오가 착착 맞지?”

“…….”

이 시나리오를 듣자 위그드라실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신의 의무도, 수호령으로서의 역할도, 자신이 믿는 모든 게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혼란스러워요. 황룡이 원하는 건 뭘까요…….”

“많지. 당장 떠오르는 건 신이랑 한바탕 붙고 싶다 정도? 아니면 신이 아끼는 이 세계에 거하게 깽판을 치려는 걸 수도 있겠지.”

“하아…… 그럼 저희는 어떻게.”

“근데 너 연락 안 왔어? 이럴 시간 없을 건데?”

“또 무슨 말이죠?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 주세요.”

“가만있어 봐. 내 느낌상 곧 일어날 테니까.”

“무슨…….”

그때였다.

위그드라실이 말을 채 완성하기도 전에, 그녀의 세계가 멈췄다.

풍경이 뒤틀리며 눈부신 빛이 번쩍였고, 눈을 감고 뜨자, 우주의 한복판이었다.

거기에는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를 포함한 모든 수호령이 있었다.

그들 모두 이곳을 잘 안다.

신(神).

신의 공간이었다.

“마지막이다.”

“간섭하지 마라.”

짧은 명령.

곧이어 시야가 점멸하며 다시 세계로 돌아오고, 능글맞은 박기혁의 얼굴이 보였다.

“갔다 왔냐?”

“……마지막이래요. 간섭하지 말래요.”

“그럴 줄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요?”

“무슨 이유에서든 이 꼴이 났잖아. 더 답이 필요해?”

너무도 당연하게 신의 의중을 꿰뚫는 박기혁. 위그드라실은 이 남자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 신이란 놈은 굉장히 허술해.”

겨우 인간을 지켜라, 라는 같잖은 이유로 상위 존재를 풀어놓은 것이나, 황룡이 기억을 찾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둔 거나.

무엇보다 나란 존재를 이 땅에 풀어놓은 것만 봐도.

신은 허술하다.

그렇지만.

“이 허술한 그림에서도 어떻게든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

신이 신이라 불리는 이유.

그리고 그런 신이 마련해 둔 열쇠가.

“나였네.”

박기혁은 이제야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깨달았다.

내가 죽음에서 돌아와 이 땅에서 눈을 뜬 것은, 세계의 질서를 파괴하는 ‘거인’의 힘을 얻은 이유는.

바로 오늘을 대비해 안배한 거였다.

“망할 할배, 그렇게 재촉 안 해도 움직일 거라고.”

아비 된 자로서 가족을 지키는 건 당연한 것.

“그럼 가 볼까.”

참으로 황송하게도 신이 마련해 준 무대다.

어디, 신나게 놀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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