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207화>
“말도 안 돼.”
마나난 맥 리르는 맞닥뜨린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분명히 복수자는 그로기 상태였다. 수많은 치명상으로 죽어 가고 있었고, 완전히 코너에 몰렸다고 믿었다.
의문의 살덩이가 소환돼 몸을 숨길 때 당황하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당황일 뿐이다. 이미 여기는 우리의 영역이었고, 사방이 뻥 뚫린 이곳에서 녀석이 도망갈 길은 없었다.
의문의 살덩이가 빗발치는 공격을 3일 동안 굳건하게 방어하며 맥 리르의 평정심이 무너지기도 했다.
하나, 이건 짜증에서 비롯된 거지.
어차피 시간은 우리 편이라 믿었다. 우리에게는 이 땅의 수호령 태사자 님이 있으니까.
결국은 스승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이런 맥 리르의 믿음에 답하듯 3일째, 태사자는 공간을 점하며 단숨에 그의 곁으로 왔다.
“이것이냐.”
그리고 태사자 님은 친히 자신의 권능을 펼치셨다.
사방이 문자로 가득 찬다.
언제 봐도 경이로운 마나의 향연.
법칙을 무시하는 힘.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무릎이 굽혀졌다.
태사자 님의 권능이 저 살덩이에서 증오스러운 그 녀석을 꺼내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권능이 형체를 갖추며 완성된던 그때.
바로 그 순간.
“……!!”
시동되는 마법이 멈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문자들.
“왜?”
무슨 일이신지…… 맥 리르가 고개를 돌려 태사자 님을 보는데.
그는 믿기지 않은 광경을 보게 된다.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는 태사자.
주르륵, 이마에서 식은땀이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이제껏 수십 년을 모시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때 직감해야 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사고가 났다고.
하지만 맥 리르는 처음 본 스승님의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만다.
구르르르륵- 구르르륵-
갑자기 살덩이가 팽창하더니, 순식간에 몸집을 불렸고.
‘도망쳐’라고 외치려는 순간.
이미 살덩이는 폭발하고 있었다.
파아아아아악-!!!
살덩이에서 분출된는 고름들이 닿는 모든 것을 녹인다.
나무도, 숲도, 대지도, 절벽도…… 심지어 인간도.
영국의 끝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 * *
어느 날인가.
진유리는 박기혁에게 물었다.
“수호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둘의 대화는 늘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얼핏 듣기로는 뜬구름 잡는 질문. 그러나 이런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를 통해 진유리는 박기혁의 여러 면을 공유했다.
“이종족이지.”
“이종족이라면…….”
“엘프나 오크 같은 놈들.”
“엘프나 오크면, 몬스터나 다름없잖아.”
“흠…… 굳이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몬스터나 다름없지.”
“에이, 심했다.”
“난 그렇게 생각해.”
대화가 통하는 애는 이종족이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새끼는 몬스터다.
이처럼 파격적이며 과격한 사상.
그럼에도 이유에는 분명한 논리가 존재한다.
“내가 본 사람들 대부분은 수호령을 균형자, 혹은 조율자라며 칭송해. 인류를 수호하니까. 인간들은 수호령이 자신들을 지켜 주고, 더 나아가 세상에 이롭다고 막연히 믿어.”
“그게 보통이잖아. 실제로도 그러하고.”
“정말? 실제로 그래?”
“그…… 그렇지 않아?”
“네 말대로라면 수호자는 일방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거네? 글쎄…… 난 좀 다르게 생각해.”
일방적인 관계는 고장 난다.
맹목적인 믿음은 오염된다.
만약 어떤 관계가 오래도록 유지된다면 틀림없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다.
“난 그게 생존이라고 봐.”
“생존? 수호령이 말이야?”
“그래, 걔네도 따지고 보면 생물이야. 생물이 생존 욕구가 없겠어? 쟤들도 똑같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싶어 해.”
“음…….”
“내 입장에서 볼 때 수호령이 인류를 수호하고 이 세계를 지키는 것은, 그냥 자기가 사는 세계를 지키는 거야.”
