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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212화 (212/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212화>

복수자라는 절대 빌런이 남긴 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혼란의 파도가 몰아쳤다.

중국.

중국이 내전에 돌입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중화 민족이 세계의 중심이라 말하고 있다. 진정 그런가? 현실을 봐라. 저 밖에 있는 이들이 우리를 세계의 중심이라 보는가?”

“냉정히 보라. 저들이 보기에 우리는 그저 넓은 땅에 사람이 많아 인건비가 작게 드는, 쓸 만한 공장일 뿐이다. 이게 진정 우리가 바라는 중화 민족의 모습인가? 너희들은 만족하느냔 말이다!”

“나 난설은 만족하지 못한다. 중화는 중심이기에 중화인 것이다. 중국(中國)이란 이름에 걸맞게 우리는 세계의 중심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설 것이다. 중화 민족을 진정한 중화로 만들기 위해서, 이 땅을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세우기 위해서, 중심을 되찾기로 했다. 그 시작은 중원 일통이니…….”

“중국(中國)을 만들고 싶은 자야, 모두 나 무림맹주 난설 아래로 모여라.”

난설은 ‘일통’이라는 명분 아래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거부는 용납되지 않는다. 타협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중심은 오롯이 하나여야만 하니까.

하나가 되거나, 죽거나.

이 단순한 선택지는 중국을 하루아침에 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나날이 중국의 내전이 격화되자, 세계가 흔들리게 되는데…….

영국 때와는 또 다르다.

영국이 EU의 한 축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노동력의 국가다. 영향력의 정도가 확연히 다른 나라.

이런 중국이 내전의 불길로 타오르자, 세계 경제가 출렁이는 것이다.

“갑자기 내전이라니요. 뜬금없이 중원 일통은 또 뭐고요?!”

“아니, 내전을 하면 하는 건데 왜 문을 걸어 잠근 겁니까. 그거 때문에 손해가 얼마나 큰지 말도 못 합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기업들이 이대로 가면 망한다며 난리 법석입니다.”

“한국은 중국과 이웃 아닙니까. 중재를 좀 해 주시면…….”

“이보세요. 저희가 복수자한테 당한 지 얼마나 된 줄 아십니까? 그런데 중국 내전까지 중재하라고요? 대체 무슨 명분으로요?”

“아니, 그게…….”

“워낙에 손해가 막심하니…….”

문제는 이게 내전이라는 거다.

자국 내의 문제. 이걸 뭐라 하겠나.

일본 때처럼 채널을 열고 세계를 향해 도발하며 칼날을 세웠다면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섰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난설은 내전으로 확실히 못 박았다.

애초에 간섭할 명분 따위가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의 내전은 잠잠해지기는커녕 더욱 격화돼 갔다.

“현재 오대세가 중 하북팽가, 남궁세가, 제갈세가가 제압당했으며, 곧 사천당문과 모용세가도 무릎 꿇을 것으로…….”

“무릎 따윈 필요 없어. 죽여.”

“존명.”

“천마의 대리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건들지 않는다면 중원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 말하고 있습니다.”

“걔들이 사는 땅은 중국 아닌가? 그냥 죽여.”

“존명.”

“구파일방 잔당들의 저항이 거세지만, 그들도 곧 있으면 맹주님의 대의 앞에 굴복할 겁니다.”

“중화에 패배자 따위 필요 없다. 전부 목을 잘라.”

“존명.”

산은 불타고, 들판은 시체로 그득하다. 강은 피로 물들었으며, 생기를 잃은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앙상하게 말라 갔다.

중화라는 선동이 부른 광기는.

대륙을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인간계의 불안에 영향을 받았을까.

이 세계의 균형자인 수호령이 모이게 되는데.

*   *   *

위그드라실의 심상 세계.

꽃으로 장식된 의자가 한 명씩 그 주인을 찾는다.

“지루해! 지루해! 벌써 지루해졌어! 이거 언제 끝나? 나 한창 조립 중이었단 말야!”

가장 먼저 자리에 앉은 건 풍성한 아프로 머리의 흑인 소녀.

미 동부의 주인이자 마도 공학의 창시자, ‘기간트’였다.

“쯧, 여전히 천박하군.”

다음으로 잘 빠진 슈트를 입은 이 백인 남성은, 미 서부의 주인이며 인공 정령을 만들어 낸 ‘레드 드래곤’.

“훗. 두 분은 여전하네요. 기간트도 레드 드래곤도, 모두 오랜만이에요.”

옛 정취가 물씬 나는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은 아프리카 연합의 구심점, 곤충 여왕 ‘에우리아’.

그리고.

“하으으음, 되도록 빨리 끝내지. 겨울잠 자는 중이었거든.”

짐승과 인간이 교묘하게 공존하는 얼굴을 한 사내의 정체는, 러시아의 정신적 지주이자, 살아 있는 신앙이라 불리는 ‘야수왕’이었다.

