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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209화 (209/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209화>

마침내 영국을 처참하게 짓밟던 복수자가 사라졌다.

영국은 바짝 목덜미를 겨누던 테러의 칼날에서 해방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으나…….

절망은 끝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진짜 절망의 시간이었다.

- 위대한 승리! 영국이 복수자 응징하다!

- 위대한 승리? 전문가들 코웃음. “피로스의 승리다. 부끄럽지도 않나?”

- 모 기사단 단원 “혼란스럽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기사도의 긍지가 흔들리고 있다.”

- 평소 ‘힘을 가늠할 수 없다.’ 말했던 영국. 역사상 최악의 방식으로 증명했다.

세상이 멸망한 듯 떠드는 타블로이드지.

천문학적인 복구 비용을 말하는 학자.

케케묵은 ‘분리주의’를 들먹이는 스코틀랜드 주.

마비된 도시에서 물과 식량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기나긴 줄.

모든 게 엉망이었다.

- 북아일랜드 지역이 폐허가 됐습니다. 도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단 말입니다. 이게 무엇을 뜻하…….

- 이 사진을 보세요! 사하라 사막처럼 보이는 이곳이 현재 북부의 사진입니다. 믿겨지십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로요!!

-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공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의원들은 중앙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으며…….

정치, 경제, 문화, 산업 등등.

엉망이 아닌 것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며, 무엇이 더 망가졌는지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러나…… 단 하나를 꼽아 보자면.

이런 절망스러운 현실에서 최악으로 꼽히는 것.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

안보였다.

└ 솔직히 말할게. 난 이제 나라에서 날 보호하고 있단 생각이 들지 않아.

└ 이봐 친구, 너무 비관적이야 :(

└ 비관? 하, 난 북아일랜드에 살아. 복수자에게 세 번째 털린 도시라고. 우리가 어떻게 사는 줄 알아? 새벽부터 물 받으러 가야 해.

└ 잊은 게 있군. 이 쓰레기 같은 글도 어제야 비로소 썼지. 빌어먹을 전선이 어제 깔려서.

└ 내가 제일 궁금한 게 뭔 줄 알아?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정부는 뭘 했냐는 거야.

└ 기사단은 나이트 아머에 광내고 있었나?

└ 얘들아 진정해. 할 만큼 했잖아.

└ 삼사자 군단은 장렬히 전사했지.

└ 가디언은 절반 이상이 사망.

└ Wow…… 진짜야, 할 만큼 했네.

└ 젠장. 복수자가 인간이 맞기나 할까.

영국의 안보가 무너졌다.

그것도 단 한 명에게.

국민을 지키기 못한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는가.

국민들은 국가의 근본적인 역할을 의심했고, 이는 영국이란 국가의 위상을 단숨에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어떻게든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국가가 신뢰까지 잃어버리자, 수습이 느려지고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이 상황을 수습할 방법이.

그래서일까? 왕실도 중앙 정부도 반쯤 포기했다.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으며 당장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절망.

어쩌면, 이제껏 나열했던 모든 절망을 더한 것보다 거대한 절망이 엄습하는데.

“선생님!! 의식을 되찾으셨어요!”

“오, 정신을 차리셨습니까. 제가 보이십니까? 이건 몇 개죠?”

“세 개…….”

“혹시 이름이 기억나십니까.”

“매…… 맥 리르. 마나난 맥 리르.”

“후, 다행입니다.”

“……내가 어떻게 여기…….”

“지원 나갔던 근위 기사단이 후송했습니다. 다른 동료분들도 함께요.”

“그들은…… 무사한가?”

“맥 리르 님이 처음입니다. 모두 아직 의식을 찾지 못했죠. 혹시 뭐 기억나는 거 없습니까.”

“……기억…….”

주르륵.

맥 리르의 눈물과 함께 전해진 비보.

“태사자 님이 돌아가셨다.”

태사자의 죽음.

그들은 신을 잃었다.

*   *   *

한편, 한국의 옵티멈 사옥.

김연희는 오늘도 평소처럼 부지런히 업무를 쳐 내고 있다.

“아, 팔이야. 끄으응…….”

부시럭 부시럭, 대표실 구석에서 신경 쓰이는 거대한 무언가가 불쌍하게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고 있었다.

며칠 동안 연락 한 통 없이 엄마를 걱정시킨 박 모 씨의 아들, KH 씨.

박기혁이었다.

현재 그는 엄마를 걱정시킨 죄로 실형을 받은 상태. 손을 번쩍 들고 대표실 모서리에 이마를 갖다 댔다.

이에 애써 눈을 돌린 김연희.

그녀는 눈으로는 서류를 보며 귀로는 비서실장의 브리핑을 경청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 메일’은 이번 테러로 받은 피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작전 세력이 유언비어를 퍼트린다고 주장했으며, 수습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음, 신뢰하기에는 무리네요.”