“뭔가, 되게 충격적이네.”
박기혁의 가르침은 불쑥 찾아온다.
진유리가 당연하다 알고 있는…… 아니, 이 세계의 모든 이들이 ‘보통’ ‘대부분’ ‘일반적’이라며 쓰는 사실들을 고찰하게 만들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난 여기서 ‘지킨다’는 말부터가 의심스러워. 아닌 말로 ‘지킨다’라는 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거든.”
“역사적으로 타국을 침략할 때 걸핏하면 들먹이는 명분이 ‘지킨다’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평화와 폭력, 어느 것도 합당하게 포장되는 마법의 단어란 거지.”
“만약에 수호령이 명확한 대가를 받고 이 땅을 수호했다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저기 위에 있는 신 놈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을 지킨다면…….”
“글쎄, 내가 수호령이라도 굉장히 불만스러울 것 같은데?”
수호령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
그 속에서 진유리는 박기혁의 수호령에게 가진 인식을 읽었다.
“기혁이 넌 수호령을 되게 부정적으로 보네.”
“맞아. 걔들은 존재 자체가 위험해. 시한폭탄? 뭐 그런 거지.”
“위그드라실 님이랑은 잘 지내잖아. 기간트 님도 너 좋아하고.”
“걔들은 대화가 되니까. 그래도 위험한 건 똑같아.”
“음…… 어렵다. 그러면.”
그래서 물었다.
그렇게 수호령을 위험하게 생각한다면, 해법이 있냐고.
“해법이라…… 죽이는 법을 말하는 거면, 당연히 있지.”
“세상에, 수호령을 죽일 수 있다고?”
“반대로 묻자. 왜 수호령을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해?”
“그야…… 수호령이니…… 까?”
“훗. 아까 말했지. 걔들도 따지고 보면 생물이야. 모가지 따고 척추 끊으면 뒤져.”
수호령이 강해 보이는 것은 ‘상위 존재’이기 때문이다. 격의 차이로 자연스럽게 힘의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격을 끌어올려 동등하게 맞추면 돼. 말이 쉽다고? 애초에 인간이 상위 존재에게 맞선다는 게 이 정도는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해.”
“잠깐, 잠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가 알기로 수호령은 영역 내에서 ‘무적’이라고! 절대 죽지 않아! 설마, 그것도 거짓말이야?”
“아니, 네가 맞아. 게이트 안에서 수호령은 절대로 못 죽여.”
“근데, 어떻게 죽인다는 거야.”
“어떻긴.”
게이트 안에 있는 수호령을 절대 못 죽인다면, 게이트 ‘밖’에 있는 수호령은 죽일 수 있다는 말 아닌가?
방법이 나왔네.
“어떻게든 밖으로 유인해서 패는 거지.”
“오, 세상에.”
“죽을 때까지 X나 패면 뒤져.”
X나 패면 뒤진다니…….
진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봄이와 헤나가 또래에 비해 과격(?)해지는 것 같아 신경 쓰이는데, 아빠란 애가 이러고 있으니 한숨이 나오나 안 나오나.
솔직히 믿기지도 않았다.
얘가 과격해도…… 어떻게 수호령을 때려죽여. 그래서 반쯤 농담으로 치부하며 넘어갔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오늘에야 깨닫는다.
“언니! 딸기 언니! 여기 봐! 엄청 맞고 있어.”
“저 가면 쓴 나쁜 아저씨…… 오, 진짜 잘 때린다! 아버지 보는 것 같아.”
“아냐, 아빠는 더 커.”
“누가 아빠래!”
“네가 아빠랬잖아!”
두 아이가 아옹다옹 머리를 들이밀며 보는 화면 속, 금발의 한 사내가 그야말로 ‘먼지’ 나게 처맞고 있다.
정체불명의 검은 안개한테.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이 동영상의 제목.
‘태사자 공략법.’
그렇다.
지금 처맞고 있는 쟤가 믿기지 않게도 수호령 태사자였다.
