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211화>
수업이 끝나고 저녁. 게이트에도 밤이 찾아왔다.
신나는 바비큐 파티로 배도 채웠으니, 이제 잘 시간이다. 나는 천막 주위를 돌아다니며 순찰 겸 잠자리를 점검하고 있었다.
보자…….
“몬스터는 없고.”
있어도 없어질 거다.
여기는 기껏해야 슬라임이 나오는 1레벨 게이트. 저기 주변을 지키고 있는 내 스켈레톤들을 뚫기란 불가능하다.
혹시나 애들이 자는 천막에 문제가 생길까 툭툭, 천막의 봉을 두드려 보는데…… 역시나 튼튼했다.
메이드 인 옵티멈. 우리 김연희 여사님이 물건 하나는 확실하게 만드신다니까.
이렇게 조금 돌아다니다, 시끄러운 천막에는 슬쩍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안자고 뭐 해.”
“헉!!”
“쌤이다!”
얼어붙는 아이들.
격렬한 베개 싸움의 현장이 그대로 걸렸다.
내가 혼낼까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데,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적당히 놀고 자.”
고작 10살도 안 되는 아이들이다. 놀 때는 놀아야지.
공부만 시기가 있는 게 아니다. 노는 것도 시기가 있다. 그 나이 때에 맞게 놀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신나게 놀라는 말에 아이들의 얼굴이 급격히 밝아졌다.
“아! 무슨 일 있으면 저기, 마네킹에 대고 이야기해.”
“네에에!”
마네킹은 스켈레톤이다.
애들 보기 좋게 잠깐 변형시킨 것.
솔직히 사기 풀풀 날리고 섬뜩한 뼛조각을 애들한테 보여 주는 것은 그렇잖나. 그래서 살짝 커스텀을 해 본 거다.
한차례 순찰을 마치고 나도 잠자리로 향했다.
입구에 캡틴 타이거 캐릭터 가면들이 붙어 있는 천막. 저기가 우리 가족의 천막이었다.
애들은 잘 자고 있나,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데.
그 순간 들리는 소리.
“아냐! 헤나가 틀렸어!”
봄이 목소리다. 자기주장이 잔뜩 실린 게, 평소의 봄이에게서는 자주 듣기 힘든 목소리 톤이었다.
궁금해서 손가락으로 천막을 살짝 걷어 보자 같은 잠옷에, 같은 모양으로 머리를 땋은 세 여자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거참,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래. 격하게 칭찬한다.
“……아빠가 그랬잖아. 몬스터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헤나는 아빠가 틀린 거 봤어?”
“으이구, 봄아. 넌 아버지 말이면 무조건 믿어? 그리고 아버지가 언제 무조건 된다고 하셨어? 이론적! 이론적으로라는 말을 덧붙이셨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상 불가능하단 말이지.”
“왜! 이론적으로 가능하면 진짜도 가능한 거지. 엘도 그랬잖아. 충분히 가능하다고!”
“그 약골은 네가 하는 말은 모조리 맞다고 하잖아. 그렇게 따지면, 올리버는 그럴 필요 없다고 하는 거 못 들었어?”
“가능하다니까아!”
“힘들다니까!”
“좋아, 딸기 언니한테 물어보자. 언니, 가능하지? 몬스터가 인간이 될 수 있는 거지?”
“아줌마, 불가능하지?!”
“으응, 언니는 잘 모르겠네.”
아무래도 오늘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역시 내 딸내미들. 진정한 실력은 복습에서 나오는 걸 알고 있다. 기특하기도 해라.
흐뭇하게 애들의 토론을 지켜보고 있는데, 봄이가 씩씩대며 머리를 쓸어 올리다 몰래 지켜보던 나랑 눈이 마주친다.
“어?! 아빠다아!!”
“아부지이이!!
“아빠 왔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해 주는 우리 딸내미들.
“왔어. 뭐 문제는 없었지?”
“전혀.”