“비서실의 판단도 그렇습니다. 일단 가디언 메일의 평소 논조랑 많이 다른 것으로 보아 의도된 기사로 보입니다.”

“외압이 있었다는 거네요.”

누가 압력을 넣었을지는 뻔하다.

왕실이나 중앙 정부겠지.

그때 옆쪽에서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

“괜찮은 놈들은 자기가 괜찮다고 하지 않는데.”

“…….”

“…….”

“……큼, 죄송합니다. 조용히 있을게요.”

불쌍하게 쪼그라드는 박기혁.

비서실장이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브리핑을 이어 간다.

“이런 소식과는 반대로, 어제부로 영국은 국제 사회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접한 프랑스와 독일이 이에 응했고, 우리나라는 고민 중입니다.”

“봐봐. 이렇다니까.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왜 하는지…… 아, 끊어서 죄송해요. 계속해 주세요.”

“네, 다음으로…….”

영국의 현재 정세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모두가 알다시피 긍정적인 정보라고는 단 한 토막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서류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겨졌고, 김연희는 안경을 벗으며 한숨을 돌렸다.

“후, 이걸로 끝인가요.”

“일단 검증이 끝난 정보는 이게 끝입니다만…….”

“말씀하세요. 다른 소식이 있나요?”

“그게, 너무 믿기지 않아서…….”

“무슨 말인데요. 괜찮아요. 제가 걸러 들을게요.”

아무렇지도 않게 김연희가 말했지만, 이어질 말에 그녀의 뒷목이 뻣뻣해졌다.

“태사자가 사망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네에?!”

뭐라고? 태사자가 죽어?

수호령이 죽는다고?? 그게 죽기나 하는 거였어?

비서실장 또한 자신이 말하고도 어이가 없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유언비어 같습니다. 복수자의 충격이 워낙에 컸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 전투가 있고 난 후 태사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일부 극성 분자들이 설치는 걸 겁니다.”

“하긴, 그렇겠죠?”

지금 영국의 공권력은 난장판이란 말도 모자랄 만큼 망가졌으니 저런 유언비어가 돌 만하다.

납득하고 지나가려는데 비서실장이 눈치를 살짝 보더니.

“큼큼, 제 생각에는 평소 수호령과 친분이 많은 박기혁 님의 의견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박기혁? 그런 애 여기 없어요.”

“……저 여기 있는데요,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기분 탓이겠죠.”

“저기요, 어머니!”

애원하는 아들과 무시하는 어머니.

그리고 이 모자의 중간에서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비서실장.

“평소에 대표님이 하시던 말씀 있잖습니까. 올라선 만큼 보인다. 기혁 님은 우리 에이전트에서 가장 강한 분이십니다. 아마 저보다 명쾌히 대표님의 의문을 풀어 드릴 겁니다. 이제 그만 화 푸시고 이야기해 보시죠.”

이 말을 남기고 비서실장이 대표실을 나서고, 이제 대표실에 두 사람만 남는다.

김연희와 그녀의 괘씸한 아들.

“후우…… 박기혁.”

“네.”

탁탁, 의자를 팡팡 치며.

“손 내리고 이리 와 앉아.”

호다닥, 자리에 앉는 박기혁. 괜히 방실방실 최대한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그 모습에 김연희는 기가 차서 피식 웃었고.

“웃지 마, 이것아.”

“넵.”

“네가 뭘 잘못했는지는 알아?”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이 잘못입니다.”

“말이나 못 하면…….”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박기혁이 사라졌다. 그것도 목숨처럼 여기던 박봄과 박헤나가 습격받고 나서 얼마 안 돼.

김연희가 걱정이 되나 안 되나.

“걱정할 것 없는데.”

“좌표가 틀렸어. 엄마가 네 걱정했을 것 같니? 시무룩해하지 마. 실망한 표정도 짓지 말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엄마 김연희야 당연히 아들 박기혁의 안전을 걱정했다. 어떻게 엄마가 아들을 걱정하지 않겠나.

다만 옵티멈의 대표 김연희는 아들이 아닌 ‘마왕 박기혁’이 위험에 처한다는 그림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김연희의 눈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이 장소에 어울리는 옵티멈 대표의 눈으로 말이다.

“솔직히 말할까? 엄마는 네가 이번 영국의 ‘7일 공포’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어.”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하지만, 어디 박기혁의 전적이 좀 화려하나. 예전 삼합회를 퇴치하며 도시 하나를 지워 버린 것은 김연희로서도 충격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당해?

오히려 사고를 쳤으면 쳤지 절대 당할 아들이 아니다.

“에이, 억측이에요. 제가 어떻게. 아무리 저라도 영국까지 단번에는 못 가요.”