우리가 아는 영국의 영광이자, 기사도의 아버지인 그 태사자 말이다.
순간.
진유리의 머릿속에 메아리처럼 울린다.
“죽을 때까지 X나 패면 뒤져.”
“……진짜네?”
수호령도 죽을 때까지 때리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복수자, 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기분 탓이겠지…….
왜 얼굴도 체형도 전혀 다른 남자에게서 진한 박기혁의 향기가 느껴질까.
“에이, 아닐 거야…… 아니어야 돼.”
* * *
내가 손짓하자 ‘허무’가 담긴 검은 연기가 뭉쳐지며 주먹으로 변했다.
주먹이 나왔으면 다음은.
죽빵이지.
퍼어억-!!
“크어억!”
통통 튕겨 나가 바닥을 구르는 금발의 사내.
이놈이 바로 내 새끼를 건드린 범인이며, 내가 이 수고를 하게 만든 원흉.
태사자였다.
쓰러진 체 꿈틀대는 태사자. 정말 아픈 것처럼 배를 잡고 피까지 토하고 있다.
나는 그런 놈을 내려다보며 ‘퉤’ 침을 뱉는다.
“일어나.”
아마도 이 세계를 통틀어 나보다 수호령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수호령.
얘들, 강하다.
그런데 내가 상대하지 못할 정도냐면…….
그 정도는 아니란 거지.
위그드라실도, 기간트도, 레드 드래곤도, 에우리아도 만나 봤잖나. 걔들하고 비슷하다면 애초에 수호령은 내 상대가 아니다.
다만 껄끄러운 점은 ‘영역’이다.
자기 게이트 안에 쏙 숨으면 아무리 나라도 죽일 수 없다. 신이 그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밖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잠깐…… 우선 대화를…….”
“대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팡이 ‘허무’를 겨눴다.
대상은 몸을 일으키려는 태사자. 내 주변을 가득 매우고 있던 음차원 마나가 일시에 폭발.
마법이.
구성된다.
플레임 버스터
Flame Bust
프로즌 킹덤
Frozen Kingdom
불과 물.
극상성의 마법.
하지만 명색이 태사자인데 이걸로는 부족하다.
카피
Copy
무한으로 복사되는 플레임 버스터와 프로즌 킹덤.
이 정도면 수호령의 격에 맞을 거다. 어디 먹어 봐라.
손을 내리자, 불과 물의 폭격이 태사자의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폭발에 휩쓸려 희미하게 떠오르는 태사자의 인영.
그때.
녀석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내 주변으로 문자가 떠오르며, 몸을 속박. 타이밍에 맞춰 하늘을 뚫고 벼락 다발이 내려쳤다.
콰가가가강-!!
곧바로 바닥이 흔들리며 발밑으로 용암이 솟아오르고, 다시 흙들이 비산하더니 창살로 변해 나를 노렸고, 다시 돌풍이 몰아치며 사자 형상으로 변신, 나를 향해 도약했고…….
다시 내 허리를 중심으로 하체와 상체의 공간이 반대로 찢어진다.
빛의 속도로 연계되는 마법의 향연.
느껴지기로는 ‘고유 마법’이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기본은 되어 있네.
고위 마법사일수록 마법전에서 단일 속성보다 다 속성 마법을 선택하는 것은, 이렇듯 상대방을 교란할 목적도 있지만 다양한 방어의 선택지를 강요하기 위한 것.
저 정도 고위 마법은 단순히 실드나 안티 매직으로 버틸 수 없거든.
각 속성에 알맞게, 제대로 주물러야 한다.
이렇게.
딱-!
허무로 바닥을 내려치자.
1초가 쪼개지고 쪼개져, 사고가 확장되고.
세계가 멈춘다.
어지럽게 쏟아지는 마법들이 허공에 장식처럼 멈춰 있다.
이제 하나씩 풀어 볼까.
내 정수리를 노리는 벼락 다발은, 같은 번개로 덮어 공간을 나눈다.