진유리는 일어나 내 외투를 받아 줬다.
마침 잘됐네.
난 아까부터 궁금했던 걸 물어본다.
“머리도 그렇고, 잠옷은 또 뭐야? 전부 맞춘 거야? 언제 맞췄고?”
“잘 어울려? 귀엽지?”
사과 꼭지처럼 묶은 머리를 찰랑찰랑 흔드는 진유리.
“귀엽긴 하네.”
“그치?”
“너 말고 애들.”
“또, 또, 못된 말한다.”
“킥.
“여기 네 것도 있어. 얼른 입어 봐.”
클린 마법으로 먼지를 지우고 있는데 진유리가 잠옷을 내민다. 훌렁훌렁 옷을 벗고 입었다. 당연히 속옷이 보이는데 유리나 나나 별 감정이 없다.
보이면 보이는 거지.
언젠가부터 얘나 나나 속옷을 보이는 게 무감각하다. 이런 게 가족이 되는 과정이란 걸까.
옷을 입자 사이즈가 귀신처럼 맞다.
신기하네.
슬쩍 메이커를 본다. 내가 알기로 이제 내 몸에 맞는 기성복은 없거든.
그러자 진유리가 답을 말해 줬다.
“그거 주문 제작이야.”
“어쩐지.”
이에 질세라 애들도 거든다.
“딸기 언니가! 주문했어!”
“디자인은 우리랑 같이 결정했어요.”
“잘했네. 예쁘다. 맘에 들어.”
내 새끼들 최고다! 읏차!
애들이 있는 침대에 몸을 던지자 우리 딸내미들, 까르르르…… 아주 좋아 자지러진다.
10살이면 귀여움이 줄어들 만도 한데 어째 우리 딸내미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귀여워질까.
정말 미스테리다.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어?”
“아! 맞다! 아빠, 몬스터가 인간이 될 수 있는 거지?”
“힘들지, 아부지? 전에 이론적이라는 말이 달리면 힘들다고 했잖아.”
“음, 둘 다 맞아.”
“둘 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이리 와 봐. 왜 둘 다 맞는지 가르쳐 줄게.”
양쪽 팔을 뻗어 두 딸내미를 껴안는다.
콩닥콩닥, 귀여운 심장 고동 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봄이 말대로 기생형 몬스터는 인간이 될 수 있어.”
“봐! 내가 맞잖아!”
“그렇지만 헤나도 맞아. 이론적으로 가능한 거지, 실제 사례는 거의 없어.”
“봐! 내 말도 맞잖아.”
기생형 몬스터가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는지는 아까 설명했으니까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 딸내미들은 똑똑하니까 다 기억할 거다.
그렇다면 지금 말할 것은 아까 말하지 못했던 심화 과정이다.
“기생형 몬스터는 기생을 통해 숙주의 몸을 빼앗을 수 있어. 이 ‘기생’은 다양한 형식으로 이뤄지는데, 가장 쉽게는 신체에 침투해 서서히 몸을 장악하는 것부터, 아까 말한 도플갱어처럼 상대로 변하는 것으로 기생하는 경우도 있어.”
그래서 섭취나 흡수 같은 행위랑 헷갈리기도 하지만, 나는 굳이 이것들의 정의를 나누지 않는다. 숙주에게 기생하며 생존, 혹은 성장하는 몬스터는 그냥 ‘기생형’이라 부르면 된다.
그렇다면 몬스터가 어떻게 해야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쉽다.
인간에게 기생하면 된다.
“인간에게 기생하며, 인간의 지성을 흡수해, 인간을 학습하는 거야, 그럼 자연스레 몬스터는 인간처럼 사고하고 인간이 되겠다, 생각하게 되지.”
“인간에게 기생…….”
“지성을 흡수한다…….”
인간에게 기생한다는 말에 진유리가 미간을 찌푸린다. ‘애들한테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눈치를 주지만, 애들도 알 건 다 안다고.