“그러니까, 연락이라도 자주 했으면 엄마가 이런 의심을 하지 않잖아!”

“그건…… 잘못했습니다.”

“후우.”

그래도 시무룩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사실. 이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정말 옛말 하나 틀린 게 없다.

김연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른 대로 말해. 뭐 했어.”

“아까 말했잖아요. 연구했다고요.”

“박기혁, 엄마가 기회를 줬잖아. 솔직하게 말해.”

“정말이라니까요. 믿어 주세요.”

“입장 바꿔 봐. 네가 나고, 네 평소 전적을 알면 지금 네 말을 믿을 수 있어?”

“힘들죠…….”

“다행이네. 이성은 남아 있어서.”

“그렇지만 이번에는 진짜예요. 진짜 연구했다니까요.”

“……진짜?”

“네!”

김연희와 박기혁.

모자가 서로를 응시한다.

좋은 말할 때 말해라, 정말이라니까요. 지금이면 혼내지 않을게, 좀 믿어 주세요.

눈빛으로 이뤄진 마지막 대화.

그리고 이번에도 끝내 손을 든 것은 엄마 김연희였다.

“후, 이렇게 나온다는 거지. 좋아, 뭐 연구했는데? 엄마 속 썩이면서 연구했으면 뭔가 결과물이 있을 거 아니야. 어디 내놔 봐.”

“흐흐. 놀라실 거예요.”

사삭, 능청스럽게 손바닥을 비비며 내놓는 유리병.

푸른 액체가 찰랑이는 이 병이 바로.

“마나 암 치료제입니다.”

“……!!”

김연희는 진심으로 할 말을 잃었다.

맙소사…… 얘가 진짜로 연구했나 본데?!

*   *   *

……성공이다.

보기 드물게 안색이 좋아지시는 어머니.

‘오해해서 미안해, 아들.’이라고 말하시며 신기한 듯 병을 바라보고 계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이 정도 변명을 해야지 완전히 납득시켜 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과연 생각대로였다.

의심을 살 줄은 예상했다. 그러니까, 이번 영국을 짓밟은 테러에 내가 관련됐을 수도 있다는…… 뭐 그런 거.

아무래도 그렇겠지. 어머니 말씀대로 내 전적이 좀 화려했나.

거기에 시기도 굉장히 공교로웠다. 나의 역린이라고 불리는 봄이와 헤나가 습격받고 바로 뒤, 뭔가 대형 사고가 터질 거라 예측했는데.

얼씨구? 바다 건너 영국이 저 꼴이 나고 있네?

당연히 의심하시겠지, 그래서 급히 납득시켜 드릴 변명을 생각했는데, 다행히 태사자를 완전히 제압하면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권속의 계약’에 대한 연구.

이 태사자 녀석이 이걸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째 봤는지, 연구 표본이 어마어마하더라.

그래서 이 표본과 기존의 내 연구를 응용. 마지막으로 ‘태사자’의 영혼 일부를 잘라 내 치료제를 개발.

지금 어머니가 흔들고 있는 치료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게 오해(?)가 풀린 우리 모자는 이 주제를 벗어나, 아까  비서실장이 던져 준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흠, 태사자가 죽은 건 아닐 테지만 오래도록 활동을 못 할 만큼 부상은 당했을 거다, 이 말이니?”

“아마도요. 제가 동영상으로 봤는데 그 복수자란 놈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그 정도야?”

“무엇보다 준비가 철저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인간이 1:1로 수호령을.”

“한 명이 아닐 수도 있어요.”

“……!”

“가면에 로브를 쓰고 있었잖아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숫자가 활동했을 수도 있죠.”

“그렇구나.”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단시간에 나라를 침몰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가까이에서 그 사례를 봤잖아요.”

“그렇지, 일본도 그랬지. 맞아.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그러면 납득이 돼.”

어머니가 내 말을 끊고 고뇌에 빠지셨다.

뭔가 거짓말에 거짓말을 지어 내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어머니, 죄송해요. 모두의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답니다.

“너랑 말하길 잘했어. 머리가 좀 개운해진 것 같네.”

“다행이네요.”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네 의견을 물어도 될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그럼.”

스륵, 내밀어진 서류.

나는 말없이 어머니가 내민 서류를 드는데……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제 새벽, 중국이 내전에 들어갔단다.”

무림맹주 난설이 직접 칼을 뽑았다.

명분은 ‘중원 일통.’

이로 인해 중국으로 향하는 하늘 길은 물론 바닷길까지 외부로 향하는 모든 길이 차단, 외교관들이 비상 수송편으로 줄줄이 귀국한다는 소식이었다.

“중국은 무슨 생각으로 내전을 일으켰을 것 같니?”

얘들이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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