라이트닝 월드
Lightning world
당장이라도 발밑에서 내 발을 삼키려는 용암은, 지진을 일으켜 주변으로 퍼져 나가게.
어스퀘이크
Earthquake
나를 벌집으로 만들려는 저 흙의 창날은, 역속성인 바람으로 분쇄하고.
트윈 싸이클론
Twin Cyclone
이쪽의 바람 마법인 사자 형상의 돌풍은 불꽃으로 대처하자. 이왕이면 같은 동물이 좋겠지.
드래곤 블라스트
Dragon Blast
마지막으로, 내 허리를 양단하려는 이 공간은 ‘허무’를 이용해 가볍게 터치.
끝.
멈춰 있던 세계가 서서히 제시간을 찾으며, 내 주변을 덮치던 마법이 일제히 폭발했다.
콰아아앙-!!
휘황찬란 오색의 마나들이 황홀하게 허공을 비춘다.
물이 흙에게 먹히고, 흙이 바람에게 먹힌다. 각 마법들이 또 다른 마법에 반응해 만들어 낸 기묘한 색색들.
내가 이래서 마법전을 좋아한다. 이 얼마나 황홀한가.
오랜만에 즐겁게 놀아 보자.
휘잉-!
폭발하던 마나가 내가 뻗은 손을 중심으로 몰려든다.
‘마나 드레인’을 이용한 기예. 범인이라면 이 상태에서 이 마나를 흩어 버릴 거다. 다음 마법을 준비하기 위해.
하지만 이쪽은 마왕.
대기 중에 잡힌 모든 마나를 해석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마나를 이용해 그대로 마법 발현.
파악!
내 등 뒤로 물줄기가 솟구친다.
하늘을 찢을 듯 솟구친 물줄기는 물의 장벽이 되고 헤일이 되어 정면을 집어삼켰다.
어이가 없는 눈으로 쳐다보다, 기어코 턱을 떨어트리는 태사자.
‘이게 돼?’라고 얼굴에 쓰여 있다.
“끝내주지?”
“…….”
“제대로 해라. 나 오랜만에 재미있어지려고 하니까.”
시간은 많다.
어디 놀아 보자.
오늘 이곳에서 지상 최대의 마법전이 벌어졌다.
하늘이 뒤집힌다.
땅이 역류한다.
과포화된 마나는 주변을 짓누르고 있다.
불길은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고, 끓어오르는 물은 안개로 변해 눈을 가린다.
빛은 감히 이곳을 침범할 수 없고, 어둠도 몸을 숨기고.
부서지는 세계 속.
나는 지팡이로 녀석을 가리켰다.
어디, 이거도 버티는지 볼까.
이제껏 내가 썼던 마법 중 고유 마법을 제외한 가장 고위급 마법.
수 속성
프로즌 템페스트
Frozen Tempest
토 속성
그라운드 오브 그레이브
Ground of Grave
풍 속성
소닉 스톰
Sonic Storm
화 속성
헬 파이어
Hell Fire
4속성 연계
엘리멘탈 저지먼트
Elemental Judgment
하늘에서 초록 물방울 하나가 메마른 대지 위에 떨어지고.
퐁당-
대지가 동심원을 그리며 출렁이는 순간.
‘자연의 심판’이 작렬한다. 하늘을 뚫고 떨어지는 연초록빛 오로라는.
적을 분쇄한다.
위이잉-!
오로라에 걸친 영역 전체가 존재째로 날아간다. 대지에는 구멍이 뚫렸고, 공기는 삭제, 구름도 없고…… 나중에는 빛마저 사라졌다.
사실상 현존하는 가장 높은 경지의 마법.
당연히 그 파괴력만큼은 압도적이다. 일단 휩쓸리면 시체도 남기지 않는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엘리멘탈 저지먼트’의 오로라가 걷힌 자리에는 마법 문자가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 마법 문자가 노란빛을 머금는 순간.
금발의 남자는, 거죽을 벗고 제 본모습을 찾는다.
태사자
현신
現身
“죽여 주마!”
크아아아앙-!!