기간트와 레드 드래곤, 에우리아, 야수왕. 거기에 이 회의에 주최자인 위그드라실까지. 여덟 수호령 중 무려 다섯이 모인 역사적인 회담이 지금 시작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위그드라실이 입을 연다.

“올 분은 다 모인 것 같네요.”

이에 기간트가 손을 드는데.

“저기, 저기, 위그드라실. 다 모이지는 않았는데.”

“영국이나 중국은 그 지경이 됐으니 넘어가고요. 자유의 깃발은…….”

“걔야 또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유희를 즐기고 있겠지. 천박하게.”

“아직도 그러나 보네요. 여전하네요, 깃발은.”

레드 드래곤의 한마디에 에우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다.

둘의 반응대로, 옛날부터 자유의 깃발은 수호령 회담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심지어 친하게 지내는 수호령도 없었고.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수호령들은 자유의 깃발을 찾지 않게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야수왕은 빨리 이 자리를 파하고 잠이나 마저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이, 위그드라실. 빨리하자. 나 졸려.”

“알겠어요. 회담을 시작할게요.”

위그드라실이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정리한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몇 번을 고민하며 자세를 갖춘 후 마침내 입을 여는데.

“모두 느꼈을 겁니다. 얼마 전 우리는 ‘수호령’ 중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사망? 소멸?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해 봤지만, 어쨌든 수호령 중 하나가 이 땅에서 사라졌다.

“…….”

“…….”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는다.

수호령은 신이 내린 상위 존재답게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돼 있다. 때문에 오늘처럼 심상 세계에 모일 수도 있는 것이고, 상대방의 생사 또한 알 수 있는 것이다.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다시 말을 잇는다.

“이로 인해 현재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으며, 인간계는 크나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을 지켜라’라는 의무에 관련된 바, 오늘 이 자리는 이런 문제들을 의논하는 자리입니다.”

수호령의 죽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반응한다면 움직여야 하나, 움직이지 말아야 하나.

이에 수호령들은 저마다의 고민에 빠지는데.

가장 먼저 입을 침묵을 깬 것은 의외로 레드 드래곤이었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왜죠?”

“우리의 권위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의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우리는 한날한시에 눈을 뜬 동료다. 같은 의무를 지니고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는 존재란 말이다.

“인간들이 수호령을 떠받드는 이유는 우리의 우월성과 힘 때문이다. 한데 무적 같던 수호령이 죽었다. 이미 이걸로 수호령의 절대적인 권위에 흠집이 났는데, 여기에 우리가 같은 수호령의 소멸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리가 없는 말이 아니란 거다.

확실히 불멸로 알려진 수호령이 죽었다는 게 알려진다면, 수호령이 이전과 같은 권위를 세우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이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기간트가 일어선다. 그녀는 레드 드래곤과 앙숙이라는 것을 보여 주듯 레드 드래곤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음흉한 놈이 또 억지 부리네. 그깟 권위가 뭐라고. 그리고 말야, 그렇게 무시받는 게 싫으면 그냥 닥치고 있어. 어차피 우리가 말 안 하면 아무도 몰라. 아마 알아도 필사적으로 숨길 걸?”

이 또한 맞다.

인간들의 입장에서 수호령이 사라진 걸 확인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실제로 현재 수호령이 이 땅에서 소멸한 지 얼마나 됐나. 그런데도 수호령이 죽었다는 소식은 전혀 없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위그드라실이 입을 연다.

“그러면 기간트는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인가요.”

“응, 내가 바다 건너로 넘어가서 뭐 하겠어. 귀찮아. 그리고 말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죽은 놈이 멍청한 거잖아.”

수호령은 자신의 영역, 정확히는 게이트 안에서는 절대 죽지 않는다. 죽을 상처도 어떻게든 회복하는 불사(不死)인 것이다.

그런데 죽었다? 이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이트 밖에서 헛짓거리 하다가 된통 걸려서 당한 거야. 우리가 왜 녀석의 헛짓거리까지 수습해야 해.”

“함정에 걸렸을 수도 있잖아요?”

“농담하는 거지, 위그드라실? 수호령이 함정에 걸렸다고 몸을 빼는 것도 못 해? 그럼 걔는 수호령도 아니야. 차라리 죽어 마땅해.”

잠자코 듣던 에우리아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동의해요.”

“어? 에우리아가?”

“의외네요.”

“이번만큼은 기간트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네요.”

에우리아가 누군가.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여기며 인간계의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개입파’ 중 하나다.

그런 그녀가 개입을 거부하고 있는 거다.

“기간트의 말대로 수호령이 죽었다는 말은 허락된 영역을 이탈했다는 거예요. 이것만으로 탓할 생각은 없어요. 저도 머리를 식히려 꽤 자주 영역을 나가기도 하니까요. 다만.”