“근데, 이게 현실적으로 힘들어. 왜냐하면 몬스터와 인간 사이에는 분명 ‘격의 차이’가 존재하거든. 전에 아빠가 격이 뭐랬지?”
“존재의 크기!”
“영혼의 깊이!”
“그렇지, 그렇지. 존재의 크기, 영혼의 깊이.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생자의 격이 숙주의 격보다 높아야 그 존재로 변할 수 있어.”
“아……!”
“알아들었니? 기생‘만’으로는 인간이 될 수 없단 말이야.”
여기서 위화감이 생긴다.
기생자의 격이 숙주의 격보다 높으면 굳이 그 존재로 변할 필요가 있나?
이걸 지금 주제로 옮겨 놓으면, 몬스터의 격이 인간의 격보다 높다면 굳이 인간이 될 필요가 있냐는 말이다.
“약간 이야기에서 벗어나자면, 인간은 스펙에 비해 격이 높은 생물이야. 지성을 갖췄다는 것을 포함해서라도. 그래서 몬스터가 인간보다 격이 높다는 말은, 거의 상위 존재에 가깝다고 봐도 돼.”
“상위 존재라면…… 요정 이모?”
“곤충 엄마!”
“맞아. 봄이가 말한 위그드라실도, 헤나가 말한 에우리아도 전부 상위 존재야. 그런데 그런 존재들이 인간? 굳이?”
“아…….”
“그러네…….”
우리가 인간이라서 인간이 특별해 보이지만, 인간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솔직히 몸뚱이만 보면 짐승보다 못한 게 사실 아닌가.
몬스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거다. 차라리 몬스터로서 한층 더 성장하는 게 낫지. 그 증거가 챔피언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다.
실제로 몬스터 중에서 격이 높은 놈들이 왕왕 나오지만, 그런 애들 중 인간을 꿈꾸는 애들은 없을걸.
이건 기생형 몬스터라도 다를 바 없다.
그때, 이제껏 잠자코 듣고 있던 진유리가 입을 열었다.
“꼭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면?”
“음?”
“네 말은 몬스터에게 인간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인간이 되지 않는다, 잖아.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매력적으로 보이면, 가능하다는 말이네?”
“음…… 기생형 몬스터에.”
“기생형 몬스터에.”
“충분한 격을 갖추고?”
“충분한 격을 갖추고!”
만약에 그런 놈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지.”
* * *
눈을 감자, 시야가 캄캄한 어둠으로 물든다.
황룡은 이 어둠의 화폭에 ‘과거’를 그려 넣어 본다. 아무것도 몰랐던 ‘뱀’이었던 그때를.
“…….”
여기저기 헤진 볼품없는 비늘, 먹이를 찾는 탁한 눈동자…… 그 시절의 그는 이름도 이성도 없었다.
오직 본능뿐인 짐승이었다.
자연스럽게 지금 남아 있는 기억 또한 많지 않다.
춥고, 덥고, 습하고, 배고프고, 배부르고…….
이게 황룡의 기억, 첫 번째 페이지다.
“…….”
페이지를 넘겨 본다.
두 번째 기억이 그려진다.
뱀이 우연찮게 길을 헤매다 인간의 시체를 먹게 되는 그림이 그려진다.
짐승이었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특질인 ‘기생’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 기억이 그 무엇보다 강렬한 것은, 이 첫 기생 덕에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생전 처음으로 던졌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성(理性).
짐승은 그렇게 이성을 갖추고 비로소 나아갈 곳을 정한다.
세 번째 페이지 뒤로는 한동안 사냥하는 그림만 그려졌다. 쥐, 개구리…… 같은 동족인 뱀까지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어떻게 보면 짐승이었던 시절과 다름없는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달랐다.
그때는 살기 위해,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다면…… 이때는 ‘성장’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존재했었다.
그렇게 몇십 년 이상 허물을 탈피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약한 적은 잡아먹고 강한 적은 기생해서 성장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장이 목표치에 달했을 때, 다른 생물들은 그를 ‘이무기’라 부르고 있었다.