그렇다면 조용히 있어야 한다.

존재감을 감춘 수호령을 인간이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만약 인간에게 습격당해 죽었다면, 그건 기간트의 표현대로 괜히 까불다가 준비된 인간에게 당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수호령을 죽일 정도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까요. 그만큼 분노가 컸다는 건데, 인간이 가만 있는 수호령에게 분노할리는 없잖아요.”

“여전히 인간을 아끼네요, 에우리아.”

“아끼는 게 아니에요. 인간을 많이 접해 봤다는 거죠.”

결론적으로 에우리아는 이번 일을,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인간계에 간섭한 대가로 봤다.

이제 남은 건…… 위그드라실의 시선이 야수왕에게로 향한다.

“야수왕의 의견을 들어 볼까요.”

“의견은 무슨.”

야수왕은 짐승의 주둥이처럼 큰 입을 한껏 벌리더니, 나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약하면 뒤져야지.”

인간한테 패배했다는 것만으로도 필요성을 상실한 것이다. 필요성을 잃어버린 생물은 도태되거나 멸종되는 법. 야수왕에게 패배자를 도울 의리 따윈 없었다.

네 수호자의 의견이 나왔다.

3:1.

개입하지 말자는 의견.

사실상 결론이 났다.

하지만 아직 위그드라실의 의견이 남았으니, 에우리아와 기간트가 위그드라실의 의견을 끌어냈다.

“위그드라실, 당신의 의견도 들려주셔야죠.”,

“맞아. 네가 모았잖아! 너도 말해야지!”

“음…….”

위그드라실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는 얼마 전, 제 인간 친구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눴답니다. 그는 우리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했죠.”

“너희는 이 세계에 필요 없다. 명백히, 이 세계의 불청객이다.”

“자유. 너희가 인간의 자유로운 성장을 방해하고 있잖아.”

박기혁의 말은 위그드라실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인간을 위해 간섭했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저희는 황룡이 만든 ‘권속의 계약’, 인간들은 ‘마나 암’이라 부른 문제를 외면했죠. 이유는 모두 기억날 거예요.”

이미 퍼질 대로 퍼진 마나 암을 수습하기 힘들었다.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섰다면 수습이 불가능은 아니었지만, 세계적으로 봤을 때 마나 암으로 죽는 인간은 극소수. 놔둬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진짜 몰랐으면 무능의 증명이고, 알면서 방치했으면 부패의 고백이라고요.”

“무능과 부패. 이게 어디가 인간을 위한다는 거지?”

“맞아요. 무능과 부패, 이 둘 중 무엇도 인간을 위하는 것은 없어요.”

위그드라실은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이제껏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자기 스스로의 행동으로 인해.

“어쩌면, 우리가 오만했던 것이 아닐까요.”

선을 넘었다는 박기혁의 말이 맞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질문에 위그드라실은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저는요. 이번 기회에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가 가진 의무에 대해 고뇌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들이 의문에 대해 고뇌할 시간을.

“자, 그렇다면…… 최종 결론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번 ‘황룡’ 소멸은,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결정짓겠습니다.”

황룡의 소멸.

그렇다.

소멸된 것은 태사자가 아닌 황룡이었던 것이다.

*   *   *

애들 가르치고 나서 저녁 시간, 나는 연구실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면을 그리고 있다.

마법진을 어지럽게 그려 넣고는, 허공에 떠 있는 사자 형체를 눈대중으로 이리저리 자른다.

“앞다리 하나는 봄이 대검 만들어 주고…… 나머지 하나로는 헤나 창 만들어 주고.”

뒷다리는 이스마일 검하고, 올리버 무기를 만들어 줄까.

“생각해 보니, 올리버 무기 적성도 체크해 봐야 하는데.”

애들 만들어 줄 무기를 생각하니 벌써 입꼬리가 실실 올라갔다.

그때였다. 연구실 테이블 한쪽에 세워진 크리스탈이 반짝이며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다리를 잘라 무기를 만든다니, 당사자를 앞에 두고 그런 소리를 하는가. 넌 굉장히 잔인하군.”

“인간을 실험체로 쓴 네가 할 소리는 아닌데?”

“실험체가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은혜를 내려 준…….”

“그 은혜 내리다 실패도 하고, 그러면 몇 명 정도 죽고, 그치?”

“…….”

“그걸 실험이라고 하는 거다. 좀 닥치고 있어, 새끼야.”

지금 내 앞에서 떠드는 저놈.

설마 했다면 맞다.

이 녀석은 태사자다. 나한테 처맞아 죽기 직전까지 갔던 수호령 녀석.

태사자는 살아 있다.

내 거인의 구속 아래에서.

“이 아까운 걸 죽이긴 왜 죽여.”

“……수치스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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