굳이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이름이란 게 생겼다.
이름 없는 짐승이 아닌, 존재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때부터 그림은 또 한차례 변화를 맞이한다.
먹는 것은 똑같다. 기생하는 것도 똑같다.
다만, 먹이가 달라진다. 숙주가 달라진다.
그의 특별함을 깨닫게 해 준 ‘인간’이었다.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휘리리릭- 빠르게 넘어가며, 그림 속의 뱀은 생명을 얻은 것처럼 움직인다.
이성을 넘어 지성을 갖추게 됐고.
기운을 모아 내단을 형성하게 됐으며.
존재를 깨닫고 더 높은 곳을 올려다보게 된다.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답한다.
나는 특별하다.
바야흐로 그는 하늘을 꿈꾸게 된 것이다.
저것은 내 것이다. 내가 아닌 누가 저 자리에 앉겠나.
오만한 마음으로 하늘에 도전했다.
그리고, 처참하게 패배한다.
그래서 족쇄가 채워진다. ‘인간을 지켜라.’는 치욕적인 족쇄를 채워, 하늘 아래로 추락시켰다.
기억의 페이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
눈을 떴다.
시야에 비친 모든 곳에 시체가 널려 있다.
끔찍한 학살의 현장. 밟고 선 대지는 이미 피로 물들어 섬뜩한 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황룡은 가까이서 꿈틀대는 인간을 향해 걸어갔다.
아장아장.
아직 성장이 모자라서인지 보폭이 짧다. 하지만 꿈틀대는 인간은 다리가 없다. 도망치지 못한다.
천천히 걸어가, 그를 내려다본다.
“괴, 괴물…….”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에 손을 쑤셔 박았다.
끄아아아악-!!
그때였다.
핏빛의 대지 위로 주술진이 뒤덮인다. 붉은 오오라가 태풍처럼 기류를 만들어 냈고.
나는 언제나 승리해 왔다. 비록 한 번 패배를 했을지언정 난 포기하지 않는다.
그 자리는 내 것이고, 나는 누구보다 그 자리에 어울리는 존재니까.
“더럽고 추악하더라도 언제나 마지막에 서 있는 자는 나다.”
우드드득. 우드드득.
아이의, 황룡의 몸이 성장하고 있었다.
* * *
옵티멈 본사.
김연희가 사진들을 보며 말을 잇지 못한다.
“세상에…….”
신이시여.
피와 살점이 낭자하고 시체가 산처럼 쌓인 사진들.
신을 믿지 않는 김연희가 신을 찾을 만큼, 지금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사진은 참혹했다.
“……이게 정말, 정말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가요.”
“저도 믿기지 않지만…… 사실인 것 같습니다.”
“대체 왜…….”
“아직 그것까진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김연희의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내전이잖나. 결국은 같은 나라에 사는 이웃이다.
막말로 전쟁에서 이겼다면 승자로서 이익을 챙겨야 할 거 아닌가. 그 이익이 어디서 나오나. 하늘에서 떨어지나? 아니다. 지금 죽인 저 인간들, 쟤들에게서 나오는 거다.
패자가 있어야 승자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저렇게까지 참혹하게 학살하는가.
“이해할 수 없네요. 제 머리로는 한계예요.”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번 중국의 내전은 이제껏 벌어졌던 과거의 내전과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그러네요. 사진만 봐도 알겠네요.”
다 죽이고 있잖나. 남녀노소, 초인이든 비초인이든, 공평하게 싹 쓸어버리고 있잖나.
신이 인간을 버렸다면 이 모습이 아닐까.
막아야 한다.
특별히 정의로워서가 아니다. 그만큼 지금 이 사진 속 모습이 비상식적이었다.
“간섭하기에는…….”
“무리입니다. 명분이 없습니다.”
“하…… 이건 전쟁이 아니에요. 학살이지.”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의 중국은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